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집무실에 모여 이번 연회 홀에서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지만 모두의 표정은 그리 좋지는 못했다.
황제의 입장에서는 얻은 것보다는 잃은 것이 더 컸고, 현궁의 입장에서는 적을 쫒아 내었다 하더라도 완전히 승리한 싸움이라 할 수가 없기에 결과와는 다르게 많은 문제들이 남아 있었다.
“모두가 알게 된 사건이니 이 사건의 진위에 대해서 알기 위해 달려 들 터인데, 어찌 설명을 해야 하는지 퍽 난감하구나.”
“딱히 숨겨야 할 이유는 없으니 아는 한에서 전부 말해야겠죠.”
황제와 세이나의 사이를 아는 이들만 있기에 황제가 세이나를 대하는 말투는 평소와 다름없이 나왔다.
“후... 그런다 하더라도 모르는 것 투성 일 진데, 어찌 말을 한단 말이냐.”
여태 몰랐고, 보이지 않았던 적에 관한 것은 세이나가 제일 잘 알고 있을 것이 자명하니 황제의 말 속에 설명을 바라는 뜻이 섞였다.
“이 세계가 이루고 있는 특성으로 전쟁이나 다툼은 아주 오랜 세월동안 없이 흘러왔고, 크고 작은 전쟁이나 분쟁은 대륙에서만 간간이 있어왔을 터이니, 당연히 당황스러운 것이 맞겠지요.”
“그 말은 마치 앞으로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 확신하는 듯하구나.”
“네.”
단호한 대답에 함께 있는 이들은 이번에 일어난 일이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각하다는 것을 깨닫고 침음을 삼켰다.
“하늘아래 천공의 땅과 지상의 대륙이 만들어진 후에 서로 나뉘어 다른 문화와 발전을 이루며 살아왔습니다. 이 것은 제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모르는 이들은 없지요.”
“그렇지. 게다가 우리들은 세상을 만든 라이트리아 여신의 뜻에 따라 대륙의 지상인들에게 크게 관여하지 않으며 이 세상의 균형을 위해 대대로 지켜왔지.”
“몇 천 년 넘게 이어져 왔지요.”
황제의 옆에 있는 나이가 지긋하게 들어 흰 머리가 듬성듬성 섞인 머리카락을 하나로 묶어 내린 재상이 그의 말에 덧붙였다.
이 세계를 이루고 있는 특성으로 그동안 큰 다툼 없이 유지를 할 수 있었으며, 천공의 땅은 천공의 땅대로 이 곳에 속해있는 백성들과 귀족들이 각자의 역할을 이행하며 평화롭게 발전을 이루었다.
하지만 세상이 만들어지고 천공의 땅에서 전쟁이라는 단어가 나올 줄은 몰랐던 모두는 앞으로 어찌 해야 하는 것인지 막막했다.
“헌데, 누가 이 세상에 전쟁을 일으킨단 말이더냐.”
“대현자님의 말씀을 황제폐하께 듣고 제 개인적으로도 조사를 해 보았지만 적이라는 존재에 대해서도 물론이거니와 어떠한 흔적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재상의 말을 경청하며, 황제역시 감이 잡히지 않는 적이라는 존재가 마치 안개 같았다.
“저도 정보가 부족해 정확하게는 판단을 내릴 수는 없어요. 하지만 시작은 500년 전이라고 생각해요.”
“...대현자가 나타나지 않게 된 때이지. 그래, 그것은 나도 이미 들어 그것을 중점으로 조사를 해보았다.”
별다른 말이 없을 줄 알았다며 세이나는 그럴 수밖에 없다 긍정했다.
“쭉 평화만을 일구었다 하더라도 오랜 세월 황궁과 현궁을 좀 먹고 있었을 존재들을 몰랐다는 것이 나는 상당히 충격이구나. 게다가 설마 황족인 우리들에게까지....”
자신의 첫째 아들의 이질적인 성격을 목격하여 받은 상처가 다시 터져 염증이 일면서 분노했다.
“지금 천공의 땅에는 아마도 적의 눈도 귀도 없을 것입니다. 그건, 그들이 목적하는 바에 다가왔다는 것이나 이미 끝나있다는 것을 뜻해요. 아마 황태자를 건드린 것은 단순한 심심풀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거구요.”
담담히 나오는 말에 황제는 이미 알면서도 분노가 주체할 수 없이 뿜어져 마력과 함께 집무실 안을 가득 메웠다.
“뿌득. 누가 있어 최강이라 불리는 황족을 이리 능멸하고 가지고 놀 수가 있단 말이더냐. 그것을 몰랐던 내가 한심하고, 내 자식들을, 가족을 지키지 못한 내 자신이 어리석어 분이 풀릴 길이 없구나.”
“폐하.”
그의 살기를 바이안이 옆에서 막아주어 피해를 입지 않은 세이나는 자신만 탓하는 황제의 손을 잡아 그의 손등을 토닥이며 다독였다.
세이나의 손길이 마치 당신의 탓이 아니라고 달래주는 듯하니, 그제야 자신이 지금 마력을 사정없이 뿜어대고 있음을 눈치 채고 조심히 누그렸지만 그 뿐이었고, 아직도 좀처럼 마음을 다스리기가 버거웠다.
“사람을 조종하는 것보다 때론 오랜 시간 세뇌를 한 것이 더 무서운 법입니다. 폐하의 탓이 아니예요. 이 건 누가 되어도 같았을 거예요.”
세이나의 다정하고 따뜻한 손길에 황제는 그녀의 얼굴에서 세일리아의 얼굴이 겹쳐보였다.
“너 또한 피해자일 터인데 내가 너무 했구나. 세일리아, 그녀가 살아 있고, 이 곳에 함께 하였으면 조금은 바뀌었을까? 분명 이 지경까지는 오지 않았었겠지. 후~ 그러지 않으려 했는데도 자꾸 나만 생각하는 구나. 미안하다.”
세이나의 어머니를 떠올리며 하는 말에 미안해하며 세이나를 배려하지 못한 말을 자책했다.
황제가 세일리아를 입에 담았을 때 바이안 자신도 긍정하는 바였다.
세이나가 생명의 은인이라면 그녀의 어머니인 세일리아는 자신의 정신적인 은인이었다.
그녀가 아니었으면, 분명 과거의 자신은 스스로 딛고 일어나 앞으로 걸어갈 수 없었을 것이었다.
“제 엄마가 좀 많이 잘났죠?”
허리에 손을 얹고, 고개를 치켜 올리면서 개구진 말로 세이나가 무겁게 가라앉은 공기를 순환시키려는 노력에 조금은 풀어졌다.
그 덕분에 조금은 맑게 갠 분위기에서 본론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가만히 듣고만 있던 노엘경이 걱정스레 입을 뗐다.
“적의 강함이 저희들의 상상을 넘은 것 같습니다. 설마 그 강인하고 신의 있는 알바트론단장이 그리 쉽게 정신을 놓다니요. 앞으로의 전쟁을 대비한다 하여도 막을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섭니다.”
부정적인 말인 것을 잘 알지만 노엘경은 알바트론단장의 무위와 정신력을 누구보다도 잘 느끼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도 그를 자신보다 위라 생각하며 한편으로 그를 존경하기까지 하고 있었기에 홀에서 보았던 그의 모습은 어마어마한 쇼크를 주었다.
노엘경의 말을 들으며 황제도 그와 많이는 아니더라고 가끔 만나보면서 나누었던 많은 이야기와 그의 세심한 배려에 고마워하고 있었기에 안타까웠다.
세이나는 다시 침울해지는 분위기를 막으려고 일부러 본론을 강조하기 위해 입을 떼었다.
“아직 다 말씀 드릴 수는 없지만 전쟁에 대비를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들의 목적은...”
말끝을 흐리며 작게 숨을 뱉고 냉정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균형을 무너뜨리는 것.”
“!!”
“허.... 그것이 정녕 가능 하다는 말입니까?”
믿을 수 없다며 재상은 탄식했다.
“균형을 잡는 존재는 황제폐하와 대현자님 두 분이십니다. 그 두 분이 이리 버젓이 계시온데 어찌 균형을 무너뜨린다는 말씀이십니까? 있을 수도, 가능하지도 않는 말씀이십니다.”
자신이 지금 흥분해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재상이 입은 충격은 컸다.
“지금은 가능해요. 그래서 50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거구요.”
“무슨...”
“균형이 무너진 다는 말의 뜻은, 세이나 네가 제일 잘 알겠지...”
황제는 제상을 말리며 침착하게 대꾸했고, 세이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능함을 다시 한 번 못 박았다.
“이대로 가면 세상 그 자체가 멸망할거예요.”
“막을 수는 있는 것이냐?”
“......”
쭉 냉정함을 유지하며 말을 해오던 세이나의 침묵에 앞으로의 미래가 암담해 눈 앞이 캄캄한 것이 이런 것이구나를 모두가 체감했다.
“전쟁을 걸어올 것이라는 말도 놀라운데, 그들이 도대체 얻는 것이 무엇이기에 균형을 무너뜨리려 하는 것이냐.”
“그 적의 수장일 것이 맞을 존재를 유일하게 본 제가 생각하기에는 말 그대로 일 거예요.”
세이나가 꺼낸 부분이 분명 대 사막화가 일어났을 사건이고, 그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이 이번에 드러난 적의 수장을 가리키는 것에 바이안은 그때를 떠올렸는지 작게 떠는 세이나의 몸을 한 팔로 조심히 안았다.
“난 괜찮아. 오빠.”
씩씩하게 웃어 보이며 어렸을 적의 쇼크가 아무리 성장을 해도 남기는 한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며 마음을 추슬렀다.
“그들이 얻어가는 것, 그 말 그대로 세상의 붕괴입니다.”
지금 이렇게 한 자리에 모여 회의를 하는 중간에 몇 번이나 놀라야 하는지, 또 한 번 머리를 가격하는 충격에 머리가 어질할 정도였다.
그들이 세상을 멸망시킬 것이고, 가능하다고 확신하는 정확한 이유는 아직은 때가 아니기에 세이나는 일부러 꺼내지 않았다.
꺼내기에는 자신이 알고 있는 전부를 털어놓아야 했지만, 정작 자기 자신이 준비가 되지 않았고, 일렀으며, 위험하다.
지금은 이정도로만 말을 해도 된다며, 더 다른 말이 나오기 전에 이어서 꺼냈다.
“바로는 움직이지 않을 거예요. 빨라도 일년, 늦어도 삼년 뒤에 움직이겠죠.”
“그렇다면 그것에 맞춰 할 수 있는 것을 해야겠구나.”
“네.”
“황족이 가지는 의무는 세상의 균형을 위해 적으로부터 지킬 수 있는 무력인 검과 방패, 대현자가 가지는 의무는 세상의 흐름을 읽고 현명하게 모두를 이끄는 눈과 귀를 담당하지요.”
재상은 황제와 대현자의 진정으로 가지고 있는 의무에 대한 부분을 새삼스럽게 설명했다.
그리고는 현재 심각한 상황이라고 해도, 믿음과 자부심이 찬 목소리가 되었다.
“세상이 시작하며 여신에게 받아 가지게 된 그 의무의 의미를 설마 제 대에서 볼 수 있는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의 말대로 앞으로 올 전쟁을 대비하여 자신들이 해야 할 역할이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어두운 지하 감옥, 작은 횃불에 사람의 모습이 간신히 비쳐지는 한 켠에서 철창을 사이에 두고 황후는 그렁이는 눈으로 넋이 나가있는 자신의 아들인 카이덴의 손을 잡고 있었다.
“이 어미가 못나서 이리 된 겁니다. 다 이 어미의 탓이에요.”
“......”
자신을 자책하는 것에 망설임도 없는지 황후는 어둡고 딱딱한 감옥 안에서 고생을 하고 있어 거칠어진 아들의 손을 놓고 싶지 않아, 그 잡은 손이 필사적이고 떨렸다.
황족으로서 기본적인 예우는 없는지 그는 그때 입었던 옷을 넝마를 걸친 것처럼 입고 있었고, 감지 못한 머리는 떡이 지고 산발이 되어 윤이 나던 금발은 빛을 잃은지 오래였다.
그리고 그의 목에는 마력을 봉인하기 위해 특별하게 제작된 초크가 둘러져 있었다.
이제 카이덴에게 기다리는 것은 대륙으로의 방출이었고, 그 것도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황후가 제 아들의 이름을 열심히 부르고 말을 걸어도 무심하게도 그는 어떠한 대꾸도 해주지 아니했고, 현재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길도 주지 않는다.
“카이덴.. 내 아들. 한 번이라도 좋으니 이 어미를 봐주세요. 이제 오늘이 지나면 보지도 못할 이 어미의 소원입니다.”
“......”
역시 자신의 작은 소원을 들어줄 생각이 없나보다.
무심한 아들의 모습에도 굴하지 않고 황후는 궁에서 가지고 온 물건을 주섬주섬 품에서 꺼내어 카이덴의 손에 꼬옥 쥐어주었다.
“대륙에서 사용되는 화폐입니다. 내려가서 살 곳도 찾고, 밥도 챙겨 먹어야지요. 잃어버리지 말고 꼭 사용하세요.”
감옥을 지키고 있던 기사들과 병사들은 황후가 쥐어준 물건에 그녀를 말리려다가 모르는 척 외면했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고 빈손으로 추방당하는 것이 맞는 관례이지만 그녀의 마음을 차마 외면할 수가 없어 못 본 것으로 일부러 넘어갔다.
카이덴은 짤그락거리며 묵직하게 잡히는 주머니에 고개를 숙여 제 손을 내려다 보다 그제야 자신의 어머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어마마마.”
몇일 동안 한 번도 입을 열지 않아서인지 그의 목소리는 갈라져 소리가 셌지만, 황후는 자신을 부르는 아들의 목소리가 기쁜지 환히 웃었다.
“네. 여기 있습니다. 어미 여기 있어요.”
“...죄송합니다.”
그동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그의 표정은 허탈하고 한 편으로는 초연해 보이기까지 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어마마마.”
기어이 고개를 떨구고 다시 자신의 손을 힘주어 잡는 그녀의 손등위로 점점이 눈물을 떨어뜨렸다.
황후는 한 손을 조심히 들어 그런 카이덴의 볼을 따뜻하게 쓸었고, 카이덴은 그 손의 온기를 잊지 않으려 제 볼을 더 기댔다.
“문을 열게.”
갑작스러운 황후의 명령에 기사들은 기겁했다.
“내말이 들리지 않는가? 문을 열게.”
“하오나, 황후마마.”
“다른 뜻이 있기에 하는 말이 아니네.”
당황하던 기사는 단호한 황후의 명령에 어쩔 수 없이 창살의 문을 열었고, 황후는 스스로 그 안으로 들어갔다.
가까이 다가와 옆에 앉는 제 어머니의 행동에 놀랐다가 자신을 꼬옥 끌어 안아주는 그 따뜻한 품안에서 작게 흐느꼈다.
“오늘은 오랜만에 이 어미와 같이 잘까요? 어렸을 때는 그리 자주 함께 했는데, 크고 나서는 그러지를 못해 너무 아쉽습니다.”
“흐흑 어마마마.... 흐흐흑”
황후는 그가 울다 지쳐 잠이 들 때까지 등을 쓸어주고 자장가를 불러주며 밤이 깊어가는 것을 알려주었다.
감옥 안에서 아예 나올 생각을 않는 황후에 어쩌지 못하고 쩔쩔 매던 기사들 중 한명이 계단이 있는 곳에서 둘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황제와 눈이 딱 맞았고, 황제는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며 조용히 있으라고 하면서 그를 불러 덮고 잘 수 있는 이불을 챙겨 덮어 주라는 명령을 내린 다음에 그렇게 한참을 가슴에 세기다가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날 아무런 변동 없이 소수의 기사들이 카이덴을 데리고 대륙으로 내려갔고, 그렇게 그는 천공의 땅에서 대륙으로 방출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