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 있는 사람들 모두 건우의 선택이 궁금했는지 건우의 입술만 바라보고 있지만 건우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밖으로 나가버린다. 그 뒤로 슬비가 따라 나가고 복도 끝 자판기 앞에 서서 커피 한잔을 뽑아 건네주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연우오빠는 자신의 친아빠도 아닌 사람에게 인정 받으려고 얼마나 노력 하는데 넌 친자식이면서 왜 삐뚤어지는 건데"
"그래서 지금 나보고 채린에게 돌아가라는 말을 하는 거야 다른 사람들도 아닌 내가 사랑하는 너에게 그 소리를 들어야 하냐고"
"나라면..."
"쉽게 말하자면 회사를 위해 연우형이 아닌 넌 나랑 결혼을 해야해 그럼 할 거야 할 수 있냐고"
"그건..."
"지금 나도 너와 같은 심정이라고..."
결국 뒤돌아 서서 길고 긴 복도를 걸어가는 건우의 모습을 보면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자신이 미웠다. 다시 돌릴 수 있다면 연우오빠를 찾기 위해 건우의 도움을 받지 않았으면 이렇게 힘들지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어서 고개를 숙이고 사무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건우는..."
"그냥 갔어요"
"뭐 좀 알아냈어?"
"알 수가 없었어요. 죄송해요."
"아니야 자! 그만 일에 집중할까?"
셋은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일에 집중한다. 슬비의 얼굴 표정을 보면서 좀 마음이 쓰이는지 연우의 고개가 자꾸 슬비에게 돌아간다.
사무실 건물에서 나온 건우는 생각이 깊어지고 거리를 걸으면서 생각한다. 그 생각 끝에 찾아 간 곳은 채린이 연습을 하고 있는 학교 연습실 앞.
몇 명의 여학생이 지나가며 건우가 온 것을 알게 되지만 자존심으로 먼저 나가지 않고 연습하는 척하는 채린. 결국 기다리지 못하고 문을 열고 들어가는 건우 분위기를 보고 다른 학생들이 연습실을 나가고 단 둘이 남아서 좀 먼 거리를 유지한 체 서 있다. 건우가 다가가려고 하자 먼저 선을 긋는 채린이 말한다.
"거기서 이야기 해 여기서도 다 들리니까"
"그 계약 조건 좀 없애줘"
"누구 좋으라고 내가 그 조건 넣으라고 아빠한테 부탁했는데"
"내가 왜 갖고 싶은 건데 다른 여자들이 탐을 내니까 너도 갖고 싶은 그런 승부욕이라도 생기는 거야"
"처음엔 그런 거라고 생각했지만 보면 볼수록 네가 좋아졌어"
"난 아빠 회사 상관없어 집이 망해도 상관없어 난 네가 사랑하는 슬비와 꼭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그 역시 친형이 아닌 연우오빠에게 그 여자를 빼기지 않으려는 너와 나는 같은 입장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지도 모르지 하지만 슬비는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
"어떻게? 그런 확신이 있으면 왜 너의 여자로 곁에 두지 않는 건데"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탐색의 시간을 가지는 거야"
"그래 난 그 시간 필요없어 다이렉트로 널 내 남자로 만들 수 있으니까"
"결국 내 선택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게 되는 거겠지"
"궁금하다 네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그래? 그럼 조망간 그 선택의 결과를 듣게 해주지"
뭔가 결심을 한 듯 연습실을 나가는 건우, 그 뒷모습을 보고 왠지 모르게 큰 불안감이 밀려왔고 달려가 붙잡고 싶었지만 남자에게 매달리는 모습을 다른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그냥 그 자리에 서서 두 주먹을 꼭 쥐고 서서 부글부글 타오르는 심장을 식히고 있는 중이다.
청운그룹 본사 건물 앞.
건우가 안으로 들어간다. 사장실 앞에 서서 비서의 안내를 받지 않고 바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심각한 듯 고민하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본 건우가 책상 앞으로 가서 선다.
"아빠 회사가 어떻게 되든 내 선택은 이슬비입니다."
"정말 후회하지 않는 거냐?"
"네."
"내가 만약 그 아이를 힘들게 해도 다 커버할 수 있을까?"
"같이 이겨내야죠"
"사랑하지도 않는 너의 곁에서 둘이 이겨내겠다고"
"슬비를 믿어요. 사랑하니까"
"왜 그렇게 불쌍하지 우리 아들... 너의 모습이 불쌍해서 못 보겠어"
"제가 나가면 되는 거죠. 연우형처럼... 떠나면 될까요?"
"뭐라고? 너 마저..."
건우가 사무실을 나가 집으로 간다. 집에 도착해 엄마의 인사도 무시하고 방으로 들어가 캐리어에 짐을 넣고 집을 나온다. 엄마가 붙잡아 보지만 그 힘으로는 역부족이었고 결국 건우는 그 집을 나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