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보니 기대에 찬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행동이 말보다 먼저 튀어나오는 그녀와 과연 친하게 지낼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계속 쳐다보는 시선이 부담스러워 어쩔 수 없이 수락했다.
“그래.. 우린 오늘부터 친구다. 잘 부탁해 5”
“아싸!”
나와 친구가 된 것이 그리도 좋았는지 소리를 지르는 5를 보니 과연 이게 잘한 선택일까 싶었다. 이러한 고민을 하는 내 걱정도 모르고 속 편히 뛰어다니는 그녀가 과연 내 생각을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한참을 소리 지른 5는 지쳤는지 침대에 드러눕고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말했다.
“참, 나랑 제일 친한 친구가 이 근처에 있으니 소개해줄게”
‘친한 친구..?’
그 말에 불현듯 여태까지 겪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혹시나 그때와 같은 일을 또 겪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몸이 떨렸다. 조심스레 소개해준다는 그 친구가 누군지 물어보려고 하자 나보다 5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일단은 좀 자고…”
“? 잠깐, 그게 무슨…”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5는 벌써 잠들었다. 자다 일어나서 얘기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자는 건지.. 한편으론 어이없을 법한 상황이지만 이미 한번 겪어봤기에 이쯤 되니 무덤덤했다. 자는 5를 보며 ‘왜 저렇게 자는데 다크서클은 왜 사라지질 않을까?’싶었다.
내심 그런 게 신기해서 쳐다볼 무렵, 문쪽에서 희미하게 발소리가 들려왔다. 너무나도 작은 발소리에 처음에는 한 귀로 흘려들었지만, 점점 가까워지자 커져가는 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질수록 잘못 들은 게 아님을 깨달았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5의 손을 붙잡은 채 숨을 죽이고 자세를 낮췄다. 긴장한 탓에 심장도 미친 듯이 펌프질을 하고 있을 무렵 문 앞에서 소리가 멈추더니 누군가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야! 그만 자고 일어나 봐라 좀! 놀자면서 대체 언제까지 퍼질러 잘 거야!”
문을 두드리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소리는 점점 커지더니 이제는 문을 부수는 것처럼 크게 들렸다. 목소리만 들어보면 5가 말했던 나와 비슷한 또 다른 사람인 게 분명했지만, 두드리는 힘으로만 봤을 땐 남자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화가 많이 났는지 신경질적으로 문을 계속 두드리며 소리쳤지만 옆에서 자는 5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는지 입맛을 다시며 몸을 뒤척일 뿐, 일어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문을 두드리던 그녀도 점점 지쳤는지 횟수도 줄어들더니 이제는 포기했는지 탄식하며 말했다.
“그래, 자라 자! 어휴..”
그렇게 한마디하고는 돌아간다는 걸 알려주듯이 발소리도 멀어지더니 이내 사라졌다. 의문의 방문객이 가고 나서야 한숨 돌렸다. 이쯤 되면 여기도 안전하다고 볼 수는 없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기에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지만 옆에서 곤히 자는 5가 마음에 걸렸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그 사이에 정들었는지 아쉬운 마음에 5를 계속 쳐다봤으나, 이상한 타이밍에 관심 없다는 듯이 등을 돌리고 잤다. 비록 5가 잠결에 한 한 행동이지만 살짝 씁쓸했다. 그래도 5가 나를 싫어해서 그런 건 아닐 거라 믿었다.
5가 자는 침대 옆에 살포시 앉아 그녀의 머리를 쓰담자 갑자기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주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렇게 흔들리는 와중에도 5는 일어날 생각을 안 하기에 부축해서 잠시 책상 밑으로 옮긴 후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두 눈을 감았다. 그러자 얼마 뒤 흔들림이 멈추고는 귀가 따갑도록 무슨 소리가 들렸다.
시끄러운 나머지 손가락으로 귀를 막은 채 눈을 떠보니 내 방이었다. 원인모를 소리의 정체는 다름 아닌 휴대폰 벨 소리. 팔을 뻗어 확인해보니 발신자는 아름이었다.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싶어 통화 버튼을 누르자 반가운 건지, 화를 내는 건지 알 수 없는 고음들이 쏟아져 나왔다.
“고은아! 걱정했잖아. 도대체 뭘 하고 있길래 하루 종일 전화도 안 받는 거야! 혹시 무슨 일 있는 거야? 아픈 거는 어때? 괜찮은 거지?”
계속해서 물어보는 질문 공세에 무엇을 먼저 대답해야 할지 난감해졌다.
‘5가 이런 기분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