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돈키호테
“사실, 나의 글은 새로운 것들이오. 내가 새롭다는 것은, 그간 읽은 수많은 책과 경험한 것들이 나의 머리를 통해서 새롭게 편집되었다는 뜻이지. 글쓰기란 없는 것을 창조하는 게 아니라, 기존의 것을 새롭게 조합하는 것이니 말이오. 이 세상에 새롭다는 것은, 그 기본 물질은 이미 있는 것이고, 있는 재료를 새롭게 만든다는 뜻이며, 그것이 일종의 창작인 것이지.”
석희와 훈이 자신의 말에 집중하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세르반테스는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길게 늘어놓았다.
그는 유명한 작가가 되었지만, 오히려 철저하게 외로운 사람이라는 생각을 석희는 하게 되었다. 외국에서 온 낯선 사람들에게 이렇게 깊은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가 외롭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한편, 그가 쓴 책을 간접적으로나마 접했었던 석희는 질문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였지만, 사실 훈에게는 힘든 시간이었다. 더구나, 그는 스페인어에 대한 이해력도 많이 떨어져, 자꾸 눈을 창 밖으로 두고 있었다.
“특별히, 나의 글쓰기는 내 독서와 현장 방문의 결과라네. 지식이란 어떻게 하는 가를 아는 일이자,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어디서, 어떤 상황에서 만들어졌는 가를 아는 것이지. 현장을 방문하지 않으면 그것은 죽은 지식이란 뜻이네. 알고 있는 것과 직접 본 것이 합해지면서 진정한 지식이 되는 것이지.”
“아이쿠, 난 이런 아버지의 희생양이랍니다. 늘 집을 떠나 어디론가 떠돌아다녔던 아버지 때문에, 난 어렸을 때부터 고아였답니다.” 뒤에 앉아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다 생각했던 이사벨이 소란스럽게 끼어들었다.
“작년엔 작품을 마무리하시겠다고 사라고사며, 바르셀로나까지 답사를 갔다 오셨죠. 그곳에 가려면 몬세랏이라는 험한 산이 있는데, 거기에는 도적떼가 많고, 산을 넘다가 죽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니라고 하여, 더욱 걱정이 되었답니다.
처음 예상했던 날짜가 훨씬 지나도 안오셔서, 난 돌아가신 줄 알았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도적떼를 만나 긴 하셨더군요. 아버지가 워낙 기인이라, 그 사람과 친해졌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여튼, 아버지는 거의 녹초가 된 상태에서 집에 겨우 도착했답니다.”
“미안하다. 그래서 반성하고, 늦게라도 이렇게 같이 있으려고 노력하고 있잖니.”
딸에게 얼굴을 돌려 대답하는 세르반테스의 옆 모습에서, 석희는 그가 생각보다 더 나이가 들어보인다고 생각했다.
“나에게는 뼈 속까지 역마살이 끼었으니, 난 가족을 둘 만한 위인이 못 되지. 이 애의 어미도 길에서 만난 여인이었소. 고백하자면, 이태리에 가서도 그냥 마음이 가는 대로 사람을 만났고, 사랑을 나눴소.
사랑에 대해 나 나름의 철학은 가지고 있지. 사랑이 열정의 불로 타오르고, 모험을 감행하도록 한다면, 결합하고 결혼한다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일이라는 생각말이오. 말하자면, 열정으로 글을 쓰는 것과, 그것이 책으로 엮어지는 것은 다르다는 뜻!”
“그게 무슨 말씀이지요?”
“어떤 이에게는 사랑의 행각, 아니 사랑의 모험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일 뿐, 그것이 꼭 결혼으로 이어지고, 가족을 이루는 것까지는 의미하지 않지. 나에게 사랑이란 바로 그것이었소. 그 자체로 소비되는 것. 불이 타오르다 꺼지면 그것으로 끝. 얼마나 강렬하게 타오르는 가가 중요할 뿐. 그래서 나를 책임없는 자라고 말한다면 할 말이 없소. 다만, 나는 가슴이 시키는 대로 살았을 뿐이오. 그게 사는 것이 아니겠소?”
세르반테스가 말하는 사랑에 대한 개념은 석희가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이었다. 남녀 간의 사랑이 결합으로 매듭지어지는 것을 구분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사랑한다면 결혼하는 것이 당연한 논리였다. 어쩌면 결혼을 위해 사랑을 한다고 까지 생각했으니 당연했다.
“나의 타고난 떠돌이 기질은, 여기저기서 사람들을 만나게 했고, 여러 현장에 직접 가도록 나를 움직였소. 작품이 만들어지고, 작품의 배경이 되는 장소에 직접 가야 만, 비로소 작품을 읽었다고 생각했소. 나는 그렇게 책을 읽었소.”
“대단한 열정을 가지셨습니다.” 석희가 맞장구를 쳤다.
“알깔라 대학의 어떤 학생도, 살라망까 대학의 어떤 학자도 나만큼 작품을 읽은 사람도 없을 뿐더러, 작품의 현장을 가본 경험도 없을 것이오. 난 내 글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갖고 있소. 일반 독자나 연극의 관객에 아부하고, 잠시 지나갈 유행에 따르는 그런 얄팍한 글쓰기나 연출이 아니라, 나의 창작은 이미 나온 지식을 종합하여, 그 위에 또 하나의 탑을 쌓는 일이라 생각하고 있소.
어떻소, 비록 이 작은 공간에 내가 존재하고는 있지만, 나의 이 작업이 인류를 위한 숭고한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가슴이 뛰지 않겠소? 나 비록 어렵게 살지만, 이 자존심은 꼭 지키고 싶소.”
그의 목소리에는 더욱 힘이 들어갔다.
“얼마 전 나는 [모범소설]이라는 책을 냈소. 한 작품 내에 열두 개의 작은 이야기들이 유기적으로 조합되는 형식으로 묶었소. 하나하나 떼어도 하나의 작품이지만, 열두 개 다 모여 또 하나의 작품이 되도록 의도적으로 고안했소. 내용과 형식을 모두 고려해서, 그것이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가 되도록 말이오.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 역시, 작가의 의무라 생각하오. 자신의 손을 떠나서는 홀로 살아남아야 하니까.”
자신의 말이 길어지자, 세르반테스는 잠시 멈추는 듯하다가, 관심을 보이며 집중하고 있는 석희의 얼굴을 보고, 말을 이어갔다.
“영국에는 셰익스피어라는 극작가가 있다고 들었소. 그에 대한 영국인들의 존경심은 대단한 것이고, 돈과 명예를 크게 얻었다고 들었소. 사실 그런 점에서 나는 그가 부럽소.
그러나, 나와 셰익스피어의 차이는 바로, 창작에 대한 자세에 있소. 나는 나의 독서와 경험이 작품에 녹아나는 방법을 취하고 있는 반면, 셰익스피어는 주변에서 들리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수집하여, 자기 나름대로 재정리하는 정도라고 봐야하지. 예를 들면 이태리 땅에서 벗어나 유럽을 전전하던 유랑극단인 꼬메디아 델 아르떼가 전해준 수많은 이야기들을 셰익스피어는 그대로 정리하여 공연으로 올린 반면, 그래서 자신이 직접 가보지도 않으면서, 어릴 적부터 들었던 이야기를 그대로 작품으로 정리하고 있다면, 나는 기존의 것을 바탕으로, 그것을 새롭게 창조해내는 방식을 취한다는 게 다른 점이지.
물론 직접 현장에 가서 확인하면서 말이오. 단 하나, 셰익스피어의 글재주는 내가 따라갈 수 없는 천재적인 면이 있소. 비록 내용은 자신의 것이 아닐지라도, 그는 멋진 시구로 희곡을 만들고, 또 극장에서 관객들을 감동시키는 엄청난 재주를 작품에 부여했지.
그에 비해 내가 내세울 것은, 나의 글에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도 있고, [오디세이]도 녹아있다는 사실이오. 비르질리우스의 [아이네이스]도 있고, 저 멀리 동쪽에서 전해온 [깔릴나와 딤나], 그리고 [천일야화]가 모두 모여있지. 스페인에서도 [엘 시드의 노래],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 [루까노르 백작], [또르메스의 악동 라사리요] 등 수 많은 책들이 녹아있다는 점이오. 말하자면 기존의 이야기들, 특히 위대한 고전들이 나의 머리를 지나 다시 쓰여졌다는 것이오.
결국, [돈키호테]를 읽으면, 나를 통해 숙성된 모든 것들을 맛 볼 수 있는 것이지. 그게 창작에 대한 나의 기본 생각이오.
아 참, 앞으로 쓸 글에는 내가 읽었던 동양에 대한 것과 오늘 그대가 말한 내용이 새롭게 편집되어 들어갈 것이오. 사실, 그대를 여기로 부른 것도, 뭔가 특별한 내용, 독자들이 그간 전혀 상상하지 못한 이야기가 절실히 필요했던 이유이기도 하오. 독자는 늘 새로운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니까.”
석희에겐 전혀 들어보지도 못한 책들이지만, 세르반테스가 하고자 하는 뜻은 충분히 이해할 것 같았다. 말하자면, 세르반테스라는 사람은 책을 많이 읽었고, 늘 책 속에 빠져있으며, 읽은 책의 무대가 되는 곳에 꼭 가야 직성이 풀이는 사람. 새로운 책이나 지식에 대해 특별한 호기심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것이 자신의 자존심, 또는 자부심으로 자리잡아, 아무리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유명해지기 위해 시류를 지나치게 의식하는 작가들, 즉 세르반테스가 말하는 사이비 작가들과는 다른 길을 가고자한다는 말로 이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