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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붓을 들 것이다.
작가 : 번트엄버
작품등록일 : 2020.9.29

평범했던 주인공이 한여자를 만나 화가를 꿈꾸며 겪는 인생 스토리 입니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대한민국에서 화가로 살아남기 위한 생존기 입니다.

 
21화. 신철이 아저씨.
작성일 : 20-09-29 14:29     조회 : 49     추천 : 2     분량 : 7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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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화. 신철이 아저씨.

 

 

 

  원고를 다 읽고 그림을 그려야 했지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았다. 절반 남짓 읽고 재료를 사러 갔다. 시가 200편이니까 적어도 200개의 그림을 그려야 했다.

 

  패널에 천을 씌워 시작한 유화 작업은 진행이 더디 되고 있었다. 그리고 천을 씌울 때 천을 너무 당겼는지 패널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로로 휘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리는 일에 크게 지장은 없었지만 액자를 하면서 틀어지고 휘어진 문제를 꼭 해결해야 하는 일이 하나 생긴 것이었다.

 

  오랜만에 하는 수채화라 손을 풀어야 했다. 전지 와트 만지 2장을 사서 엽서만 한 크기로 200장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 종이에 남양 할아버지 집에서 찍어온 소를 그리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완성한 그림을 모작하는 것이 아닌 내가 관찰해서 그리니 꽤나 완성도가 높게 나오고 있었다. 그간 유화를 그리면서 관찰한 것을 붓으로 구현하려 애쓴 노력의 성과인가 싶었다.

 

  “ 주민 씨. 소가 마치 살아 있는 거 같습니다.”

 

  뒤에서 구경하던 신철이 아저씨가 말씀하셨다.

 

  “ 과찬이십니다. 아직 완성도 안 된걸요.”

 

  민망했다. 누가 그림 잘 그린다고 칭찬을 하면 그때마다 얼굴을 붉히는 나였다.

 

  “ 아니에요. 지금 유화 작업도 잘 나오고 있고 기대할게요.”

 

  “ 고맙습니다. 요즘 조금 슬럼프였는데 힘이 나네요.”

 

  한쪽에서 100호를 그리면서 또 한쪽에서는 수채화를 하고 소품을 할 준비를 책상에서 펼쳐놓고 있었다. 내 작업실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화실의 많은 면적을 쓰고 있었다.

 

  “ 주민 씨. 무리한 부탁이 아니라면 그 소 그림 완성되면 저한테 파실 수 있나요?”

 

  한참을 망설이던 신철이 아저씨가 입을 떼셨다.

 

  “ 그 정도로 마음에 드세요?”

 

  “ 네. 유년 시절에 고향집에서 아버지께서 소를 먹이셨는데 그때 생각이 많이 나게 하는 그림이네요. 아버지 소 우리에 매일 같이 가서 소여물 주고 그랬거든요. 이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보기 힘든 풍경이 되어버렸네요.”

 

  “ 아뇨. 무슨 돈을 주고 사세요. 제가 완성되면 드릴게요. 그냥 나중에 술이나 한 잔 사주 세요.”

 

  그렇게 까지 의미를 부여하시는데 돈을 받고 싶지 않았다. 돈을 벌면서 그림을 그리고 있던 중이 아니었기에 화실에서 그간 작업하면서 많은 분들께 조금씩 신세를 지고 있었는데 이렇게라도 보답을 하고 싶었다.

 

  “ 아니죠. 돈을 지불해야 제 마음이 편합니다.”

 

  신철이 아저씨는 단호해 보였다.

 

  “ 다른 사람이라면 모르지만 신철이 아저씨한테 신세를 너무 많이 져서 안 됩니다. 그냥 소주 한 잔 이면 됩니다.”

 

  진심이었다. 지금까지 얻어먹은 것만으로 충분했다. 뒤에서 가만히 듣고 계시던 선생님이 끼어드셨다.

 

  “ 아이고. 주민이 덕분에 오늘 배에 기름 칠 좀 하겠네.”

 

  “ 아직. 그림이 완성이 안 돼서 오늘은 안돼요.”

 

  “ 신철 씨와 내가 준비할 테니까 너는 그 사이 완성하면 되겠는데 뭘. 이제 마무리만 하면 되겠네.”

 

  그랬다. 하이라이트만 정리하면 그림은 완성이었다.

 

  “ 그러면 되겠네요. 주민 씨. 선생님 나가서 장 좀 봐옵시다.”

 

  신철이 아저씨는 신이 나 보였다.

 

  “ 그럽시다. 신철 씨. 주민아. 그림 잘 정리하고 있어 우리 갔다가 올게.”

 

  덩달아 선생님도 신이 나셨다. 국전을 준비한다고 요즘 화실에서 통 술 마실 일이 없었는데 오늘은 내 그림 때문에 술을 한 잔 하게 생겼다.

 

  그 사이 그림은 잘 정리되었다. 선생님께서 만들어 주신 낙관이랑 사인도 마쳤다.

 

  ‘ 그냥 드리지 말고 액자라도 사서 넣어 드려야겠다 ’

 

 라고 생각하는 순간 전화가 걸려왔다.

 

  “ 주민아. 어디냐? 나 효민이 만났어. 나와라. 술 한 잔 하게.”

 

  오랜만에 걸려온 충재의 전화였다.

 

  “ 어. 나야 화실이지. 일루 와. 안 그래도 여기 술판 벌일 판이다.”

 

  “ 화실에서? 화실에 수강생들 많잖아?”

 

  “ 아니. 시간 늦어서 다 들어가시고 선생님이랑 신철이 아저씨랑 나만 있어.”

 

  “ 그래? 그럼 합석해도 되겠네. 알았다.”

 

  퉁명스러운 말투의 충재 녀석.

 

  효민이는 얼마 전부터 어린이 미술학원에 선생님으로 출근을 하고 있었다. 예비 12번으로 아깝게 삼수에 실패한 효민이는 화실에 종종 나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길을 지나가던 어린이 미술학원 원장님 한 분이 화실에 갑자기 들어오셔서 다짜고짜 미술학원에서 일 할만 한 사람이 없냐고 선생님께 물었다는 것이었다. 당황스러운 상황이었지만 그새 선생님은 효민이를 생각해 냈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효민이는 자기 의지하고는 상관없이 취업이 되어 버렸다. 이내 방황의 시간이 줄어들게 되었다는 표현이 맞을까? 세종이를 군대로 보내고 나서 몇 날 며칠을 울던 녀석은 매일 같이 나를 찾아와 술을 먹자고 했었다. 술도 하루 이틀이지 다음날까지 지장이 생기는 일이 생기자 나는 최근까지 효민이를 피하고 있었다.

 

  이윽고 선생님과 신철이 아저씨가 두 손 가득 장을 봐 오셨다. 나는 완성된 그림을 보이며 신철이 아저씨께 말했다.

 

  “ 조만간에 액자 해서 드릴 게요.”

 

  “ 고마워요. 주민 씨. 잊지 못할 선물이 될 것 같아요.”

 

  신철이 아저씨는 진심으로 좋아하셨다. 그림을 마치고 화실 중간에 돗자리를 깔았다. 종종 화실에서 음식을 다 같이 먹거나 술을 한 잔 할 때 늘 볼 수 있는 흔한 풍경이다. 상처럼 쓸 수 있는 작업 다이도 있었지만 요즘 다이에서 작업을 하는 분들이 많아져 짐이 많이 올려지다 보니까 바닥에 앉아서 먹는 것이 어느덧 편했다. 조금 있다가 충재와 효민이도 도착했다. 이 녀석들도 빈 손으로 오기는 뭐했는지 손에 이것저것이 들려 있었다.

 

  화실에서 조촐하게 회식을 할 때는 삼겹살이 단연 최고다. 저녁 시간에 시장기를 해결해 주기에도 좋았고 술안주로도 좋았기 때문이다.

 

  “ 어서 와. 얘들아. 반갑구나.”

 

  선생님이 인사를 하신다.

 

  “ 저희 왔어요. 선생님.”

 

  효민이가 전보다 표정이 좋다.

 

  “ 오는 길에 홍선이도 불렀다.”

 

  홍선이 녀석은 학원 수업을 마치고 올 테니 10시는 넘어야 오겠다. 충재 녀석도 이제 군 입대까지 한 달 반 정도 남았다. 결국, 지난해 입시가 충재한테는 마지막이 되었다.

 

  “ 삼겹살은 선생님이 구우고 계시고 저희는 야채 좀 씻어 올게요.”

 

  이런 일이 잦다 보니 분업이 잘 되어 있는 편이다. 가만히 앉아서 상전이 되는 것보다 엉덩이 가볍게 할 일을 빨리 찾아서 하는 편이 마음이 편하다. 내가 야채를 씻어오는 동안 다른 녀석들은 자신들이 사 온 것들을 잘 펼치고 있을 것이다.

 

  술자리는 어느덧 무르익고 있었다.

 

  “ 주민아. 저 정도면 완성 아니냐?”

 

  “ 모르겠어. 붓을 완전하게 놓을 때가 완성이겠지.”

 

  “ 매일 보지 않아서 그런가? 우리가 봤을 때는 다 그린 거 같은데.”

 

  효민이도 거든다. 공모전까지 한 달 남짓 남았는데 휘어진 판도 바로 잡아야 하고 액자도 해야 하고 액자를 하고 나서는 그림 마감재도 발라야 한다. 원래 그림을 어느 정도 마르고 나면 바니시라고 마감재를 발라야 하는데 작품이 휘어지는 바람에 순서가 바뀐 것이다. 바니시로 마감을 하고 목공 작업에 들어가면 작업이 힘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전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 평범한 수준의 완성도로는 상을 받을 수가 없잖아.”

 

  대학 재학생은 자격이 미달이라서 최종학력 고졸로 공모전에 내야 했다. 그렇다 보니 나한테 필요한 것은 기성작가 수준의 완성도였다.

 

  한 작품을 석 달 넘게 작업하는 일은 고행의 길이었다. 계속 제자리걸음 같았던 작업은 화면에 물감이 덮였다가 마르기를 5차례 반복하고 나서야 희망의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캔버스에 물감들이 채워져 들어가 표현이 자유로워졌고 색감도 올라오기 시작했다. 경험이 일천하고 재료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던 탓에 처음에 굉장히 고생했었다.

 

  “ 선생님이 봤을 때 90프로는 올라왔어.”

 

  “ 그래요? 거의 다 왔네요.”

 

  “ 마무리로 갈수록 린시드의 비율을 올려봐.”

 

  “ 린시드를 써보니까 마르는 속도가 너무 늦어서 그냥 마무리하고 글로스 바니시 바르려고요.”

 

  그때그때 모르는 부분들을 책으로 익혀가다 보니 3 개월이 지난 지금의 나는 제법 재료의 특징과 용도를 많이 파악해 나가고 있었다.

 

  “ 앞으로 두 번 정도 더 올리면 끝난 거 같아요.”

 

  디테일한 묘사들이 되어 가고 있는데 그것도 순서가 있었다. 원하는 톤을 내기 위해서는 여려 차례 시행착오가 필요했고 물감들은 색깔들마다 저마다 다루는 요령이 달랐다. 하나하나 조금씩 이해해 가는데 책에서 보는 것과는 달랐다.

 

  “ 효민아 일하는 곳은 일할 만해?”

 

  “ 모르겠어. 애들은 예쁜데 원장님이 적응이 안 되네.”

 

  “ 그게 무슨 소리야?”

 

  그 원장님은 효민이를 극진하게 모시겠다고 하고 데리고 갔던 참이었다.

 

  “ 둘이 있을 때나 애들하고 있을 때는 괜찮은데. 학부모만 있으면 사람이 이상해져.”

 

  가만히 말을 들어 보니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본인이 책임져야 할 일들을 효민이 책임으로 미루고 부모들 앞에서 면박 주고 부모님 가고 나면 사과하고 이중인격이 따로 없었다.

 

  “ 적당히 둘러 대고 그만둬. 그런 곳에서 무슨 비전을 보냐?”

 

  혀를 차는 충재였다.

 

  “ 그렇지. 그렇지. 너라도 그렇게 응원해 주니까 고마워 충재야.”

 

  효민이 녀석은 나한테도 위로를 받고 싶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녀석을 쉽게 위로해 주지 않았다. 어느 직업이나 어려운 점이 있고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그나저나 주민 씨. 주민 씨 작업 오늘 소처럼 사람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그림을 그리시면 사람들이 많이 사려하지 않을까요?”

 

  신철이 아저씨가 혼자 한참을 생각에 잠기시더니 하신 말씀이었다.

 

  “ 네? 아니 갑자기 그림 파는 얘기는...”

 

  나는 뒷말을 흐렸다.

 

  “ 작품 하시는 거 보니까 충분히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그림을 잘 그리실 거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철이 아저씨의 말에는 확신 같은 것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림을 파는 목적으로만 그림을 그리는 상업화가가 되고 싶은 마음은 털끝만큼도 없었다.

 

  “ 갑자기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저는 파는 목적으로 그림을 그리고 싶진 않아요.”

 

  젊은 작가의 쓸데없는 자존심 같은 것이 나의 내면에 깔려 있었다. 파는 것 외의 다른 가치. 관람객들을 감동시키고 싶었고 순수한 의도를 작품을 하는 순수 회화작가가 되고 싶었다.

 

  “ 주민 씨. 그렇다고 그림을 팔지 않겠다는 말은 아니죠?”

 

  다급함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 물론, 아예 팔지 않겠다는 말을 아닌데요. 주로 팔 기 위한 목적으로 그림을 그리지는 않겠다는 말입니다.”

 

  돈은 다른 걸로도 벌면 되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학원에서 애들을 가르쳐도 되고 지금처럼 시화 같은 것을 그리는 것도 방법이었다.

 

  “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벌지 않고서는 생활할 수가 없어요. 아직 어려서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에요? 인생의 선배로서 주민 씨를 아끼는 사람의 순수한 의도에서 나오는 충고예요.”

 

  신철이 아저씨는 진지한 눈으로 나를 보며 말씀하시고 계셨다.

 

  “ 무슨 말인지 충분히 알겠어요. 다른 말이 아니라 삼각지 화가들처럼 되기 싫다는 말씀을 드린 거 에요.”

 

  그렇다. 신철이 아저씨 말이 옳다. 하지만 그 말을 액면 그대로 인정해 버리면 내 자존심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연습한다고 그린 수채화 40여 점도 엄마가 몸담고 있는 미용협회에 다 기증했었다. 그 정도로 나는 내가 연습을 한 그림이라고 생각한 그림들은 누구든지 간에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었다. 팔고 싶은 마음 또한 없었다.

 

  “ 주민이가 저한테 들은 삼각지 화가들 얘기들 때문이에요. 신철 씨. 예전부터 그들을 제가 장사꾼들이라고 말해서 주민이가 저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 당대에 화가들 중에 그림을 팔지 않고 살아간 화가들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미술 안의 시장은 그림을 팔고 사지 않으면 안 되는 구조 라구요.”

 

  신철이 아저씨는 조금 흥분하셨다.

 

  “ 흥분하지 마시고 신철이 아저씨 말을 제가 정확하게 이해하는 순간들이 오겠죠. 그때가 됐을 때 다시 이야기하면 안 될까요? 저는 지금 이 순간에 더 집중하고 싶습니다.”

 

  진심이었다. 나에게 이제 공모전까지 한 달여가 남아 있으며 한눈팔고 소모적인 논쟁이나 하면서 보낼 시간은 없었다.

 

  “ 그래요. 주민 씨가 그렇게 얘기하니까 저도 이해를 해야겠네요.”

 

  신철이 아저씨는 많이 취해 보였고 논쟁을 오랜 시간 하다 보니 시간은 새벽을 향하고 있었다.

 

  “ 신철 씨. 시간도 늦었고 하니 우리 아저씨들은 빠져 줍시다. 젊은이들에게 저들의 시간도 줄 겸.”

 

  선생님이 말씀하시며 일어나신다.

 

  “ 그래요. 우리는 이제 갑시다.”

 

  신철이 아저씨도 일어나셨다.

 

  “ 아저씨. 며칠 상간으로 그림 액자에 넣어서 드릴게요.”

 

  “ 그래요. 주민 씨 오늘 내가 한 말 마음속에 너무 깊게 담아 두지 말아요. 주민 씨 말을 들으니까 모든 것은 다 때가 있는 거 같습니다.”

 

  “ 그렇게 생각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젊은 녀석의 객기로 봐주세요.”

 

  “ 그래요. 너무 늦게들 마시지 말고 일찍들 들어가요. 저는 갑니다.”

 

  그렇게 신철이 아저씨와 선생님은 가셨다.

 

  신철이 아저씨는 나보다 스무 살이나 많으셨지만 한 번도 말을 놓으신 적이 없으셨다. 언제나 웃으시는 인자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대하시는 선비 같은 분이셨다. 선생님과 내가 돈이 없어 굶고 있을 때 흔쾌히 지갑을 열어 밥을 쏘시던 분. 명퇴를 하시고 인생 2 모작으로 두 번째 인생을 준비하시던 분. 화실 선생님의 크고 작은 일에도 누구보다 발 벗고 나서시는 분이셨다.

 

  우리의 술자리도 오래가지 못했다.

 

  그로부터 며칠 동안은 시집에 들어갈 시화를 그리느라 나는 정신이 없었다. 200장을 채우기 위해서는 하루에 20장씩 넉넉하게 그려야 했다. 그러고 나서는 100호 작품을 마무리하느라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액자 공장에서 부탁한 그림은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그 작품들은 국전이 끝나고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닥치는 대로 그림 수를 채우다 보니 시를 읽어 가며 할 수가 없어서 제목만 보고 예상되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선생님이 외출하셨다가 돌아오셨다. 뭔가 모르게 선생님답지 않게 조용하셨다. 한참을 그림을 그리고 있던 나를 부르셨다.

 

  “ 유 선수. 담배 한 대 피우자.”

 

  “ 네. 커피 한 잔씩 탈까요?”

 

  “ 난 많이 마셨어. 주민이 마실 거면 한 잔 타고.”

 

  “ 계속 그림만 그렸더니 한 잔 마셔야겠네요.”

 

  전기 포트에 물을 따라서 끓인다. 끓어오른 물을 미리 준비해 놓은 믹스커피 가든 종이컵에 붓는다. 베란다로 나가 담배에 불을 붙이는 순간,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 신철 씨가 죽었어. 오늘이 발인이라 갔다 오는 길이야.”

 

  나는 잘 못 들었나 싶었다.

 

  “ 며칠 전에 심장 쇼크가 와서 쓰러졌었는데 그대로 돌아가셨단다. 손써볼 틈도 없이.”

 

  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사람이 어쩜 이렇게 어이없게 죽을 수 있단 말 인가? 신철이 아저씨한테 그림도 드리지 못했는데 바빠서 정신도 없어서 액자도 못한 상태였다.

 

  “ 선생님 왜 저한테 말 안 하셨어요?”

 

  “ 신철 씨 와이프도 정신이 없어서 통화 목록보고 나한테 겨우 연락한 거였어. 오늘이 발인이고 시간도 없어서 나 혼자 갔다 오게 됐다.”

 

  하긴 언제나 선생님과 같이 화실에서만 만나다 보니 나는 신철이 아저씨 전화번호도 몰랐다.

 

  가슴이 먹먹해 왔다. 이렇게 일찍 가실 줄 알았다면 며칠 전에 술 먹을 때 신철이 아저씨가 하신 말씀에 그냥 수긍해 드릴걸.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하느님은 왜 좋은 사람들만 먼저 골라서 데려가는가? 언제 다 피웠는지 알 수 없는 담배를 성냥 삼아 다시 담뱃불을 다시 붙였다. 마지막이 될 거라 생각지 못했던 신철이 아저씨의 눈빛과 말이 생각났다.

 

  취하셔서 초점이 없는 눈으로,

 

  “저는 갑니다.”

 

 라며 선생님과 함께 사라 지셨던 마지막 모습.

 

 “ 저는 갑니다.”

 

  라는 말이 귓가에 멤 돌았다. 나한테 유언 같은 말이 되어버렸다.

 

  ‘신철이 아저씨 소 그림을 선물하지 못했는데 먼 길을 떠나셨군요.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아저씨의 말씀을 바로 수긍해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성숙한 마음으로 더욱 성숙한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되겠습니다.’

 

  마음속으로 다짐을 하였다. 소 그림을 선물해 드리지는 못했지만 좋은 동료였고 주변에 좋은 어른으로 계셨던 분을 그렇게라도 기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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