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라고 하면 몇 명이나..?”
하지만 나의 걱정과는 다르게 그녀는 그 정보를 아낌없이 제공했다.
“어... 1, 3, 4, 6, 7이니..”
말끝을 흐리며 그녀는 열심히 손가락을 폈다, 쥐었다를 반복하지만 셈을 못하는것처럼 보였다. 쉽사리 말을 꺼내지못하는 그녀가 답답해서 결국 내가 답을 불러줬다.
“5잖아..”
그녀가 말하려던 답을 내가 대신 말해주자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 5야! 어라? 이것도 5네!”
그렇게 대답하고는 헤헤거리며 웃는 그녀가 못미덥스럽지만 어찌됐건 간에 나를 닮은 사람이 그녀를 제외한 5명이나 더 있다는 소리다. 과연,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걸리는 게 있다.
‘왜 숫자를 셀 때 2를 뺀 걸까?’
“저기, 숫자셀 때 ‘2’는 왜…”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2’의 언급을 하자 그녀의 표정이 바뀌어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여태까지 보여줬던 밝은 표정과는 상반된 일그러진 표정은 말을 하지 않아도 그 뜻을 충분히 전달했다. 더불어 자유분방하게 움직이던 입도 꾹 다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왜…”
아무리 말을 걸어도 대답하기는커녕 등을 돌린 채 그녀는 대놓고 나를 피했다. 하지만 나도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기에 끈질기게 그녀에게 매달렸고, 그 결과 계속해서 물어보는 나의 질문 공세에 지쳤는지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내뱉었다.
“...걔는 싫어”
그렇게 짧게 말을 마치고는 불안하단 듯이 가만히 있질 못하고 주변을 왔다 갔다하며 정신 사납게 움직였다. 그런 그녀의 행동에 나도 모르게 자연스레 말이 튀어나왔다.
“왜?”
그 물음이 그녀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그 자리에 우두 켜니 선 그녀는 먼 산을 바라보듯이 허공을 응시하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대답했다.
“얼굴에 종이를 붙이고 다니는 변태..”
얼굴에 종이라니.. 그게 사실이면 앞은 어떻게 보는 거지?
게다가 변태라고 하자 전에 6이라 적힌 그녀가 누군가를 변태라고 불렀던 것이 생각났다. 장난기가 느껴질 정도로 천진난만한 목소리. 비록 목소리뿐이지만 그건 분명 남성의 목소리였다.
‘그렇다면 2라는 사람이 남성이란 건데..’
생각할수록 첩첩산중이다. 한 명은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는 여자와 또 다른 한 명은 얼굴에 종이를 붙이고 다니는 변태라니.. 쉬운 게 없다.
‘눈앞에 정신 사납게 움직이는 그녀도 감당 안 될 지경인데.. 어떻게 하지?’
막막함에 한시라도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다른 방법이 없을까 싶던 찰나에 갑자기 그녀가 얼굴을 들이밀고는 물어봤다.
“그러고 보면 넌 숫자가 없네.. 아! 맞다. 너 이름이 뭐야?”
그녀의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여태까지 내 이름을 밝힌 적이 없었다. 왜 그런지 생각해보면 대화도 뭔가 일방적으로 몰아붙인 것이 한몫하는 것 같아 괜스레 미안해져 등을 돌린 채 나지막이 대답했다.
“은아야, 고은아”
그러고는 고개만 살짝 돌려 힐끔 쳐다보니 그녀는 살며시 미소를 짓고는 대답했다.
“반가워 은아야. 그럼 우리 이제 친구다!”
이제야 통성명을 나눴는데 밑도 끝도 없이 친구라고 말하는 그녀. 우린 아직 서로에 대해 그 어느 것 하나 알고 있는 게 없었기에 그녀의 대답에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