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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마지막 봄
작가 :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9.10.4

(정통소설/피폐)

전 세계의 질서가 무너져내린 이후 매서운 겨울이 찾아왔다.
남아있는 생존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흩어졌고, 얼어붙은 세상에 남은 마지막 불씨는 꺼져버렸다.

이 버려진 도시에 홀로 남겨진 소녀는 이제 잃어버린 가족들을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나야만 한다.

 
3화
작성일 : 19-10-06 19:02     조회 : 21     추천 : 0     분량 : 3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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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시간을 너무 지체해 버렸다고 생각한 소녀의 발걸음이 눈보라와 함께 점점 빨라졌다. 얼음 건물 너머의 지평선을 보니 벌써 해가 지려고 했다. 소녀는 서서히 생기는 자기 자신의 어둑어둑한 그림자를 밟으며 한 걸음씩 쌓인 눈밭을 헤쳐 가로질렀다. 오늘 밤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을 만큼의 기름을 얻었다고 생각하니(사실 갈취나 다름없었지만-) 모든 긴장이 풀리고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루 일과를 성공적으로 끝마친 피곤한 소녀가 이윽고 자신의 보잘것없는 허름한 집(엄밀히 말해서 ‘자신의’집은 아니었지만-)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소녀는 늘 하던 것처럼 가방을 풀고 열려 있는 문고리를 잡아당기려 하는 순간, 순간적으로 이상한 직감이 소녀의 뇌리를 스쳤다.

 

  ‘내가 문을 열어놓고 왔었나?’

 

  의아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잠시, 소녀는 정신이 팔려 주위를 경계하지 못했다. 갑자기 등 뒤에서 억센 팔뚝이 소녀의 작은 목을 거칠게 휘감았다. 소녀의 작은 체구는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하고 꼼짝없이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당황한 소녀는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반사적으로 소녀는 안간힘을 다해 목을 단단히 옥쥔 팔뚝을 풀려고 했다. 하지만 팔뚝은 생쥐의 모가지를 꽉 깨문 독사처럼 조금의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뒤통수 뒤에서 ‘내가 잡았어!’ 라고 소리치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녀는 빠져나가려고 온갖 발버둥을 쳤지만 소용없었다. 숨이 점점 막혀오는 것을 느꼈다. 머릿속이 하얘지고 눈앞이 흐려졌다. 조금의 신음 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소녀는 마지막 발악으로 재킷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은 연필을 힘겹게 꺼내 목에 휘감긴 팔뚝의 손목에 힘껏 꽂아넣었다.

 

  찢어지는 듯한 남성의 비명소리와 함께 목을 단단히 옥쥔 구속이 풀렸다. 그와 동시에 공중에 떠 있던 소녀의 몸이 땅으로 곤두박질치듯이 내팽겨졌다. 꽉 막혔던 호흡기관이 해방되자 소녀의 목은 미친 듯이 산소를 갈구했다. 자신이 지금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도 잊어버릴 만큼의 고통에 소녀는 그저 주저앉아 목을 움켜잡고 고통스럽게 기침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남자의 비명소리와 소녀의 기침소리를 듣고 방금 전까지만 해도 소녀의 집이었던 건물에서 네 다섯 명 정도의 패거리들이 몰려나왔다. 저마다 소방용 도끼부터 시작해서 쇠 파이프나 야구 방망이 같은 각기 다른 무기들을 손에 쥐고 있었다. 오늘 오후에 봤던 그 사냥꾼 패거리들이 틀림없었다.

 

  소녀는 더 이상 가만히 주저앉아 있을 수 없었다. 무거운 무릎을 힘겹게 짚고 일어서서 최대한 빨리 뒤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예전까지만 해도 아름답다고 느껴졌던 발이 푹푹 빠지는 하얀 눈밭은 소녀의 살아남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에 걸림돌이 될 뿐이었다.

 

  “건방진 꼬맹이가, 죽여버리겠어!”

 

  연필을 뽑아 던져버리고 손목에 흐르는 피를 움켜잡고 있던 남자가 짐승처럼 소리쳤다.

 

  소녀는 눈 덮인 골목 한가운데서 사냥꾼들과 추격전을 벌였다. 발이 푹푹 빠지는 눈밭은 물론 미끄러운 빙판길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소녀는 정신줄을 반쯤 놓은 상태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무작정 도망쳤다. 호흡이 점점 가빠졌다. 등 뒤에서는 계속 뭐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소녀는 넘어지고 긁히면서도 절대 멈추지 않았다. 뒤따라오는 사냥꾼들에게 붙잡힌다면 어떻게 될까? 어떻게 되던간에 결과는 뻔했다.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신이 소녀의 필사적인 몸부림을 비웃기라도 하듯 사냥꾼들과의 거리는 점차 좁혀들었다. 이 가엾은 소녀가 아무리 필사적으로 도망쳐봤자 성인 남성들과의 체력적 차이는 너무나도 불공평했으니까. 소녀가 이 죽음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곧 소녀의 체력은 한계였다. 더 이상 달릴 수 없었다. 그렇다고 너덧 명의 성인 남성들과 싸워 이길 자신도 없었다. 다리에 힘이 풀린 소녀는 그만 빙판길에 미끄러져 넘어지고 말았다. 차고 있던 권총이 눈앞에 떨어졌다.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뒤를 돌아보니 놈들 중 하나가 쇠 파이프로 소녀의 머리통을 부숴버릴 기세로 달려들고 있었다. 소녀는 반사적으로 떨어진 권총으로 팔을 뻗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구멍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화약 폭발하는 소리가 전 골목에 울려 퍼지고 얼음 건물에 부딪혀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 천둥 같은 굉음이 한동안 소녀의 귓전을 몇 번이고 맴돌았다. 소녀는 팔이 얼얼해지는 것을 느꼈다. 바짝 뒤따라오던 사냥꾼 패거리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일제히 그 자리에서 멈췄다.

 

  소녀가 상황을 파악하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방금 전까지 무서운 기세로 달려들던 사냥꾼 한 명이 배를 움켜잡으며 쇠 파이프를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소녀의 앞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치명적인 굉음이 울려 퍼진 후 추격자들은 일순간 조용해졌다. 소녀의 머릿속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소녀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부정했다.

 

  손목을 다친 사냥꾼이 뒤늦게 쫓아와서는 이 광경을 보고 굳어 있다가 동료들에게 소리쳤다.

 

  “뭣들 하고 있어? 붙잡아!”

 

  하지만 이 말에 따르는 사냥꾼들은 아무도 없었다. 제일 앞에 있던 사냥꾼 하나가 뒤로 슬금슬금 물러나다가 뒤로 돌아서 냅다 도망쳤다. 그러더니 그 뒤에 있던 놈, 그 뒤에서 보고 있던 놈들까지 모두 슬그머니 뒷걸음질을 치다 결국엔 모두 달아나 버렸다.

 

  손목을 다친 사냥꾼은 상처를 움켜쥐고 소녀의 얼굴을 끝까지 째려보다가 땅바닥에 침을 뱉고는 동료들을 따라 사라졌다.

 

  소녀의 머릿속에서 형용할 수 없는 온갖 감정과 생각이 거미줄처럼 얽혀 지나갔다. 눈동자가 흔들리고 팔과 다리가 계속해서 바들바들 떨렸다. 놈들은 이미 사라졌지만 손목에 건 방아쇠는 절대로 놓지 않았다.

 

  소녀는 멍하니 그 자리에 서서 아직 숨이 붙어있는 사냥꾼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몇 분 동안이나 숨이 막혀 갈라지는 신음소리를 내며 복부를 움켜잡고 있다가, 이내 깊은 눈밭 속으로 푹 고꾸라졌다. 남자의 호흡이 가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소녀는 그를 내려다보다가 그가 소녀를 올려다보는 눈과 마주쳤다.

 

  그 남자의 눈빛은 방금 전까지 소녀를 죽이려 달려들었던 살의에 가득 찬 눈빛도, 자신보다 한참 약한 소녀에게 당했다는 분함과 수치심에 물든 눈빛도, 살려달라고 애원하듯이 자비를 바라는 구원의 눈빛도 아니었다. 그의 눈은 마치 도살장에 끌려온 개처럼 그저 죽는 때만을 기다리며 초점 없이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이따금씩 꿈틀대던 남자의 미동이 점점 옅어졌다. 아까까지만 해도 두려웠던 남자의 거대한 체구가 마치 주인에게 버려져 길바닥에서 얼어 죽은 유기견의 시체처럼 점점 거세지는 눈보라에 묻혀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남자는 사라져가는 그 순간까지 핏기 없는 얼굴로 허공만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소녀의 정신이 점차 돌아왔다. 소녀는 자신이 저지른 일을 돌이켜 생각해보았다.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살인’의 느낌이었다. 소녀의 동공이 떨렸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손등에는 핏방울이 튀어 있었다. 역겨운 것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소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전부 게워내고는 권총을 단단히 챙기고 무언가로부터 쫓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이렇게 심하게 잘못되었을까? 소녀는 이제 갈 곳도, 잠잘 곳도, 쉴 곳도, 칼과 가방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먹을 것도 없었다. 미치도록 목이 마르고 피곤했다. 몇 백 미터를 달린 후에야 지친 소녀는 황량함밖에 없는 잔인하도록 하얀 눈밭 위에 멈추어 섰다.

 

  소녀는 절망해서 그대로 주저앉았다. 이제 소녀에게는 아무런 꿈도 희망도 남아 있지 않았다. 살을 찢고 들어오는 칼바람 부는 추위로부터 버틸 곳도, 이 춥고 배고픈 소녀가 먹을 통조림 단 한 개조차 이젠 이 가엾은 소녀에게는 남아 있지 않았다.

 

 
작가의 말
 

 감사합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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