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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마르카
작가 : JakeCello
작품등록일 : 2021.12.30

변방에 있는 작은 마을 ‘누주’의 대장장이 ‘마르카’가 마을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수도로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

 
28. 해부
작성일 : 22-01-05 11:19     조회 : 190     추천 : 0     분량 : 3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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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카는 이냐시오의 명령으로 수도에서 가장 좋은 설비를 갖춘 대장간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었다. 이제까지 구경조차 한 적 없을 정도로 규모가 큰 단철장이었다.

 누주에서는 그 혼자 하던 수행을 다른 일손에게 맡기는 재미도 쏠쏠했다. 마르카는 설계도를 펼쳐 자기 영향 아래 있는 조수들에게 일을 분담했다.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로하는 베테랑들도 있었다. 마르카는 가장 중요한 건 효과가 확실한 무기를 완성하여 적들을 물리치는 것이라 타일렀다. 다른 대장장이들은 금방 촌놈을 대장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없이는 가마라 이름 붙인 새로운 쇠뇌를 제작하고, 탄환라는 이상한 광물을 제련하는 작업을 해내지 못 하리라고 서로 숨기지 않고 인정했다. 그들은 이런 설계도는 상상해보지도 못했고, 흔해빠진 모래에서 이런 물질을 뽑아낼 수 없었다.

 촌구석 대장장이가 제 실력을 가감 없이 뽐내며 작업에 열중할 수 있는 데에는 바라크 장군의 역할도 한 몫 했다. 틈 날 때면 마르카를 찾아와 격려를 아끼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므로. 장군은 내심 이 청년이 진짜 재능이 있다면 자기편으로 끌어드릴 심산이었다.

 쇠를 두들기고 달구며 지낸 지 일주일째 되는 날, 카멜라가 마르카를 찾으러 대장간에 왔다. 일에 집중하는 마르카가 문 너머로 잠깐씩 보았다. 그녀는 처음 만나던 어수룩한 청년이 아니라, 불빛에 주홍빛으로 번지는 근육질 몸을 부끄럼 없이 드러내는 사내를 발견했다. 누주에서 가져온 망치로 쇠를 두들기던 마르카가 잠시 쉬려고 고개를 돌리다가 낯익은 여인과 눈이 마주쳤다. 오늘은 그녀 외에 따로 동행하는 이는 없었다.

 둘은 난장(亂場)을 벗어나 거리를 거닐며 어색하게 그간의 이야기를 간단히 나누었다. 카멜라가 시간 내기 어렵지 않으냐고 묻자, 마르카는 예정보다 작업을 일찍 마무리할 것 같으므로 온전히 일에만 시간을 쓸 필요 없다고 답했다.

 “누주에서 혼자 쇠를 두들길 때에 비하면 금방입니다. 여기선 화력 좋은 석탄을 맘껏 쓸 수 있으니까요. 일꾼들도 쓸 만하니, 마음만 먹으면 쇠수레도 완성할 거예요.”

 “쇠수레? 그게 뭐죠?”

 마르카는 그녀에게 어릴 때 발미와 지도를 보던 시절을 들려주었다. 기다란 쇠수레를 만들고 그 안에 올라타 대륙을 횡단하자고 큰소리치던 밤. 얘기를 마친 마르카는 듣는 이의 낯빛이 바뀐 이유를 몰래 헤아려보았다. 잠시 침묵하던 카멜라가 화제를 바꾸었다.

 “다도원장께 들으셨겠지만 조정관 이냐시오가 제 아버지에요. 아버지는 어지간하면 가족에게 일 얘기는 잘 안하세요. 하지만 가끔 저한테는 조정관의 일과를 들려주곤 합니다. 엊그제 아버지께서 저를 집무실로 불러 한 이방인이 어떤 요청을 했다고 하셨어요. 마르카,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당신은 정말 운이 좋았어요. 당신의 재능에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될 사건을 겪었어요. 앞으로는 어떨지 모르겠네요.”

 마르카가 멋쩍게 웃으며 수도어로 말했다.

 “조정관, 즉 카멜라의 아버지께선 무슨 표현이 어울릴까…… 여기 말로 꽤나 젠틀하시더군요.”

 “맞아요. 젠틀하시죠. 참, 아까부터 집어내려 했는데 마르카, 그새 발음이 훨씬 좋아졌네요.”

 “갑자기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다보니. 하여간 너무 걱정 마세요. 에르마도 큰일이 나지 않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아, 로비스가 카멜라를 또 만나고 싶어 해요. 기억나세요, 그 꼬맹이?”

 “다도원장님의 러비라면 당연히 기억하죠. 언제 한 번 제 동생이랑 놀러 갈게요.”

 둘은 길가에 사람들이 듬성듬성 모여 있는 쪽으로 향했다. 자리를 잡고 보니, 대체로 둥글고 포용하는 인상이 전달되는 나이 든 여인이 무겁고 낮으며 단단한 음성으로 노래하고 있었다. 마르카는 처음 듣는 노래였으나 카멜라와 몇몇은 가수의 레퍼토리를 따라 불렀다.

 가만히 노래를 감상하던 카멜라가 뒤돌아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정한 것 없이 앞으로 갔다. 어찌할 바 몰라 하던 마르카가 그녀의 뒤를 쫓아 살며시 어깨에 손을 올렸다. 카멜라가 천천히 뒤돌아보았다. 마르카가 그나마 깨끗한 손가락을 골라 그녀의 눈가를 닦아주었다. 손에 검댕이 묻어서 미안하다고, 그가 사과했다. 고개를 저으며 카멜라는 마르카의 가슴에 고개를 묻었다.

 “발미, 발미가 이 세상에서 더 이상 숨 쉬지 않아요, 그렇죠?”

 남자는 신중하게, 가벼우면서 천천히 두 손으로 여자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다른 세상에서 여전히 같은 숨을 쉴 겁니다.”

 아래는 카멜라가 마르카에게 애써 들려준 한 구절이다.

 

 *

 

 발미는 의술도 빼어났지만 해부 실력도 수준급이었다. 그는 인체를 확실히 파악하는 길이 의학과 세상이 더 나아지는 지름길이라고 여겼다. 발미가 의지만 있다면 권세 있는 관리인의 주치의로서 편안하게 의술을 펼칠 수 있음에도 해부실습에 열중한 건 그런 연유였으리라.

 그러나 해부용으로 시신을 팔거나 기증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느니 죽은 자를 고이 안식하게 해주는 게 미덕이니. 누주 출신인 발미 역시 그 미덕을 모르는 바 아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그 과업에서 손을 놓았겠지만, 발미는 무언가에 쓰인 양 연구에 몰두해 있었다. 그는 한 가지 기획을 떠올렸다. 사형수의 온전한 시체를 해부용 또는 용도에 따라서는 실험용으로 쓰자고 수도 위원회에 안건을 올리자. 논란이 없지는 않았지만, 사형수가 생전에 잃어버린 명예와 쓸모를 되찾는데 이만한 공적은 없다는 명분이 많은 관리인의 관심을 끌었다.

 물론 온전히 자연사한 사체면 더할 나위 없이 반가워했다. 그는 사형 기술을 높여서 시신의 훼손을 최소화하는 방식도 고려했다. 단순히 재능 있는 의대생 신분이던 발미가 졸업하고 나서 고도의 의학연구원 자격을 부여받을 수 있던 이유는 그가 오로지 해부와 수술과 연구에 몰두한 덕분이다. 카멜라가 발미와 거리가 멀어지는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했으나.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발미는 한 사형수의 시신을 접수하여 해부용 도구로 해체하던 당시의 일이다. 아흔 아홉 구 째 개체였다. 그를 보조하던 의사들의 진술에 따르면, 발미는 평소와 달리 메스를 명치에 대고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차갑게 굳은 시신의 얼굴은 꼭 발미가 늙으면 보이게 될 낯 같다고도 덧붙였다.

 그로부터 얼마 후, 발미는 퀭한 얼굴로 카멜라를 찾아갔다. 그녀의 안부를 궁금해 하기는커녕 대면조차 하지 않은 지 오랜 시일이 흘러서야. 발미는 카멜라에게 해부니 실험이니 떠들어댄 자기의 행태를 후회한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짧은 인사만 남기고 누주로 떠났다.

 이야기를 다 들은 마르카는 돌아가신 아버지와 닮은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남았을지 궁금해졌다.

 

 *

 

 대장장이는 오랜만에 조정관의 저택이자 공관 앞에 왔다. 이번에는 카멜라를 집까지 바래다주러. 둘은 아까보다 온화한 기색을 담아 담소를 나누었다.

 “별난 소리를 하더라도 용서해주세요. 묘하게도 오랜만에 발미와 때를 함께한 기분이 드네요.”

 “별나긴요. 저도 오랜만에 발미로 산 기분이에요. 심심하면 하루 종일 서로 이름을 바꿔서 놀았는데 그 때마다 발미 행세를 했거든요.”

 “잘 어울렸겠어요.”

 “그 날만큼은 뛰어난 배우였죠.”

 카멜라와 마르카가 눈을 마주보며 악수했다. 창문 너머로 그 장면을 이냐시오가 굽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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