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하이라이트 장면을 다시 보기 하듯 어젯밤 일이 눈앞에 펼쳐졌다. 사건은 소주인지 물인지 구분을 하지 못할 때부터 시작되었다. 분명 난 아직 정신을 잡고 있는 상태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물을 먹겠다고는 하고 내가 집어 든 것은 소주병이었다. 병나발을 부는 나를 민유하가 경악에 찬 표정을 보는 것까지 생생히 기억이 났다. 그리고 머리까지 잠식한 술기운에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눈을 감았다. 그래, 차라리 거기서 그대로 잠이라도 계속 잤으면 좋았을 텐데 머리카락을 간지럽히는 찬 공기에 난 다시 눈을 떴었다.
***
다리를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옆 풍경들은 느리게 바뀌었다. 눈앞에 전봇대가 있었는데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면 편의점이 보였다. 거 참 신기하네, 마법사가 된 것도 아닌데 자꾸 움직이네. 계속해서 바뀌는 풍경에 눈을 더 빠르게 감았다가 뜨며 놀이공원에 온 것처럼 들떠있었다.
“어 또 바뀌었다. 또!”
“깼냐?”
“어 이것 봐요, 계속 바뀌….”
두 다리가 바닥에 맞닿는 순간 더는 풍경이 바뀌지 않았다. 대신 조금 전까지 보고 있던 앙상한 나뭇가지가 아니라 동그랗게 뜬 달이 보였다. 넘어지면서 다친 엉덩이를 문지르면서 다시 일어나려고 했으나 다리가 말을 듣지를 않았다. 분명 발바닥에 힘을 주고 있는데, 발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왜 안 일어나지지?”
“가지가지 한다, 진짜”
“나 좀 일으켜줘요”
앞에 보이는 사람에게 손을 내밀며 도움을 요청하자 잠시 뒤에 손바닥에 체온이 느껴졌다. 내가 발바닥에 힘을 주었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힘에 드디어 두 다리를 바닥에 붙이고 서 있을 수 있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다리가 제자리를 찾았어요.”
“너 원래 술 마시면 개 되냐?”
“아니요, 저 그런 적 일도 없는데요!”
자꾸만 다시 바닥과 맞닿으려는 몸뚱이에 실례 좀 하겠습니다, 라고 말을 하며 남자의 팔에 체중을 실었다.
“버리고 가고 싶다, 얼어 죽지는 않을 것 같은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그의 목소리에 갑자기 눈물이 차올랐다. 버리고 간다는 말만 머릿속에 계속 재생되었다.
“저 버리지 마요, 저 혼자서 걸을게요. 엄마도 버렸는데 그쪽도 저 버리면 안 되요”
“감정변화 한번 극적이네”
“왜 맨날 나만 버려요, 나만!”
내가 사랑받으려고 얼마나 노력을 하는데, 다들 나만 싫어하고. 술을 일정량을 넘게 취사하였을 때 나는 지나치게 감정에 솔직해졌다. 집에서 나오기 전 나를 보던 엄마의 그 무미건조한 눈빛이 생각나면서 눈에서 눈물이 퐁퐁 쏟아져 나왔다.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나는 동네가 떠나가도록 소리를 질렀다. 이마를 짚는 그의 행동이 보였으나 내 감정이 우선이었다.
“어, 그래, 안 버릴 테니까 그 입 좀 다 물자”
“나는 어, 버”
또다시 소리를 지르려는 내 입을 민유하는 커다란 손바닥으로 막았다. 어찌나 손에 힘을 세게 주었던지 하마터면 앞니가 다 날아갈 뻔했다. 손 놔주면 조용해야 한다, 약간 협박이 섞인 그의 말에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더니 입에 가해진 압박이 풀어졌다. 내 앞니, 무사하니? 손으로 앞니가 잘 붙어있는 걸 확인하자 거짓말처럼 퐁퐁 쏟아졌던 눈물이 다시 났다. 내 앞니, 가짜 이로 앞으로의 생을 계속 살뻔했어…. 혹여나 민유하가 또 손바닥으로 입을 막아올까 봐 두 손으로 입을 보호하듯이 가리며 입을 뗐다.
“징짜 안 버리고 갈거져?”
“그러고 싶은 마음이 목까지 올라오는데 안 버릴게”
“앗싸!”
“좋냐?”
“그럼여! 너는 가족한테 외면받은 적이 없어서 지금 내가 지금 얼마나 기분이가 좋은지 모를 거야!”
"반말을 썼다 안 썼다, 아주에 마음대로 하는구나..."
포기한 어투로 내게 제 허리를 잡으라고 말은 한 민유하는 내 후드 모자를 잡아채며 마치 짐짝을 끌고 가듯이 나를 부축했다.
바닥으로 넘어져서 또 엉덩이에 멍이 드는 일을 막아주는 건 고마웠지만, 어째 짐짝 취급을 하는 행동에 싹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너…. 일부러 술 취한 척하는 건 아니지?”
“참, 나 날 뭐로 보고! 나 취하지도 않았거든.”
“그래그래, 그럼 안 취했으니까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되냐?”
“뭔데요? 다 물어봐다!”
금방 말을 쏟아낼 줄 알았던 민유하는 다섯 걸음도 넘게 발을 뗄 때까지 아무 말도 없었다. 물어볼 거 있다더니 왜 말을 안 해? 후드 모자를 잡아당기는 그의 힘에 목이 조여와서 켁켁거리며 목 부분에 힘을 가져다 댔다. 뭐 물어본다는 게 나 죽여도 되냐는 질문이었어?
“너 가족이랑…. 왜 사이가 안 좋냐…?”
“….”
“그 뭘 좀 들은게...”
“….”
“아니다, 그냥 못 들은 거로 해.”
사연 없는 가족이 어디있겠어...한숨처럼 내뱉는 그의 말이 이상하게 귀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괜히 어리광을 부리는 것 같아서 입 밖으로 내지 않았던 말인데, 알코올의 힘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모자를 잡아챈 그의 손길이 느슨해졌기 때문일까? 공기 중에 퍼지는 내 숨결을 보며 말을 뱉었다.
“사이가 안 좋은 건 아니에요, 애초에 안 좋을 만큼 그런 애정이 없거든요.”
“….”
“아빠는 저 많이 좋아해 줬는데 엄마랑 동생은 저 싫어하거든요. 지금도 제가 어디 있는지 관심도 없을 걸요, 저번에 여행 갔다고 했잖아요. 근데 저는 안 간 게 아니라 못 간 거예요. 같이 산다고 다 가족은 아닌가 봐요. 저는 그 틈에 끼고 싶은데 아무도 받아주지를 않아요. 아마 제가 길에서 동사했다고 하면 제일 기뻐할 사람이 우리 가족일걸요?”
웃기죠? 입꼬리를 쭉 올리며 말을 하는 내게 그는 웃지마, 라고 말을 하며 멈췄던 발을 뗐다. 모자를 잡고 있던 그의 손은 어느새 어깨 위에 살포시 내려앉아 있었다.
잠시 정신이 돌아왔던 건 그때 잠시뿐이었다.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절대 집에는 안 간다면서 바닥에 드러누울 기세로 떼를 쓰는 나를 보며 민유하는 언제 내게 부드러웠냐는 듯이 모자를 잡아서 일으키며 알았으니까 엘리베이터 무너지기 전에 가만히 좀 있자, 하며 이를 꽉 깨물었다.
나를 소파에 던져주놓고는 다시 나가려는 민유하의 옷을 꼭 움켜쥐며 가지 말라고 소리를 쳤다. 네 집인데 왜 나가냐며!! 멀어지려는 그를 패딩을 벗겨낼 기세로 꽉 잡아챘다.
“그럼 번호 주고 가요! 여기 번호 찍어요!! 내일 아침에도 없으면 계속 전화할 거야!!”
“내가 진짜 그때 널 보지만 않았어도…. 후”
징글징글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던 그는 황급히 내가 내민 핸드폰에 제 번호를 입력하고는 내가 그의 번호를 저장하는 사이 빠르게 집을 나갔다.
“내가 전화 걸었으니까 내 번호 꼭 저장해여!”
***
어젯밤 일이 다 떠오르는 순간, 그냥 접시에 코를 박고 죽을까 하고 생각했다. 와, 나 주사는 그냥 우는 건 줄 알았는데…. 이건 뭐 너무 다이나믹해서 말이 안 나왔다.
[자알쌩긴울옵빠♥]
답장없는 거 보니까 기억났나봐?ㅋㅋㅋ
당분간 바깥 외출은 삼가야겠다. 휴대폰 전원 버튼을 누르며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민망함과 미안함, 수치심에 허공에 발차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적어도 일주일은 집 밖으로 외출을 하지 않으려고 생각했는데, 감독님으로부터 온 문자에 삼 일 만에 결국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나왔다.
윤 감독님은 선수 시절 내게 엄마와 같은 존재였다. 선수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하던 나를 몰래 불러서 초코바를 쥐여주었던 건 감독님이었다. 또래 애들보다 늦은 나이인 15살에 양궁을 시작했다. 빠르면 유치원생 때부터 양궁을 가까이하던 애들에 비하면 턱없이 느린 시작이었으나 재능과 운이 따라서 양궁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나를 후원해주겠다는 기업들이 생겨났다. 각종 대회에서 금메달을 휩쓸며 사이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였고, 윤 감독님을 만나게 되면서 국가대표라는 꿈도 꾸게 되었다.
감독님의 지도로 전문적인 훈련과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결국 국가대표 선수로 까지 발탁되는 영광을 얻을 수 있었다. 힘들었던 시간을 함께했던 감독님은 내게 선수와 감독, 그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16살에 아버지를 잃었던 날, 포기하려던 양궁을 다시 손에 쥐여주었다.
엄마가 나를 사랑했다면 이렇게 따듯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할 만큼 포근하게 안아주었던 사람이 바로 윤 감독님이었다.
은퇴를 선언하고 외부와 연락을 끊으면서 윤 감독님과의 연락도 끊었다. 그녀와 계속 연락을 하고 지낸다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행복했던 기억이 떠올라서 힘들게 분명했기 때문에 엄마보다 더 엄마 같은 그녀와도 연락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일방적으로 감독님과의 관계를 끊었지만, 그녀는 내 사정을 이해해주고 기다려주었다. 집에 와서 나를 채근한다거나 화를 내는 일도 없었다. 그저 간간이 밥은 잘 먹고 지내냐? 와 같은 안부를 문자로 보내는 것으로 나와의 관계를 완전히 끊지 않기 위해서 노력을 했다. 답장은 한 번도 보내지 못했지만, 선수 때 쓰던 번호를 바꾸지 못하는 건 다 그 문자 때문이었다. 작은 빛줄기와 같은 그 따스함을 잃고 싶지않아서 같은 번호를 고집하였다.
현관을 나와서 혹시나 민유하를 마주할까 봐 사방을 경계하는 것을 잊지 않으며 계단을 내려갔다. 해가 뜬 지금은 그가 활동하는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경계를 늦추지는 않았다. 엘리베이터에를 탔다가 그를 마주치게 된다면 피할 곳도 없었기에 계단을 이용하는 치밀한 계산까지 했다. 집이 6층이었기에 망정이지 20층이었다면 계단을 다 내려가기도 전에 호흡곤란으로 사망하고 말았을 것이다. 가팔라진 호흡을 가다듬으며 조심히 아파트를 벗어났다.
윤 감독님을 마주했을 때 어떤 인사를 건네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 그동안 잘 지냈는지 안부를 여쭤야 할지, 죄송하다며 사과를 해야할지... 옷가게의 유리창에 모습을 비춰보며 바람에 흩날린 머리를 정리하였다.
[감독님]
오랜만에 얼굴 좀 볼까? 시간 되면 나올래? 유연이 네가 좋아하던 카페에서 기다릴게.
기다린다는 말만 하지 않았어도 가지 않았을 텐데. 내 의사를 떠나 이미 나를 기다리고 있을 감독님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이미 4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를 기다려줬는데 더 기다리게 할 수는 없었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그리운 얼굴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고민한 게 무색해지리만큼 자연스러운 미소가 생겨났다.
유연아-다정하게 내 이름을 부르며 손짓을 하는 감독님에 손을 꼭 말아쥐고는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게 얼마 만이지, 그때가 올림픽 때였으니까 거의 4년 만이네 잘 지냈어? 어째 그때보다 더 예뻐졌다? 남자들한테 인기가 많겠어! 우리 유연이”
오랜만에 봤음에도 어제 본 것처럼 나를 대해주는 감독님에 결국 눈물이 떨어졌다. 급하게 주먹 쥔 손으로 눈물을 닦아냈으나 한번 나오기 시작한 눈물은 쉽게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때는 소도 때려잡을 만큼 씩씩하더니 아주 울보가 다 됐네”
“….감독님"
"감독님 무슨, 그냥 이모라고 불러. 이제는 감독님도 아닌데"
“…. 죄..죄송해요”
꼭 죄송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내가 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직후 감독님도 일을 그만두셨다는 것을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야 알았다. 나 때문에 잘나가던 감독의 자리에서까지 내려온 감독님에 쭉 죄책감에 시달렸다. 선수에 대한 관리 소홀로 그녀가 감독직을 박탈당했다고 생각했다. 누구도 윤 감독님이 감독직을 박탈당한게 나 때문이라고 직접적으로 말은 하지않았으나 내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없었다. 그 당시에 내가 왜 상처를 입었는지에 대해서는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으니 감독님이 그 책임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죄송하면, 음료는 네가 사라? 요새 지갑사정이 얄팍하거든."
휴지를 내게 건네며 젖은 손을 잡아주는 감독님은 예전과 같이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