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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마지막 봄
작가 :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9.10.4

(정통소설/피폐)

전 세계의 질서가 무너져내린 이후 매서운 겨울이 찾아왔다.
남아있는 생존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흩어졌고, 얼어붙은 세상에 남은 마지막 불씨는 꺼져버렸다.

이 버려진 도시에 홀로 남겨진 소녀는 이제 잃어버린 가족들을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나야만 한다.

 
7화
작성일 : 19-10-10 21:00     조회 : 23     추천 : 0     분량 : 7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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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봄이는 머릿속에서 한 규모의 오케스트라가 교향곡을 합주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2층 계단을 마주보고 있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작고 귀여운 방 하나가 봄이의 눈동자에 가득 들어왔다.

 

  목재 재질로 만든 것 같은 책꽂이에는 형형색색의 책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고, 요즘 시대에는 보기 드문 반달아치형 구조의 책상을 마주보고 있는 틸트가 휘어진 폴리우레탄 소재의 의자와 책상 위에는 전원이 들어오지 않는 컴퓨터 한 대가 놓여 있었다. 방구석에는 분홍색 커버와 이불이 덮힌 사람 두 명 정도는 충분히 잘 수 있을 만한 방 규모에 어울리지 않는 큰 침대가 보였다. 침대 맞은편에 있던 옷장의 문이 열려있고 침대 위는 물론이고 미처 정리하지 못한 옷가지들이 사방에 어지럽게 널려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지극히 평범한 어떤 소녀의 방이라고 생각될 만한 곳이었다.

 

  봄이는 아래층에 비해 위층은 그나마 정상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재수 없는 소년이 따라 들어오는 것이 싫어서 안에서 문을 잠갔다. 지금까지의 소년의 특성상 분명히 조금 있으면 문을 두들기겠거니 싶어서 어떻게든 따라 들어오려는 소년을 쫓아 낼 궁리를 하고 있었지만 의외로 문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2층을 올라오는 계단의 발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봄이는 의아해하면서도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하고 침대 왼편의 활짝 열려있는 상태로 바깥세상의 저녁 공기와 칼바람을 그대로 전해주던 창문과 커튼을 당겨 닫아버렸다. 그리고는 그대로 푹신해 보이는 침대 위에 몸을 던졌다.

 

  비록 남의 집이었기는 했지만 봄이에게는 오랜만에 느끼는 아늑함과 편안함이었다. 두통이 점점 사그라드는 것을 느꼈다. 두툼하고 부드러운 흰색 베개를 양팔로 한가득 껴안으니 졸음이 밀려왔다. 다른 일을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던 봄이의 눈꺼풀은 곧 감겼다.

 

 ***

 

  이른 아침을 환하게 비춰 주는 강렬한 햇살을 받은 봄이의 눈이 가늘게 뜨이기 시작했다. 어젯밤에 분명히 닫았을 터일 커튼과 창문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활짝 열려 있었다. 사실 그러지 않았으면 봄이는 이른 햇빛에 눈을 뜨지도 못했을 것이다.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부스스한 눈가를 팔로 비볐다. 이 방은 침대에 앉아 있는 상태로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면 바로 창밖이 보이는 구조였기 때문에 봄이는 본능적으로 덜 떠진 눈으로 소리가 나는 창가를 돌아보았다.

 

  온 세상을 환하게 물들인 햇살이 맑고 푸른 바깥 초원을 힘차게 내리쬐고 있었다. 푸른 초원에는 민들레부터 목련, 수선화까지 가지각색의 아름다운 꽃들이 평화로운 분위기를 만들었고, 이리저리 솟은 깨끗하고 멋진 나뭇잎이 풍성하게 돋은 아름드리 나무 사이에서 바쁘게 날아다니고 있는 새들이 짹짹거리며 지저귀는 노랫소리가 이 푸른 바깥세상에 활기찬 분위기를 만들어내며 봄이의 귀를 즐겁게 해주었다. 2층에서 내려다보는 묘한 느낌과 함께 따스한 봄바람이 은은하게 불어와 봄이의 코를 간질였고, 오랜 기간 동안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엉켜 있는 봄이의 새카만 머리카락과 후드 재킷이 봄바람을 받아 조그맣게 휘날렸다. 봄이는 머리카락을 스치는 봄바람이 기분 좋아서 한동안 눈을 감고 고요한 바람 소리만을 가만히 들으며 앉아 있었다.

 

  봄이는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어제와 다를 것 없는 방의 풍경을 다시 한 번 쓱 훑고는 2층으로 통했던 작은 방문을 살짝 잡아당겨 문을 열었다. 1층으로 통하는 계단과 깨끗한 현관이 내려다보였다.

 

  아래로 내려가니 깨끗한 마루와 바닥 타일이 깔려 있었다. 창가의 베란다에는 생기 있는 녹색 푸른 식물 화분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양 옆으로 활짝 개인 바닐라색 커튼 뒤에는 금방이라도 봄바람이 불어올 것만 같은 바깥세상을 투시시켜 보여 주는 깨끗한 유리창이 아침 해를 맞아 에메랄드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넓직해서 네 명 정도는 앉을 수 있어 보이는 거실 식탁 위에는 딸기 잼 한 통과 신선한 식빵 한 봉지가 놓여 있었다. 봄이가 벽걸이 텔레비전을 마주보는 가죽 소파에 앉으려고 하는 순간 때마침 초인종 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봄이는 몸을 돌려 현관문으로 향했다.

 

 ***

 

 봄이의 눈이 다시 뜨였다. 이번에는 아까와는 달리 눈꺼풀이 무거웠다. 커튼과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니 책꽂이 앞에 앉아서 무언가를 읽고 있는 소년이 보였다. 봄이가 부스스 일어나는 소리를 들은 소년이 뒤돌아보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좋은 밤, 일어났어?”

 

  좋은 밤? 아직 아침이 되지 않은 건가. 봄이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소년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소년은 봄이와 눈이 마주치자 다시 빙긋 웃고는 책에 집중했다.

 

  봄이는 소년을 봐오면서 생긴 의문이 아직까지 풀리지 않았다. 도대체 저 녀석은 뭐가 저렇게 기쁜 것일까. 대체 무엇이 기뻐서 얼굴에서 저 재수 없는 미소가 떠나질 않는 것일까. 봄이는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소년에게 말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예전부터 궁금했던 게 있는데.”

 

  소년이 다시 호기심 어린 눈으로 돌아보았다.

 

  “네 이름은 뭐야?”

 

  “몰라. 기억 안 나.”

 

  봄이는 어이가 없어 펄쩍 뛸 노릇이었다. 지금 장난하냐고 멱살을 잡고 따지고 싶었지만 참았다. 사실 지금 세상에는 이름이란 것이 딱히 의미가 있었던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봄이는 답답함을 억누르고 다시 말했다.

 

 “뭐 됐어. 아무래도 우리는 내키진 않지만 오래 볼 사이인 것 같으니까. 그것보다 지금 몇 시지?”

 

  봄이는 한쪽 벽 모퉁이에 걸린 시계를 쳐다보았다. 시곗바늘은 숫자 4를 가리키고 있었다.

 

 “새벽 네 시인가. 그만 나가봐야겠다. 할 일이 있어.”

 

 “뭘 하러 나가는데?”

 

 “놈들이 소굴 밖으로 기어나오기 전에 행동해야 해. 너는 방해되니까 그냥 여기 있어.”

 

 “나도 따라갈래.”

 

 “바보야, 여기 있으라니까.”

 

 “그렇지만 여기는 나 밖에 모르는걸. 만약 나갔다가 누나가 여기 못 돌아오면 어떡해?”

 

  봄이와 소년이 집안에 있던 가방 한 개씩을 대충 둘러매고 집을 나섰다. 집 밖은 봄이가 아까 꾸었던 꿈과는 달랐다. 그렇다면 아까의 꿈은 뭐였을까. 환각이었나? 아니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에 저항하는 봄이의 무의식 속 환상에 대한 하찮은 실낱 같은 희망이었나?

 

 “절대 내 옆에서 떨어지면 안 돼. 다른 사람이 보인다고 달려가서도 안 돼. 알아듣겠어?”

 

 “알았어.”

 

  신이 난 듯 생글생글 웃는 소년을 못마땅하게 여긴 봄이가 한숨을 쉬었다. 무슨 죄가 있어서 이 머저리가 자신에게 달라붙은 것일까. 봄이는 귀찮게 달라붙는 소년을 마음 속으로 욕하면서도 자신이 소년 덕분에 어젯밤을 따뜻하게 보냈다는 사실은 잠깐 잊고 있었다.

 눈은 그쳤지만 얼어붙은 새벽 공기는 어찌 보면 밤공기보다 훨씬 차가웠다. 전에 내렸던 폭설 이후 바닥에 쌓인 눈은 많이 녹았지만 그 녹은 눈길이 빙판길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 문제였다. 재킷을 뚫고 들어오는 칼바람에 더해 바닥은 온통 미끄러운 얼음길 뿐이었으니 봄이는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들의 속도는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또 다른 문제가 있다면 바로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아침이나 낮에야 해가 세상을 비춰준다지만 저녁이나 밤에는 특히나 조심해야 했다. 몇몇 극소수의 가로등을 빼고는 대부분의 골목이나 큰길에도 가는 빛 한 줄기조차 비춰지지 않았다. 그야말로 칠흑 같은 어둠이라는 표현에 어색함이 없을 정도였다. 한 치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빙판길을 걸어가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지만 사냥꾼들을 피해 움직이기 위해 오래 전부터 봄이가 쓰던 방식이었다. 어둠은 시야를 심각하게 제한한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그 반대로 몸집이 작은 봄이가 가장 효율적으로 사냥꾼들의 눈을 피하는 방법이기도 했으니까. 봄이는 날이 밝는 대로 손전등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천천히 한 발씩 내딛었다.

 

  우선 아무 인적도 없는 새벽에 물자를 구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빈집털이였다. 손을 더럽히지 않고 이득을 취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기도 했다. 봄이나 봄이 또래의 좀도둑들은 가끔 문이 파손되어 있거나 열려있는 집에 아무도 모르게 숨어들어가 통조림이나 기름, 옷가지나 약 같은 쓸만한 물건을 훔쳐 나오고는 했다. 봄이는 그 집과 물건의 주인은 아마도 없을 테니 ‘훔치다’라는 표현은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가끔 이런 좀도둑들을 의식해서 아무도 없는 척 문을 열어놓고 숨어 있다가 좀도둑이 들어오면 사정 없이 때리고 밟는 무리들이 드물게 존재하기도 했다. 그런 수법을 당해 본 사람중에는 봄이도 포함되어 있었다.

 

  봄이는 달빛에 비친 아파트 단지 한 곳을 찾아 들어가기로 했다. 아파트가 털기 좋은 이유는 한 번 입구로 들어가면 수없이 많은 집을 살펴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좋은 물건이 많이 발견되지는 않지만 도둑들은 언제나 털 게 많은 집보다 털기 쉬운 집을 주 목표물로 정해왔으니까.

 

  봄이는 꽁무니에 바짝 붙어 뒤따라오고 있는 소년에게 쉿 하는 손짓을 보낸 다음 단지 앞 잔디밭에서 권총과 가방을 먼저 위로 던지고 2미터 정도의 아파트 담벼락을 기어 올라갔다.

 

  우선 사람 소리가 나는 곳은 피했다. 사람 소리가 나지 않는 방들은 대부분 잠긴 집이었다. 몇 번이고 잠긴 집들을 빙빙 돌아다니고서야 비로소 열리는 집을 찾을 수 있었다. 문고리가 약간 파손되어 있는 집이었다. 봄이는 살며시 문짝 옆의 벽에 등을 기대고 왼손으로 문고리를 조심스럽게 밀었다. 오른손에는 권총의 방아쇠에 손가락이 걸려 있었다.

 

  짧게 꺾이는 소리를 내며 칠흑 같았던 방 내부에 아주 조금이지만 바깥세상의 빛이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했다.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암흑 뿐이었다. 봄이는 왼손으로 가방을 뒤져 은색 지포 라이터를 꺼냈다. 소년의 집 거실 소파에 올려져 있던 것을 가져온 것이었다. 오른손으로는 여전히 권총의 방아쇠를 굳게 잡은 상태로 왼 손목으로 라이터를 한 번 흔들어 불을 켰다. 시커먼 어둠이 활짝 걷히며 퍼져 나가는 그을린 노란 빛으로 가득 물들었다.

 

  어느 집과 다른 점은 없었다. 거실 한가운데에 앉은뱅이 책상이 한 대 놓여져 있고 벽면에 커다란 거울이 있었다는 점만 제외하면 지금까지 봄이가 봐 온 집들과의 차이점은 없었다. 봄이는 천천히 신발을 신은 채로 현관을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온 집안을 샅샅이 뒤졌지만 쓸만한 것은 찾지 못했다. 지금은 그다지 쓸모있지 않은 화폐마저 한 장도 없었다. 문고리가 파손되어 있었던 걸로 봐서 벌써 누가 털어간 것이 분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집에는 생필품이 단 한 개도 남아 있지 않았다. 열려 있는 집도 사정은 비슷했지만 특히나 누군가가 강제로 문을 연 것 같은 흔적이 남아있는 집에서는 물자를 구하기가 힘들었다. 이런 좀도둑짓으로 이득을 취하려면 항상 누구보다 빠르게, 은밀하게 행동해야 했다. 가끔가다 다른 좀도둑이나 운 나쁘게 무리와 조우한다면 좋게 끝나야 사소한 다툼 수준이고 심각하다면 자비없는 유혈사태가 벌어지는 일도 흔했다. 봄이도 사실 그럴 뻔했다.

 

  봄이는 소년의 방으로 추정되는 책상 서랍을 뒤지다가 그의 가족 구성원이 썼던 것 같은 일기장 하나를 발견했다. 봄이는 그런 걸 발견하고 흥미로워하는 성격과는 거리가 멀었고 본능적인 호기심을 주체할 수 없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봄이는 무언가에 이끌리는 듯이 일기장 공책에 꽂혀 있던 볼펜을 옆으로 밀어내고 얼어서 누렇게 된 종이에 삐뚤삐뚤한 글자로 적혀 있는 일기장을 펼쳐 읽었다.

 

  10월 13일

  아빠가 오늘은 기분이 안 좋아 보인다. 내가 몇 번이고 아빠에게 고민을 물어봤지만 피곤하다고만 할 뿐 대답해주지 않았다. 혁준이에게도 대답해 주지 않은 것 같다. 나중에 엄마한테서 들은 얘긴데 직장에서 쫓겨났다는 것 같다. 아빠네 회사뿐 아니라 다른 회사들도 많이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왜 나한테는 말해주지 않은 걸까. 나도 이제 다 컸는데.

 

  10월 17일

  요즘 많이 추워진 것 같다. 티비를 보는데 요즘 한창 유명한 유전자 시술 문제로 또 난리가 난 것 같다. 예전에는 최근 떠오르는 각광 받는 신기술 정도로 유명하더니 이제는 또 무슨 문제가 생겼다는 것 같다. 나는 이런 거 관심 없어서 잘 모르겠다.

 

  10월 29일

  우리 가족은 몇 주 동안이나 토론을 했다. 토론 결과 정부에서 통제하고 있는 보호구역으로 이사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한 것 같은 사람들이랑 다 같이 보호구역으로 갔는데 애완동물 반입은 안 된다는 것 같다. 엄마랑 아빠는 땡이를 두고 가자고 했지만 나는 절대로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땡이랑 함께 집에 남았다. 부모님과는 연락하고 있다.

 

  갑자기 불현듯 정수기 옆에 쌓여 있던 빈 생수통이 떨어지는 소리가 어마어마하게 크게 울렸다. 봄이는 소스라치게 놀라 일기장도 떨어뜨리고 책상 서랍 옆에 올려두었던 권총을 잽싸게 집어 들고 경계했다.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서 방을 나온 후 소리가 났던 정수기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라이터를 들고 있는 왼손이 점점 뜨겁게 달궈지는 것을 느꼈다. 권총을 쥔 오른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봄이는 목구멍에까지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을 받았다.

 

  어지럽게 쓰러뜨려져 있는 생수통들 사이를 조사하기 위해서 발로 빈 통을 건드려서 통이 굴러가는 것을 보고 난 후 봄이는 목 깊은 곳에서부터 욕설이 올라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망할 쥐새끼들.”

 

  검은 쥐 한 마리가 생수통 사이에서 쏜살같이 도망쳤다. 봄이는 빠르게 도망치는 쥐의 뒤통수를 보고 총알을 한 방 먹여주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봄이는 더 이상 이곳에 볼일이 없다고 생각하고 씩씩거리며 현관으로 향하다가 문득 현관 맞은편의 벽에 걸린 커다란 전신거울이 시야에 들어왔다. 최근에는 거울을 별로 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봄이는 다른 사람은커녕 자신의 모습조차 잊어버릴 지경이었다. 봄이가 거울을 보며 쓸데없는 짓을 하는 데에 정신이 팔린 사이 지금까지 잊고 있었던 소년의 존재가 봄이를 부르는 것을 들은 후에야 봄이는 집 바깥으로 나갈 수 있었다.

 

 “누나, 저길 봐. 사람들이 있어.”

 

 “뭐라고?”

 

  봄이는 소년이 가리키는 곳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암흑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희미한 빛 두 줄기 사이의 역광에 비친 검은 실루엣이 어렴풋하게 보이는 것으로 보아서 틀림없는 사람들이었다.

  아마도 손전등을 한 개씩 든 사람 두 명인 것 같았다. 봄이는 그 광경을 보자마자 소년의 정수리를 억세게 눌러 주저앉혔다.

 

 “몸 낮춰. 놈들일지도 몰라.”

 

  봄이는 혼란스러웠다. 지금 시각은 오래 되어 봤자 소년의 집에서 나온 이후로부터 한 시간이 지나지 않았을 터였다. 그런데 어째서 사람이? 설마 자신과 같은 생각으로 늦은 새벽에 물자를 구하러 나온 사람들인 것인가. 아니면 부지런한 사냥꾼일지도 몰랐다. 봄이는 단지 옆 담벽에 이어져 있는 좁은 틈 사이에서 소년의 정수리를 누른 채로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손전등을 이리저리 비추며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봄이가 있는 아파트 단지를 향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봄이는 그저 경로가 비슷할 뿐일 것이라고 애써 자신을 진정시켰다.

 

  불행하게도 봄이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그들은 아까 봄이가 넘어왔던 아파트 담을 넘어 들어왔다. 그리고는 봄이가 있는 담벽 틈새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들과의 간격이 점점 좁혀들었다. 쥐죽은 듯이 웅크리고 있던 봄이의 귀에까지 심장 뛰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지금 당장 저 두 사람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다시 한 번 담을 넘거나 담벽 틈새로 빠져나가는 것 뿐이었다. 다시 담을 넘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렸고, 틈새로 빠져나가기엔 틈새가 너무 좁았다. 한 마디로 피할 방법은 없었다.

 

  손전등 빛이 이따금씩 봄이가 숨은 담벽의 뒷면을 비췄다. 두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바로 앞에서 들려왔다. 20미터도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심장박동이 더욱 요란해졌다. 더 이상 이쪽에서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봄이는 될 대로 되라는 작정으로 치맛폭에서 권총을 뽑아 들고 이 쪽을 비추는 손전등 빛 속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작가의 말
 

 감사합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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