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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귀향 (세르반테스를 만난 조선인)
작가 : 윤준식 YOON
작품등록일 : 2022.1.23

[연재를 시작하며] (연재는 1-44장까지 이어집니다.)

‘제 책이 빨리 출판되기를 원하는 사람 중에는 중국의 황제가 계십니다. 한 달 전쯤 일입니다. 황제께서는 친히 중국어로 편지를 쓴 후, 사신을 보내 저의 [돈키호테]를 보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황제께서는 학교를 세워 스페인어를 가르치겠다고 하셨으며, [돈키호테]를 교과서로 쓰겠다는 것과 제가 그 학교의 학장이 되어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돈키호테] II, ‘레모스 백작님께 올리는 헌사’ 중)

한 사람의 ​간절한 소망은 수 백년을 뛰어넘는 것일까?

세르반테스의 펜을 움직여 [돈키호테]에 남겨진 한 영혼의 흔적!

400년 넘게 기다려왔고,

너무나 애절했기에 또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리고,

이베리아 반도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한반도 남쪽의 한 마을로 이어진 무지개!

그 허구같은, 그러나 역사적 실체의 다리를 건너본다!

(본 이야기는 [돈키호테]라는 소설 속 한 귀절에서 시작된다. 따라서 작품 [돈키호테]는 물론, 당시 세계를 누볐던 스페인의 역사와 동시대 아메리카, 그리고 아시아(조선, 중국, 일본, 필리핀, 마카오) 등의 역사를 통합할 수 있는 문학과 역사적 지식을 바탕으로 내용을 구성하게 된다. 15년 간의 자료 수집을 통해 내놓는 역사 이야기이자 소설로, 몇 가지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밝히며, 특히 임진왜란 이후 전개된 1600년대 초 스페인과 조선 간의 관계를 이어줄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이 들어있다.)

 
6. 미겔 데 세르반테스 (Miguel de Cervantes)
작성일 : 22-01-23 11:35     조회 : 52     추천 : 0     분량 : 9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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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미겔 데 세르반테스

 

 대문을 통과하고 집안으로 들어가자, 바로 이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있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계단은 오래되었는지, 삐걱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났다.

 

 계단 중간쯤에서 다시 방향이 바뀌었고, 그대로 계속 올라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난 창을 통해 건물의 외부가 드러나 보였다. 역시 사방으로 연결된 건물들이 만들어내는 공용 공간에는 각 집의 창문에서 나온 여러 개의 빨랫줄과 거기에 난잡하게 걸려있는 옷들이 보였다.

 

 나무 하나 없는 공간의 한 벽면은 오후의 강한 해가 반사 빛을 강하게 발산하고 있었으며, 그 위로 보이는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했다. 같은 하늘이지만, 조선의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진한 파란색이었다.

 

 석희 일행이 스페인 땅에 도착한 이후, 간간히 그것도 조금씩 비가 내리는 경우가 있었지만, 조선이나 일본에서처럼 태풍을 동반한 센 비바람이나 추운 겨울 날씨를 경험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그간 경험한 비는 비라고 말할 수 없을 만큼, 양도 적고, 잠시 내리다 그치는 정도였다. 강한 햇빛 만 피한다면, 생활하기 아주 좋은 곳이라고 석희는 생각했다.

 

 “어서 오시게.”

 

 계단으로 올라오는 짧은 순간에 머릿속을 스치는 여러 생각에 빠져있던 석희는 이층 문 앞에 서있는 노인을 알아채지 못하고 오르다가 갑작스런 목소리를 듣고, 위를 응시했다.

 

 왕궁에서는 정장 차림이었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의 노인을 발견했다. 지난 번 볼 때보다, 몸은 더 말라보였고, 머리는 더욱 더 하얗게 보였다.

 

 “다시 만나서 반갑소. 지난 번 제대로 인사를 못 했군. 난 미겔이라고 하네. 미겔 데 세르반테스 이 사베드라.

 

 아, 그리고 여기는 아내 까딸리나. 여기는 내 딸 이사벨. 저기 있는 호세 하고는 인사를 나눴을 거고….”

 

 문을 열어 준 여인은 세르반테스의 아내였던 것이다. 세르반테스의 모습에 비해, 그녀는 상대적으로 많이 젊어 보였다.

 

 딸이라고 소개해준 이사벨은 서른 살 정도가 되어 보였다. 여성이지만, 외모는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고 석희는 생각했다.

 

 “네, 반갑습니다. 지난 번 저도 이름을 말씀드리지 못했군요. 저는 송석희입니다. 쉽게, 바르똘로메라고 하셔도 좋습니다. 그리고 여기는 윤훈입니다. 후안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세례명입니다.

 

 “아, 그렇군. 그럼, 후안도 그대와 같은 나라 사람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집이 작고 누추하오. 여기로 앉으시오.”

 

 집안은 시원했고, 벽에 반사되어 들어오는 빛이 집 내부를 환하게 밝혀주고 있었다.

 

 세르반테스가 자리를 내준 곳은, 그가 글을 쓰고 있는 책상 바로 옆이었다. 석희와 훈이 빈 의자에 앉았고, 딸도 바로 뒤에 자리를 잡았다.

 

 나무로 된 낡은 책상이 공간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 위에는 종이들이 뒤섞여져 수북했고, 책상의 앞부분 가운데에는 철로 만들어진 기름 등잔이 서있었다. 책상의 주인이 밤낮으로 글을 쓰는 동안 계속 그의 옆을 지켰을 것이다. 왼쪽 모서리에는 삼각형의 도자기가 놓여있는데, 중간이 둥글게 파져서 잉크가 담겨있고, 세 귀퉁이 각각에는 깃털 펜이 꽂혀있다.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네. 특히, 책에 대한 욕심이 많았지. 내 재산의 대부분은 책을 구입하는데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네. 나의 개인적인 집착 때문에, 내 아내와 딸에게 물려줄 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네. 그래서 늘 미안한 마음이지.” 자리에 앉은 채, 석희와 훈이 두리번거리며 벽면의 책들을 보자, 그것을 설명해야 하는 의무감을 느꼈는지 세르반테스가 먼저 입을 뗐다.

 

 “나는 글 쓰는 사람이지. 정확히 말하면, 시도 쓰고, 희곡도 쓰고, 소설도 쓴다네. 사실 내가 가장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던 분야는 시였는데, 사람들이 쳐다보지도 않았다네.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해 희곡을 썼는데, 그것 역시 반응이 별로 없었네. 요즘 사람들은 연극에 더 빠져있고, 인기가 있다 보니, 돈이 몰리지. 돈도 빨리 벌고, 명성을 올리는 것도 소설이나 시보다, 그쪽이 훨씬 낫다네. 그렇지만, 난 시와 희곡에서는 전혀 빛을 보지 못 했고, 자포자기 상태에서 [돈키호테]를 썼는데, 생각지도 않게 인기가 폭발했지.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지, 이 사람 저 사람 책을 돌려보기도 하고, 여기 저기 아이들은 길거리에서 주인공 돈키호테와 산초의 흉내를 내기도 했다네.

 

 사람들은 내가 길에 나가도 날 알아보지 못 했지만, 돈키호테란 이름을 늘 입에 달고 다녔어. 내가 만든 소설이 사람들 사이에서 그렇게 많이 알려진 것에 대해서, 난 통쾌했지만, 한 편으로는 씁쓸한 기분도 들 수 밖에 없었지.” 그는 자신의 작품이 크게 인기를 끌었다는 말을 할 때, 목소리가 격앙되었다.”

 

 “작품이 빠르게 유행하니까, 이 도시 저 도시에서 출판업자들이 인쇄해서 팔았다네. 말하자면 불법인 것이지. 아울러,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 여러 나라에서 자기 언어로 번역을 했다고 하는데, 나에게 직접 허락을 받지는 않았지. 사실 내가 글을 쓴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돈 때문이었는데, 난 평생 돈과는 거리가 먼 팔자인가 보네. 아니, 불행은 내 인생에 거머리처럼 붙어 다녔고, 돈은 나를 피해 다녔다고 말하는 게 더 솔직한 표현이겠지.“

 

 노인이 스스로를 세르반테스라고 소개하고, [돈키호테]라는 작품을 썼다고 하니, 석희는 일본에서 스페인어 공부를 하면서, 루이스 신부가 들고 있었던 책이 바로 그 책임을 기억해냈다.

 

 신부는 [돈키호테]가 현재 스페인은 물론, 유럽에서 가장 인기있는 작품이라고 소개했었다. 예수회 신부들 사이에서 이 작품을 돌려가면서 읽는 모습을 봤으며, 생각해보니, 산초와 둘씨네아란 이름도 들었던 것 같았다.

 

 “사실 나는 시간에 쫓기고 있다네! 평생 빚에 쫓기던 것보다, 요즘은 더 심한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네.

 

 여기저기서 위작들이 나오고, 그들은 더 자극적인 내용에, 더 멋진 책 표지와 글자체로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있네. 나는 [돈키호테]가 갑자기 유명해지고 나서야, 집에 눌러 앉아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을 정도로, 그 전에는 먹고 사는 문제에 시달렸다네.

 

 말하자면, 그간 여러 가지 사정이 허락되지 않다 보니, 글쓰기에 전념할 수 없었으나, 기사이야기에 지나치게 빠져있는 독자들에게, 그 이야기들이야 말로 쓸데없는 것임을 보이겠다고 등장시킨 막가파식 기사의 광기에 찬 이야기가 대성공을 거둔 후, 그 여세를 몰아, 과거에 중단했던 작품들을 손보고 순서를 잡아 출판하고 있었지.

 

 그런데, 기관의 허가도, 나의 승인도 받지 않고 [돈키호테]가 전국적으로 불법 출판되었을 뿐 만 아니라, 이제는 [돈키호테] 속편이라고 하는 거짓 책까지 등장하니, 정작 나는 돈을 만지지도 못 하고, 그들의 배만 채워준 꼴이 되었다네.

 

 이렇다 보니, 하던 작업들을 다시 뒤로 미뤄놓고, 부랴부랴 일 년 만에 이렇게 [돈키호테] 속편을 썼는데, 내가 아무리 재주가 뛰어나고, 의욕과 열정이 강하다 한 들, 세월이 호락호락 하지 않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네.

 

 몸과 정신이 예전 같지 않은 거지. 급하게 글을 쓰느라, 기력을 너무 소진했다는 뜻이네. 글 쓰는 사람이라면 내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네.”

 

 세르반테스의 왼손은 불편한 듯 거의 움직이지 않았고, 오른손은 말하면서 많이 움직였다. 말은 느렸고, 빠진 이빨 사이로 혀가 간간히 드러났지만, 발음은 시를 읊듯이 또렷했다. 세간에 유명한 [돈키호테]를 쓴 작가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만큼 모든 게 초라하게 보였다.

 

 “글을 쓴다는 게 쉽지 않은 작업인 것 같습니다. 작품을 썼다고 해도, 그것이 독자와 호흡하지 못한다면, 살았다고 볼 수 없는 것이고요.”

 

 “그렇소. 글은 우선 재미가 있어야하고, 그 재미 속에 의미를 담아내야 하는 어려운 작업이지. 이 두 가지 요소를 다 갖추는 것이 기본이고, 그 바탕 위에 여러 기법들을 가미하는 것이지.

 

 더구나, 과거에는 작가가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일방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다면, 요즘의 독자들은 그 자체를 원하지 않지. 말하자면 잔소리는 싫다는 뜻이고, 그냥 자신들에게 영감을 주는 정도의 책을 바라는 것이지. 아주 적극적인 독자라고나 할까?

 

 따라서 작가는 이미 있던 자료를 자신의 상상력으로 재정리해 놓는 편집자 정도가 되겠지. 작가는 그 작품의 첫 번째 독자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

 

 난 여기에 있는 책들을 모두 읽어봤지만, 작가와 독자, 그리고 작품에 대한 나의 이런 생각이 반영된 책은 찾아볼 수 없었네. 그래서, 나는 [돈키호테]를 쓰면서, 꼭 이런 나의 생각을 반영하고 싶었네.

 

 내가 전혀 새로운 소설을 쓰겠다고 말하는 것은, 그냥 헛소리가 아니지. 요즘 글 쓰는 사람들은 단지 인기를 얻기 위해,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해 자극적인 것에 너무 비중을 두고 있으니, 말하자면 독자가 흥미를 갖고 읽게 하는 동시에, 작품에 적극 참여하는 동기부여를 통해, 스스로 작품과 호흡하게 하는 게 아니라, 독자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내용을 씀으로써, 결국 독자에게 아부하는 글을 쓰고 있는 실정이라네. 명상과 돈이 중요한 것이겠지.”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과 책상 위의 많은 책들은 세르반테스가 오직 책 읽고 글쓰기에 만 몰두하고 있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아무리 인쇄술이 발달하여 예전보다 책을 쉽게 낼 수 있다고는 하지만, 책을 만드는 일은 큰 자금이 필요했고, 그런 책을 구입한다는 것은 큰 돈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르반테스는 많은 책을 모았다. 그가 말한대로, 책 때문에 재산을 탕진했다는 그의 말을 석희는 수긍할 수 있었다.

 

 “제가 스페인어를 배우면서 가장 먼저 이 책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성경책 다음에 접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지만 말입니다.”

 

 “아, 그래요? 내 책 160권이 1605년 7월 12일, 에스삐리뚜 산또라는 배에 실려 까디스 항을 출발, 9월에 멕시코의 베라끄르스 항에 도착, 멕시코 시티에 옮겨진 후, 금방 다 팔렸다는 소식은 들었소.

 

 그런데, 당신이 왔다는 그 먼 동양의 나라에까지도 갔다는 말이오? 과연 누가 [돈키호테]를 거기까지 가져갔을까?”

 

 놀람과 신기함, 그리고 자부심이 담긴 표정을 짓던 그가 크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기야, 광기에 빠진 기사 돈키호테 만의 모험이니까 내가 통제할 수는 없지. 그는 내가 만나기 전에도 모험을 하고 있었고, 그의 행적을 내가 글로 펴내는 순간도, 그 이후에도 끊임없이 모험을 하는 존재니까. 제멋대로, 말이지. 하하하.”

 

 석희는 세르반테스가 말하는 내용이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이해는 할 수 없었다. 등장인물이 독립을 했다느니, 작가도 알 수 없는 등장인물 만의 모험이라는 등, 그 누구에게서도 들어보지 못한 말이었다. 단지, 그의 웃음을 들으며, 농담으로 하는 소리라고 만 생각했다.

 

 “루이스 신부께서 [돈키호테]를 아주 흥미롭게 읽어 주셨습니다. 특히, 풍차와의 대결, 돈키호테가 기사작위식을 위해 밤을 새고 좌충우돌하는 이야기가 기억납니다.”

 

 “그 정도만 기억해도 대단한 것이오. 그대가 이렇게 내 작품을 접했다니, 한 마디 부연하자면, 돈키호테를 엉뚱하다거나 미쳤다고 생각하지 마시오. 이상한 게 아니라, 그가 그렇게 행동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하오.

 

 어떤 사람도 생존을 위해 어떤 행위를 꼭 해야 한다면, 그것이 말도 안 되고 설사 미친 짓이라 해도, 그렇게 하고 말 것이오. 비록, 다른 사람에게는 미친 짓으로 보일 수 있으나, 자기 자신에게는 생명 활동인 것이니, 그 누가 이렇다 저렇다 평가할 수 있겠소.”

 

 창으로 들어오는 빛과 실내의 어둠이 대비되어 세르반테스의 얼굴이 더욱 입체적으로 드러났고, 순간 석희는 그가 작품 속 돈키호테와 매우 닮았다고 생각했다. 칠십을 바라보는 그가, 생존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며, 아직도 그에게서 뭔가 하고자 하는 강한 열정이 느껴졌다. 그는 계속 말을 이었다.

 

 “살기 위해 절박하게 하는 그 어떤 것도 정당한 것이라고 생각하오. 결국, 남의 행위를 보고, 좋다, 나쁘다 평가할 일이 아니지.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타인에게 강요하지 말 것이며, 무엇보다도 자기 스스가 정당한 지를 살펴보는 게 우선이란 뜻이지. 자신 혼자 만 변해도 세상은 잘 돌아가지. 다른 사람의 행위에 대해서는 그냥 박수를 쳐주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고.”

 

 “네, 저는 깊이는 모르겠습니다만, 그 말씀에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제가 살아온 환경을 보면, 각자는 자기 자신을 보지 않고, 자기를 중심에 놓고 타인을 본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획일화 된 사고를 갖고, 집단이 개인을 평가하는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하나로 고정된 다수라는 이름의 괴물은, 개인을 처참히 망가뜨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어르신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작가도 작가가 아니고, 기존의 권위를 버린 채, 또 하나의 독자일 뿐이라는 생각, 그리고 등장인물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는 생각을 기본으로 갖고 있다면, 우리 각 개인은 서로를 인정하며, 각자는 보다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 짧은 시간에 내가 말한 의도를 아주 잘 이해한 것 같소.” 세르반테스가 기분좋은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소, 나는 이런 원칙으로 작품을 썼고, 그렇기에 내 작품은 새롭다는 뜻이지. 내 독서와 내 삶의 수많은 시련들이 나의 이런 생각들을 하게 만들었소.”

 

 “네, 그럼, 돈키호테에게 모험이란 무엇입니까? 그 나이에 집에 있지 않고, 무모할 정도의 모험을 떠나야 했나요?”

 

 “행운을 찾는 일이지. 모험과 행운은 같은 단어인 것이오.

 

 모험을 통해서 만이 행운이 오는 것이기에, 행운을 위해서는 모험이 꼭 필요한 것이지. 그 행운은 돈이 아니라, 삶과 자신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하오. 그것 때문에, 시들어가던 그의 가슴에 열정의 불이 다시 붙기 시작했고, 삶에 대한 의욕이 불길이 되었지.

 

 즉, 그에게 찾아온 행운이란, 살아있다는 느낌, 바로 그것이겠지. 이런 보상을 맛보면, 우리에게는 그가 무모한 대결을 한다고 하겠지만, 그에게 지고 이기는 게 결코 중요하지 않게 되지.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세상에 또 뭐가 있겠소?”

 

 말을 하면서 세르반테스의 목소리는 높아지고, 말도 빨라졌다. 순간 분명 그는 모험을 하는 돈키호테였다. 물 한 모금 마시더니, 분위기를 깨지 않기 위해, 그는 얼른 말을 이었다.

 

 “풍차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 산초의 눈에만 풍차가 아니라, 사실 돈키호테에게도 풍차였소. 그러나, 돈키호테는 살기 위해 모험을 해야 만하는 입장이니, 자신은 그것을 풍차라고 말할 수 없었던 것이오.

 

 거인이라고 해야 그것을 상대로 전투를 할 수 있다는 뜻이지. 보이는 세계에서는 풍차와 싸우는 미치광이 돈키호테지만, 돈키호테 자신에게는 살기 위해 행하는 거룩한 모험인 것이오.

 

 물론, 이렇게 생각해도 좋소. 말하자면, 돈키호테에게는 거인으로 보인 게 사실이라고. 만일 산초에게 그게 풍차로 보였다면, 마법사의 농간이었던 것이지. 결국, 중요한 것은 돈키호테 자신이 앞에 있는 적에게 돌진하고 있다는 사실 뿐.”

 

 “살아간다는 그 자체가 모험이라는 말씀이군요. 그 모험은 살아있다, 즉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한다는 면에서 행운인 것이고요.” 석희가 진지한 목소리로 거들었다.

 

 “그렇소. 지고 이기는 게 중요한 것 아니라, 대결하고 싸우는 것, 그 자체가 살아가는 일이라고 보면 될 것이오. 어찌 보면, 인생 자체가 고단한 일이지. 출발하지 않았으면, 즉 태어나지 않으면 고단함도 없는 것이고, 빨리 세상을 떠버리면, 역시 수고, 고생도 더 이상 없는 것이겠지.

 

 즉, 인생이란 외줄타기에 있다는 것은, 시련이지만, 그 만큼 살아있다는 뜻이겠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행운은 삶의 발자국을 하나하나 전진시키는 것을 말하지. 우리가 하루를 더 살고 있다는 것은, 행운을 잡은 것이고,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선물이라고 말하지. 생명인 이상, 생명체가 추구하는 본래 목적을 달성한다는 뜻이겠지.”

 

 석희는 세르반테스의 말뜻을 깊이 이해하지는 못했으나, 삶을 적극적인 자세로 임할 때, 더욱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조선을 떠나 일본으로 끌려오고, 다시 일본에서 운명적으로 기독교와 인연을 맺어, 가히 상상도 못했던 태평양을 건너, 스페인에 와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고 운명이었다. 우연이 여러 개 있다면, 그것은 운명인 것이다. 갖가지 모험과 기적은 석희 자신 만의 독특한 삶을 만들어가고 있음을 세르반테스의 말을 통해 되새김하게 되었다.

 

 “글 쓰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진정성이오. 글쓰기에 재주를 갖고 있는 사람은 많지만, 진정성을 갖고 쓰는 사람은 드물지. 글쓰기에서 성심, 성의를 갖는 것은, 가장 기본이오. 진심이 담기지 않은 것은 스스로도 감동하지 못 할 뿐 아니라, 그것을 읽는 사람도 당연히 감동을 느낄 수 없소.

 

 위대한 로마의 호레이스가 말했지, ‘남을 감동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자신이 감동해야 한다’고 말이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글 쓰는 재주보다는 글에 담긴 진정성, 즉 정성이 중요하다는 뜻이오.

 

 그러나, 요즘 글 쓴다는 사람들은 빨리 써서, 유명해지고, 더 많이 돈을 벌겠다는 게 유일한 목적인 것 같소. 그러니, 과장되고 자극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고, 일반 독자들은 현혹되어 쉽게 넘어갈 것이란 뜻이오. 이런 일이 현재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으니, 참 안타까운 일이오.”

 

 세르반테스는 못 마땅한 듯이 여러 번 혀를 찼다. 다시 그의 듬성한 이빨 사이로 혀가 나왔다 들어 갔다를 반복했다. 진지하게 말하는 그와 대비되는 그 모습에 석희는 웃음이 자꾸 나오려고 해 억지로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살면서 들어 본 책은 거의 다 읽었다고 자부하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스페인은 우리 같은 사람에겐 참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소. 우선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은 온 유럽 사람들이 꼭 읽는 것이어서, 나 같은 스페인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읽게 되지만, 여기는 특히 아랍에서 들어온 학문과 문학의 전통이 뿌리 깊은 땅이오. 물론, 그 원류를 찾아 올라가면 페르시아며, 인도까지도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

 

 그는 말을 하면서, 자신의 뒤에 있는 책장에서 책 몇 권을 꺼냈다. 하나는 [천일야화]라는 책이고, 나머지 책들은 플라톤의 [대화]였다. 그는 책들을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시대적으로도 과거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 문명의 것들이 아프리카 북부를 타고 스페인 땅으로 넘어 들어와 깊이 뿌리를 내렸소. 지중해 저편의 것들도 대륙을 통해, 그리고 지중해를 항해해 스페인에 당도했고, 아프리카를 통해 들어온 것들도 스페인을 거쳐 유럽에 들어갔지.

 

 지금은 아메리카와 아시아의 정보들이 태평양과 대서양을 건너 꾸준히 스페인에 모이고 있으니, 나같이 호기심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최고의 시대인 것이지.”

 

 세르반테스의 이야기를 들으며, 유럽 문명의 흐름과 현재의 세계질서에 대해 대략으로 나마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구체적인 사항들에 대해서 알아 듣기는 힘들었다. 무엇보다도 사람의 이름이나 작품 등, 많은 용어들이 그에게는 너무나 생소했다.

 

 석희가 태어나서 자란 조선에서의 [논어], [맹자], [중용], [대학] 등과 [시경], [서경], [역경]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있고, 어린 나이였지만 그 내용을 일부 접할 수도 있었다. 일본에서는 [성서]를 비롯, [교리문답], [천문학], [실록] 등 한자로 번역된 서양의 책들을 읽은 적이 있다.

 

 그러나, 아랍이나 페르시아,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그리고 인도문명 등 아주 생소한 개념이며, 그만큼 광대한 범위까지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작가의 말
 

 소설 [돈키호테]에 대한 작품 이해를 위해 마련한 내용입니다. 세계고전명작으로 우뚝 선 이유를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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