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보는 번호부터 시작해서 익숙한 번호까지 보이자 사태의 심각성을 느꼈다. 빠르게 문자 함으로 들어가 가장 최근에 온 문자부터 확인했다. 발신인은 아름이었다.
“일단은 만나서 얘기하자”
핸드폰을 내려놨다. 머릿속 깊은 곳에서부터 서서히 통증이 밀려왔다. 다시 핸드폰을 들어 이전의 문자들을 확인해보자 “어디야?”, “무슨일이야?”등의 문자들뿐이었다.
‘자고 나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러는 걸까?’
몇 시에 벌어진 일인지 확인하기 위해 착신 시간을 보자 이상함을 느꼈다. 「PM 5시 27분」, 하루의 수업이 다 끝나고 집에 갈 시간이었다.
‘어제 왔던 거면 못 볼 리가 없는데..’
착신 시간 옆에 있는 날짜가 눈에 들어오자 머릿속이 멍해졌다. 「2XXX년 3월 29일」, 개학한지 무려 24일이나 지난 것이다.
“이게 무슨...”
혼란스러웠지만 기억을 더듬으며 학교를 간 횟수를 세봤다.
‘1, 2, 3, 4, 5... 5번, 그럼 오늘이 주말.. 일린 없고.. 목요일이네.. 24일 동안 주말을 제외하면 18일... 그렇다는 건 18일 동안 잤다는.. 건가?’
이렇게 생각하니 그건 또 말이 안 됐다. 그랬더라면 아름이가 만날 때 걱정돼서 물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여태까지의 일상은 내가 없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너무 자연스러웠다. 혹시나 다른 일이 아닐까 싶어 여러 가지 가설을 세워 그럴싸한 것들에 ‘혹시 이건가?’했지만 뒷받침해줄 근거가 부족했기에 일단은 아름이를 만나보기로 했다.
현재 시간「AM 7시 58분」, 시간표가 기억나지 않아 가방을 둔 채 교복만을 입고 거실로 향했다. 지나가면서 주방을 힐긋 쳐다보니 평소와 다르게 아무것도 없다.
나도 모르는 무슨 일 때문에 일어난 나비 효과인가 했지만 이제 곧 아름이와 만나던 시간이 다가오기에 깊게 신경 쓸 여지없이 집을 나선 뒤 횡단보도를 향해 달려갔다. 이윽고 눈에 띄자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른 뒤 주변을 살폈다.
저 멀리 희미하게 아름이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점점 가까워지는 거리를 도와주려는 듯 횡단보도의 신호가 바뀌자 달려가 아름이의 이름을 부르며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나를 반기는 건 아름이가 아닌 아름이 등 뒤에 서있는 검은 무언가였다.
내가 그의 존재를 알아차린 것을 그도 눈치챘는지 도로를 가로지르며 나에게 다가왔다.
“벌써 눈치채면 재미없는데.. 그나저나 용케도 날 봤네?”
“아름이 뒤에 그렇게 있으면 보기 싫어도 눈에 들어오는데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흠.. 그런가?”
“도대체 누군데 이러는 거예요?”
그는 내 물음에 손으로 턱을 쓰다듬는 시늉을 보였다. 얼핏 보면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나에게는 그의 표정조차 보이지 않았기에 그가 어떤 의미로 이러한 행동을 취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한참을 턱을 쓰다듬다가 그가 말했다.
“그래도 오늘은 좋은 의미로, 아니 나쁜 건가? 아무튼 나에게 고마워하지?”
“도대체 왜요?”
“보면 알겠지”그러고는 그가 손을 튕기자 주변이 바뀌었다. 그가 보여준 장소는 다름 아닌 병원이었다.
“어때? 고맙지?”
“도대체 뭐가…”
그의 물음에 나는 말을 끝까지 할 수가 없었다. 아니, 말이 나오질 않았다. 그의 등 뒤에 있는, 피투성이로 누워있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온몸이 떨려오기 시작하자 얼핏 그가 웃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조심스레 다가가 만지려고 하자 이번에도 그가 손을 한번 튕기더니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학습능력이 없는 건 아니지?”
그런 소리를 하며 그가 나를 말리자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