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마지막 대화
털썩!
쿠웅!
“하아, 하아!”
그렇게 30분? 아니 거의 1시간 가까이 싸운 거 같은데, 안타깝게도 나와 차 실장의 싸움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나와 차 실장 모두 옷에는 피가 묻어 있었고 거친 숨을 몰아 쉬느라 바쁜 상황, 이렇게까지 지독한 사람은 처음 본다.
‘저 녀석 괴물 아니야? 아마도 차 실장이 나를 보면서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겠지?
“퉤!”
우리 모두 바닥에 누워 숨을 고르고 있던 것도 잠시였을 뿐, 내가 먼저 몸을 일으키자 차 실장 또한 피가 섞인 침을 뱉으며 천천히 기둥을 잡고 일어났다.
“후우, 윤혜진 넌 여자가 아니야.”
차 실장처럼 아무리 싸움에 능숙한 사람이라 할 지라도 오랜 시간 죽기 살기로 싸우니 많이 힘든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하아! 하아! 아니야, 그냥 나 평범한 여대생이라니까?”
“미친, 하아.”
나는 허리를 살짝 숙여 숨을 고른 뒤 차 실장의 말에 대답했다. 사실 죽음을 통해 초인적인 힘을 얻은 나와 대등하게 싸우는 차 실장 또한 괴물이나 다름이 없는데, 그동안 당한 걸 생각하면 오늘 꼭 차 실장과 결판을 내야 한다.
“이봐 차 실장, 이제 결판을 내야하지 않겠어?”
“하아, 지독한 년. 경찰이 오기 전에 너는 꼭 죽여주마.”
“나도 너랑 같은 생각 중이야.”
차 실장이 팔을 빙빙 돌리며 다시 싸울 자세를 취하자 나 역시 다리에 힘을 준 뒤 한 번에 앞으로 달려나갔다.
슈우웅!
슈우우우우웅!
내가 거리를 좁히자 어떻게 해서든 유효타를 노리는 차 실장의 공격이 아까보다 더 크게 보인다.
‘드디어 이 녀석과 지독한 악연을 끝낼 시간이 다가오는 구나…….’
그동안 여러 번 죽고 과거로 되돌아가며 특별한 능력을 많이 얻었다. 여전히 4번째 죽음으로 얻은 힘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차 실장에 비해 비교적 체력 상태가 더 좋다는 것쯤은 금방 알 수 있었다.
“으아아!”
물론 내가 받은 느낌을 차 실장 역시 모를 리가 없다. 결국 차 실장은 날 붙잡아 한 방을 노리려고 할 것이고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역이용할 생각이다.
파밧!
역시나 내 예상대로 차 실장은 내 팔과 허리를 붙잡아 날 바닥에 메다꽂기 위해 시도했다.
“죽어라!”
휘리리리릭!
“죽는 건 너야!”
그러나 나는 공중에서 몸을 비틀며 차 실장의 턱에 날카로운 킥을 꽂아버렸다.
“커억!”
끝내 날 놓친 채 양 팔을 휘저으며 뒤로 물러나는 차 실장, 제발 이대로 쓰러져 기절했으면 좋겠다.
“아직이야?”
“허억, 허어어어억! 으아아!”
내가 보기엔 거의 치명타를 입은 것처럼 보이던 차 실장은 갑자기 각성이라도 한 것처럼 눈이 번쩍 떠지며 괴성을 지르고 있는 게 아닌가?
“미안, 이젠 정말 끝이야.”
지독한 악연으로 만난 놈이라 별로 칭찬을 해주고 싶지는 않지만, 끝까지 싸우고자 하는 저 정신력 하나는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물론 그것도 이젠 끝이지만…….’
퍼어어어억!
털썩!
쿠우웅!
나는 성난 멧돼지처럼 날 향해 달려드는 차 실장의 후두부를 강력한 돌려차기로 마무리했다. 결국 차 실장은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거품을 문 채 고목나무가 쓰러지듯 바닥에 쓰러졌는데, 나 또한 힘이 다 빠져 그 옆에서 허리를 숙인 채 숨을 골랐다.
“하아, 하필 다 끝나고 경찰이 오다니?”
잠시 후 요란한 경찰차 소리가 귀에 꽂혔다. 차 실장이 잡혀가는 걸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지만, 아직 나에게는 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 차 실장은 그저 내가 복수하고자 하는 대상의 오른팔일 뿐이며, 내 최종 목적지는 따로 있다는 걸 잊기 때문이다.
터벅터벅!
‘쉬운 길이든 어려운 길이든 결국 해내기만 하면 되는 거야, 강서준 조금만 기다려…….’
**
“아, 아프니까 살살해!”
“정말 병원 안 가봐도 괜찮겠어?”
“괜찮아, 조금 멍든 게 전부야.”
나는 겨우 지친 몸을 이끌고 심부름센터 사무실까지 올 수 있었다. 내 어깨와 팔에 연고를 발라주는 연우 오빠는 계속 나보고 병원에 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물어보고 있지만, 그 정도로 아프지도 않고 그럴 시간도 없다.
“차 실장 그 놈은 내가 때려죽이고 싶었다 냥!”
“미안, 나비야. 네 몫은 남겨 놓는 걸 깜빡했네.”
나비는 아까부터 차 실장을 혼자 두드려 패고 경찰에 잡혀가게 한 내 활약상을 듣고는 왜 자기는 껴주지 않은 거냐고 반복해서 화를 내고 있는 상황이고, 명환이는 이런 와중에도 입을 다문 채 계속 노트북만 두드리고 있다.
“강서준은 나도 같이 가서 혼내 줄거다 냥!”
“그래, 알았어.”
“지금 날 이런 누추한 곳에 처박아 두고 뭘 하고 있는 거야? 언제까지 여기에 있어야 하는 건데! 고양이랑 말하는 미친년에 노트북 중독자, 얼굴만 잘 생겼지 내 말엔 대답도 하지 않는 놈까지!”
그 순간 구석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 화를 내는 홍윤주는 아직까지도 우리가 생명의 은인임에도 상황 파악이 잘 안된 듯 불쾌하다는 게 얼굴에 가득 쓰여있다.
“타깃은 무사히 잘 확보한 건가?”
“……!”
이럴 수가? 고개를 움직이자 김 의원이 예고도 없이 사무실에 나타나 홍윤주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여전사가 따로 없군, 고생 많았어.”
“저요? 아, 아닙니다!”
김 의원은 내 상태를 한 번 살펴보고는 소파에 앉았다.
“자네들은 잠시 자리 좀 비켜주겠나? 내가 이 아가씨랑 할 이야기가 있어서 말이야.”
“네, 그러겠습니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김 의원이 홍윤주를 가리키며 말하자, 연우 오빠를 필두로 우리는 서둘러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오빠, 김 의원이 왜 홍윤주랑 독대하려고 하는 거야?”
“홍윤주에게 더 큰 당근을 주려던 거 아닐까?”
“더 큰 당근?”
“명환아 우리 카페 가서 뭐 좀 마시러 가자.”
“아, 좋아요.”
“아, 아야! 나 환자인데 나도 같이 데리고 가!”
연우 오빠는 나한테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은 채 먼저 앞으로 걸어갔는데, 지금은 일단 나도 목이 마르니 오빠를 따라가야 할 듯싶다.
‘그래도 지금쯤 강서준이 차 실장 소식을 들었겠지?’
**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아 뭐야! 아까부터 차 실장 계속 전화를 안 받잖아?”
다다다다다!
“도련님! 아무래도 피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야 그게 무슨 개소리야? 피하다니!”
“차 실장님이 경찰에 붙잡혔다고 합니다. 도련님도 위험해질 수 있으니 일단은 안가로 피하시는 게…….”
쨍그라아아아앙!
“으아아아아아!”
“죄송합니다.”
“윤혜진 이 XXX! 으아아아아!”
**
“아저씨는 누군데 저랑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건가요?”
“자 여기 명함,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아, 국회의원이었구나.”
“저랑 같이 일해볼 생각 없어요? 시나리오 짜줄 테니 그대로만 움직여주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걸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정말요? 돈도 많이 벌 수 있는 거죠?”
“그럼요.”
“제가 뭘 어떻게 움직이면 되나요?”
“예전 연예인 몰카 사건 기억하세요?”
“네, 당연히 알죠. 어떤 여배우가 나타나서 자신의 전 남친이 몰카 사건의 주동자라는 걸 폭로하면서 엄청난 이목을 받았잖아요. 본인 또한 피해자이자 희생양이었다면서 기자회견 여러 번 하더니 지금은 조연에서 주연으로 발돋움한 것도요.”
“당신도 비슷한 포지션으로 움직이게 될 겁니다. 세진그룹의 막내 아들이 저지른 비리나 악행에 대해 폭로하고 극적으로 살아남은 기적의 생존자 뭐 그런 느낌으로요.”
“제 목숨이 위험하지 않을까요? 오늘도 죽을 뻔 했어요.”
“걱정 마세요. 24시간 우리가 밀착 경호를 해줄 거고 이번 일만 잘해주면 방송 쪽으로 진출하면서 드라마나 CF도 찍게 될 겁니다.”
“정, 정말이요? 저 예전부터 연예인이 되는 게 꿈이었어요!”
“내일 자세한 시나리오를 말해줄 테니 함께 잘해봅시다.”
“아, 감사합니다! 의원님!”
**
“자 시험지 걷도록 하겠습니다. 뒤에 사람들 일어나주세요.”
나는 차 실장과 대판 싸운 뒤라 컨디션은 최악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등교를 해 가까스로 기말고사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아직까지는 괜찮게 잘 흘러가고 있는 건가?’
김 의원과 만난 뒤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 홍윤주는 김 의원의 수행원을 따라 어디론가 가버렸고 경찰이 강서준의 주소지에 들이닥쳤을 땐 강서준은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다고 한다.
RRRRR---
물론 뭔가 상황이 깔끔하게 정리가 되질 않고 복잡하게 흘러간다는 느낌이 있기는 한데 시험이 끝나 교정을 걷고 있을 무렵 때마침 명환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 명환아.”
“강서준 위치 파악됐어, 주소 찍어줄 테니 거기서 합류하자.”
“아, 으응!”
명환이 녀석 밤새 노트북만 두드리더니 엄청난 일을 해낸 건가? 경찰의 도움을 받기 전에 이렇게 흘러가는 게 차라리 잘된 건지도 모른다. 남의 손에 맡기면 강서준에게 시원한 한 방을 먹이지도 못하는 데다가, 지금 강서준이 어떤 표정으로 숨어 있을지 살짝 궁금하기도 하니 말이다.
‘거의 다 왔어 강서준, 내가 거기로 갈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