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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변이하는
작가 : 교관
작품등록일 : 2019.9.26

주인공은 6일 동안 자신의 변이에 대해서 인지를 한다. 받아들이는 순간 모든 것이 조화와 균형이 된다

 
변이하는11
작성일 : 19-10-07 10:59     조회 : 22     추천 : 0     분량 : 19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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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동은 내과 대기실에 앉아 있다가 음악 소리와 사람들의 이명 그리고 숨 쉬는 냄새에 더 이상 앉아있지 못하고 병원을 나왔다. 대기실안의 사람들이 뿜어내는 숨 냄새가 이렇게도 역겨울 줄은 몰랐다. 무더운 재래시장의 음식골목에서 먹다버린 생선이 쌓여 있는 통에서 나는 냄새 같았다. 통 안에서 시간이 흐르면서 썩어서 풍기는 냄새와 흡사했다. 그만큼 마동의 코 안으로 들어와서는 구토를 유발했다. 밖으로 나오니 태양의 뜨거운 열기와 빛이 마동을 괴롭혔다. 어차피 회사에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마동은 그늘을 따라서 어제의 그 내과로 발길을 옮겼다. 대로변을 따라 이층에 자리한 작고 오래된 병원으로 마동은 걸어갔다. 레인시즌이 끝나고 도래한 태양의 이글거림은 모든 대지를 녹여 버릴 듯 불타올랐다. 밖에 나와 있는 사람들은 전부 인상을 쓰거나 찌푸리고 있었고 반면에 실내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은 에어컨바람에 안도의 얼굴로 앉아있었다. 대로변의 상가는 에어컨을 가장 강하게 틀어놓고 문을 열어 놓고 장사를 했다.

  중소규모 자영업에서 이 정도면 전기를 끌어다 쓰는 산업체 또는 공장에서는 어마어마한 전기를 싼값에 흘려 쓰고 있을 것이다. 이러다가 곧 블랙아웃이 올 것이다. 마동은 오너에게 현재 대한민국의 전력사용량에 대한 대비가 너무 미미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던 적이 있다. 정부는 블랙아웃의 예방을 모두 국민들에게 돌리고 있었다. 하지만 오너는 그것은 어긋나는 것이라 말했다. 마동이 어디에서 어긋나는 것이냐고 물었고 조화에서 벗어나는 일이라고 했다. 우리 회사에서도 전력사용을 많이 해야 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준비를 늘 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대한민국은 아직 블랙아웃으로 인한 대 정전 사태는 없었다. 지금까지 정부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고 오너는 말했다. 자연재해 또는 천재지변으로 전기를 발전하는 곳의 고압선이 끊어 졌을 경우를 현재는 최악으로만 보고 있다고 오너는 마동에게 말했다. 휴대전화로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현재 정작 알고 싶은 건 그 어디에도 나오지 않았다.

  그동안 대한민국은 그러한 경우가 몇 번 있었지만 대 정전사태로 번지지는 않았고 복구가 빨리 되었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은 심각한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흘러넘치는 에어컨 사용과 과다한 전기 사용량이 공급량을 초과하기 일보직전에 와 있었다. 하지만 정부는 언론을 통해 이렇게 무더운 날에 에어컨 사용시간을 제한하면 시원하게 지낼 수 있으며 전기료 폭탄 과금은 피할 수 있다고 선동했다. 사람들은 정부를 향해 비난의 언어를 내뱉었으며 정작 전기는 다른 곳에서 줄줄 새어나가고 있었다. 공급량을 뛰어 넘어버리게 된다면 곧 블랙아웃이다. 블랙아웃이 어느 한 지역에서 터지게 되면 암처럼 멀쩡한 다른 지역의 전기 공급을 파멸시켜 버리고 옮겨간 다른 지역의 전력망을 사망시켜버린다. 그렇게 해서 지역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 나가게 되는 것이다. 2003년 미국 동부지역에서 사상최고의 정전사태가 발생했다. 대 정전 사태는 초고압 송전선이 나무에 접촉하면서 누전이 일어났다. 일부 설비만 고장이 나며 동부의 작은 지역에 정전이 일어났지만 작은 지역의 전력망을 제때에 차단하지 못해서 뉴욕 동부지역 전체를 정전으로 인해 블랙아웃 시키는 사태를 초래했다. 사람들은 전기가 떨어지면 없는 대로 살아가면 되고 전기가 부족하면 가정에서 출력을 낮게 가전제품을 사용하면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오산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는 건전지의 전기처럼 직류전기가 아니다. 가정이나 상가 그리고 대부분의 전기를 사용하는 곳에서 교류 전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한 지역이 블랙아웃이 되어 버리면 그것이 암세포처럼 번지게 되어있다. 가장 큰 문제는 블랙아웃이 도래하면 다시 전기를 원상태로 가동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전기를 공급하는 원자력을 돌리려면 마땅하게도 전기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이미 블랙아웃으로 인해 전력망이 손실된 상태이기 때문에 블랙아웃이 발생한 상태의 반대로 또 다시 전기를 공급을 해야 하는 문제점이 있다. 블랙아웃이 도래하면 사람들은 혼란에 빠지게 되고 하루 종일 전기를 돌려야만 하는 석유화학 공장이나 제조업에서는 수조 억 원에 달하는 손해를 본다. 생물을 판매해야 하는 식당 같은 소규모 자영업자들도 전멸이 된다. 어쩐지 이 모든 게 무엇에 의해서 차곡차곡 준비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을 마동은 했다.

  대한민국은 2011년까지 블랙아웃에 대한 공포가 미미했다. 지구의 온도는 매 해 상승하고 도시는 끊임없이 자동차와 건물을 만들어 열기를 생산하는데 이 거대한 열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되었다. 정부는 심각한 상황이 초래한다는 것을 감지했다. 지금 대한민국 전기공급원인 원자력발전소가 이미 몇 개는 가동이 중단되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국민의 대다수가 진실에 대해서는 다가가지 못한 채 지내고 있었다. 대비전력이 부족한 대한민국은 블랙아웃에 대한 공포마저 부족했다. 블랙아웃으로 인해 덮쳐오는 어둠에 대한 무서움을 방관하고 있었다. 국민들은 어쩌면 외면하도록 강요받았을지도 모른다. 진실을 원하지만 진실과 마주하게 되면 두려움에 휩싸이기 때문에 애써 보지 않으려 할지도 모른다.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 사람은 몇 명되지 않았다.

  제대로 된 정보를 확실하게 매스미디어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알려준다면 경각심을 가지게 되겠지만 언론은 겉도는 정보만 계속 흘릴 뿐이었다. 그것 또한 기이한 현상이었다. 선진국의 경우 블랙아웃을 복구하는데 4일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하지만 대한민국은 그 시간으로는 충분하지 못한다고 오너는 마동에게 확실하게 말했다. 공단의 손해는 나라와 개개인의 손해로 이어지고 개인상가들 역시 블랙아웃으로 인해 생계가 막히고 극단적으로 시위나 폭력사태가 일어날 것이다. 소규모 양식업자들과 전력 공급을 매 시간 받아야 하는 업종은 일순위로 타격을 받는다. 하우스농가들 역시 마찬가지고 휴대전화를 시시 때때로 충전해야 하는 젊은 사람들도 나름대로 생활의 큰 불편을 겪게 된다. 무엇보다 대형병원이 큰 문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안일한 대책으로 시청과 구청의 공무원 몇몇만 외근을 주어 상가의 문단속만 시정하는 형편이라 제대로 관리가 될 리 없었다. 대부분의 상가들이 문을 활짝 열어 놓은 채 에어컨을 틀어 놓고 있었다. 모든 상가에서는 에어컨을 강으로 틀수밖에 없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는 빠져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사소한 것이 아니었다.

  오너가 회사에서 전기사용에 대한 경각심을 심하다 싶을 정도로 자주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회사는 백퍼센트 전력수습에 의존하여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럴 일도 없지만 개더룸에서 뇌파채취를 하는 도중에 전기 공급이 중단되어 버리면 어떤 사태가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오너는 이미 오래전 술자리에서 마동에게 블랙아웃에 대해서 긴 시간을 들여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고 그런 시간을 왕왕 가졌다. 시간이 흘러 자신이 이 자리를 떠나고 회사가 누군가가 물려받았을 때 그때를 반드시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마치 오너는 마동이 물려받는 것처럼 말을 하곤 했다. 전기가 없어지면 리모델링 작업이 전혀 이루어 질 수 없다. 비상전력만으로는 무리가 있는 것이다. 그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오너는 인간생활에 곧 닥칠지도 모르는 블랙아웃이 두려웠던 것이다. 인간의 생활을 인간이 망쳐가고 있었다. 마동은 뜨겁게 이글거리는 태양을 피하기 위해 어제의 내과병동으로 가면서 거리에 붙어있는 카페 속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웃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에게 이런 생각은 무의미한 것이다. 세상에 수많은 생물체 중에 자연의 순리에 올바르게 따르지 못하는 건 인간뿐이다. 균형을 깨트리며 그 때문에 절망하는 것 역시 인간이었다. 모든 동물과 식물은 무더운 여름과 혹독한 겨울을 견디며 잘 지내왔다. 오로지 인간만이 견디지 못해서 겨울과 여름을 따뜻하고 시원하게 보낼 수 있는 기계를 발명해서 건물 안에서 지내며 살고 있다. 하지만 모든 인간이 그 천수를 누리는 것은 아니었다. 세상은 인간에게 지구를 지배할 능력을 부여하였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내리지는 않았다. 어떤 이는 동물원의 동물보다 못한 생활을 하며 지내다가 그대로 소멸했다. 마동은 재래시장을 지나 대로변에 들어섰다. 대로변의 도로주차장은 언제나 차들이 들어차 있었다. 아침에도 오후에도 밤에도 심지어는 명절에도 도로가의 주차공간은 비어있는 날이 없었다. 누군가 자신의 차를 빼내어 주차공간을 벗어나기 무섭게 다른 자동차가 그 자리에 바로 들어와서 공간을 메꾼다. 도로가의 주차공간에는 터울이란 있을 수 없는 무엇이 있었다.

  도로를 지나 어제의 병원 쪽으로 걸어갔다. 가로등의 그늘 밑에 의자를 두고 이쪽에서 저쪽 도로의 주차공간을 놓치지 않고 주시하고 있는 이스터석상의 턱을 가진 주차요원을 다시 목격했다. 그는 하루 만에 좀 더 얼굴이 석탄처럼 까맣게 그을려있었다. 그런 것 따위에는 안중에도 없는 듯 감시자의 눈으로 주차공간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스터석상의 턱 역시 얼굴에서 비정상적으로 커 보였고 마동을 제외하고는 턱을 신비하게 바라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마동은 잠시 그늘에 기대어 이스터석상을 보았다. 자세히 보니 어제보다 더 젊은 사람이었다. 이스터석상은 20대 중반으로도 보이지 않았다. 어제보다 턱은 더 커진 것 같았다. 얼굴도 어제보다 더 크고 단단하게 보였으며 팔, 다리는 몸에 비해 더 말랐다. 여름이라 얇은 긴팔을 입고 있었는데 왜인지는 모르나 긴팔 안의 피부색도 얼굴만큼 검게 그을려 있을법했다. 이스터석상도 땀은 흘리지 않았다. 이스터석상은 의자에 앉아있었지만 상당히 바쁜 시간을 보내는 듯 보였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것도 아니고 책을 보는 것도(무더운 여름날에 따가운 태양 밑에서 책을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닐 것이다) 아니고 음악을 듣는 것도 아니었다. 안경 속의 눈은 주차공간을 끊임없이 주시하고 있었고 입으로 꾸준하게 무엇인가 외우고 있었다.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이스터석상의 턱 위의 입술이 기하학적으로 꾸물꾸물 주문을 외우거나 단어를 암기할 때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이스터석상은 가만히 의자에 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오감을 다 열어 놓고 뇌를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스터석상은 무엇을 끊임없이 외우고 있는 것일까.

  마동은 그늘로 몸을 옮겨가며 이스터석상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손목시계를 보고 시간을 확인했다. 마동은 한참을 서서 이스터석상을 보니 그에게서는 독특한 하나의 행동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른 곳의 주차요원(아주머니들이거나 나이가 많은 남자)은 차주가 차를 뺀 다음 신호를 보내면 그곳으로 달려가서 주차티켓을 받아들고 그 자리에 서서 시간을 계산했지만 이스터석상은 차주의 신호를 받으면 달려가서 시간을 계산하지 않고 바로 요금이 얼마라고 이야기를 하고 주차요금을 받았다. 이스터석상이 의자에 앉아서 무엇을 외우느라 입을 오물거린 것은 이스터석상이 맡은 구역안의 주차시간을 전부 머릿속에서 계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차주가 차를 뺀다는 신호를 보내면 달려가서 그들을 기다리지 않게 하고 바로 요금을 받을 수 있었다. 마동은 실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스터석상은 타인과 어울리지는 않고 남극점의 완벽한 빙하 속에 갇혀버린 듯 보였지만 자신과 끊임없이 교류하고 있었다. 이스터석상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독립된 존재감이라 여기며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해 부여받은 시간을 떠안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스터석상의 주위에는 사람들끼리 모여 무더위에도 이야기에 여념이 없었다. 서로 인상을 찌푸리며 많은 이야기를 토해내고 있었다. 상대방이 듣지 않아도 이야기하는 사람은 자신의 말을 끊임없이 하고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대부분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방황하다 주차되어있는 자동차에 쌓여만 갔다. 쌓인 그들의 이야기는 타인이 운전을 해서 다른 곳으로 싣고 가 버린다. 자동차는 누군가의 가족이야기, 누군가를 욕하는 이야기 또는 누군가가 뱉어놓은 고민을 잔뜩 싣고 그 자리를 떠났다. 이스터석상은 그 속에 섞이지 않고 빙하 속 얼어붙은 곰처럼 자신만의 세계와 이 세계를 오고가며 견뎌내고 있는지도 몰랐다. 일을 하는 시간동안 쉬지 않고 주차되어 있는 자동차의 주차시간을 외워가며 이스터석상은 독자적인 존재를 지키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마동은 이스터석상의 약간 기울어진 그의 턱을 보며 그곳을 벗어났다. 어제의 만두가게를 지났다. 만두가게에는 더 이상 만두모녀도 보이지 않았고 다른 손님들도 보이지 않았다. 주인도 보이지 않았고 테이블위에 누군가 만두를 먹었다는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완벽하게 마동을 마지막으로 손님이 뚝 끊어진 듯 보였다. 만두가게에는 온전히 만두가게의 자리만 존재해있었다. 만두가게를 지나고 해물탕 집을 지나 국밥집을 지나서 골목을 거쳐 완구도매점 앞에 도달했다. 마동은 힘이 들었다. 숨이 찼다. 유난히 태양이 뜨겁게 이글거렸다. 몸에 남아 있는 힘이 전부 빨래를 쥐어짜듯 다 빠져 나가버린 것 같았다.

  완구도매점 앞에 의자는 보였지만 완구도매점 사장은 보이지 않았다. 마동은 완구도매점 안을 들여다보았다. 도매점은 하루정도 시간의 흐름동안 무엇인가 달라져 있었다. 눈으로 들어오는 모습은 달라지진 않았지만 어떤 흐름내지는 도매점의 사상적인 부분이 다르게 느꼈다. 언어라는 건 시각적으로 들어온 피사체를 뇌의 한 구간에서 잘 반응시켜 입으로 꺼내는 소리지만 지극히 일그러진 관념일 뿐이다. 입으로 언어가 나오는 순간 생각과는 달라지거나 생각처럼 나오지 않거나 생각보다 많이 나왔다. 생각만큼 언어가 표현되지 않는다. 달라진 도매점안의 분위기를 언어로 설명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어떤 식으로든 마동은 도매점의 다르게 느껴지는 부분을 말로 내뱉어보려고 했지만 할 수 없었다. 마동은 주인에게 인사라도 하고 싶었다. 앞에 서서 시계를 보며 주인을 기다렸지만 나오지 않았다. 도매점 앞으로 가서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도매점 안을 메우고 있는 것은 죽어버린 시간의 공간이었다. 그것은 분명 죽은 시간이 도매점 안을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여름이지만 때가 낀 얼음처럼 차갑고 어두운 시간의 관념이 어제와 다르게 도매점 안 이곳저곳에 흡착되어 있었다. 이제 누구도 어떤 사람도 이 완구도매점을 찾아오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느꼈다. 이제 아무도 이곳을 찾아서 오지는 않는다. 서글픈 일이다 그것은 분명. 주인을 기다리다가 포기하고 계단으로 올라갔다. 태양은 마동의 몸에서 땀을 빼내려고 이글거렸지만 그럴수록 마동은 더 한기를 느꼈다. 땀은 한 방울도 나지 않았다. 완구도매점 안의 공기를 느낀 후 한기는 더욱 심했다.

  간호사는 여전히 분홍간호사복을 입고 분홍색의 간호사모를 쓰고 분홍색의 매니큐어를 바르고 길쭉한 손가락으로 어제처럼 난 다 알아, 하는 표정으로 마동에게 대기실에서 조금 기다리라고 했다. 포르말린 냄새가 났다. 어제는 분명히 포르말린냄새 따위는 나지 않았다. 이 병원에는 오늘 포르말린냄새가 확실하게 난다.

  어째서 일까. 포르말린 냄새는 세상에서 사라졌다. 어제는 포르말린냄새가 나지 않았는데 오늘은 왜?

  대기실에는 어제보다 적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노인이 두 명 앉아있을 뿐이었다. 노인들은 포르말린냄새 같은 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얼굴을 하고 앉아있었다. 그들에게서 웅웅거리거나 이명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들이 얼굴은 환자치고 평온해 보였다. 마치 병원에 마음을 안정시키려고 오는 것처럼 보였다. 어제는 연령별로 환자가 있었지만 오늘은 어쨌든 환자가 거의 없어서 마동은 다행이라 생각이 들었다. 분홍색의 간호사에게 열을 잴 수 있게 겨드랑이를 내주었다. 병원은 어딘지 모르게 역행하고 있었다. 요즘은 대부분 전자체온계로 열을 잰다. 홀리그램으로 신분까지 기입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깊게 따지며 생각하기에는 마동의 몸 상태는 좋지 않았다. 더 이상의 생각은 않기로 했다. 속이 거북하고 안이 꽉 찬 느낌이고 열이 오르는듯했지만 회사에서 체온계로 재어 봤을 때 온도가 일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앞 서 병원에서 열을 쟀을 때는 체온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마동은 이 병원에 오기 전에 다른 곳에서 열을 쟀다고 말했다. 분홍간호사도 알았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마동의 겨드랑이 밑으로 체온계를 밀어 넣었다. 열을 잰 간호사에게 답을 기다렸지만 간호사는 미소만 띄며 분홍색의 매니큐어가 칠해진 긴 손끝으로 체온계를 빼내갔고 앉아서 잠시 기다리라는 손짓을 할 뿐이었다. 잠시 후 간호사가 마동을 불렀고 분홍간호사는 진료실로 마동을 안내했다.

  포르말린 냄새.

  “그래 좀 어떠세요?” 의사는 마동에게 물었다. 여자들에게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얼굴을 지닌 의사가 마동과 불과 60센티미터 정도 거리를 두고 마동의 눈동자를 쳐다보며 물으니 마동은 잠시 취해야 할 행동을 정하지 못했다.

  “감기증상이 좀 심해진 듯 합니다. 콧물이 난다거나 침을 삼키거나 힘든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오한이 오고 식욕은 저 밑바닥에 붙어버려서 나올 생각을 좀체 하지 않습니다. 오한이라는 것도 저녁이 되고 밤이 오면 그러한 증상이 없어집니다. 회사에 출근하여 책상에 앉아있으면 더욱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처음 조퇴를 하고 병원을 찾아 왔습니다. 어제는 진료를 받고 회사로 들어갔지만 오늘은 바로 집으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감기로 인해서 조퇴를 하다니 저 또한 조금 놀랐습니다. 장염증상인지 어떤 현상인지 속이 콕콕 찌르는 것이 심하고 울렁거리며 구토가 나올 듯합니다.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아침에는 너무 늦게 일어났고 회사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동안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몸살이 심해지면 잠만 자거나 불면증이 온다고 하는데 전 두 가지가 함께 온 것 같습니다. 밤에는 도통 잠이 오지 않아요. 이렇게 낮이 되면 마치 수면제 한통을 다 먹은 것 같습니다.” 마동은 틈을 두었다.

  “그리고 이명이 들립니다. 머리를 어딘가에 세게 박고 나면 소리가 한곳으로 응집되어서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그런 현상이 일어납니다. 기잉하는 외계소리만 들리는 경우처럼 여러 가지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없고 웅웅하는 이명이 들려요. 이명이 들리는 것과 동시에 몸에 고통이 찾아옵니다. 고통을 아프다, 하는 말로 한꺼번에 정의 할 수가 없어요. 눈이 튀어 나올 것 같고 손발 끝이 날카로운 무엇인가에 잘리는 고통이 느껴졌습니다. 머리를 힘이 좋은 흑인이 졸라대는 것 같은 아픔처럼 느껴졌습니다.” 의사에게 마동은 자신의 증상을 최대한 빠트리지 않고 세세하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여자들에게 호감을 불러들일만한 얼굴을 가진 내과의사는 푹신한 의자에 몸을 파묻고는 깊은 눈으로 마동을 바라보았다. 거짓을 말하지 않았음에도 의사의 시선에 마동은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었다.

  “속에서 불이 타오르는 느낌이 듭니다. 모든 장기들이 들끓어서 전부 타버릴 것처럼 몹시 뜨거운 느낌이에요. 속이 아프다거나 하는 것보다 몹시, 아주 뜨거운 것 같습니다. 펄펄 끓는 물을 한 통 마신 기분입니다”라고 마동은 힘겹게 말을 이었다. 의사는 시선을 마동의 얼굴에서 차트로 옮겨갔다. 어쩐지 이 의사 앞에 오니 발가벗겨진 기분이 드는 동시에 마음이 편해졌다. 다시 말을 이었다. “근육통이나 허리가 당긴다든가 하는 증상도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앞에 말한 증상이 실제로 내가 앓고 있는 건지도 잘 알 수가 없습니다. 마치 다른 이가 앓는 몸살을 그저 내가 잠깐 느끼는 것 같습니다. 몸 안의 열이 굉장히 뜨겁게 오른다는 느낌이 들지만 밤이 되면 기적처럼, 그러니까 모세가 바다를 가르듯 사라져서 조깅을 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듯이 말이죠. 오늘 밤에도 지금 증상이 사라지고 조깅을 하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의사는 볼펜으로 차트에 무엇인가 증상을 휘갈겨 적었다. 꾸준하게 적었다. 마동은 이 병원에 이틀 왔을 뿐인데 차트에는 마치 20일 동안 병원에서 진찰을 받은 환자의 차트처럼 흘림체의 영어가 많았다.

  “고마동 씨는 일반인보다 체온이 많이 떨어져 있습니다.” 의사는 차트를 한 번 쳐다보고는 천천히 얼굴을 들어 마동에게 눈길을 옮겼다.

  “그리고 어제 처방해준 약은 하루분인데 다 드시지 않으셨죠?”

  마동은 한 첩은 먹지 않았다. 그렇다고 했다.

  “처방 해 드린 약은 반드시 다 드시도록 하세요. 그래야 낮에 일하는 동안 증상이 덜 합니다. 마동 씨는 현재 체온이 많이 내려가 있어요. 체온이 이렇게 내려 간 것에 비한다면 마동 씨가 말한 증상은 거짓말처럼 약한 편에 속합니다. 오늘도 일단 약을 지어드리죠. 약국약과 병원에서 직접 약을 지어 드릴 겁니다. 직접 지어드린 약은 꼭 드세요. 반드시 시간을 맞춰 드세요. 굳이 식사 후에 드릴 필요는 없어요. 밥을 반드시 드실 필요도 없습니다. 단, 시간을 맞춰서 약을 드세요. 그리고 내일은 검사를 할 겁니다. 세부적인 검사를 해야 할 것 같군요.”

  마동은 의사 쪽으로 몸을 굽히며 “제가 생각하기엔 제 몸에 무엇인가 변이가 생긴듯 합니다만.”

  “내일 검사를 해보죠. 검사를 하면 알 수 있을 겁니다. 그 전에는 어느 것 하나 알 수 있는 것이 없어요. 일단 초음파나 내시경을 생각하시고 오시면 됩니다. 음식을 먹고 오시면 안 되는데 아마 오늘은 음식섭취가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으실 겁니다.” 의사는 신뢰가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마동은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인사를 하고 진료실을 나오는데 의사는 마동을 보며 한마디 했다.

  “우리 모두는 변이하고 있습니다. 현재에 맞게 최선을 다해서 말이죠.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가 있지 않아요. 시간은 과거와 미래뿐이죠. 현재라고 불리는 시간은 어느 순간 저 뒤로 가버린 과거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 몸은 저 뒤로 가버린 과거에 맞추지 않고 지금 살고 있는 현재에 맞게 서서히 변이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그렇습니다. 다만” 까지만 말을 하고 마동은 뒷말을 기다렸지만 의사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끝이 흐린 의사의 말을 끝으로 마동은 진료실을 나왔다. 의사가 하는 말은 알 것 같기도 했지만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쉽게 와 닿지도 않았다. 간호사는 처방전을 마동에게 내 밀었다. 병원에서는 포르말린냄새도 났지만 이곳에서는 추워서 몸이 떨리지도 않았고 더워서 답답하다는 느낌도 없었다. 병원에 들어서는 순간 밤이 되면 편안해지는 몸 상태로 되돌아왔다. 병원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면 몸살증상에 시달릴 것만 같았다.

  “사람들은 누구나 변이하나요?” 마동은 처방전을 건네받으며 분홍 간호사에게 물었다. 처방전을 받으면서 보니 분홍간호사의 손가락에 살이 조금 붙은 것 같았다.

  “글쎄요, 어떨까요? 고마동 씨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분홍 간호사는 분홍웃음을 띠며 마동에게 되물었다.

  “사람은 변이하는 것이 계기가 없이 가능할까요?” 마동은 다시 분홍간호사에게 되물었다. 두 사람 간에 대답은 없고 질문만 오고갔다. 분홍간호사는 분홍미소를 띠며 마동에게 처방전을 건네주고 분홍색 매니큐어가 발린, 조금 살이 붙은 손가락으로 환자들의 차트를 정리했다. 이렇게 보니 분홍간호사는 어제보다 분명히 통통해진 것 같았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풍만해졌다. 단지 마동이 심한 몸살에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 아니면 본래 풍만했는데 어제는 느끼지 못하고 지나쳤는지 모르는 일이었다. 마동은 어떻게 하루 만에 분홍간호사가 풍만해졌는지 기이했지만 지금 마동의 눈앞에 있는 분홍간호사가 입고 있는 분홍색의 간호사 복은 터질 듯했다. 마동의 시선은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분홍간호사의 가슴으로 향했다. 시간이 물 한 모금 마실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때 마동의 시선은 분홍간호사의 가슴에서 벗어났다.

  분명히 간호사는 풍만해졌어.

  “우리 인간에게는 보통 마음이 있습니다. 한 인간의 마음이라고 해서 그 마음이 한 인간의 정신에 속해있지는 않습니다.” 분홍간호사의 목소리는 높지도 낮지도 않았다. 말을 할수록 가슴이 위아래로 움직였다. 목소리가 질 좋은 마호가니 목재 스피커를 통해서 흘러나오는 소리처럼 기이했다. 의사처럼 신뢰감을 주는 목소리였지만 의사의 목소리와는 다른 종류의 편안함이 묻어 있었다.

  “바람에 의해서 나뭇가지가 흔들리듯 모든 사물은 바람이라는 연계매체로 동시를 느낍니다. 거기서 그 하나하나의 나뭇가지에 서로 연결되어 바람 같은 관념을 인간은 드러냅니다. 우리 인간의 독립된 개별적 의식은 개성이라 불리는 은유를 지니고 있어요. 개성이라는 것은 자신을 각각의 모습에 맞게 표출하려하지만 무의식의 바람에 의해서 서로 모이듯 하나로 연결되어 흩날리는 바람과 같습니다. 이를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제자인 칼 융이 발견한 집단무의식의 한 부분과 비슷하겠네요.”

  분홍간호사는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마동은 몸 속 깊은 곳에서 작은 신음소리가 올라와 입술 밖으로 새어 나왔다.

  흐음.

  분홍간호사는 마동의 얼굴을 보고 조금 더 미소를 짙게 만들었다.

  “인간이 지니고 있는 거대한 무의식의 세계에 존재하는 바람 속 빛의 미립자들이 지형이나 온도에 의해 바람의 성질이 바뀌면 그 속으로 또 하나의 무의식이 뚫고 들어오는 겁니다. 우리는 대게 많은 예술가들이나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의 무의식의 흐름이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더 활발하다고 봅니다. 무의식에 강하게 노출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봤을 땐 기이한 형태로 변이한 사람으로 보이기도 하겠죠. 이들에게 나타나는 특별한 유형이나 사항 중에서는 구어나 언어로 의사소통을 하지 않기도 한다는 겁니다. 즉 이들에게는 공유되는 공통분모가 무의식을 통해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죠. 그 공통분모를 통해서 텔레포트를 이용하기도 하고 타인의 심층심리를 들여다 볼 수 있기도 합니다. 물론 동시에 같은 마음을 느끼는 이들도 있고 말이에요.” 분홍간호사는 여전히 차트를 정리하며 분홍미소를 띠고 마동에게 말했다. 마동은 가만히 분홍간호사의 말을 새겨들었다. 무의식이라는 단어가 마동의 머릿속에서 방향을 잃은 방패연처럼 계속 맴돌았다.

  나의 무의식 속에 또 다른 무의식이 뚫고 들어와서 지금 내 몸에서 변이를 일으키고 있단 말인가.

  마동은 자신의 의식에 대해서, 자신의 무의식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생각해본들 정답은 3번입니다. 하며 바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나의 무의식은 무엇이란 말인가. 인간에게는 누구나 무의식이 존재하고 그 무의식이 강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있고 없고의 차이인가. 분홍간호사는 자신이 말을 할 때마다 가슴이 위아래로 움직인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분홍간호사의 가슴이 기이한 패턴으로 아래위로 또는 위로 아래로 움직였다. 물론 풍만했다. 진료를 받으러 들어가기 전보다 풍만해졌다.

  “우리 인간이 보통 살아가는 모습은 가정에서 학교나 단체로 그리고 사회로 이어지는 순서가 있잖아요. 그 집단속에는 공유되는 사람들의 의식세계가 있어요. 만약 공유되는 의식세계가 없고 법률이나 규범으로만 우리 사회가 이루어져 있다면 그건 정말 최악이겠죠.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어떠한 해프닝의 정보가 그 공유를 통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무의식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죠. 그 말은 무의식이 여기에서 저기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공유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들은 무의식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며 언어로 하는 또는 시야에 들어오는 세계만 진실 된 세계라고 믿고 있는 착각에서 무의식은 시작하는 겁니다. 무의식의 세계에 아주 강하게 닿아있는 이는 언어가 소멸하더라도 타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것이 변이로 인한 현상인지 무의식의 현상이 변이를 가져 오는지 모르는 일이죠. 초능력은 없다고 하지만 독심술이나 텔레파시는 가능하고 국방부에서는 적극 활용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정부는 이러한 무의식의 세계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지만 일반인들에게 통용시키면 혼란이 올 거란 걸 역시 잘 알고 있기에 쉬쉬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초능력은 믿을 것이 못되는 추한 마음의 움직임이라고 단정 지어 미디어를 활용하고 있는 것이죠.”

  마동은 분홍간호사의 정체가 궁금했다.

  “대학교 때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을 아주 열심히 들었어요.” 분홍미소를 띠며 마동에게 말했다. 여자들은 정말 대단하다. 대번에 마음의 마음을 읽었다.

  이것도 초능력인가.

  분명 여자들은 남자들의 마음을 읽어내는 무의식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분홍간호사는 마동의 상태를 거의 정확하게 알아채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 마동은 혼란스러웠다. 이 병원에 오기 전에 들린 내과에서는 다른 이들의 생각을 읽었다. 읽은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마동의 머릿속으로 뒤섞여 들어와서 마동은 어지러웠다. 뇌파의 주파수 탓인지, 마동 자신이 진짜로 변이하고 있는 것인지, 만약 변이하고 있다면 어떠한 변이가 일어나는지 생각하니 머리가 복잡하고 어지럽기만 했다.

  분홍간호사의 말에 따르면 이 모든 것이 나에게, 내 몸 안으로, 내 머리 속으로 들어온 새로운 무의식의 발로라는 말인가.

  “사람들이 모두 비슷한 방향이나 크기로 변이하는 것은 아니죠. 하지만 대부분 변이를 합니다.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대부분의 인간은 변이를 거치죠. 의식이라든지 마음이라든지 신체적으로 말이에요. 다만 본인이 무의식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변이를 눈치 채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1차원, 의식의 세계가 2차원이라면 무의식의 세계는 3차원 그 이상의 세계가 되겠죠. 그 세계에서는 눈앞에 있는 상대의 마음에 들어가기도 할 것이며 상대방의 의식을 투사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서 있는 1차원의 세계에 들어와 있는 3차원이상의 존재와도 교신이나 소통이 가능하구요.” 여전히 분홍미소를 띠며 말했다. 분홍간호사는 대학교 때 정신분석학을 정말 열심히 공부한 듯했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닐 것이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고 마동은 말했다. “빙고, 그렇습니다. 바로 집단무의식 같은 것이죠. 이웃을 사랑하는 의식에 자신을 사랑하는 의식을 투사하는 겁니다.” 분홍간호사는 여전한 미소로 여전히 길고 살이 붙은 손가락으로 여전하게 풍만한 가슴을 움직이며 마동을 바라보았다. 분홍미소를 지으며.

  “실재와 의식의 세계가 많이 다르다는 건 그동안 살아오면서 많이 느낀 바지만“ 마동은 말을 잇지 못했다.

  “여기까지가 의식의 세계였다면 여기부터는 무의식의 세계가 고마동 씨에게 나타날 지도 모르겠군요.” 분홍간호사는 긴 손가락으로 머리를 가리켰다.

  분홍미소.

  “간호사님은 그걸 알고 계십니까?” 마동의 질문에 분홍간호사는 말이 없었다. 앞으로도 말이 없을 것이라는 걸 마동은 알고 있다. 분홍간호사에게 일반 약국에서 처방받을 처방전과 함께 병원에서 지은 약을 건네받았다.

  내 앞에서 계속 이야기만 했는데 언제 약을 지었을까. 조제실은 병원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는데.

  모호함으로 가득한 병원이다. 약국에서 약을 지어서 먹기 싫으면 병원 약은 꼭 드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분홍간호사는 자신의 세계로 들어가 버렸다. 마동은 기이한 약을 받아들고 할 이야기가 더 있었지만 그대로 주머니에 넣고 계산을 하고 병원을 나왔다. 병원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그제야 여름이라는 무더운 계절의 열기가 느껴졌다. 더불어 몸살의 증상이 병원밖에 쪼그리고 앉아 기다리고 있다가 마동이 나오자마자 몸에 들러붙었다. 기이한 의사와 기이한 간호사가 있는 기이한 병원 내에서는 도저히 여름이라는 계절을 느낄 수 없을 만큼 마동에게 쾌적한 공기가 병원내부에 가득했다. 포르말린냄새와 함께.

  병원 안에는 시원하게 에어컨을 틀어 놓은 것도 아니었으며 선풍기를 여러 대 설치해 놓은 것도 아니었다. 대기실에 앉아서 진료를 받으러 온 노인들의 얼굴 역시 평화로웠다. 다른 내과병원의 대기실과는 확고하게 다른 분위기를 기이한 병원은 지니고 있었다. 무엇보다 코끝에 남아도는 포르말린 냄새. 다른 세계에 들어와 버린 느낌의 내과. 병원의 그런 분위기가 깊은 눈동자를 가진 의사에게서 나오는 것인지, 풍만한 몸과 가슴을 지닌 분홍간호사에게서 나오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다.

  오너는 마동을 걱정하며 병원에 갔다가 곧바로 집으로 들어가라고 지시했다. 어젯밤에 한꺼번에 완벽한 꿈리모델링 레이어 작업을 한 덕분에 세세한 작업을 디자이너들이 할 동안은 마동은 특별히 할 작업이 없었다. 병원의 계단을 타고 내려왔다. 완구도매점 앞에는 아직도 의자만 놓여있었고 완구점 사장의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마동은 완구점 안을 들여다보았다. 어제와 다른 흐름 속의 시간성이 완구점 안에 있는 것을 마동은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달랐다. 어제와는 다른 죽은 시간의 공기가 축축하게 가득 차 있었다. 병원에 올라가기 전에 다르게 느껴졌던 완구점 내부의 시간성이 그대로 굳어 있었다. 완구점은 하루 만에 완벽하게 죽어버렸다. 마동은 소리를 내어서 완구점 사장을 불러보았다. 소복이 쌓인 죽어버린 시간성의 내부공간에서 인기척이 엿보였다. “누구십니까?” 하는 소리가 완구점 안에서 들리더니 젊은 남자가 반팔티셔츠 차림으로 나타났다. 땀을 흠뻑 흘리고 있었고 양손에 목장갑을 끼고 있었다. 물건을 옮기는지 먼지가 땀에 희석되어 있었다. 젊은 남자는 완구점 사장의 아들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완구점사장의 젊은 시절과 모습이 같아서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아들은 완구점 앞 어제의 사장이 앉았던 의자가 있는 곳까지 걸어 나왔다. 몹시 마른체형이었으며 근육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없었다. 마른 사람이 땀을 많이 흘리고 있는 모습은 뚱뚱한 사람이 땀을 많이 흘리는 모습과는 달라 보였다. 눈썹이 진하지 않고 연해서 남자는 말랐지만 순한 인상이 강했다. 만약 정리되지 않은 눈썹이 짙었으면 아마도 반전적인 얼굴의 모습일지도 몰랐다. 그는 마동에게 인사를 한 다음 누구일까 궁금해 하는 얼굴표정을 지었다. 아버지와 거래하던 거래처의 사람일지도 모르고 아버지가 일을 하며 손을 내밀었던 곳의 사람일지도 몰랐다. 아들의 얼굴에는 약간의 조급함과 조금의 부담감이 서려 있었다. “누구신지?”

  “전 완구와는 상관없는 사람입니다. 어제 위층의 병원에 가는 길에 아버님을 잠깐 만났습니다. 대화를 좀 했습니다. 좋은 분위시더군요.” 마동의 말에 남자는 조금 생각하는 듯 “그러셨군요”라고 했다. 아들의 대답은 한결 부드러워졌다.

  “오늘도 병원에 들리는 길에 아버님을 뵙고 가고 싶어서요.”

  “위층에 병원이요?” 아들은 새삼 놀랐다는 표정이었다. 표정이 마치 사라진 도도새의 얼굴 같았다.

  “네. 2층이 내과인데 몰랐습니까?” 마동은 이층을 가리키며 아들에게 말했다. “그렇군요”라며 아들은 고개를 들어 이층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금세 고개를 내리고 마동을 바라보았다. “2층에 병원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워낙 이 동네는 고요하게 흘러가니까요. 실은 전 이곳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거든요.” 아들은 한참 무엇인가 생각했다. “저희 아버지는 오늘아침에 요양원에 들어갔습니다. 치매가 심하셨거든요. 치매가 온 건 3년 전이었는데 퇴행성이라 병원에서도 어쩔 도리가 없다고 하더군요. 예, 분명히 어제까진 아버지께서 이곳 이 의자에 한 시간정도 앉아 계셨습니다. 그때가 제일 멀쩡하셨습니다. 하지만 멀쩡하다는 의미는 겉으로 봤을 때를 말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네, 실은 아버지는 그 누구와도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저에게만 조용히 말을 하시던 분인데 이상하군요.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걷잡을 수 없이 폭주를 하여 요양원에 가셔야만 했습니다. 꽤 미루고 있었거든요. 전 아버지를 대신해서 이곳의 마무리를 지어야 합니다. 이곳은 이미 두 달 전부터 영업이 중단된 상태입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곳을 사랑하셨어요. 그래서 바로 없애지 못하고 지금까지 지내온 것입니다. 아버지는 매일 밤 ‘서쪽숲’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물론 저에게만 말이죠. 아마 그것이 아버지께서 가고 싶은 최종목적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동은 어제 완구점사장이 했던 말을 떠올려보았다.

  “저도 어재 아버님께서 서쪽숲에 대해서 하시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다시 인사를 드리고 이야기를 한 번 더 듣고 싶어서 이렇게 실례를 하게 되었습니다. 못 뵙고 가게 되어서 안타깝군요.”

  아들의 눈에 잠시 빛이 총명하게 비치는 모습이 보였다가 사라졌다. 마동은 마지막 완구점사장의 얼굴을 생각했다.

  “오늘 아침부터 아버지는 어쩌면 진정한 서쪽숲으로 갔는지도 모릅니다. 늘 그곳에 가고 싶어 했습니다. 그곳에 가면 자신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며 말이죠. 그런데 참 신기합니다. 서쪽숲에 대해서는 아무에게도 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저도 몇 번 들어본 게 고작입니다. 저의 아내에게도, 어머니에게도, 저의 누이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그 이야기를 한 적이 없고 3년전부터는 모든 이들과 대화를 하지 않으셨는데.” 아들은 마동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그 눈빛 속에는 당신도 나처럼 동시적인 성질을 느끼고 있어서 안심했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아들의 눈빛이 상당히 부드러웠다. 몇 마디를 나눈 후 아들은 마동에게 인사를 하고 다시 완구점 안으로 들어갔다. 처분할일만 남았다는 말을 남기고 아들은 사라졌다. 완구점 안은 낮이었지만 어두웠다. 형광등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마동은 그곳을 벗어났다. 해장국집을 거쳐 만두가게를 지나 대로변으로 나왔다. 태양의 열기는 냉철했고 마동의 몸을 바로 태워버릴 것처럼 뜨거웠다. 인자함이나 상냥함은 어디에도 없었다. 마동이 태양의 열기가 이토록 괴롭다고, 올해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다.

  괴. 롭. 다.

  정말 괴로웠다.

  그렇게 사랑하는 태양빛이 미웠다. 같은 이유로 태양을 사랑했었는데 그 이유로 태양이 싫어졌다. 마동은 대로변에서 이스터석상을 또 보았다. 금은방이 대로변에 일렬로 죽 붙어있었다. 금은방의 처마 밑 그늘에서 마동은 잠시섰다. 그곳에서 이스터석상을 모호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스터석상에게는 그만의 독특한 독립적인 세계관이 보였기에 마동은 이스터석상을 볼 때마다 그를 유심히 바라 볼 수밖에 없었다. 이스터석상은 타인의 시선은 의식하지 않았다. 이스터석상의 뚜렷한 존재양식으로 자신의 하루를 고스란히 보내고 있었다.

  이스터석상의 무의식은 무엇을 보고 있을까. 어떤 범위를 넘어섰기에 자신만의 방식을 현실과 접목해서 왕립하고 있는 것일까.

  마동은 이스터석상과 이야기를 한 번 해보고 싶었다. 전혀 말을 하지 않을 것 같은 그 사람의 목소리가 궁금했고 생각도 궁금했다. 하지만 쉽게 다가 갈 수 없었다. 길거리를 오고가는 많은 사람들에 비해 초라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지만 근접할 수 없는 독자성이 쉽게 이스터석상 곁으로 다가오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이스터석상에게 가서 엉뚱한 말을 걸어보기에는 마동의 몸은 너무 힘들었다. 햇빛에 녹아버릴 것 같았다.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감기기운이 마동을 덮어 버렸고 짓누르고 있었다. 아스콘은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라 그 열기가 뼈마디까지, 뼈 속을 관통하고 얼굴로 확 올라왔다. 주저앉고 싶었다. 여름의 감기가 이렇게 사람을 힘들게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때 금은방 밑으로 늘어진 그림자의 세력이 점점 희미해지더니 온 세상에서 그림자가 사라졌다. 곧 세계를 호령하던 태양의 빛이 전부 사라졌다. 새로운 잿빛의 기운이 땅바닥에 감돌더니 하늘은 먹구름을 동반했다. 불처럼 이글거리던 태양은 먹구름에게 자리를 양보해주었고 먹구름은 심술궂은 마법사가 마법을 부리듯 소낙비를 떨어지게 했다. 우두두둑 두둑 소리가 들리더니 곧 쏴아 하는 경쾌한 소리로 바뀌었다.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쏟아지고 1분정도 후텁지근한 기운이 땅에서 대기로 화악 올라왔다. 마동은 비가 떨어지고 태양이 힘을 잃었을 때 빨리 집으로 가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메마른 아스콘과 바짝 마른 시멘트바닥에 소나기가 쏟아지니 비 비린내와 시멘트 특유의 냄새가 섞여 콧속으로 심하게 들어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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