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우울해서 같이 술을 마실 사람을 찾지만 딱히 떠오른 사람이 없고 무작정 연우 사무실로 찾아갔다. 한 손 가득 캔맥주와 소주병을 다른 손은 안주거리들이 가득 담겨있는 봉지를 들고 사무실 문을 열었다.
"나 위로 좀 해줘"
말하며 들어오는 건우의 모습을 보고 일제히 모니터를 끄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눈만 깜빡거리고 있었다.
"뭐야 지금 이 반응은... 아직 일 안 끝났어? 에이 그냥 퇴근모드 해라"
"왜 위로가 필요한데"
"나 우리 학교 퀸카한테 차였어"
"채린이 나두고 또 다른 여자한테 작업들어갔어?"
"우리 학교 퀸카가 채린이야"
"둘이 잘 만나고 있는데 왜 차였어?"
"내가 자기한테 조금 소홀했다고 그냥 차버렸어"
"여자들은 다 그래... 정작 관심을 둔 슬비는 다른 남자만 바라보니"
"오빠 저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야 같이 마셔"
"다른 여자한테 차였놓고 왜 나보고 위로해 달래?
"듣고 보니 또 그렇긴 하다 알았어 오늘은 그냥 보내주지"
슬비가 사무실을 나가고 치훈도 카페를 핑계로 사무실을 나와 버렸다. 또 사무실에 둘이 남은 연우와 건우 그저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걸로 되겠어 내가 가서 술 더 사올게"
"그 듣기 반가운 소리다 부탁해 형"
연우가 사무실 밖으로 나가고 혼자 남은 건우는 술을 폭탄주를 만들어 줄 생각으로 종이컵을 찾는다. 그러나 작은 종이컵 밖에 없었다. 세 개의 책상 주위에 혹시나 쓸만한 게 있나 싶어 둘러보지만 없었다. 그냥 소파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연우의 책상 위에 있던 컴퓨터의 모니터가 켜지면서 메일이 왔다는 메시지 창이 떴다.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는 건우는 메시지 알림창 뒤에 있는 청운그룹과 파란그룹의 계약 조건들이 나열되어 있는 문서들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 조건들 중에서 건우와 채린의 정약결혼도 있었다.
한편 사무실에서 나와 편의점에서 술을 사고 사무실로 돌아온 연우는 지금 책상 앞에 서 있는 건우의 모습을 보고 달려가 모니터를 끄려고 하는 순간 이미 모든 것을 다 읽은 건우가 연우를 바라보고 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건우야 그게..."
그때 건우의 폰이 울리고 화면에는 아버지라는 글자가 뜬다. 좀 망설이다 전화를 받는 건우의 목소리가 떨린다.
"여.. 여보세요"
"너 지금 어디야 당장 집으로 들어와"
"네, 지금 가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발걸음을 옮기는 건우를 붙잡는 연우
"건우야..."
"형은 알고 있었어?"
"우리도 이제서야 아는 지인을 통해 자료를 넘겨 받았어"
"그래 오늘은 그냥 가야겠어"
"건우야 너무 아버지를 원망하지마"
"형은 형 일이 아니라고 그렇게 쉽게 말하지마"
"아니야 너도 나중에 회사 일을 하면 알게 되겠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생각하고 아버지를 이해해"
"다 필요없어 나 먼저 간다"
뒷모습을 보이며 걸어가는 건우를 보면서 차마 따라가서 함께 할 수 없다. 이제 형도 아니고 아버지 회사와 라이벌 관계에 있는 회사의 대표니까 그 걸음을 멈추고 건우가 사온 술들을 마시며 앉아있다.
건우가 도로를 나와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한다. 택시 안에서 계속 아까 그 모니터에 있던 계약 조건들만 눈에 아른거리고 생각이 복잡해졌다.
집에 도착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안절부절하지 못하고 현관문 앞에 서 있는 엄마와 소파에 화가 나서 앉아있는 아빠의 모습이 보인다.
건우는 당당하게 아빠 앞으로 가서 소파에 앉아 있다. 그런 아들의 모습이 더 어이가 없는 듯 앉아있다가 묻는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저야 말로 아버지에게 묻고 싶습니다. 파란그룹과의 계약 조건에 왜 저의 이름이 있는 건지"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시치미 떼지 마십시오 이미 계약 전문을 다 읽고 왔으니까"
"도대체 어디서... 설마 연우가...?"
"그건 지금 중요한게 아니잖아요. 아버지..."
"이왕 이렇게 된 것 다 이야기 하지 스티브 정과 계약을 하지 못해 회사가 좀 힘들었다. 그때 파란그룹 쪽에서 제의가 들어왔고 그 조건들 중 하나가 건우 너와 그 집의 막내딸이 결혼하는 조건이 있었지"
"그런데 그 집의 막내딸이 채린이었다... 오늘 차였는데..."
그 말에 더이상 아무말도 하지 못하는 아빠와 건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