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냐시오는 마르카를 어떻게 처리해야 뒤탈이 없을지 고심했다. 그러잖아도 당장 처형시키고 싶은데 무리한 요구를 하다니. 심지어 내 고귀한 장녀와 감히 눈을 마주치고 인사하다니!
그러나 주인과 수도를 위해 몸 바친 청년을 무고하게 처형시키는 건 생각보다 까다로운 문제이다. 조정관이 이민족에게 내세운 당위성이‘헌신은 곧 복으로 인도하느니’아닌가?
또한 자신이 약간의 권리를 지녔다고 믿는 백성은 스스로 똑똑하게 굴고 싶어 한다. 그들은 대장장이의 헌신이 배신당했다고 생각하면 조정관을 원망할 것이다.
“그건 그렇고 전투가 한창일 때 무용극이라니. 조정관이 전장에 안 있고 극장에 있는 걸 알면 사람들이 어찌 여기겠소? 내 머리통만 따로 떨어져나와 허공에서 헤엄치는 것 같군.”
이냐시오는 특별석에서 극장용 망원경으로 무대를 내려다보며 투덜거렸다. 입장하고 줄곧 남편의 불평을 무시하던 글로리아가 들고 있던 망원경을 이냐시오의 입가에 갖다 댔다.
“조용하세요. 오늘 데르마의 첫 발표회니까 꼭 보러온다 했잖아요. 덧붙이자면 원래 전투 개시는 오늘이 아니라 다음 주로 예정했고요.”
“지금이 적기라 하지 않았소? 작전은 유동적이어야 하오.”
“여하튼 하루쯤은 가족을 위해서 박수를 쳐 주세요. 보세요, 다른 관리인들도 자기 아이를 보러 왔잖아요.”
“그래, 가족을 위해서! 빌어먹을, 난 언제나 부족한 가장이지. 저들은 이 전쟁과 상관없는 부역자들인 것을!”
“이냐시오 제발……. 잘 알죠. 이름갈의 자랑스럽고 우수한 군대가 버팀목이 되어 준 덕분에 이런 호사를 누린다는 거. 알아요? 전 늘 우리 군대가 승리하길 기도해요. 특히 이번 싸움은 꼭 무탈히 이겨야해요. 다음 달이면 데르마가 수도무용단에 입단하기 위해 오디션을 봐야 하니까.”
“뭐? 나랑 상의도 없이!”
“당신도 나랑 상의 않고 전쟁을 벌였잖아요?”
그녀는 솔직히, 고작 새나 사냥하는 일 가지고 전쟁이니 전투니 거창하게 명명하면서 호들갑 떤다고 말하고 싶었다.
“아이 참, 고민을 덜어주려는 마음에서 선뜻 내린 결정이에요. 내 말은 당신이 너무 많은 짐을 짊어지려 한다는 거죠. 공적이든 사적이든. 기꺼이 당신의 수족이 되어줄 실무자들이 줄 서 있잖아요?”
“내 머리와 심장마저 대신해줄 실무자도 찾아주시오.”
어머니 바로 옆 맨 오른쪽에 앉아 있던 장녀가 눈동자를 굴린 뒤 무대를 내려다 본 채 말했다.
“누군가는 이미 그 역할도 하고 있을 거예요. 이냐시오 조정관이 이름갈의 마땅하고 유일한 대리자로서 책무를 다하듯이 말이죠.”
카멜라는 다시 말 못할 염려에 빠져 들었다. 몇 번밖에 대화를 나누지 않았으나, 마르카도 전투에 합류한다는 소식을 듣고 줄곧 괘념하고 있었다. 이를 알 턱 없는 이냐시오가 화색을 드러냈다.
“오 여보 들었소? 마침내 내 딸도 이리 사랑스러운 말을 할 줄 알게…….”
“쉿, 정말 쉿. (망원경을 눈에 대고) 데르마 차례에요. 어머, 우리 아들! 몸의 윤곽이 너무 아름답지 않아요? 저 눈빛, 저 자태!”
이냐시오는 마지못해 아들의 단독 공연을 관람했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아들의 열정과 즐거움이 전해졌다.
“빌어먹을, 예술에 무지렁이인 내가 봐도 너무 멋지구려.”
남편은 아내가 응답하지 않으리란 걸 알면서 말을 덧붙였다.
“차기 조정관감이 따로 없어. 그렇지 않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