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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마지막 봄
작가 :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9.10.4

(정통소설/피폐)

전 세계의 질서가 무너져내린 이후 매서운 겨울이 찾아왔다.
남아있는 생존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흩어졌고, 얼어붙은 세상에 남은 마지막 불씨는 꺼져버렸다.

이 버려진 도시에 홀로 남겨진 소녀는 이제 잃어버린 가족들을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나야만 한다.

 
12화
작성일 : 19-10-21 01:33     조회 : 16     추천 : 0     분량 : 5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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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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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이가 눈을 떴을 때 처음으로 본 것은 고요한 정적이 흐르고 있는 방에 어울리는 일렁이는 선홍빛 불꽃이었다. 얼핏 보아서는 접시 위에 놓인 양초인 것 같았는데 자세히 보니 그 양초를 들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잘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방 아래에서 손에 들고 있는 양초 불빛만이 환하게 비춰주고 있는 얼굴이었다. 그 얼굴은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남자였다.

 

  “아, 일어났구나.”

 

  봄이는 누워 있던 자리를 손으로 쓸어보았다. 표면이 까칠까칠하고 어딘가 텁텁한 냄새가 나는 침대 시트였다. 봄이가 몸 위에 반쯤 덮힌 얇은 가죽 이불을 치우고 몸을 일으키려 하자 봄이의 이마에서 젖은 물수건이 허벅지 위로 툭 떨어졌다.

 

  “잠깐, 좀 누워있는 게 좋아. 너 열이 제법 심하다고. 처음에 널 만져봤을 때는 불덩이인 줄 알았어.”

 

  “어떻게 된 거죠? 그 꼬마는요? 어디에 있죠?”

 

  “무슨 꼬마? 거기에 꼬마는 너밖에 없었어. 너무 급하게 달려가길래 무슨 일인가 싶어서 널 뒤쫓았는데, 뒤늦게 골목 귀퉁이에 쓰러져 있는 널 봤어. 거진 20분 동안이나 널 찾아다녔다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그때 열이 얼마나 심하던지 네 주위에 있는 눈들을 전부 다 녹여버릴 정도였다니까.”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어서 그 꼬마를 찾아야 해요.”

 

  봄이가 급히 일어서려 하자 남자가 양초가 든 접시를 침대 머리맡에 내려놓고 일어서려는 봄이의 어깨를 두 손으로 붙잡았다.

 

  “진정해. 여기엔 약도 없어. 더 악화되기라도 하면 생명이 위태로울지도 몰라. 일단은 몸을 좀 사리라고. 무슨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

 

  봄이는 자신의 이마를 만져보았다. 차가운 물수건 덕분인지 땀에 젖은 미지근한 이마가 만져졌다. 봄이는 내키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이 남자의 말을 듣기로 했다. 봄이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도로 자리에 누웠다.

 

  “참, 그리고...... 너무 열이 나는 것 같아서 네 외투는 좀 벗겨뒀어. 그 외투도 얼마나 땀이 범벅이던지. 추우면 입어도 상관없어. 다만 이상한 생각으로 그런 건 아니니까 오해하지는 말고.”

 

  봄이는 그 말을 듣고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여기저기 까맣게 때가 끼긴 했지만 하얀 빛을 잃지 않은 블라우스가 보였다. 땀에 젖은 채로 누워 있다가 일어나서인지 등이 축축했지만 등뿐만은 아니었다. 봄이는 상의를 확인하고 나서 아래를 들춰보았다. 치맛폭에 있던 권총이 사라져 있었다.

 

  남자가 예상하기라도 한 듯 먼저 말을 꺼냈다.

 

  “아, 그건 잠깐 저기에다 뒀어. 꽤 위험한 걸 가지고 있던데. 실린더랑 총열을 확인해보니까 가짜는 아니던데....... 그렇다면 예전에는 정말 저세상 갔을 수도 있었겠군.”

 

  봄이는 남자가 가리키는 손가락 끝을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탁자에 놓인 권총을 집어 들고 다시 침대로 돌아왔다. 남자는 재빨리 권총을 등 뒤로 감추는 봄이를 보고는 비웃듯이 말했다.

 

  “걱정 마. 가져갈 생각이 있었다면 벌써 가져갔겠지. 사람을 잘 신뢰하지 못한다는 건 아는데 여기는 너랑 나밖에 없어. 그러니까 안심해도 돼.”

 

  남자가 그렇게 말하고는 양초 접시와 봄이의 이마에 올려놓았던 손수건을 들고 방을 나가려 했다. 그때 방 밖에서부터 풍성한 털 뭉치처럼 생긴 물체가 방안으로 어슬렁거리며 들어왔다. 그리고는 남자의 무릎 앞에 서서 낑낑거리며 남자의 종아리를 핥았다.

 

  “참, 너도 있었지.”

 

  남자는 무릎 앞에 서서 두 발을 내미는 털뭉치를 들어올려 안아 주었다. 남자의 품에 안긴 덥수룩한 털 사이에서 어떤 생물의 이목구비가 어렴풋이 드러나 있었다. 그 생물과 눈이 마주친 봄이는 얼굴을 찡그렸다.

 

  “그럼, 여기는........ 아저씨 집인가요?”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엄밀히 따진다면 내 집은 아니지만.”

 

  남자가 방문을 나서려다가 잊은 게 있다는 듯 뒤돌았다. 그러자 남자에게 안겨있던 개의 하얀 등이 보였다.

 

  “그리고 아저씨 아니야. 요즘 통 수염을 못 깎아서 그런 진 모르겠지만 이래봬도 대학교 졸업한 지 얼마 안 됐다고.”

 

  “아저씨.”

 

  봄이가 무표정으로 내뱉자 남자는 한숨을 쉬고는 밖으로 나갔다. 아까 전에 일어났을 때보다는 나아졌지만 아직 미미한 두통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봄이는 최근 며칠간 제대로 된 곳에서 쉬지 못해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피폐해져 있었다. 봄이는 까칠까칠한 침대에 다시 누워 가만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꿈을 꿨던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꿈이라고 믿고 싶지도 않았다. 봄이는 분명 골목 끝자락으로 달려갔고 그곳에서 무엇을 보고 정신을 잃었다. 여기까지는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 소년은 도대체 누구였을까. 그 소년이 말했던 ‘검은 새’는 도대체 무슨 의미였을까. 봄이는 소년이 알 수 없는 소리로 중얼거렸던 말들을 애써 기억해내려 노력했다. 소년의 말들을 곰곰이 곱씹어보며 무엇인가 숨은 의미를 찾아내려 노력해보았지만 기억에 남아있는 말들은 거의 없었다. 애초에 자신은 왜 이렇게까지 소년에게 집착하는가? 굳이 찾아다닐 이유가 있었을까? 어제 처음 만난, 누군지도 모르는 그 지저분한 녀석을 어째서.......

 

  봄이는 눈에 젖어 반들거리는 리볼버를 들어올려 살폈다. 정신을 잃기 직전 소년은 자신에게 무슨 짓을 했던 걸까. 봄이는 쓰러지기 직전 총소리를 들었다. 더 이상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쾌쾌한 화약 냄새도 느꼈다. 봄이가 그것을 생각해낸 순간 머릿속이 찌릿하고 울렸다. 총 소리, 화약 냄새, 그리고 총구에서 일렁이는 한 줄기의 화약 연기, 그리고 쓰러지는 자신.

 

  봄이가 지금까지 저지른 일들이 필름 영사기처럼 재빠르게 지나갔다. 그 일순간의 타이밍에 봄이의 머릿속에서는 소년이 만들어낸 환각 속에서 쓰러지는 자신이 그녀가 쏴죽인 그 사냥꾼 남자에게 투영되고 있었다.

 

  봄이는 난데없이 찾아온 메스꺼움을 최대한 참으려 했다. 가슴 끝이 날카로운 무엇인가에 찔린 듯이 찌릿거리고 아팠다. 뱃속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 올라오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 느낌은 봄이가 처음 방아쇠를 당긴 후에 찾아왔던 느낌과 똑같은 느낌이었다.

 

  봄이의 호흡이 점점 가빠졌다. 잠시 동안 식었던 열과 두통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것 같았다. 숨이 막힐 정도로 호흡이 빨라졌다. 봄이는 가죽 이불을 움켜쥐었다. 이를 악물고 고통스러움을 버티던 봄이의 입에서 작은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더 이상 봄이의 눈앞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남자와 개가 봄이가 있던 침대로 돌아왔다. 남자는 개를 바닥에 내려놓고 차가운 물로 식혀 온 손수건을 다시 봄이의 이마에 올려놓았다.

 

  “아무리 봐도 감기 같지는 않은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제대로 덮히지 않은 이불을 봄이의 목에까지 끌어올려 덮어 주었다. 목에 살며시 닿는 남자의 따뜻한 손을 느낄 수 있었다. 남자는 생수통 한 개를 봄이에게 내밀었다.

 

  “수분을 최대한 보충해두는 게 좋아.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어 봐. 괜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괜찮아. 여기는 안전해.”

 

  봄이는 힘겹게 몸을 일으켜 생수통을 받아들었다. 오른 손바닥에 미지근한 감촉이 전해졌다. 사실 원래의 봄이였다면 낯선 사람이 베푸는 호의 같은 건 받지 않았을 테지만 지금은 왠지 편안하다는 기분을 느꼈다. 어둠을 걷어내고 있는 양초 불빛의 아늑함 때문일까?

 

  봄이는 남자가 건넨 물병을 마다하지 않고 벌컥벌컥 마셨다.

 

  한참 메마른 목구멍이 젖는 감촉을 느끼고 있는데 남자가 말을 꺼냈다.

 

  “그러고 보니 네 이름도 몰랐네. 이름이 뭐니?”

 

  “그런 게 뭐가 중요해요. 어차피 오래 볼 사이도 아닐 텐데.”

 

  봄이가 물병을 남김없이 모두 비우고 머리맡에 내려놓았다. 남자는 그 말을 듣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먼저 이름을 밝히라는 뜻이야? 나는 유상훈이야. 오빠라고 부르든 아저씨라고 부르든 마음대로 불러라.”

 

  딱히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하고 봄이는 생각했다. 봄이는 앉은 채로 한숨을 쉬며 마지못해 대답했다.

 

  “윤 봄이에요.”

 

  “윤 보미?”

 

  “윤, 봄. 이라구요.”

 

  상훈은 강조하듯 입술에 잔뜩 힘을 준 봄이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의외로 귀여운 이름이네. 외자 이름인가? 네 글자 이름 다음으로 신박하군.”

 

  봄이가 흥미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하얀 털을 가진 개 한 마리가 봄이의 침대 위로 뛰어올라 봄이의 허벅지 위에 털썩 앉아서 손가락을 핥아댔다. 생전 처음 느끼는 이상한 감촉에 봄이의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걘 딩이야. 며칠 전에 가엾게도 눈밭에서 방황하고 있지 뭐냐. 그래서 데려왔어. 먹을 걸 많이 주지는 못했지만 불쌍한 놈이라고. 말도 잘 듣고.”

 

  봄이는 자신의 손가락 마디와 손바닥 사이로 혀를 파고드는 흰 개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이상한 느낌이었지만 기분 나쁜 느낌은 아니었다. 아까 남자가 안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가까이서 보니 상당히 큰 몸집이었다. 귀는 쫑긋 세우고 있었고, 꽤나 큰 눈과 촉촉한 코를 가지고 있었다. 등을 쓰다듬어 보니 털은 상당히 풍성했지만 털 안에 감춰진 몸은 제법 마른 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동물이라도 어쩔 수 없구나, 하고 봄이는 생각했다. 흰 털이 이리저리 엉키고 이물질과 함께 굳어 있어서 촉감은 의외로 빳빳한 느낌이었다. 몇 달간이나 목욕을 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것은 봄이 역시 예외는 아니었지만.

 

  손가락을 핥는 입을 자세히 보니 잇몸 사이로 날카로운 이빨이 보였다. 털과 몸집은 비록 극한의 상황 속에서 무뎌졌지만 이빨만은 금방이라도 사람의 숨통을 끊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듯이 건재했다. 봄이는 그 날카로운 이빨을 보고 약간은 이 생물이 무서워졌다.

 

  딩이에게 한눈이 팔려 있는 봄이를 유심히 쳐다보고 있던 상훈이 물었다.

 

  “혹시 배 안 고프니?”

 

  봄이는 뜻밖의 질문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배는 미치도록 고팠지만 왠지 차마 고개를 끄덕일 수는 없었다. 상훈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쓰고 있던 비니 모자를 벗고 일어섰다.

 

  “슬슬 저녁을 먹을 시간이야. 내가 저번에 먹고 남은 바비큐가 있어. 금방 가져올 테니 여기서 기다려.”

 

  봄이는 고기라는 말을 들으니 벌써부터 입가에 침이 고이는 것 같았지만, 애써 배고프지 않은 척 무표정을 유지했다. 딩이도 무언가를 알아챈 듯 귀가 번뜩하고 커졌다.

 

  잠시 후 상훈이 커다란 드럼통을 가져와 놓았다. 철렁거리는 기름통도 가져왔다. 커다란 드럼통 안에서는 불에 타서 그슬린 나무 장작이나 숯덩이 같은 퀴퀴한 냄새가 났다. 상훈은 드럼통 위에 석쇠를 올리고 장작에 기름을 붓고 불을 피울 준비를 했다.

 

  그가 침실의 책상 서랍을 뒤지며 중얼거렸다.

 

  “성냥이 어디 있더라.......”

 

  “이걸 써요.”

 

  봄이가 침대 밑에 놓여있던 가방에서 은색 지포라이터를 꺼냈다. 상훈은 날아오는 라이터를 왼손으로 잡아들었다.

 

  “이런 것도 가지고 있었어?”

 

  “불이나 피우시죠.”

 

 
작가의 말
 

 감사합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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