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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마지막 봄
작가 :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9.10.4

(정통소설/피폐)

전 세계의 질서가 무너져내린 이후 매서운 겨울이 찾아왔다.
남아있는 생존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흩어졌고, 얼어붙은 세상에 남은 마지막 불씨는 꺼져버렸다.

이 버려진 도시에 홀로 남겨진 소녀는 이제 잃어버린 가족들을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나야만 한다.

 
15화
작성일 : 19-10-25 19:02     조회 : 16     추천 : 0     분량 : 5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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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저씨, 이것 좀 봐요.”

 

  “뭘 말이냐?”

 

  “제 이름을 윤 보미라고 썼네요.”

 

  봄이가 서류를 들이밀었다. 상훈은 피식 웃었다.

 

  “다들 착각한다니까.”

 

  “뭐, 상관없어요. 빨리 명단이나 살펴보러 가요.”

 

  봄이가 퉁명스럽게 말하며 후드 모자를 뒤집어썼다. 반쯤 가려진 눈으로 통제소를 바라보니 밖에서 대충 쳐다보던 것과는 다르게 내부의 규모는 의외로 컸다. 통제소 면적의 반 이상은 빈 공간도 없이 빽빽이 늘어선 넓직한 단색 군용 천막들이 줄지어 차지하고 있었다. 나머지 공간의 반은 인파들이 발 디딜 틈도 없이 넘쳐났다.

 

  나머지 남은 공간은 구호품 배급소나 지구대 같은 조그마한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다. 지금 시간은 이른 아침이었지만 봄이는 건물 창문을 통해서 실내에 어렴풋이 빛이 들어와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 말은 즉 전기가 사용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전기가 들어오는 곳은 오랜만이네요.”

 

  “아마도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발전기를 돌리는 모양이야.”

 

  “그럼 물도 나올까요?”

 

  “글쎄, 식수라면 있겠지.”

 

  “씻고 싶어서 그래요.”

 

  “포기해.”

 

  둘 사이에 짤막한 대화만이 오고갔다. 봄이가 고개를 돌려 상훈을 노려보자 그는 곧바로 눈을 피했다.

 

  “샤워실이 있다면 좋겠지만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데서 그 귀중한 물을 펑펑 낭비하게 둘 것 같아? 아쉽지만 다음 기회를 노리는 게 좋겠다. 식수라도 있는 걸 감사하게 여겨도 모자랄 판국에.”

 

  봄이는 상훈의 말에 차마 반박할 만한 논증을 찾지 못하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보면 봄이는 그냥 최대한 빨리 명단에서 가족들의 이름을 찾고 싶을 뿐이었다. 불필요한 언쟁에 휘말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봄이는 앞으로 상훈이 족족 걸어오는 딴죽들을 모조리 무시하기로 마음먹었다.

 

  커다란 적십자 모양의 엠블럼이 떡하니 걸려 있는 건물 앞에는 마치 벌레들을 연상시킬 만큼 수많은 인파들이 바글거렸다. 봄이는 끝없이 뻗어있는 대기열의 가장자리에 섰다. 여기저기에서 경찰관들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소리치는 것이 들렸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30분이 지나고 나서야 봄이의 차례가 돌아왔다. 봄이는 흰 가운을 입고 마스크를 쓴 남성에게 검문소에서 받았던 서류를 보여주었다. 흰 가운의 남성은 서류를 제대로 보지도 않고 대충 훑어보더니 옆으로 치웠다.

 

  “윤 보미 씨 되십니까?”

 

  “네.”

 

  봄이는 눈썹이 꿈틀거렸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최근 눈병이나 전염되는 병, 특별한 발작이나 이상증세를 앓으신 적이 있으십니까?”

 

  “없어요.”

 

  흰 가운의 남성의 말투는 또박또박하면서도 매우 빨랐다. 마치 정해진 말만을 정확하게 되풀이하도록 설계된 자동응답기 같았다.

 

  “전염되는 병에는 장티푸스, 콜레라뿐만 아니라 인플루엔자나 감기도 포함됩니다. 솔직히 말해주셔야 합니다. 치료해드리려고 그러는 겁니다.”

 

  “없어요.”

 

  봄이는 다시 한 번 자신의 의사를 뚜렷하게 표명했다. 흰 가운의 남자는 책상 위의 서류뭉치에 뭐라고 적더니 고개를 들고 다시 말했다.

 

  “파상풍 증상 검사를 위해서 상의를 전부 벗어주셔야 합니다. 긁힌 상처가 있는지 확인하려는 겁니다.”

 

  “예?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봄이가 눈동자를 크게 뜨고 되물었다. 자신이 잘못 들었겠거니 생각했다.

 

  “그냥 절차일 뿐입니다. 뒷사람들이 기다리니까 신속히 탈의해주세요.”

 

  “전 그런 병 없다니까요! 긁힌 적도 없고요!”

 

  소란스럽던 군중들이 점차 고요해졌다. 흰 가운의 남자가 피곤하다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입소 절차를 거부하신다면 입소시켜 드릴 수 없습니다.”

 

  “상관없어요! 애초에 여기 들어오려는 게 아니라서요. 여기 입소자 명단만 확인해 보면........”

 

  봄이가 말을 끝맺기도 전에 누군가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짜증이 솟구친 봄이가 뒤돌아보았다. 키가 작고 배가 나온 중년 남성이었다.

 

  “학생, 뒷사람들이 기다리잖아요. 곤란하다는 건 알지만 빨리 돌아가던지 응하던지 합시다. 아까 보니까 다들 하는 것 같던데. 여자분들도.”

 

  “맞아요. 아가씨가 만약 병이 있는데 숨겼다가 전염되면 어떡하려고 그래요?”

 

  그의 뒤에 있던 빼빼 마른 남성도 거들었다.

 

  “싫으면 다른 사람들한테 민폐 끼치지 말고 돌아가!”

 

  다른 노인도 봄이에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방금 전까지 자기들끼리 수군대던 군중들의 목소리는 순식간에 봄이 한 사람을 향한 욕설과 야유로 바뀌었다. 마치 굶주린 채 사냥감을 기다리던 하이에나들처럼 말이다. 그들에게 억누르고 있던 폭력성을 밖으로 끌어내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군중들에게 둘러싸여 어쩔 줄 모르고 있던 봄이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아, 씨발! 좆같네! 벗어요. 벗는다고!”

 

  봄이는 신경질적으로 후드 재킷을 벗어던지고 블라우스를 움켜잡았다. 수치스러움이 하늘을 찔렀지만 별 수 없었다. 어쩌겠는가? 짐승들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모든 짐승들이 자신을 손가락질하는 그 상황에서........

 

  봄이가 막 첫 번째 단추를 풀었을 때, 상훈이 그들을 가로막았다.

 

  “파상풍은 사람에게서 전염되지 않습니다.”

 

  그들의 야유가 순간 멎어들었지만, 곧 한 사람이 격분해서 소리쳤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그러나 상훈은 그를 무시하고 몸을 돌려 흰 가운의 남성에게 물었다.

 

  “그렇죠, 의사 양반?”

 

  흰 가운의 남성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상훈을 노려보기만 할 뿐이었다.

 

  “만약 그것도 모르면서 그 옷을 입고 계신 건 아니겠지요? 그렇죠?”

 

  “........원래 합당한 절차입니다만, 기다리고 계신 분이 많으니 이번만 넘어가드리죠. 바로 항생 주사를 접종하셔야 하니까 저 쪽으로 이동해서 소매를 걷어주세요.”

 

  흰 가운의 남자는 당황하거나 말을 더듬는 기색조차 없이 봄이를 주사실로 보내고는 다음 사람을 불렀다. 봄이는 어이가 없어 다리에 힘이 풀릴 지경이었다. 상훈은 곧바로 입에서 ‘야이 개새끼’를 쏟아내려는 봄이의 입을 틀어막고 주사실로 데려갔다.

 

  * * *

 

  “뭐 저런 새끼들이 다 있어요? 이제 여긴 1초도 더 있고 싶지 않아요!”

 

  봄이는 인적이 드문 천막들의 가장자리 공터에서 울분을 토해냈다.

 

  “너무 마음에 담아두진 마. 모르는 놈이 바보인 세상이니까.”

 

  “내가 바보라는 거예요?”

 

  “아니........ 그만하자.”

 

  봄이는 씩씩댔지만 곧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물었다.

 

  “뭐, 그건 그렇고. 사람을 찾으려면 어디에서 물어보는 게 좋을까요?”

 

  “지구대에 가 보면 되지 않을까? 아까 보니까 검문소 경찰들이 입소자를 관리하는 것 같던데.”

 

  “그럼 어서 가요.”

 

  봄이가 그렇게 말하고는 상훈과 함께 수많은 인파들을 헤치고 지구대로 향했지만 지구대 역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봄이는 그 광경을 보고 온 몸에서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머릿속이 텅 비는 듯한 허탈함을 느끼고는 더 이상의 기다림과 수도 없이 많은 인파들이 만들어내는 혼란과 혼잡함에 신물이 올라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봄이는 끓어오르는 답답함을 억누르지 못하고 상훈이 말릴 틈도 없이 자리를 박차고 지구대로 달려갔다. 봄이는 경찰관들이 말리는 것도 뿌리치고 사람들과 부딪히며 대기열에 서 있던 사람들을 밀쳐서 비집고 들어갔다. 뒤에서 자신을 향한 욕설이 들려왔다.

 

  이윽고 그녀는 대기열의 가장 첫 번째 자리에 도착했다. 봄이는 제일 첫 번째 사람과 업무를 보던 경찰관이 턱을 괸 채 앉아있던 나무 책상을 손바닥으로 내리치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사람을 찾고 있어요. 좀 도와주세요.”

 

  “지금 차례가 안 보이십니까? 줄을 서셔서 본인 차례일 때 볼일 보시기 바랍니다. 돌아가세요.”

 

  “잠깐이면 돼요. 여기 입소자 명단을 좀 보여주시면 제가 알아서......”

 

  봄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뒤에서 억센 손이 그녀의 어깨를 뒤로 잡아당겼다. 봄이가 뜬금없는 시비에 고개를 홱 돌린 순간 봄이의 뺨에 무엇인가 단단하고 울퉁불퉁한 것이 세차게 날아와 꽂혔다.

 

  봄이는 순간적으로 몸을 가눌 수가 없게 되어 비틀거리며 넘어졌다. 머릿속이 새하얘지고 어질어질한 충격이 뇌에 그대로 전해졌다. 봄이는 쓰러진 채로 얼얼한 뺨을 움켜잡고 자신의 얼굴을 때린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키가 크고 뚱뚱한 거구의 남성이었다. 남성의 얼굴은 짜증에 일그러져 있었다. 그의 두꺼운 주먹은 아직까지도 부들거리고 있었다. 그의 두툼한 입술이 떨리며 열렸다.

 

  “미친 년이, 사람을 밀어 넘어뜨렸으면 사과라도 해야 할 것 아냐. 요즘 꼬맹이들은 예의란 걸 모르나? 도대체 교육을 어떻게 쳐 배워먹은 거야?”

 

  “좆까, 돼지새끼야. 죽고 싶어?”

 

  “그래, 이 귀여운 녀석. 네 년은 오늘 내가 책임지고 교육시켜 주지.”

 

  뚱뚱한 남자가 재빨리 일어나려는 봄이의 멱살을 움켜쥐고 주먹을 치켜올린 순간 앞에서 업무를 보던 경찰관과 뒤늦게 봄이를 쫓아온 경찰관들이 뚱뚱한 남자를 제지시켰다. 남자는 경찰관들의 제지에도 한동안 저항하다가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봄이를 보며 씩씩거렸다. 봄이 역시 뚱보를 노려보며 이를 빠드득 갈았다. 이 난장판 끝에 결국 봄이는 경찰관들에게 떠밀려 지구대 밖으로 쫓겨났다.

 

  봄이는 지구대 앞에 내팽개쳐졌다. 다시 들어가려고 애를 쓰며 경찰관과 실랑이를 벌이는 도중 인파들 속에 가려진 봄이를 찾는 데 시간이 걸렸던 상훈이 급하게 달려왔다. 봄이가 경찰관을 다시 한 번 밀치려고 하는 순간 자신의 몸이 뒤쪽으로 강하게 당겨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분명 앞의 경찰관이 자신을 밀친 느낌이 아니었다.

 

  “왜 섣부르게 행동하고 그래? 정신 나갔어?”

 

  “이거 놔요!”

 

  상훈이 경찰관과의 대화로 상황을 설명한 다음 아까 전에 잠시 머물렀던 인적이 그나마 드문 천막의 늪 가장자리 빈 공터로 봄이를 데려(‘끌고’ 가 더 정확했을 것이다-)갔다.

 

  “왜 방해하는 거예요? 이름만 확인하면 더 이상 여기에서 볼일은 없다구요!”

 

  “생각 좀 하고 행동해. 지금도 간신히 치안 유지되는 중인데 거기서 난동을 피우면 어떡해? 여기 있는 이 많은 사람들을 전부다 적으로 돌리고 싶어?”

 

  “그럼 어떡해요, 여기 통제소 수용인원만 몇 천 명 될 텐데 일일이 천막 뒤져요?”

 

  “너 얼굴은 또 왜 이래? 옷은 왜 흙투성이고?”

 

  “일단 이거나 놔요. 좀!”

 

  상훈이 후드자락을 손에서 놓자 발버둥치던 봄이의 몸이 앞으로 몇 발짝 튕겨져 나갔다. 봄이는 상훈을 날카로운 눈으로 째려보며 재킷과 치마에 묻은 흙을 손바닥으로 툭툭 털어냈다. 상훈은 자신을 못마땅하게 쳐다보는 봄이와 마주보다가 먼저 시선을 치우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넌 정말 왜 그러냐? 그렇게 생각이 없어서야 앞으로 어떡할 거야?”

 

  “이럴 시간 없어요. 빨리 가족이 있는지 확인하고 떠나야 한다구요.”

 

  봄이가 나름대로 다급하게 말했지만 상훈은 그런 그녀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리털 재킷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봄이는 그런 그의 행동을 보고 경멸스럽다는 듯한 표정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일단 넌 좀 진정하는 법을 배워야겠다. 이 담배가 다 타들어갈 때까지만이라도 가만히 앉아서 기다려 봐.”

 

  “좀 있으면 벌써 해가 진다구요! 그럼 어떡할 거예요? 시간 없어 죽겠는데 본인 일 아니라고 팔짱 끼고 지켜보겠다 이거죠? 마음대로 해요. 더 이상 내 일에 간섭하지 말아요!”

 

  봄이가 상훈의 팔을 뿌리치자 그가 말했다.

 

  “말리진 않겠지만, 이번에도 곤경에 처하면 난 도와주지 않을 거다.”

 

  그러나 봄이는 그의 말에 코웃음을 치고는 곧바로 지구대로 달려갔다.

 

 
작가의 말
 

 감사합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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