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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야월취화(.夜月取花)
작가 : 소월혜
작품등록일 : 2020.8.19

호적에 이름은 올라와 있으나, 가문의 성을 물려받지 못한 아이. 그게 바로 나였다. “나는 불로 취하지 못한 꽃이 아니라 달이다. 그 누구도 취하지 못하는 달이 될 거다.” 무가의 장녀로 태어난 연은 혼인을 앞두고 살수의 습격을 받는다. 죽음의 위기 속, 신이한 힘을 발현한 연의 앞으로 한 사내가 나타나는데…. 통일 신라 말, 7명의 도깨비를 만든 여인의 이야기.

 
제1장 야월취화(夜月取花.) - 4화 배반(背反) (1)
작성일 : 20-08-19 02:32     조회 : 39     추천 : 0     분량 : 6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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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장 야월취화(夜月取花.) - 4화 배반(背反)

 

 

 “아직도 모르는 거냐. 아니면 모른 척하고 싶은 거냐.”

 

 “……뭐?”

 

 “마구간에 말이 하나도 없다. 궁 안 한복판에 불길은 치솟는데도 아무도 오지 않고 궁인의 머리털 하나 보이지 않는다.”

 

 한껏 격앙된 목청이 나를 꿰뚫고 지나간다. 그의 팔을 잡고 있던 내 손가락이 하나둘 씩 떨어져 나갔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잘 알지 않느냐…….”

 

 거칠게 이마를 쓸어 올린 그가 나를 똑바로 직시했다. 허공에 떠 있던 내 팔이 추락했다.

 

 ‘우리 가문은 버려졌다.’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담벼락에 몸을 기댔다.

 

 “충격을 받은 건 알겠지만, 지금 대비하지 않으면 다음에는 죽을 수도 있다.”

 

 “그놈들은 보통 놈들이 아니었어. 처음부터 목숨을 노리고 온 살수인 게 틀림없다. 임무가 실패했을 때를 대비해 입가에 독을 준비해 물고 있었던 거 하며,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집에 불을 질렀다. 집안을 장악한 속도가 빠른 걸 볼 때 이곳의 구조를 잘 아는 놈의 짓이다. 혹, 주변에 원한을 사거나 품은 자가 있느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집안의 일이나 궁 안의 돌아가는 상황은 잘 알지 못했다.

 

 평소 어머니와 아버지는 내가 집 밖을 마음대로 나서지 못하게 하셨고 하인들에게는 따로 입단속을 시켜 쓸데없는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셨다.

 

 왜 그렇게까지 하셨는지는 지금도 이유를 모르지만…….

 

 “믿을만한 자가 있나?”

 

 그의 말에 오늘 낮에 아버지가 말했던 ‘수일’이라는 인물이 떠올랐다.

 

 아버지의 오른팔로 알려진 ‘수일 장군’. 다만, 문제는 내가 그분이 머무르는 사저의 위치도 모른단 점이었다. 하는 수 없이 방향을 틀기로 마음먹었다.

 

 ‘석연치 않지만, 왠지 거기로 가야 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어.’

 

 “월성을 나가 오른쪽으로 담을 세 번 꺾으면 나오는 기와집이 하나 있다. 지금으로선 거기에 믿을만한 분이 계시다. 우리 집안의 사정을 들으시면 분명 도와주실 거다. 그리로 가자.”

 

 그가 업히라는 시늉을 취했다.

 

 혼자 걸어갈 수 있다고 거절의 의사를 보내려다 그의 시선이 내 바지와 옷자락에 있는 걸 보고 깨달았다.

 

 밤이라도 검은색 무복에 튄 피보다 하얀 옷에 튀긴 피가 확실히 더 눈에 띄었다. 결국, 그의 등에 업히기로 했다.

 

 그가 내 양다리를 단단히 고쳐 잡고 이랑의 집으로 뛰었다.

 

 둘이 손을 잡고 뛸 때보다 확실히 속도가 빨랐다. 조금만 더 가면 이랑의 집이 보일 터였다.

 

 불규칙적이지 않고 고르게 뛰는 맥박 소리는 가만히 듣기 좋았다. 그러나 한편으론 일각이나 여인 하나를 업고 뛰어도 줄어들지 않는 속도나 전투를 치르고도 지치지 않는 기색이, 역시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방증이나 마찬가지여서 속이 시끄러웠다,

 

 아무리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지만, 이 사내를 계속 믿어도 되나? 아니,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는데? 그가 갑자기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꾸면 내가 당해낼 수 있을까.

 

 아니야, 그랬다면 처음부터 구해주지도 않았겠지, 섣부르게 판단하지 말자. 그리고 나를 구해준 사람인데 이름은 아는 편이 좋겠지. 그래야 나중에 보답도 할 수 있고.

 

 “이름이 뭐야? 혹시 결이야?”

 

 “아니, 그런 이름은 아니었는데. 하지만 이름을 떠올리려고 하면 머릿속을 쇠망치가 두드리는 것처럼 마냥 아프다. 이유는 모르겠다.”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그가 이맛살을 구겼다.

 

 연신 이마를 부여잡고 눈가를 찌푸리는 통에 당장 떠올리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다.

 “아무튼 계속 당신이라고 부를 수는 없으니 일단은 결이라고 부를게. 은장도에서 빛이 났을 때, 그 글자를 봤거든.”

 

 “어느 이름이든 너 편한 대로 해.”

 

 별 상관없다는 투로 대꾸했으나, 사실 내가 지은 이름이라면 어느 것이든 괜찮을 거라는 신뢰가 담겨 있었다.

 

 처음 보는 상대한테 보이는 호의치고는 과분한 대우라 일순, 당황스러웠다. 아, 아니. 환두대도일 때 나를 보고 있었다고 했나?

 

 문득, 쳐다본 하늘 위로 아까부터 형형하게 빛나는 보름달이 마치 무언가를 경고하듯이 계속 이쪽을 내려다보는 것만 같아 숨이 턱하고 막혀 왔다.

 

 “야월취화.”

 

 “무슨 뜻이지?”

 

 “아마… 꽃을 취하라, 달이 뜬 밤에”

 

 “내 혼약자가 보낸 쪽지에 적힌 시 구절이다.”

 

 가슴 속에 이는 파문이 소란스럽다. 왜 그 구절이 계속 마음에 걸리는 걸까. 입안을 굴러다니는 문장이 가슴 속을 좀 먹는 걸 무시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야월취화.’

 

 아니다.

 

 ‘내 나중에 그대의 얼굴을 그리고 싶소.’

 

 아닐 것이다.

 

 ‘우연히 그대가 후원에서 종에게 목련꽃을 따 주는 모습을 보고 구혼해야겠다고 마음먹었소.’

 

 아니어야 한다.

 

 ‘한 사람을 사귀고 어울린다는 건 한 세계를 읽는 거와 같다고 하오. 부디 내게 그대를 알 기회를 주지 않겠소? 내가 세상을 쓰고 읽는 법을 알려 주겠소.’

 

 아니야. 그럴 리 없다!

 

 서글서글한 웃음을 지으며 멋쩍게 말을 건네는 그의 귓가가 유난히 붉었다.

 

 그러니 그가 그럴 리 없다고 스스로 몇 번이나 다독이며, 나는 내 눈을 가려버렸다.

 

 어리석게도.

 

 

 *****

 

 

 어두운 방 안, 청동으로 된 광명대(등불과 촛불을 받치는 기구)위 촛불이 위태롭게 흔들린다.

 

 바람 하나 불지 않는 방안에 아롱지는 불빛이 신경 쓰였던 중년의 사내는 읽어 내리던 서책을 집어넣고 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느새 푸르게만 보이던 보름달이 주변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지금쯤이면 다 끝나고도 남았을 텐데, 돌아오는 이가 없었다.

 

 중년의 사내는 왠지 좋지 않은 예감에 자신의 희끄무레한 수염을 더듬거렸다. 탁자 위를 초조하게 두드리는 검지가 바삐 움직였다.

 

 드디어 바깥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그는 평정심을 가장한 채,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잡았다.

 

 “달밤에 꽃은 취했느냐? 아니면 불로 덮었느냐?”

 

 안달복달했던 속내와 달리 진중한 물음이었다.

 

 “왜 말이 없느…!”

 

 “아버님이 범인이셨군요…….”

 

 되돌아오는 건 비통에 젖은 목소리였다.

 

 어둠 속 그림자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는 둘이었다, 하나는 무척이나 큰 장신의 젊은 사내, 다른 하나는 중년의 사내가 잘 아는 얼굴.

 

 바로 자기 아들과 약혼한 연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절대 여기에 있어서는 안 됐다.

 

 “네가 어떻게 여기에!”

 

 “피 묻은 옷을 입은 제 모습을 보고도 무슨 일이 있었냐고 안부를 묻는 것이 아니라, 마치 여기에 있으면 안 되는 사람처럼 말씀하시는 모습이 제가 여기에 있으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는 모양입니다.”

 

 “일을 그르쳤군.”

 

 탄식이 섞인 나지막한 어조에 연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이 상대등을 향하나 그는 아무렇지 않게 시선을 맞부딪쳤다.

 

 “결, 저 인간 좀 잡아줘!”

 

 “알았다!”

 

 호신용 검을 들기 위해 상대등이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결의 속도가 훨씬 빨랐다.

 

 발소리 하나 내지 않고 세 걸음 만에 상대등의 목에 검을 겨눈 결이 서릿발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했다.

 

 “불을 끄시오.”

 

 스산한 결의 말에 순순히 초를 끈 상대등이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빠져나갈 구멍을 찾느라 머리를 굴리는 소리가 다 보여 연은 크게 실소했다.

 

 “혹, 피가 잔뜩 묻은 여인이 집을 드나들었다는 소문이 돌면 피해가 갈까. 몰래 들어온 보람이 있습니다. 이리 무력하게 계신 아버님을 볼 수 있으니.”

 

 아버님이라는 말을 힘주어 말하니 그가 침음을 삼켰다.

 

 “어찌 도망쳤지? 분명, 불이 났다는 말을 들었는데…….”

 

 “왜…. 그러셨습니까! 우리 집안에 무슨 억하심정이 있으셔서 이런 잔인무도한 짓을 저지르는지요!

 

 “아무렴. 네 어미, 아비가 자식을 귀애하는 줄은 알았지만, 이리 아무것도 모르는 반푼이로 만들어 놓을 줄이야. 아주 걸작이군. 큭….”

 

 그는 목에 겨눠진 검에 베이면서도 비웃는 걸 멈추지 않았다.

 

 킬킬거리며 웃는 얼굴이 사악한 마귀와도 같았다. 연은 지금껏 자신이 봐온 모든 게 아득히 흐려지는 듯했다.

 

 “너는 네 어미가 공주였다는 사실도 몰랐겠지.”

 

 “…….”

 

 “궁 안의 사정을 모르게 소문에 가려 키우면 뭐 하나. 금덩이에 오물을 묻힌다고 해도 금덩이 자체가 변하질 않는 것을. 애초에 지금처럼 왕권이 약한 시기에 공을 세우지 말았어야 했거나 왕족으로 태어나지 말았어야지. 안 그런가?”

 

 “잘난 입으로 내 어버이를 욕보이지 마세요! 아버지는 명예를 위해 공을 세우신 게 아니라 나라의 안정을 위해서였습니다! 갑작스레 일어난 유민들의 봉기로 피해를 당한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서!”

 

 “제 어미의 신분도 몰랐던 것이 제 아비를 얼마나 안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아하하하! 지나가던 개도 웃을 이야기군!”

 

 상대등은 연이 치를 떨며 제게로 바짝 다가오는 걸 보면서도 냉소적인 태도를 고수했다. 마치 어린 계집이 뿜어내는 분노 따위는 가소롭다는 듯이.

 

 “네 어미는 공주의 자리에서 쫓겨난 뒤, 왕위 다툼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가문에서 뛰쳐나왔지. 그러면 무얼 하나? 불미스러운 일로 가문에서 퇴출당한 것도 아니거니와, 도망치듯 혼인한 상대는 왕실의 피를 이어 받았으니.”

 

 “…….”

 

 “무신이라 불리는 대장군의 무력, 외척이 없는 공주였던 자의 자식! 이만하면 신분에 모자람이 없고 이보다 적격한 혼인 상대가 어디 있나? 허나, 반대로 그 말은 이보다 더 위험한 상대도 없단 뜻이다. 내 편이 될지 않을 거라면 미리 싹을 치워야지.”

 

 악마 같은 속삭임에 그의 멱살을 틀어 올리려는 순간, 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 저 이랑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이…!”

 

 “소리 내지 마시오. 조용히 하지 않으면 그대로 벨 거요.”

 

 결이 그의 목에 갖다 댄 검에 힘을 주었다. 상대등은 자신이 보낸 수하의 검을 들고 있는 결을 보며 눈을 부라렸다.

 

  드륵.

 

 “아버지, 안에 계시…? 웬 놈들이냐! 여봐-!”

 

 “입 다무세요. 지금 제 손에 죽고 싶지 않으면-!”

 

 “연이? 연이인 것이냐! 어떻게…… 네가……?”

 

 이랑의 눈이 풍랑을 맞은 배처럼 좌우로 흔들렸다.

 

 연은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이랑을 보며 제 불길한 예감이 들어맞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도 알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가 자신의 가문을 칠 것을.

 

 진노 어린 괴성이 이랑을 향했다.

 

 우물 깊은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음습한 소리에 겁을 집어먹은 이랑이 꽥하고 소리를 내질렀다.

 

 연은 순식간에 그를 제압해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어떻게 당신이!”

 

 “나는… 그래도… 네게 경고를 조금이나마 했다! 그러니, 어서 아버지 목에 들이민 칼을 거두라 명하거라! 제발!”

 

 부딪친 충격에 앓는 소리를 내며 바닥을 뒹굴던 그가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고 재빨리 두 손을 모으고 그녀에게 빌었다.

 

 벌벌 떠는 이랑의 모습에 연은 그동안 자신이 알고 지내던 그는 누구였는지 몰려오는 허탈감에 헛웃음을 지었다.

 

 소문을 듣고 자신을 찾아온 거면 돌아가는 게 좋을 거라 경고한 제게 그는 분명 이리 말했었다.

 

 ‘후원에서 소저가 종에게 목련꽃을 따 주는 모습을 보았소. 받는 이보다 환한 얼굴로 웃는 모습을 보고 구혼을 해야겠다고 다짐했소.’

 

 그날은 내게 없었던 날이라고 답하니.

 

 ‘목련(木蓮)을 보며 봄(春)인 줄 알았건만 연(蓮) 소저를 보는 순간, 제게 여름(夏)이 다가왔음을 깨달았습니다. 이걸로는 답이 부족하겠습니까? 연!’

 

 눈가를 반으로 접고 배시시 웃는 모습이 넉살 좋은 사내처럼 보였으나, 그의 심리를 대변하듯 부채를 든 손가락이 갈피를 못 잡고 꼼지락거렸다.

 

 적어도 거짓말을 하는 사람의 모습처럼 보이지는 않아서 한결 마음이 누그러졌었다.

 

 ‘한 사람을 사귀고 어울린다는 건 한 세계를 읽는 거와 같다고 하오. 부디 내게 그대를 알 기회를 주지 않겠소? 내가 세상을 쓰고 읽는 법을 알려 주겠소. 어떻소?’

 

 그가 맑은 눈을 빛내며 곰살맞게 물었다.

 

 ‘당신은 내가 사귄 첫 지기였고 글 스승이었다.’

 

 그런데 그날 부채를 들고 수줍게 얼굴을 가리던 사내는 물거품처럼 어디로 사라졌는가?

 

 허탈이 사라진 자리엔 분노만이 남아있었다.

 

 “그랬는데…어떻게 당신이… 어떻게 당신이, 나를 속여-!”

 

 “연아…….”

 

 “그 더러운 주둥이로 제 이름을 부르지 마세요.”

 

 연은 머리를 고정한 비녀를 뽑아 쥐었다. 풀어 해친 머리칼이 밤의 장막처럼 그와 그녀 사이를 드리웠다.

 

 줄곧 이에 짓 씹힌 입술이 아팠다.

 

 ‘무려 3년이었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그 시간 동안 그는 나를 속였다. 계절이 세 번 바뀔 동안 당신은 왜 내게 아무런 언질도 없었나.’

 

 “이제 와서 착한 사람인 척 그만두세요. 양심이 있었으면 오늘 연서를 보내지 마셨어야죠.”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어떤 연회나 서책보다도 더 재미있었겠지.’

 

 그리 생각하면 연은 머리에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당신이 제게 왜 쪽지를 남기셨는지 제가 맞춰볼까요? 나는 그래도 너를 구하기 위해 노력했다 같은 자기만족으로 그 알량한 죄책감을 지우기 위해서! 저한테 이런 짐을 뒤집어씌우시고 좋으십니까.”

 

 정곡을 찔렸는지 이랑의 얼굴이 점점 창백하게 질려갔다. 웃기게도 열이 오르는 얼굴에 반해 연의 머릿속은 차갑게 식어갔다.

 

 “나는 알려줬는데 구하지 못한 건 네 탓이다. 그리 말해보시지요.”

 

 ‘그가 준 비녀를 이렇게 쓰게 될지 몰랐는데, 그도 몰랐겠지. 자기 숨통을 조일 물건을 나에게 선물로 줬을 줄은.’

 

 연은 선물로 받은 비녀를 이랑의 얼굴로 틀며 위협했다.

 

 “저한테 자비를 바라지 마세요.”

 

 이랑이 진심으로 연의 안위를 걱정했다면 직접 알릴 기회가 몇 번이든지 있었을 것이다.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 질 수도 있는 이런 애매한 시가 아니라.

 

 ‘만약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이깟 종이에, 전해지지 못할지도 모르는 종이에 그는 나와 내 집안의 운명을 걸었다!’

 

 비녀를 쥔 연의 손이 미친 듯이 떨리었다. 그녀의 두 눈은 포말 같은 희뿌연 것으로 뒤 덥힌 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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