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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마지막 봄
작가 :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9.10.4

(정통소설/피폐)

전 세계의 질서가 무너져내린 이후 매서운 겨울이 찾아왔다.
남아있는 생존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흩어졌고, 얼어붙은 세상에 남은 마지막 불씨는 꺼져버렸다.

이 버려진 도시에 홀로 남겨진 소녀는 이제 잃어버린 가족들을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나야만 한다.

 
4화
작성일 : 19-10-07 20:08     조회 : 22     추천 : 0     분량 : 4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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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주저앉아 있었을까? 점차 절망감은 소녀를 짓누르는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소녀는 사실 여태까지 외부인과 마찰을 종종 빚었던 적이 많았고, 다툼이 벌어졌던 적도 많았지만 생명의 위협을 느꼈던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직까지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홧김에 저질러 버린 ‘살인’의 느낌이 다시 한 번 소녀의 머릿속을 옥죄었다. 주저앉은 다리가 떨리는 것을 느꼈다. 설사 지금은 합법과 위법의 경계가 모호해졌다고 하더라도 살인은 엄연히 해서는 안 될 짓이었다.

 

  아니, 사실 해서는 안 될 짓이라는 건 없었다. 세상이 무너져버린 지금 누가 세운지도 모르는 도덕과 질서가 무슨 소용인가? 만약 그 상황에서 소녀가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다면, 그럼 소녀는 죽는 순간까지 도덕적이고 청렴한 죽음을 맞이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고 해도 그것이 무슨 소용인가? 그랬다면 소녀는 이미 지금쯤 눈보라에 파묻혀 사라져버렸을 텐데.

 

  지금까지 소녀는 허술하고 붕괴된 치안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외부인의 눈에 띄지 않도록 숨어 지내기만 하면 되었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마주칠 수도 있는 일말의 인연조차 만들지 않으면 되었다. 항상 누군가가 말을 걸어와도 무시했고, 호의적으로 접근해도 거부했다. 지금까지 소녀는 그렇게 살아왔다. 하지만 막상 일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지자 소녀는 처음으로 기댈 곳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소녀는 정신을 잃을 만큼 고통스러웠지만 일어서야만 했다. 아까의 그 가엾은 남자처럼 그대로 눈밭에 파묻혀 죽기는 싫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다리가 잘 움직이지 않았지만 소녀는 허기진 배와 무거운 다리를 끌고 한 걸음 한 걸음 목적지 없이 걸어 나갔다.

 

  우선은 동사하지 않으려면 묵을 곳이 필요했다. 가진 게 있다면 단칸방이나 지하실을 빌려주는 사람도 있었다. 안타깝게도 소녀는 가방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다. 상황이 악화되자 아까 그 재수 없는 남자가 했던 말이 떠올랐지만 이내 잊어버렸다. 사실 해가 지지 않은 지금 소녀에게는 묵을 곳보다는 목이 타는 갈증과 허기를 해결하는 게 우선이었다.

 

  이 춥고 배고픈 소녀가 힘겹게 다리를 끌고 도착한 곳은 형형색색의 표지판들이 나란히 늘어선 지하철역이었다. 희미하게 빛이 바랜 ‘쌍문역’이라는 글자를 제외하면 역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손전등은 잃어버린 가방에 있었다. 별 수 없이 소녀는 어두운 계단을 엉거주춤 더듬으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려갔다.

 

  역 내부는 텅 비어 있었다. 열차는 더 이상 선로를 누비지 않았고, 깨진 전광판이 천장에 걸린 채 삐걱거렸다. 방금 전까지 누군가가 불을 피웠던 흔적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찌그러진 깡통들이 굴러다녔고, 오물이 묻은 찢어진 신문지 조각만 발에 쓸렸다. 분명 아무도 없는데도 어디선가 계속 고약한 악취가 났다.

 

  슬슬 시야가 어둠에 적응되기 시작했다. 벽을 더듬던 소녀의 손에 무엇인가 걸렸다. ‘관계자 외 출입 금지’ 라고 씌인 철문 앞에 빽빽이 쳐진 폴리스 라인이었다. 제대로 찾아온 것이다. 소녀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폴리스 라인을 걷어제끼고 철문 앞에 섰다.

 

  소녀는 철문을 탕탕 두드렸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다시 문을 두드리자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문구멍 사이로 눈을 내밀었다.

 

  “여기엔 아무것도 없소. 돌아가시오.”

 

  지독한 술 냄새가 풍겼다. 그가 소녀를 외면하려는 순간 소녀가 대답했다.

 

  “산행로 3가.”

 

  “아, 손님이셨구먼.”

 

  반대쪽에서 철문이 열렸다. 술에 잔뜩 취해 눈이 풀리고 수염이 덥수룩한 딸기코 노인이 고개를 내밀었다.

 

  “어서 들어오시오. 출입증 좀 봅시다.”

 

  “할아버지, 나 한두 번 보는 거 아니잖아요.”

 

  딸기코 노인이 멍청한 눈동자를 굴렸다.

 

  “그랬었나? 요즘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처음 보는 아가씨인데?”

 

  소녀는 딸기코 노인과 대화하는 것을 포기하고 한숨을 쉬며 쪽지 한 장을 내밀었다. 그는 돋보기 안경을 고쳐 쓰더니 쪽지를 이리저리 돌려보고는 돌려주었다.

 

  “내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요즘 단골들을 기억하기가 힘들어. 아무튼 좋은 시간 보내시오.”

 

  딸기코 노인이 춤추듯 비틀거리며 길을 비켜주었다. 소녀는 대꾸하지 않고 조용히 재킷에 달린 후드를 눌러썼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문틈 사이로 눈부시게 비추는 백열등 빛과 함께 떠들썩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약한 담배 냄새는 물론 미미한 헤로인(*진정제의 일종) 향까지 풍겼다. 처음 이곳 냄새를 맡을 때는 머리가 어질어질했지만 자주 오는 곳이다 보니 곧 익숙해졌다. 가끔이지만 괜찮은 향기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이곳에 있었다. 모여앉아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사람들, 큰 칼로 알 수 없는 동물의 고기를 썰고 있는 사람, 초췌하지만 웃고 있는 여자를 팔에 낀 주정뱅이, 큰 소리로 흥정하는 장사꾼들, 말싸움하는 사람들...... 바깥세상과는 전혀 다른 광경이었다. 이곳에는 온기가 있었고, 대화가 오갔고, 생기가 돌았다. 그저 숨겨진 문을 하나 열었을 뿐인데 세상이 이렇게까지 바뀔 수 있을까?

 

  “보고 가세요. 오늘 아침에 도축한 신선한 고기예요.”

 

  동물의 배를 갈라 곧게 펼친 듯한 시뻘건 고깃덩이를 든 장사꾼이 소리쳤다. 그는 소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다른 누군가가 장사꾼에게 다가가 말했다.

 

  “그 고기는 이제 안 들어오나요?”

 

  “그건 이미 조금 전에........”

 

  소녀는 고기 장사꾼들을 뒤로하고 암시장을 계속 둘러보았다. 대공황으로 인해 경제체제가 완전히 무너져 내리면서 더 이상 사람들은 숫자가 씌인 종이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돈보다는 물건, 특히나 쓸모 있는 물건들을 원했다. 먹을 것이나 물, 의류 다음으로 수요가 많은 대체화폐는 술과 담배였다. 그러나 술은 귀했고, 주조하기가 쉽지 않고 보관이 어려워 담배가 주로 종잇돈 자리를 꿰차곤 했다.

 

  소녀가 조용히 둘러보고 있는데 누군가가 소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

 

  “이봐요. 놀다 가지 않을래요? 10분에 담배 스무 개비예요.”

 

  그가 자신의 뒤에 있는 돼지우리 철창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머리가 헝클어지고 진한 화장을 한 반라의 여성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있었다. 철창 주변에는 군중들이 잔뜩 모여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소녀가 말없이 지나치자 뒤에서 그가 소리쳤다.

 

  “요즘은 여자 손님들도 많이 찾으시거든요! 그럼 다섯 개비는 어때요?”

 

  소녀는 몇 시간 동안이나 암시장을 맴돌았지만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했다. 아무도 소녀에게 먹을 것이나 마실 것을 나눠주려는 사람은 없었다. 모여앉아 카드 게임을 하는 사람들 주변에서 서성여보기도 했지만 ‘누가 꼬맹이 구경꾼을 불렀어?’ 라는 말과 함께 내쫓길 뿐이었다.

 

  갈증과 공복이 점점 더 심해졌다. 눈앞이 어질어질한 소녀는 그만 어떤 뚱보와 부딪혔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소녀는 뚱보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매달렸다.

 

  “물.......... 물 좀 주세요.”

 

  “물을 달라고? 네가 주는 게 있어야 나도 물을 주지.”

 

  “저는 지금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요.”

 

  뚱보가 얼굴을 찌푸렸다.

 

  “가진 게 없다는 녀석들을 뒤져 보면 꼭 빼앗을 만한 게 있지. 특히나 여자들의 경우.”

 

  뚱보는 들고 있던 지팡이로 소녀의 가슴을 쿡쿡 찔렀다. 소녀는 죽고 싶을 만큼 치욕스러웠지만 꾹 참고 매달렸다.

  “제발, 제발 부탁이에요.”

 

  “거지 행세는 다른 곳에서나 해. 괜히 좋은 곳에서 물 흐리지 말란 말이야. 한 번만 더 귀찮게 했다간 이곳 관리인들을 부를 거다.”

 

  매정하게 지나치는 뚱보를 소녀는 더 이상 붙잡을 수 없었다.

 

  그 때 무언가가 바로 옆에서 배고픈 소녀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옆에는 한 남성이 어딘가에서 주워온 듯한 딱딱하고 곰팡이가 슨 빵들을 팔고 있었다. 소녀는 그 빵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쳐다보았다. 그러나 주인은 소녀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개당 담배 한 개비요.’ 라고 외치고만 있었다.

 

  소녀는 가만히 서서 기회를 보다가 주인이 상자를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려고 몸을 돌렸을 때, 진열대로 달려가 가장 가까이 있는 빵 두 개를 양손에 집어들고 잽싸게 뛰어 도망쳤다.

 

  “저 꼬마는 뭐야? 잠깐, 이봐!”

 

  지나가던 군중들을 밀치고 도망치던 소녀는 카드 게임을 하던 중이었던 테이블에 걸려 넘어졌다. 테이블이 엎어지고 카드들이 하늘에 팔랑거렸다. 앉아 있던 사람들이 욕설을 퍼부었지만 지금 소녀에게는 양심의 가책 따위보다 자신의 배를 불리는 게 더 우선이었다. 푸른 곰팡이가 슬고 딱딱하게 굳어버린 빵을 양손에 꽉 움켜쥐고 소녀는 또 다시 일어나 달렸다.

 

  소녀는 암시장에서 도망쳐온 뒤에도 한참을 달리다 멈추어 섰다. 소녀가 호흡을 가다듬는 사이 뒤를 돌아보았지만 다행히도 쫓아오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소녀는 도둑질 정도는 이제 익숙했다. 도둑질뿐만 아니라 손을 더럽히는 짓은 이미 많이 했었다. 애초에 지금 소녀가 있는 곳은 치안이 나쁜 빈민가이고,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소녀가 이곳에 살기로 마음먹었던 것도 어쩌면 이러한 이유였는지도 모른다. 이런 세상에서 어린아이가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자력으로 생계를 유지하려면 도둑질 정도는 권장이 아니라 필수였으니까.

 

  이제 먹을 것을 구했으니 얼어죽지 않을 잠자리가 필요했다. 소녀는 어디가 좋을지 곰곰이 생각하다가 예전에 친구가 부모님과 다투고 집을 나와서 주차장이나 지하철역에서 노숙을 자주 했었다는 말을 떠올렸다. 소녀는 눈 덮인 아파트 단지를 살펴보다가 ‘한 시간 이후부터 주차요금 15,000원’ 이라고 써 붙여진 종이와 그 옆에 노란색의 점멸등이 꺼져버린 안전바와 텅 빈 경비실이 있는 것이 보였다. 소녀는 그대로 지하 차도를 따라 내려갔다.

 

 
작가의 말
 

 감사합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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