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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마지막 봄
작가 :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9.10.4

(정통소설/피폐)

전 세계의 질서가 무너져내린 이후 매서운 겨울이 찾아왔다.
남아있는 생존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흩어졌고, 얼어붙은 세상에 남은 마지막 불씨는 꺼져버렸다.

이 버려진 도시에 홀로 남겨진 소녀는 이제 잃어버린 가족들을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나야만 한다.

 
9화
작성일 : 19-10-12 18:18     조회 : 28     추천 : 0     분량 : 3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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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현관문을 닫기 전까지 서늘한 바람이 계속해서 스며들었다. 봄이는 눈으로 배여 밑창이 하얗게 된 신발을 끌며 다시 2층으로 올라갔다. 소년이 봄이의 눈을 쳐다보자, 봄이는 그 시선이 ‘신발 신고 들어오지 마’ 라는 뜻일 거라고 생각했다. 말없이 계단을 올라가 방문을 닫았는데도 소년은 따라 올라오지 않았다.

 

  봄이는 소년이 자신을 2층 방에 놔두고 1층에서 무엇을 하는지 궁금했다. 가끔씩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무엇인가를 잡아끄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창문 깨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잘못 들은 것이었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다른 사람의 집 2층에서 스스로를 고립시킨 봄이의 정신적 불안감은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봄이는 온 몸이 꽁꽁 묶여있는 것 같은 답답함을 느꼈다.

 

  봄이는 잠시 생각하다가 아래층에 있던 소년을 불렀다. 봄이 자신도 평소에 개미가 옮듯 귀찮게 기어오르는 소년을 이쪽에서 먼저 부를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잠시 후 삐걱거리는 계단 소리를 울리며 소년이 방에 들어왔다.

 

  “무슨 일 있어? 누나가 먼저 불러 주고.”

 

  “꼬마, 잠깐 얘기 좀 하자.”

 

  침대 위에 앉아서 무겁게 분위기를 잡는 봄이의 표정에 어울리지 않게 소년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누나도 꼬마잖아.”

 

  “장난 칠 기분 아니야. 너, 부모님이 전부 돌아가셨다고 했지?”

 

  “장난 아니었는데.”

 

  소년이 입을 삐죽 내밀었지만 봄이가 쏘아보자 잽싸게 입꼬리를 집어넣었다.

 

  “이 집 1층 상태가 보통 심각한 게 아니던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소년은 눈을 껌벅거리다가 대답했다.

 

  “나는 다른 친척 집에 있었어. 부모님이 행방불명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달려와 보았는데 집이 이 지경이 되어 있었던 거야. 지금은 많이 없어졌는데 그 때 당시엔 핏자국도 여기저기 군데군데 있었어. 그런데 보통 핏자국이 아니라 무엇인가에 끌려 있었어. 마치 누군가가 사람을 죽여서 끌고 간 것처럼 말이야.”

 

  “그렇다면 그게 너희 가족들이었겠군. 안 됐네. 시체라던가 그런 건 없었고?”

 

  “그럴지도 모르지. 핏자국이랑 흔적뿐이었어. 누나는 부모님이 어디 계시는지 알아?”

 

  소년이 입을 뻐금거리며 봄이의 눈을 쳐다보자 봄이는 시선을 피했다.

 

  “나도 전해들은 얘긴데, 어려운 일 때문에 해외로 나가셨다는 것 같아. 덕분에 아직까지 안 돌아오시고 있어. 그 소식을 전해들은 지는 몇 년이나 지났지만.”

 

  “그렇구나. 누구한테 들은 얘긴데?”

 

  “우리 삼촌.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이 바쁘셔서 나는 초등학교 시절 대부분을 삼촌 동네에서 보냈거든. 덕분에 삼촌이랑은 아주 친했지. 문제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긴 했는데 삼촌네 동네가 너무 외진 동네라 다닐 만한 중학교가 없어서 서울로 내려왔어. 그래서 부모님이랑도 그 때 처음 만났지. 내 기억 상으로는 그래.”

 

  “부모님을 중학생 때 처음 만났어?”

 

  소년이 눈을 동그랗게 키웠다.

 

  “정확하게는 어렸을 때 만났겠지. 일 때문에 나를 삼촌에게 맡겼던 것도 부모님이니까.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정말 큰 일 같았어. 그래서 나는 아직까지도 부모님 얼굴이 기억나지 않아. 부모님이랑 중학교 2학년 때까지는 같이 살았었는데, 3학년이 되고 나서는.......”

 

  봄이가 고개를 푹 숙이고 말끝을 흐렸다.

 

  “아무 기억이 안 나. 이상하지? 정말로 누군가가 카메라 필름을 뚝 잘라버린 것처럼 아무 기억이 나질 않아. 부모님 얼굴도, 친하게 지내던 내 친구들 얼굴도, 왜 내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지도.”

 

  봄이는 말을 전부 마치고 가슴이 뜨겁게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다는 의문은 곧 절망과 좌절감으로 바뀌었다. 살아남기 위해 싸워왔지만, 지금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이 그다지 고맙지 않았다.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이었다. 봄이는 지금까지 이 사실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었지만 봄이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봄이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던 사람 역시 없었다. 봄이는 자신이 사랑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늘 혼자서 노력해왔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로 혼자가 되어버릴 것 같아서였다. 살아남기 위해서, 버림받지 않기 위해서, 세상에서 잊혀지지 않기 위해서.

 

 눈가 주변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무릎에 손을 얹은 채로 굳게 꽉 쥔 주먹 위에 작은 물방울 한 개가 떨어졌다. 이윽고 더 많이 떨어졌다.

 

  봄이가 작게 중얼거렸다.

 

  “우리 부모님은...... 어디에 있는 걸까?”

 

  봄이의 슬픈 눈망울에서 작은 눈물 줄기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봄이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딱히 닦으려고 하지 않았다. 흐른 물줄기들이 봄이의 뺨에 작은 길을 만들었다. 봄이는 턱에 물줄기들이 모여 손등에 흘러내리도록 놔두었다. 훌쩍이는 소리도 내지 않았다. 이런 세상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지만 봄이는 목에서부터 복받쳐 올라오는 감정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난방이 되지 않는 방에서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작게 흐느끼는 어린 소녀의 목소리만이 한동안 이어졌다. 입술을 깨물고 눈을 감은 채로 하염없이 눈물만을 흘렸다. 소년은 흐느끼는 봄이를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소년의 눈동자는 아까와는 다르게 수축되어 있었다.

 

  “미안해. 되게 바보 같지, 나.”

 

  봄이는 감정을 전부 발산하고 나서야 고개를 들고 소년에게 눈물 젖은 억지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러나 소년은 그 미소가 무엇인가를 감추기 위해서 짓는 미소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내가 도와줄게.”

 

  소년이 청량한 목소리로 말했다.

 

  “신경쓰지 않아도 돼. 나는 괜찮으니까.”

 

  봄이가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소년은 아까와는 다른 사뭇 진지한 얼굴로, 봄이의 빨개진 눈동자를 마주 바라보았다. 봄이는 이러한 소년의 진지한 모습에 위화감을 감추지 못했다.

 

  “잠시........ 감정에 휩쓸렸을 뿐이야.”

 

  눈에 먼지가 들어갔다, 라고 말하면 너무 이상해 보일 것 같아서였을까? 봄이는 소년에게 솔직한 감정을 털어놓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봄이가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는 그렇게 많지 많았다. 봄이는 어느새 눈물을 완전히 닦고 활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억지 미소일지도 모르지만.

 

  “쓸데없는 소릴 해서 미안. 그보다 배고프지 않아? 뭣 좀 먹을래?”

 

  봄이가 그렇게 말하며 아까 전의 겁쟁이 남자에게서 받아 온 베이지색 가방의 지퍼를 열었다. 등산용 가방 특유의 가죽 냄새가 가득 올라와 코를 찔렀다.

 

  봄이가 가방에서 나온 물건들을 하나하나 꺼내 늘어놓았다. 땅콩, 호두 같은 견과류가 든 통조림 두 개와 육류 통조림 한 개, 말린 쇠고기 육포 한 봉지와 얼음이 녹은 물 한 통이 들어 있었다. 보조 수납 주머니의 한 귀퉁이에는 가족사진으로 보이는 사진 한 장이 있었지만 꺼내보지 않고 보이지 않게끔 더 깊숙이 구겨 넣었다.

 

  봄이는 먼저 육류 통조림 한 개를 들고서 소년에게 다른 통조림을 건네주며 말했다.

 

  “한 개씩만 먹어두자. 또 언제 먹을 걸 얻을 수 있을지 모르니까........”

 

  봄이는 방금 전까지와는 다르게 매우 기운차 보였다. 마치 가슴 한구석에 한가득 쌓인 덩어리들을 필사적으로 숨기려는 것 같았다. 이 모습을 본 소년은 음식을 손에 든 채로 멍하니 앉아 있었다.

 

  봄이는 말이 끝나자마자 손가락에 힘을 줘서 통조림 뚜껑을 시원하게 뜯어냈다. 얼어서 먹기 힘든 통조림을 손가락으로 끄적여서 입 속으로 털어넣었다. 언 고기를 먹을 때는 이가 시렸지만 봄이의 얼굴은 행복해 보였다. 아까 전의 일과 말들은 전부 잊어버린 것 같은 얼굴이었다.

 

  “먹고 나서, 더 먼 곳까지 가 보자. 더 많은 물자와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해. 꽤나 긴 모험이 될 거야. 험난할지도 모르고, 최악의 경우가 발생할 것을 대비해야겠지만, 운이 좋으면 엄마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우리는 아직 살아있다는 걸 잊지 말자.”

 

  봄이의 결심에 소년은 그저 말없이 빙긋 웃었다.

 

  어찌 되었든, 그들은 아직까지는 살아 있었으니까.

 

  아직까지는.

 

 
작가의 말
 

 감사합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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