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아리에나, 오빠가 간다!
맹렬하게 앞으로 치고 나가는 카이.
반면 하인델버그는 여유로운 스텝으로 옆으로 빙 돌며 움직인다.
어긋나는 두 사람의 움직임인데...
카이는 쫓고, 하인델버그는 쫓기는 양상이다.
그러나 꼭 쫓는 자가 강한 것은 아녔다.
<스슥>
하인델버그가 흥분한 카이의 뒤를 잡는 데 성공한 것.
그가 손바닥으로 카이의 황금빛 뒤통수를 겨냥해 마법을 시전한다.
"프로스트 버그!"
얼음 파편들이 폭발한다.
카이도 호락호락 당하지는 않는다.
그는 무릎을 굽혀 좌표 폭발형 마법을 피해낸 뒤, 오른손을 쭉 뻗어 특유의 황금빛 불꽃을 쏘아 보낸다.
"인시너레이트!"
하인델버그도 뒤로 멀찍이 점프하여 화염을 가볍게 회피한다.
그가 만족스럽다는 듯 웃으며 카이에게 말한다.
"오오, 카이! 제법 잘 싸우는걸? 하긴 유니온 리더를 다섯이나 쓰러뜨렸으니 완전 애송이는 아니라고 봐야겠지? 킥킥."
"닥쳐라, 하인델버그! 플레어 샷!"
거대한 비단구렁이 크기의 불줄기가 하인델버그를 향해 뿜어져 나간다.
"프로즌 쉴드."
이번에도 하인델버그는 얼음방패를 소환해 가볍게 막아낸다.
그 뒤로도 카이가 몇 차례 더 화염 공격을 쏟아 봤지만, 번번이 막히거나 회피당할 뿐, 단 한방도 하인델버그에게 맞지 않는다.
"제길..."
카이가 막무가내식 공세를 멈춘다.
그가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적을 쏘아보며 소리친다.
"장난치지 마라!"
"응? 나 장난치는 거 아니야. 후후, 단지 좀 놀고 있을 뿐이지."
"이 새끼!"
화가 난 카이가 황금빛 불덩이를 던진다.
역시나 이번에도 하인델버그는 쉽게 막아낸다.
"너야말로 좀 더 차분하게 싸우는 게 좋지 않을까?"
마치 제자에게 지적하듯이 하인델버그가 카이에게 조언을 던진다.
장난치는 태도는 얄미웠어도 어쨌거나 그의 말은 옳았다.
카이는 지금 여동생이 납치되어 있다는 사실에 흥분해 감정적인 공격만 퍼붓고 있었다.
결코 제대로 된 전투를 이끌어가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
"후우..."
정신을 차린 카이가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하늘색 머리의 상대를 정면으로 직시한다.
'그렇다. 저 녀석은 아이젠의 최측근 부대인 세르파에서도 가장 강력한 1군단장... 격한 감정에 이끌려 퍼붓는 공격으로는 절대로 이길 수 없는 강자다. 침착하고 눈앞의 상대에게 집중하자. 그리하여 최상의 전투를 이끌어 가는 거다!'
분노에 사로잡혀 있던 카이의 두 눈동자에 그제야 하인델버그의 모습이 제대로 비친다.
그걸 본 하늘색 머리 청년의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이제 꽤 괜찮은 눈빛이 되었구나. 카이. 그럼 다시 한번 덤벼봐!"
"인시너레이트!"
하인델버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카이가 황금빛 화염을 던지며 진격한다.
이번에도 얼음방패로 막아내는 하인델버그.
그러나 카이의 이후 움직임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정확해졌다.
완벽하게 상대의 수를 읽어내고는 강력한 화염을 적중시킨다.
"크악!"
하인델버그가 폭발형 마법을 가슴팍에 허용하고는 뒤로 벌러덩 나뒹군다.
미동도 없이 쓰러져 있는 하인델버그.
과연 카이가 외로운 산 정부 2인자인 하인델버그 글레이셔를 쓰러뜨린 것일까?
다음 순간 마치 이 질문에 '아니다'라고 대답하듯이 하늘머리 청년이 껄껄 웃음을 터뜨리며 일어선다.
"푸하하하하하핫! 이거 한대 제대로 먹었는걸? 대단해 카이! 이건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실력이잖아? 이 정도면 우리 세르파 군단장들도 결코 쉽게 볼 수 없겠어!"
"이 자식..."
상대의 칭찬에도 불구하고 카이의 표정은 딱딱한 콘크리트처럼 굳어진다.
방금 공격으로 카이는 느끼고 만 것이다.
자신이 최선을 다해 먹인 일격조차도 세르파의 1군단장에겐 계란으로 바위를 친 정도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단 것을 말이다.
"크으윽..."
온몸을 엄습하는 무력함.
그러나 카이는 그 감정을 부정하며 좌우로 고개를 세차게 털어낸다.
그리고는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마력을 짜내, 필살의 기술을 시전한다.
"웃기지 마, 이 자식아! 레인 오브 파이어!"
마른 가을하늘로부터 셀 수 없이 많은 황금빛 불덩어리들이 쏟아진다.
화염은 마치 자석이라도 달린 듯 일제히 하인델버그를 향해 방향을 틀더니, 그대로 떨어져서 작렬한다.
<퍼버버버벙 – 펑 펑 – 퍼버버버버벙>
모든 화염이 한 개도 빼놓지 않고 모두 하인델버그에게 적중했다.
적이 서 있던 자리에 피어오르는 시커먼 연기를 보고 카이가 한숨 돌린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으며 그가 중얼거린다.
"후우, 끝난 건가...?"
"이야아아..."
그런데 연기 한가운데서 더할 수 없는 절망과 공포를 안겨줄 능글맞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잠시 후 드러난 것은 하늘머리 청년의 털끝 하나 불타지 않은 멀쩡한 모습이었다.
"이번 공격은 정말로 엄청났다고. 프로즌 아머(얼음 갑주)로 전신을 감싸지 않았다면 지금쯤 나는 잿더미가 되어 있었겠지?"
"이, 이럴 수는 없어... 이건 말도 안 돼."
"응? 뭐가 말도 안 된다는 거지? 하핫. 이게 너와 나의 실력 차이인걸? 일개 자치령의 왕자와 세르파 1군단장 사이의 실력 차란 말이야."
"......"
좌절과 무기력함.
카이는 이 두 가지 상태에 빠진 나머지 넋을 놓고 바닥을 향해 고개를 떨어뜨린다.
'정녕 나의 실력은 이 정도뿐이었던 건가?'
최선을 다한 공격들을 통하지도 않았고, 저 하늘머리 녀석은 장난치듯이 갖고 놀 뿐이다.
이젠 더 이상 공격할 마력도 남아 있지 않다.
승부가 난 것이다.
"끝인가?"
카이가 중얼거리자 하인델버그가 입가에 가득하던 조롱 섞인 미소를 싹 거둔다.
"이제 놀 만큼 놀았으니 슬슬 싸움을 마무리 짓자."
그가 양손에 서슬 퍼런 냉기 에너지를 응집시킨다.
하인델버그가 충격에 빠져 꼼짝도 않는 카이를 향해 천천히 다가오며 말한다.
"이봐 카이. 넌 충분히 잘 싸웠어. 다만 상대가 너무 안 좋았을 뿐이지. 하하하. 네 여동생은 너무 걱정하지 마라. 지금껏 그래왔듯 솔론 녀석이 즐거운 왕궁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잘 보살펴줄 테니까."
"!!!"
적의 입에서 여동생에 관한 말이 나오자 카이의 눈이 번쩍 뜨인다.
'아리에나!"
아리에나... 아리에나... 하나뿐인 여동생이여...
카이는 그녀에게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선사하고자 했던 처음의 각오를 떠올린다.
'절대로... 절대로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
카이가 주먹을 불끈 쥐고 고개를 든다.
타오르는 남부의 태양을 닮은 황금색 두 눈동자가 하인델버그를 노려본다.
그의 심장 깊은 곳에서 상실했던 전의가 다시 한번 불타오르기 시작한다.
동시에 카이의 오른 주먹에도 황금빛 불꽃이 감긴다.
"아리에나... 조금만 기다리렴. 너를 위해..."
"응? 아직도 마력이 남았어?"
카이가 하인델버그를 향해 달려들며 소리친다.
"너를 위해 이 오빠가 간다-!"
<콰앙>
서부.
인류의 통합 황제 아이젠이 기다란 안락의자에 기대 누워 라디오를 듣고 있다.
뉴스를 진행하는 앵커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은데...
< "속보입니다. 방금 전 오후 1시 12분. 남부의 반란집단 '스콜피온'의 수괴 카이 엠베르트가 세르파 1군단장 하인델버그 글레이셔에 의해 검거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방금 전 오후 1시 12분..." >
라디오 뉴스를 들은 황제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어오른다.
"하인델버그 녀석, 좋은 선물을 가져왔잖아?"
아이젠의 귀에 상처 입은 맹수처럼 울부짖는 카이의 절규가 벌써부터 들려오는 듯했다.
- '남부의 왕자, 카이 엠베르트' 끝. -
다음 이야기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