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 잘린 절름발이 라이너는 정처 없이 떠돌다 거대하고 메마른 소 한 마리를 발견했다. 소의 머리에서 돋아난 뿔은 하늘로 찌를 듯이 웅장한 기세를 자랑했다.
주위에 다른 생물은 없었다. 그와 소 말고는. 라이너는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동물에게 다가갔다. 소는 뭔가를 먹고 있다.
몸통에 비해 다리가 길고 굵으며 날개가 작은 하얀 새.
살면서 라이너는 생명이 다한 에뮤를 처음 보았다. 새의 가슴은 속이 보이도록 완전히 벌어졌고, 활처럼 휜 양쪽 갈비뼈가 위로 향했다. 배고픈 라이너는 저 소를 잡아먹을 엄두는 전혀 나지 않았다. 다만 죽은 새의 살점은 썩더라도 개의치 않고 먹을 정도로 굶주렸다. 라이너는 겸손한 몸짓과 눈빛으로 소에게 양해를 구했다.
소가 한 발 뒤로 물러나 사내가 게걸스럽게 썩어가는 보랏빛 살을 허겁지겁 씹어대는 걸 목도했다. 소도 다시 죽은 에뮤에 주둥이를 갖다 댔다. 사내와 소는 같은 몸뚱어리를 먹으면서도 남의 영역은 침범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배가 부른 라이너는 그제야 다시 소를 보았다. 소도 고기를 삼키는 걸 그만하고 되새김질을 했다. 두 포유류의 입이 빨갰다.
라이너는 천천히 자리를 떠나는 소를 보며 생각했다.
‘소가 고기를 먹다니. 새 농담거리 하나 건졌군.’
그는 다시 걸었다. 함께 끼니를 같이한 동물과 다른 방향으로.
얼마 전만 해도 수많은 족적을 남긴 새 한 마리의 하얀 날개 뼈가 자리에 그대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