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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마지막 봄
작가 :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9.10.4

(정통소설/피폐)

전 세계의 질서가 무너져내린 이후 매서운 겨울이 찾아왔다.
남아있는 생존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흩어졌고, 얼어붙은 세상에 남은 마지막 불씨는 꺼져버렸다.

이 버려진 도시에 홀로 남겨진 소녀는 이제 잃어버린 가족들을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나야만 한다.

 
13화
작성일 : 19-10-21 21:47     조회 : 20     추천 : 0     분량 : 5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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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상훈이 기름을 묻힌 장작에다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드럼통 안에 던져넣자 드럼통에서 거센 불길이 타올랐다. 불길이 어느 정도 번지자 상훈은 비닐에 싸인 꽁꽁 언 고기 조각을 석쇠 위로 올려 늘어놓았다.

 

  온기가 느껴지자 봄이는 침대에서 내려와 드럼통 앞에 무릎을 구부리고 쭈그려 앉았다. 방의 중심부에서 점점 퍼지는 그슬린 빛이 봄이의 얼굴색을 노랗게 바꿔놓았다. 언 고기 조각이 녹으면서 풍기는 고소한 향기를 맡으며 그 광경을 신기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봄이는 고깃조각 한 점을 집어들고 후후 분 다음 입속으로 집어넣었다. 고기! 보잘것없는 꽁꽁 언 베이컨 쪼가리이긴 하지만 이런 식사라도 제대로 해본 적이 언제였던가? 맛있는 음식이란 봄이에게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가져다주었다. 포만감은 물론이고 지금껏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억눌리고 있던 평온함, 나른함, 만족감을 해방시켰다.

 

  그들은 한 마디 말도 없이 짧고 조촐했던 식사를 마쳤다. 봄이는 오랜만에 식사다운 식사를 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식기를 모두 치우고 그들은 아직 꺼지지 않은 드럼통 주위에 둘러앉아서 손을 녹이고 있었다. 딱딱 타는 장작 내음과 가끔씩 튀어 오르는 불씨만이 방 안에서 지속되는 침묵을 메꾸고 있었다. 봄이는 이곳의 이 아늑한 분위기와 편안함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배를 가득 채우고 나른해진 봄이는 그제서야 지금까지 자신이 있었던 방을 돌아볼 수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곳은 평범한 주택집의 방이 아니었다. 어떤 집의 지하실인 것이 틀림없었다. 환기구는 몇 군데 있었지만 창문이 한 군데도 없다는 점에서 그 사실을 대략 유추할 수가 있었다. 창문은 없었지만 특별히 갑갑하다는 폐쇄감은 들지 않았다.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 있기에 최적의 장소인 것 같았다. 다만 낮 시간대에 머물기에는 조금 암울한 느낌이 느껴지는 장소였다.

 

  딩이는 봄이의 허벅지 속으로 파고들어 몸을 둥글게 말아서 눈을 껌벅거리며 졸고 있었다. 봄이가 크게 타오르고 난 후 점점 약해지는 불길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데, 상훈이 먼저 작은 목소리로 나지막이 말을 꺼냈다.

 

  “많이 먹었냐?”

 

  “.........네.”

 

  “며칠 전의 넌 이렇게 얌전하지 않았었는데.”

 

  봄이는 입을 꾹 닫아버렸다. 계속되는 침묵에 상훈은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끝까지 고맙다는 인사는 안 하는구나.”

 

  “별로요.”

 

  “됐다, 됐어. 꽉 막힌 녀석 같으니라고.”

 

  상훈은 한숨을 쉬며 쇠꼬챙이로 타는 장작을 괜시리 뒤적였다.

 

  “그런데, 어쩌다가 여기까지 온 거야? 도대체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금방이라도 팔려나갈 사람처럼........”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아요.”

 

  상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는 팔을 뻗어 봄이의 손목을 잡아주려고 했다. 그러나 봄이는 진흙 속에서 손을 빼내듯 재빨리 그의 손을 뿌리쳤다.

 

  “내가 이렇게 마음을 열고 널 대하고 있잖아. 너도 그러면 적어도 최소한의 성의라도 보이려는 척이라도 해 봐. 그게 도리 아니겠어?”

 

  봄이는 귀찮다는 듯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러고는 말했다.

 

  “사람을 쐈어요.”

 

  * * *

 

  봄이가 말을 잇지 못하고 무릎을 움찔거렸다. 상훈의 눈썹이 흥미롭다는 듯 약간 위로 올라갔다.

 

  “.......계속해 봐.”

 

  “사람을 쐈어요. 우발적이었다고 하면 우발적이었는데, 확실히 자의지로 쐈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는 기분이었어요. 정말 끔찍한 기분이었죠. 그때 그 죽어가던 남자가 아직까지 잊혀지지가 않아요. 이게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일인지도 모르겠어요. 나는 스스로를 지키고 싶었을 뿐인데....... 정말 묘한 기분이 끊이지가 않아요. 처음으로 사람을 쏜 다음에 권총을 던져버리고 싶었는데 차마 버릴 수가 없었어요. 오히려 꽉 쥐고 현실에서 도피라도 하듯 그 자리에서 도망쳐 버렸어요. 제가 그때 한 일은 잘한 것이었을까요? 저는 이제 어떡하면 좋죠? 이 트라우마를 안고 계속해서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게 정말 옳은 일일까요? 저는 정말로 살아있을 가치가 있는 걸까요?”

 

  봄이는 고개를 아래로 푹 떨궜다. 상훈은 한동안 생각에 잠긴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또 다시 두 사람이 있던 지하실이 한순간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봄이의 품안에 둥지를 튼 딩이만이 아무 말도 없이 그녀를 올려다보며 낑낑대고 있을 뿐이었다.

 

  “지난 건 전부 잊어버려. 물을 엎질렀다고 해서 다시 주워담을 순 없지. 지나가 버린 과거에 얽매인 채로 헤매봤자 네 발목만을 붙잡을 뿐이야. 네가 예전에 사람을 죽였든 뭘 했든 지나간 과거의 미련일 뿐이고. 물론 예전에야 과거는 과거라 해도 쉽게 넘어가지는 않았겠지. 그런데 지금은? 지금은 더 뭐가 필요하지? 중요한 건 네가 지금 이렇게 멀쩡히 걸어다니고 있다는 거지. 일단 어찌됐든 간에 살아남았잖아. 안 그래?”

 

  살인은 그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정당화될 수 없다. 하지만 지금 봄이의 눈 앞에 있는 남자는 그녀에게 씻을 수 없는 악몽과 같은 트라우마를 그대로 안고 가라는 뜻일까? 봄이는 상훈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다가 상훈의 입술이 닫히자 반론이라도 제기하려는 듯 다시 말했다.

 

  “그 말은........ 자기 자신만 살아남는다면 상관없다는 뜻인가요?”

 

  장작을 뒤적이던 상훈이 봄이의 말을 듣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오직 자신만 살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을 발판 삼아 짓밟고 올라서서 자신만의 이기적인 생존에 희생당한 타인들의 목숨을 담보로 올라선다고 해도, 아무런 죄책감도 느낄 필요가 없다는 뜻인가요?”

 

  “이 세상은 이미 죄책감이고 담보고 뭐고 아무런 의미가 없어. 자신이 쓰러져서 애원하는 상대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상황에서 잠깐이라도 머뭇거린 순간 자신이 죽게 되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선 남을 짓밟고 올라서야만 해. 물론 그게 절대로 쉬운 일은 아니지. 너도 언젠가는 이해하게 될 날이 올 거야.”

 

  “그 날이란 게 영영 오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어쩌면 너도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

 

  미간을 찌푸린 채로 멍하니 있는 봄이를 마주보며 말하던 상훈이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장작이 타는 소리가 한 번 크게 울려 퍼졌다.

 

  “네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야. 그런 물러터진 성격이 어쩌면 나중에 빛을 볼 수도 있겠지. 솔직히 지금 이 세상의 어디에서 상식이란 게 통하겠느냐만, 혹시라도 그 멍청한 상식이 통하는 상대를 만날 수도 있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건 우리들이지 철학 그 자체가 아니니까.”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네요.”

 

  “뭐, 아무튼. 그래서 넌 이제 어쩔 계획이야?”

 

  봄이의 영혼 없는 대꾸에 질렸는지 상훈은 자연스레 말을 돌렸다.

 

  “부모님을 찾아 떠날 거예요. 부모님의 소식을 가장 마지막으로 알려준 건 삼촌이니까 삼촌 댁을 찾아가면 무엇인가 알 수 있을지도 모르죠.”

 

  “삼촌이 어디 계신지는 알아?”

 

  “아뇨.”

 

  봄이가 칼같이 말을 끊어버리자 상훈이 곤란하다는 듯이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러다가 무엇인가 좋은 수가 떠오른 듯 봄이에게 검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그럼 이렇게 하자. 여기서 얼마 안 떨어진 곳에 정부의 통제구역이 있어. 조금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곳이라 불안하기는 해도 일단 치안은 조금이나마 유지될 테니 여기보다는 사정이 나을 거야. 그곳에 가면 통제소 입소자 명단을 확인해서 어쩌면 네 가족들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만약 네 가족들이 그곳에 들른 적이 없다면 헛고생이겠지만 그래도 다른 통제소 위치를 확인한 다음에 계속 그렇게 샅샅이 뒤지다 보면 언젠가는 만나게 되겠지.”

 

  “안 돼요. 잊었어요? 거기에 내가 저지른 일을 목격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걱정 마. 그 곳에 네가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을 입증시킬 만한 증거는 없을 테니까. 네가 가진 그 장난감만 어떻게 숨길 수 있다면 아무 문제도 없을 거야.”

 

  상훈이 그렇게 말하며 쭈그려 앉아있는 봄이의 왼쪽 허벅지 옆에 놓인 권총을 가리켰다. 그러자 누워서 졸던 딩이도 귀를 쫑긋 세우며 덩달아 상훈의 손가락 끝을 따라서 시선을 옮겼다.

 

  “.........숨길 방법이야 어딘가 있겠죠. 그것보다 걱정인 건 제가 삼촌을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가 2년 전인데, 대부분의 사실이 기억이 안 나지만 딱 하나 확실한 건 여기서 상당히 멀었던 곳이었다는 거죠.”

 

  “예전에 살던 곳이 어디였다고 했지?”

 

  “말한 적 없어요. 그렇지만 아마 제 기억상으로는 천안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천안이라..........”

 

  상훈이 주먹을 턱에 괴고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봄이는 그런 상훈을 바라보며 제발 그의 입에서 긍정적인 대답이 나올 수 있게끔 마음속으로 두 손 모아 빌었다.

 

  “좋아, 우선 이 근처 통제소에 가보자. 거기서 입소자들을 쭉 둘러본 다음 없으면 다른 통제소로 이동할 수밖에 없겠어. 사실 네 가족이 정부 통제소에 있을, 아니 왔다 갔을 가능성도 거의 전무하지만 말이야.”

 

  봄이는 상훈의 이 계획이 상당히 비효율적이라고 느껴졌지만 특별히 딴죽을 걸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봄이가 생각해왔던 계획보다는 그의 계획이 훨씬 그럴듯해서였다. 사실 봄이는 전국 방방곡곡을 하나하나 뒤지면서 찾을 생각이었다고는 절대로 말하지 못했다.

 

  “그럼 내일부터 출발할까요.”

 

  “오늘은 늦었으니까. 넌 아까 누워있던 침대에서 푹 쉬어. 어린 숙녀분을 위해서라면 땅바닥에서 자줄 순 있으니까.”

 

  상훈이 말을 끝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봄이도 땅바닥을 짚고 일어섰다. 봄이가 일어서자 지금까지 그녀의 품속에 있던 딩이가 누울 공간이 없어져버려 품에서 내려왔다.

 

  “그런데, 그 때 노예시장엔 왜 왔던 거예요? 아저씨도 볼 일이 있을 것 아니에요? 왜 굳이 나서서 절 도와주려는 이유가 뭐예요?”

 

  “너무 깊게 알려고 하진 마. 이게 내가 하는 일이니까. 잘 자라.”

 

  상훈은 그 한마디를 끝으로 어디론가 가버렸다. 봄이는 거의 꺼져버린 불씨를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몸을 돌려 침대로 향했다. 가만히 앉아서 눈치를 보던 딩이도 봄이를 따라 침대 위로 뛰어 올라왔다.

 

  봄이가 이불을 끌어당기자 딩이가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딩이의 털은 빳빳하고 냄새도 났지만 편안하고 안정된 기분을 가져다주었다. 딩이를 팔로 감싸안은 채 돌아누워 입술을 우물대던 봄이도 뒤늦게서야 입을 열었다.

 

  “........아저씨도요.”

 

  그날 밤 봄이는 처음으로 편안하게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작가의 말
 

 감사합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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