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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마지막 봄
작가 :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9.10.4

(정통소설/피폐)

전 세계의 질서가 무너져내린 이후 매서운 겨울이 찾아왔다.
남아있는 생존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흩어졌고, 얼어붙은 세상에 남은 마지막 불씨는 꺼져버렸다.

이 버려진 도시에 홀로 남겨진 소녀는 이제 잃어버린 가족들을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나야만 한다.

 
11화
작성일 : 19-10-17 22:42     조회 : 23     추천 : 0     분량 : 3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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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작 그 이유뿐인가요?”

 

  봄이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금 이 세상에서 인간의 정이란 것은 완전히 식어버린 것이 아니었나?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사냥꾼들과, 그녀의 몸으로 욕망을 채우려고 했던 노숙자들, 자꾸만 자신에게 호의를 베푸는 사람들이 서로 얽혀 지나가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아직 세상은 이 얼어붙은 겉모습과는 다르게 사람들이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세상이라는 것인가?

 

  봄이는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 이 남자는 아무런 대가도 없이, 오직 인간을 구성하는 본질이 되는 인간성에서부터 순수하게 우러나온 선의만을 베풀고 있는 것일까? 정말로 아무런 대가도 없이? 그럴 리가 없었다. 무언가 필히 대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봄이는 절대로 경계를 늦추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다.

 

  “.........시시하네요.”

 

  봄이는 ‘거짓말하지 마요. 다들 도대체 나한테 원하는 게 뭐예요?’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끝내 내뱉지는 못했다. 머릿속에서 목적지 없는 불빛이 하염없이 맴도는 것 같았다. 불빛을 손을 뻗어 잡으려 하면 더 멀리 도망쳤고, 가만히 놔두자니 계속해서 머리 주변을 맴돌며 더욱 혼란스럽게 했다.

 

  “기껏 다시 만났는데 시시하다니 섭섭하네.”

 

  “구해달라고 한 적 없어요.”

 

  봄이가 퉁명스럽게 쏘아붙이고는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봄이는 자신이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이 남자가 그렇게까지 해서 끝내 자신을 도와준 이유를 설명해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남자는 봄이의 행동에 딱히 아랑곳하지 않았다. 결국 먼저 침묵을 깬 것은 봄이였다.

 

  “.........이것 좀 풀어줘요.”

 

  “구해달라고 한 적 없다면서?”

 

  “아, 씨발! 장난칠 기분 아니에요.”

 

  “보기 좋은데. 자업자득이지 뭐.”

 

  화가 나서 얼굴이 붉어진 봄이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묶여있는 팔 대신 어깨로 선술집의 방수포를 밀어젖히고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결국 저 남자도 뜻대로 잘 풀리지 않는 봄이를 보며 비웃음거리로 삼을 뿐인, 그저 얄미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힘으로 옮길 수도 없는 기름통을 줘 놓고 지켜보며 즐거워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상체가 꽁꽁 묶인 봄이는 늘어뜨려진 밧줄끈을 질질 끌며 성큼성큼 나아갔다. 사람들은 끌려간 봄이가 석방되었다는 걸 눈치챘을 테지만 다행히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아까부터 자꾸만 뒤따라오고 있는 그 남자를 제외하고는.

 

  “따라오지 말아요!”

 

  “나도 막 나가려던 참이야.”

 

  “흥, 그러시겠죠.”

 

  어깨를 으쓱하며 빈정거리는 남자에게 짜증이 솟구친 봄이는 아까보다 더 빨리 걸었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 그녀의 머릿속에서 잊혀져버린 존재가 떠올랐다.

 

  소년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언제부터였을까?

 

 

  * * *

 

 

  “아저씨, 못 보셨어요?”

 

  “뭘 말이야?”

 

  남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키는 이만하고, 하늘색 잠바를 입고........ 좀 멍청해 보이는 남자애 말이에요. 보셨을 것 아니에요?”

 

  봄이는 팔이 묶인 채로 소년의 생김새를 묘사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남자는 잠시 고민하는 척하다 대답했다.

 

  “무슨 남자애? 내가 널 처음 봤을 때부터 넌 쭉 혼자였는데.”

 

  정말이지 도움이 하나도 되지 않는 남자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분명히 옆에 있었는데. 봄이는 또다시 그가 자신을 놀리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됐어요!”

 

  봄이는 아까 머물렀던 선술집부터 샅샅이 뒤지며 키 작은 소년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그러나 소년은 어디에도 없었다. 봄이는 암시장을 나와 지하철역, 그 주변의 근방까지 모두 살펴보았지만 소년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다급해진 봄이는 무작정 달렸다. 그날 오후는 어제보다 햇살이 더욱 강했기 때문에 조금만 뛰어도 발바닥에 땀이 나고 숨이 금방 차올랐다. 몇 백 미터에 달하는 광활한 눈덮힌 벌판을 가로지르고 나서야 무언가에 깊게 빠져든 것처럼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는 소년을 찾을 수가 있었다.

 

  소년은 동공조차 움직이지 않는 채로 하늘을 가로질러 길게 뻗은 전깃줄에 앉아 있는 검은 새 한 무리를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봄이가 다가갔지만 소년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여기서 뭐 해? 한참 찾았잖아. 집으로 돌아가자.”

 

  “봄이 누나.”

 

  전깃줄에 나란히 앉아 있던 검은 새들 중 한 마리가 크게 날갯짓을 하며 푸드덕거렸다. 보기에는 까마귀처럼 보였는데 특유의 울음소리를 내지 않아서 이 새들의 종을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봄이가 소년의 팔을 잡아끌려던 순간, 검은 새들이 자신을 초점 없는 눈으로 일제히 쳐다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침 주변에는 인적이 없었다. 치명적인 정적만이 봄이와 소년과 검은 새들을 한 장의 그림처럼 이어주고 있을 뿐이었다. 마치 이 세상에 그들밖에 남지 않은 것 같았다. 소년은 여전히 뒤통수를 쳐들고 허공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봄이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갑자기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검은 새들은....... 자유로운 걸까? 우리랑은 다르게 편안하게 하늘을 날아서, 저 검붉은 하늘을 가로질러 어디든지 갈 수 있는 걸까? 만약 그렇다면 저 새들은 무엇을 위해서 나는 걸까?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 아니면 그저 살기 위해서?”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내 말 안 들려? 어서 돌아가자니까.”

 

  봄이가 다그치자 소년이 딱딱하게 굳은 목을 돌려 봄이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봄이는 순간적으로 그 소년의 엄청난 위압감에 자신도 모르게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돌아가자고? 어디로?”

 

  “무슨 소리야? 당연히 너희 집.........”

 

  소년은 눈동자를 크게 뜨고 봄이를 똑바로 쳐다보고만 있었다. 봄이는 소년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너무 늦어버렸어.”

 

  “아까부터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더 이상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어.”

 

  봄이는 화를 내고 싶었지만 목젖이 떨려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봄이는 소년의 등 뒤에서부터 커다란 운명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것을 보았다. 소년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 소년의 동공은 점점 커지고, 초점은 점차 사라졌다. 소년의 입이 마치 웃는 것처럼 귀 밑까지 찢어졌다. 그 모습을 본 봄이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머릿속에서부터 벽이 무너져 내리듯 눈앞을 짓누르는 공포감에 봄이의 다리가 후들거리며 조금씩 뒷걸음질쳤다. 등줄기에서는 식은땀조차 흘러내렸다. 봄이의 오른손이 반사적으로 오른쪽 치맛폭으로 향했다.

 

  하지만 봄이의 오른쪽 치맛폭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봄이는 그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고개를 들어 소년을 쳐다보자 소년의 오른손에 무엇인가 반짝거리는 물건이 들려 있었다.

 

  “살려고 발버둥쳐 봐야 전부 부질없는 짓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검은 새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더 높이 날 거야. 태양을 향해서 더 높이, 점점 더 높이 오르다가, 결국에는 질식할 거야. 그리고 떨어져 죽을 거야. 땅바닥으로, 끝없이.”

 

  “그만해!”

 

  봄이의 호흡이 점점 가빠졌다. 눈동자가 없는 소년의 얼굴이 봄이를 향해 웃었다. 소년이 손에 들고 있던 반짝거리는 물체가 봄이를 겨눴다. 봄이는 마지막 남아 있는 온 힘을 다해 부르짖었다. 그러나 그 소리는 봄이의 간절한 외침보다 더욱 큰 소리에 묻혀버렸다.

 

  그 소리는 봄이도 들어본 적이 있는 소리였다. 이윽고 어떤 향기가 밀려왔다. 그 향기 역시 봄이도 맡아본 적이 있는 향기였다.

 

  눈부신 섬광이 봄이의 눈앞을 가렸다. 쾌쾌한 화약 냄새가 봄이의 코를 찔렀다. 그렇게 느낀 직후, 봄이는 심장에 엄청난 통증이 전해지는 것을 느꼈다. 봄이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다리에서 힘이 풀렸다.

 

  “이젠 돌이킬 수 없어.”

 

  누군가가 속삭이는 목소리와 함께 봄이는 그대로 눈밭 위에 쓰러졌다.

 

 
작가의 말
 

 감사합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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