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 말이 없고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는 가운데 슬비의 폰이 울렸다.
"연우오빠"
"집에 잘 들어갔어 비가 오니까 걱정이 되서 내가 달려가 우산을 쓰워주고 싶은데 취해서 갈 수가 없어"
"걱정 말아요. 비 맞으며 걷는 것도 좋은데요"
"안 되겠다. 지금 내가 갈까?"
"아니요. 이제 집에 다 왔어요. 오늘은 푹 쉬어요"
"알았어. 내일 보자"
연우와 전화를 끊고 건우를 바라보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직 비가 내리고 있지만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슬비를 향해 뛰어가는 건우가 손에 든 우산을 펼치고 슬비와 같이 걷는다.
"연우형을 대신해서 너의 우산남이 되어주는 거야"
"고마워"
"내가 연우형이 될 수는 없는 거지 너에게"
"그래 넌 도건우니까"
"난 너를 대신 할 여자를 찾는데"
"그게 채린이라는 여자가 되는 건가?"
"이제 마음을 좀 열어보려고 마냥 너만 기다리는 것이 힘들었어 연우형만 바라보고 있는 너를 지켜보는게..."
"내가 널 이용한 것 같아 미안해"
"그래도 넌 나에게 첫사랑으로 존재하니까 너무 미안해 하지마"
"친구로 지낼 수 있으면 내가 너무 이기적인 걸까?"
"당연하지 난 여자와 친구 안해"
"잘 되길 바랄게"
"너도 형과 잘 되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헤어지는 건가?"
"나도 여기까지 오고 싶지 않았는데"
"다시 만나게 되면 그땐 웃으면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야 될 텐데 과연 그게 마음대로 될지 모르겠다"
"건우야"
건우는 잡고 있던 우산을 슬비의 손에 쥐어주고 빗속을 뛰어간다. 슬비는 붙잡지 못하고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서 있다. 그것이 슬비의 눈에 보이는 건우의 마지막 뒷모습이었다.
슬비의 방안 구석에 도건우의 파란 우산이 펼쳐져 있다. 비가 안 오는 날도 그 우산은 방안 그 자리에 펼쳐져 있었다. 건우의 마지막 모습이 눈에 아른거리지만 그 우산을 보면서 추억을 접고 있었다.
그 뒤로 건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가끔 들리는 친구들의 소식통으로 건우와 채린이 사귄다는 사실을 접하게 된다. 아무렇지 않다고 하면 정말 거짓말이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조금 힘들어 했다. 아무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연우는 슬비 곁에서 위로해 준다.
몇 개월 후...
슬비의 집 초인종이 울렸다. 그 초인종을 누른 사람은 다름 아닌 연우였다.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 선 연우는 부모님에게 정중히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슬비가 다니는 회사 사장 도연우입니다."
"오빠가 어떻게 말도 없이..."
"말하면 못 오게 할 것 같아서 이렇게 찾아왔어"
"어서 들어오세요"
거실에 마주 앉은 슬비의 부모님과 슬비 그리고 연우가 앉는다.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슬비가 다니는 회사 사장이라고 찾아오지는 않은 것 같은데"
"네. 슬비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슬비는 건우가 있는데"
"엄마! 건우랑 헤어졌어"
"그래 잘 됐다 그 집안 사람들 하고 두번 다시 마주칠 일은 없겠지"
"어떡하죠 제가 도건우 형인데"
"뭐라구요? 도연우... 도건우... 그러네... 그럼 형제들이 우리 슬비를 서로 사랑하고 있었다고? 미쳤어 미쳤어 야 이슬비 너 도대체 어떻게 하고 다니길래 남자들이 꼬일대로 꼬여"
"슬비 잘못이 아니에요. 다 제 잘못입니다"
"오빠... 아니에요. 엄마 내가... 내가 잘못했어"
"정말 그런 거라면 난 두 사람 사랑을 인정하지 못해요"
"어머니... 사실은 저와 건우는 배다른 형제입니다."
"그럼 더더욱 안돼요. 우리 슬비는 그런 집안에 보낼 수 없어요"
"엄마 그만 좀 해"
"아니 난 더 할 거야 우리 딸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말도 할 수 있어"
"자세한 이야기는 아무래도 다음에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그럼"
"이왕 이렇게 왔으니 슬비는 만나고 가요"
"고맙습니다"
슬비는 창피한 듯 방으로 연우를 데리고 가서 문을 꼭 잠근다. 연우는 슬비 방을 둘러보다가 건우의 우산에 시선이 고정된다. 그것을 눈치 채고 곧장 달려가서 우산을 접으며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웃고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