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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야월취화(.夜月取花)
작가 : 소월혜
작품등록일 : 2020.8.19

호적에 이름은 올라와 있으나, 가문의 성을 물려받지 못한 아이. 그게 바로 나였다. “나는 불로 취하지 못한 꽃이 아니라 달이다. 그 누구도 취하지 못하는 달이 될 거다.” 무가의 장녀로 태어난 연은 혼인을 앞두고 살수의 습격을 받는다. 죽음의 위기 속, 신이한 힘을 발현한 연의 앞으로 한 사내가 나타나는데…. 통일 신라 말, 7명의 도깨비를 만든 여인의 이야기.

 
제1장 야월취화(夜月取花.) - 5화 배반(背反) (2)
작성일 : 20-08-19 02:33     조회 : 57     추천 : 0     분량 : 6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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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나는 내 나름대로 들키지 않게 노력했다! 그러니 제발 여기서 그만두어라, 내 그러면 너를 관아에 넘기지 않으마! 참말이다, 약속하마!”

 

 절규에 가까운 호소가 온 방 안을 헤집고 다닌다.

 

 실소가 터져 나오려는 걸 간신히 막고는 그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제 목숨은 그리 소중하면서 왜 남의 목숨은 그리 쉽게 포기했나?’

 

 “혼인까지 약속한 사람이 실은 구밀복검(입에는 꿀이 있고 배 속에는 칼이 있다는 뜻)이었거늘, 제가 어찌 다시 당신을 믿는단 말입니까?”

 

 기괴할 정도로 자조적인 어투였다.

 

 생기가 돌던 이랑의 낯빛이 점점 희게 질리더니 거무죽죽하게 변해갔다.

 

 그는 마치 연이 이럴 줄 몰랐다는 듯이 경악에 찬 눈으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우습게도 먼저 배신 한 건 그들이었고 연을 이리 만든 것도 그들이었다.

 

  “하지 마!”

 

 팽팽하게 시선이 대립하는 가운데 카랑카랑한 아이의 목소리가 그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두 사람은 반사적으로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랑의 어린 동생이 잠결에 온 모양인지 베개를 들고 있었다.

 

 “누님 그러지 마시오! 우리 형님을 괴롭히지 마시오!”

 

 “이은, 위험하니 저리 가!”

 

 “동생 신경 쓸 겨를이 있나 봅니다!”

 

 누구 탓에 한은 눈도 못 감고 절명했는데! 제 형제는 챙기려 들어? 연은 끓어오르는 분노에 비녀를 든 오른손에 힘을 주었다.

 

 이랑의 눈에 공포가 스미는 게 보였다.

 

 “흐아아악!”

 

 “누님-!”

 

 연은 저를 부르는 아이의 새된 비명에 자꾸 정신이 흐트러지는 걸 느꼈다.

 

 한이? 아냐. 저건 한이 아니었다.

 

 내가 한이랑 겹쳐 보고 있는 것뿐이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이랑을 죽이면 저 아이는 어떻게 되는 거지……?

 

 ‘연아,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 말거라.’

 

 ‘아버지!’

 

 귓가를 스치우는 음성에 누가 내는 소리인지 모를 거친 쇳소리가 닫힌 잇새로 흘러나왔다.

 

 이랑의 눈으로 향했던 비녀가 궤도를 잃고 바닥에 처박혔다.

 

 그의 광대뼈 위, 새로 생긴 상흔에서 가느다란 핏줄기가 길게 이어지며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다.

 

 연과 이랑이 동시에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한 차례 더운 숨이 오가고. 코가 맞닿을 거리 앞, 한때는 부부가 되기로 연을 맺은 인연이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연은 아이의 흐느낌에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아이는 그녀가 뿜어내는 살기에 무척이나 놀랐는지 바짓가랑이를 축축하게 적시고 있었다.

 

 아이의 눈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귀신처럼 풀어헤친 머리칼, 피 묻은 의복, 어둠 속에서 섬뜩하게 빛나는 비녀를 들고 있는 여자의 눈이 붉게 충혈 되어 있었다.

 

 연은 놀라 그만 손에서 비녀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반면, 이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거세게 뛰던 그의 심장도 조금씩 본래의 맥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연이 정신을 뺏긴 사이, 이랑은 그대로 연을 밀치고 일어섰다.

 

 자신을 밀치고 이은에게로 달려가는 이랑을 본 연은 그를 발로 차 넘어뜨린 후, 다시 비녀로 그의 목을 노렸다.

 

 ‘그래, 내가 잃은 건 돌아오지 않는다.’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으려는 듯이, 그를 꽉 붙잡은 손에 거센 힘줄이 돋아났다.

 

 “제가 그래도 무가의 장녀인데 칼 한번 잡아 보지 못한 도련님 하나 제압하지 못할까요.”

 

 비수보다 날카로이 벼려진 비틀린 웃음이 얼굴 위로 번져간다. 웃고 있는 입과 달리 이채를 띈 연의 눈이 그를 쫓았다.

 

 허나 연의 비녀는 목표에 닿기도 전에 허공에서 붙들렸다.

 

 그녀를 다 가리고도 남을 정도로 길고 두꺼운 그림자가 그녀의 위로 드리웠다. 족히 7척은 되어 보이는 신장을 지닌 거구의 사내였다.

 

 입가를 뒤덮은 짧은 수염이 수더분해 보이는 사내가 뒤에서 그녀의 팔을 붙잡고 있었다.

 

 “낭자… 이제 그만하시오. 사정은 잘 모르지만 이번 한 번만 눈 감고 넘어가시게. 김 서방은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소.”

 

 ‘언제 내 뒤에 온 거지! 기척도 못 느꼈는데?’

 

 연이 사내에게 잡힌 팔을 빼내려 버둥거렸으나 미동 하나 없었다. 단단한 손에 붙들린 팔이 돌덩이에 깔린 기분이었다.

 

 “연아!”

 

 결의 당황한 낯빛이 보였다. 결도 사내가 내 팔을 잡을 때까지 그의 존재를 눈치조차 채지 못한 듯했다. 하지만 사람이 이리 갑자기 나타날 수 있나? 마치 결처럼.

 

 퍼뜩 스치는 생각에 연은 자신의 팔을 잡은 사내를 뚫어져라 보았다. 결과 같은 장신에 빠른 속도. 강한 힘.

 

 그는 인간이 아니었다.

 

 “왜, 저 인간을 구하려 하는 거요!”

 

 “김 서방은 장차 나라를 이끌어갈 인재요. 그러니 그를 해칠 수는 없소.”

 

 “만약 그에게 잘못이 있다면 나중에라도 그 값을 치르게 될 것이오. 지금은 그냥 넘어가 주면 안 되겠소?”

 

 “헛소리 마!”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내는 연의 말은 귓등으로만 들으며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해댔다.

 

 “거기 친구도 너무 경계하지 마오! 나는 낭자를 헤칠 생각이 없으니! 같은 도깨비끼리 싸우면 쓰나-.”

 

 “도깨비라고……?”

 

 결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한동안 조용히 돌아가는 상황을 한심한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던 상대등이 무거운 입을 뗐다.

 

 “한심한 녀석. 그러게 정 주지 말라 했거늘. 내가 수하들에게 보낸 암호가 이랑을 통해 네게 전해졌다면 폐하께서는 처음부터 다 알고 계셨겠군. 어쩔 수 없지.”

 

 “아버지…….”

 

 “내게는 너 같은 계집년에게 질 정도로 운이 따르지 않았을 뿐이다. 이랑! 앞으로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할 거다! 너는 살아서 내가 이루지 못한 걸 해내거라!”

 

 연과 이랑에게 번갈아 말을 남긴 상대등이 표독스레 눈을 치켜떴다.

 

 “지금 뭐 하려고-!”

 

 결이 검을 치울 세도 없이 상대등의 몸이 탁자 위로 쓰러졌다.

 

 삽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목에서 난 피가 탁자와 바닥을 어지럽혔다.

 

 “아버지!”

 

 찢어질 듯한 이랑의 외침이 밤의 정적을 끊었다.

 

 “아버님에게서 떨어져라 사특한 계집아! 지금 네 모습이 어떠한지 아느냐? 살아있는 악귀가 마치 지상을 헤매고 다니는 것 같구나!

 

 “주둥이 다물어라, 감히 누구한테…!”

 

 결이 검을 이랑에게로 틀자 자신을 도깨비라고 칭한 수상한 사내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사내는 이랑과 그의 동생이 바깥으로 빠져나갈 수 있게 길을 열었다.

 

 그들이 나가고 얼마 안 있어 곧이어 저택의 위험을 알리는 이랑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내 수백 명의 발소리가 하나가 되어 움직이고 갑옷이 부딪치는 소리가 땅을 울렸다.

 

 “우린 분명 다시 만나게 될 거요.”

 

 이랑이 무사히 빠져나간 걸 확인한 사내는 저 한마디만을 남기고 연기처럼 소리 소문 없이 흩어지며 자취를 감췄다.

 

 점점 가까워지는 발소리에 문밖을 경계하며 보초를 서고 있던 결이 그녀에게 나가야 한다는 손짓을 보냈다.

 

 연은 재빨리 방을 돌아보며 품속에 넣고 다니기 좋을 값비싼 물건을 살폈다.

 

 선반에 놓인 호리병은 갖고 가기엔 너무 컸고 수납장 안에는 금팔찌 말고는 별다른 금품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금팔찌와 작은 백자 도기 몇 개만을 챙겨 옷 속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었다.

 

 마침내 창 너머로 주홍빛이 드리우고, 결이 연을 호위하며 앞장서기 시작했다.

 

 “절대, 놓치지 마라!”

 

 저 뒤편에서 이랑의 날카로운 외침이 쩌렁쩌렁하게 땅을 울렸다. 횃불을 든 종과 사병이 들이닥쳤다.

 

 그나마 다행인 건 늦은 밤에 갑작스레 잠에서 깬 이들이 태반이라 제대로 무기를 갖추지 못하고 나온 모양이었다.

 

 뒤쫓아 오는 적들을 쓰러뜨리며 길을 뚫었다.

 

 숨이 차도록 달리며 도착한 곳이 하필이면 막다른 곳이어서 둘이서 혀를 찼다.

 

 그래도 이 정도 담벼락은 둘이서 힘을 합치면 넘어갈 만했다.

 

 “올려주마. 하나둘 셋!”

 

 결이 주는 신호에 맞춰 연은 그의 손을 밟고 담 위로 올라섰다. 주변에서 ‘어? 어!’하는 망연한 감탄이 흘렀다.

 

 이제 결만 넘어오면 되었다.

 

 다만, 결은 몰려드는 자들을 상대하느라 넘어올 틈이 없어 보였다.

 

 “이런 굼벵이 같은 놈들! 대체 뭐 하기에 저놈들 하나 못 잡는 것이냐!”

 

 활을 들고 온 이랑이 결의 머리로 화살을 겨누었다.

 

 쉭 하고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 화살이 정확하게 결의 머리로 향했으나 어디선가 날아온 기와에 부딪혀 떨어졌다.

 

 기와가 날아온 방향에는 붉게 물든 흰 옷자락을 흩날리는 소녀가 담 위에서 청색 기와를 든 채 몸을 숙이고 있었다.

 

 어둠 속 우거진 나뭇가지가 바람에 요란스레 소리를 내고 그녀의 등 뒤에 달린 보름달이 눈부시게 빛났다.

 

 얼굴에 튄 피도 짙은 어둠도 그녀 기품을 가리지 못했다.

 

 누구보다 선연(鮮然)한 존재에, 홀린 듯이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의 틈을 타 결이 창병들의 창을 베어냈다.

 

 저 두꺼운 걸 하나도 아니고 여러 개를 단숨에 자르는 모습에 연은 혀를 내둘렀다. 덕분에 그가 들고 있는 검은 무사하지 못해 보였다,

 

 연은 발끝에서 덜걱거리는 기와를 빼 결에게로 접근하던 자에게로 던졌다. 드디어 너덜거리는 검을 들고 결이 담 위로 올라섰다.

 

 그들의 모습이 담 밑으로 사라지자, 통곡에 가까운 외마디가 메아리처럼 저택을 울렸다.

 

 “연-!”

 

 주변에 있던 종과 사병들이 그가 토해내는 통분에 모골이 송연해 이랑을 피해 뒤로 물러섰다.

 

 핏줄이 터진 이랑의 눈이 복수심으로 차 요요히 빛나고 있었다.

 

 

 *****

 

 

 “여기는 어디야…?

 

 “잘은 모르지만 강이 흐르는 큰 다리 밑이다.”

 

 “그럼 월정교(통일신라시대에 지어졌던 교량)밑이구나.”

 

 “갈아입을 옷을 구해보마. 최대한 빛이 안 닿는 곳에 몸을 숨기고 있어라.”

 

 피를 닦아내야 하는데 수도 안의 우물을 쓸 수는 없어서 강이 흐르는 월정교 밑으로 온 듯했다.

 

 “알았어. 최대한 빨리 와야 해!”

 

 “알겠다.”

 

 그가 가볍게 묵례를 하고는 다리를 떠났다.

 

 나는 피 묻은 얼굴과 손을 씻어 내기 위해 물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물 위로 검붉은 것이 띠를 이루며 흘러갔다.

 

 흔들리는 물결 위로 지친 기색이 만연한 내 얼굴이 비쳤다.

 

 비련의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처진 눈꺼풀이 보기 싫어 주먹으로 물을 내리쳤다. 물보라가 일며 물방울이 사방으로 튀겼다.

 

 미친 사람처럼 마구 물을 내리치다, 참았던 울분이 터졌다. 팔다리는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손에는 여전히 끈적한 피가 남아 있었다.

 

 비릿한 감각이 몸을 지배했다.

 

 아버지의 뒤를 잇고 싶다고 결심했을 무렵부터 각오한 일이었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손이 떨리는 걸까? 떨릴 거면 진작, 아까 떨렸어야 하는 거 아닌가.

 

 멈춰. 멈춰. 멈춰.

 

 때를 잊은 고장 난 몸뚱아리에 제 팔을 때렸다. 제발, 나는 괜찮으니까 멈추라고. 그러나 밀려오는 통증에도 떨림은 계속되었다.

 

 솟구치는 눈물에 눈앞이 흐렸다. 서러움에 기인한 감정이 뒤죽박죽으로 섞인다.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오는 바람에 허둥지둥 다리 밑 구석진 곳으로 숨었다. 곧 말을 탄 사병들이 다리 위를 지나갔다.

 

 어둠 속에 몸을 구겨 넣은 자신과 달리 붉은 기둥마다 매달린 등불이 다리를 환하게 비추었다. 화려한 야경이 물 위를 수놓았다.

 

 두 무릎을 감싸 안고 팔에 고개를 묻었다.

 

 그러고 얼마나 있었을까, 자갈이 서로 부닥치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결……?”

 

 “에구머니나! 귀… 귀신이다!”

 

 잔뜩 술에 취한 사내가 자신을 보고 꽁지가 빠지게 도망갔다.

 

 그럴 만도 했다. 머리는 산발에 옷은 피범벅, 누가 봐도 멀쩡한 사람의 몰골로는 보이지 않았다.

 

 새삼, 혼자라는 사실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동생은 죽었고 부모님은 생사를 알 수 없다. 변하지 않는 진실이 뼈저리게 다가왔다.

 

 그건, 나 혼자 살아남았다는 사실이었다.

 

 굽이치는 강물이 사람의 속도 모르고 시간처럼 덧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

 

 

 새벽닭이 울 때쯤 결이 돌아왔다. 사병들을 피해 옷가지와 생필품을 구하려다 보니 오래 걸린 모양이었다. 그는 오래지 않아, 다리 밑 구석쯤에 몸을 웅크린 작은 인영을 발견해냈다.

 

 상처 입은 짐승처럼 몸을 웅크리고 떠는 연을 본 그는 서둘러 들고 온 담요를 그녀에게 둘러 매주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건지 눈가가 거뭇거뭇했다.

 

 “손이 차다.”

 

 필시 근육통이 있을 연의 팔다리를 주무르며 그가 말했다. 연은 지그시 그가 하는 행동을 지켜보다 입을 뗐다.

 

 “솔직히 잠깐이지만, 네가 안 돌아오지 않을까 생각했어. 그래서…. 나 혼자 사병들에게 끌려가는 상상을 했지. 별로 재밌진 않더라.”

 

 “내가 왜 너를 두고 혼자 가겠나?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이거라도 좀 먹어라. 하루 만에 피죽도 못 먹은 사람처럼 얼굴이 변했으니.”

 

 연은 고개를 저으며 결이 내미는 음식을 손끝으로 밀어냈다. 축 처진 모습이 안쓰러웠다.

 

 “원래 처음에는 누구나 다 그런다. 그러니까 풀 죽어 있지 마라.”

 

 “응…….”

 

 팔에 고개를 묻으니 그가 기운 내라는 듯 등을 두드려주었다.

 

 “익숙해지지 않는 게 당연해. 만약 익숙해진다면 더는 사람이라 부를 수 없을 거다.”

 

 “너는…. 절대로 나를 배신하지 마…….”

 

 “약속하마.”

 

  높지도 낮지도 않은 정중한 울림이었다. 그가 검을 바닥에 꽂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맹세를 다짐하는 무인의 자세. 진지하게 대하는 태도에 그를 믿어 보기로 했다.

 

 결이 보자기를 풀어 옷가지를 꺼냈다. 지푸라기 같은 색의 여인용 삼베옷이 들어 있었다.

 

 피부에 닿는 옷감이 평소 입는 옷과 다르게 까슬까슬하기만 해 불편했다.

 

 기장이 맞지 않은 옷이 자꾸 땅에 질질 끌렸다. 누가 봐도 성인 옷을 훔쳐 입은 아이 같은 모습에 머리를 짚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 모든 상황에 익숙해져야 할지도 모른다.

 

 입고 있던 옷은 추적이 더뎌지길 바라며 모두 강물에 흘려보냈다.

 

 동이 터 오며 다리 위로 붉은빛이 쏟아졌다. 연과 결은 다리 위로 쏟아지는 붉은 빛을 한참이나 눈에 새기다, 자리를 떴다.

 

 드디어 영겁 같은 하루가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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