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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9-21 09:35
[스토리테마파크] 비나이다, 무탈하길 비나이다 - 백두산의 산신령과 수신에게 제사를 지내다
  글쓴이 : 스토리야
조회 : 1,006  
   http://story.ugyo.net/front/sub01/sub0103.do?chkId=S_AKH_0002 [196]
1751년 5월 24일 이의철은 백두산에 오르기 위해 갑산부를 출발했다. 선발대 1백여명은 이미 4, 5일전에 출발한 상태이고 토병, 포수 등 일행만 40여명, 말 16필이 동원되었다. 말과 가마를 번갈아 타면서 올라갔는데, 곳곳에 거대한 고목이 쓰러져 있고 무릎까지 빠지는 진창으로 인해 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갑산지역 사람들은 백두산에 들어가서 사냥을 할 때 반드시 산신령에게 제사를 지낸다. 이들은 노루, 사슴, 담비 등을 사냥한다. 물가에 사는 사람들은 수신(水神)에게 제사를 지낸다. 이의철 일행이 백두산에 오를때에도 제사를 지냈다. 이들은 허항령에서 장교와 하인들이 목욕재계를 하고 제사를 지냈다. 그리고 연지봉 아래에서 또다시 제사를 지냈다. 연지봉 숙소에서부터는 누구도 시끄럽게 떠들거나 농담을 하며 웃지도 않았다.백두산에 올라 유람할 때에 운무가 갑자기 씻은 듯이 사라지자 모두 부사의 행차에 산신령이 돕고 있다고 말하였다. 맑고 쾌청한 날씨에 천지와 연지봉까지 모두 유람을 마치고 무사히 귀환하였다. 갑산 관사로 돌아오니 마을에서는 그동안 비바람이 불고 날씨가 계속 흐려서 매우 걱정하고 있었다고 했다. 이전에 백두산에 들어간 사람들 가운데 이번 행차처럼 조용하고 편안하게 인마가 병들고 죽거나 하는 사고없이 다녀온 경우가 없었다고 하였다. 이의철은 그 말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배경이야기

◆ 조선시대 사냥 조선시대는 사냥을 공식행사로서 국가가 주도하기도 했다. 또 사냥은 민가에 출몰하는 맹수들을 처치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그러나 왕을 비롯한 관리들은 여가로서 사냥을 즐기는 일이 많았다. 왕은 물론이고 지방 관리들도 사냥을 나서면 그에 동행하는 인적, 물질적 손실이 상당히 컸다. 사냥터 주변의 농민들은 농작물의 피해를 감수해야 했다. 또 사냥에 동원되는 말이 먹이나 교량 설치 등을 위해 부역에 동원되기도 일쑤였다. 생업에 심각한 피해를 주는 왕 이하 관리들의 사냥놀이는 백성들에게 또다른 부담거리였다. 왕의 사냥에 대한 반대 소송은 조선시기 내내 끊임없이 이루어졌고, 백성들은 사냥의 피해를 모면하려는 이주를 꾀하기도 했다.이의철의 수하 장교가 사슴 한 마리를 사냥해 나누어 먹었다는 내용으로 보아 그가 백두산으로 유람을 떠난 것도 실은 유람을 겸한 사냥이었던 듯하다. 나무를 베고 길을 닦기 위한 동원인력만 1백여 명이었고 토병과 사냥꾼이 무려 40여명, 말 16필이 동원된 대규모 원정대였다. 사냥을 하기 전에 반드시 하는 의식이 바로 산신제이다. 사냥꾼들은 맑고 깨끗한 물에 목욕재계를 하고 산신령에게 제사를 지냈다. 이는 많은 사냥감을 기원하는 의미도 있지만 몸에 뭍은 냄새를 지워 사냥에 유리하게 하기 위한 실용적인 목적도 있었다. 이의철은 백두산을 유람하면서 두차례에 걸쳐 산신제를 지냈다. 사대부 양반에게 산신령에 제사를 지내는 일은 미신에 불과하니 엄히 금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의철은 장소가 장소이니 만큼 사냥꾼들의 풍습을 그대로 인정해 따르고 있다. 첫 번째 허항령에서 제사를 지낼 때만해도 미신이라 여기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듯하다. 변덕스러운 백두산의 날씨와 험준한 산행길에 고생한 이의철 일행은 두 번째 연지봉 아래에서 지내는 산신제를 엄숙하게 진행하였다. 당시 사냥꾼들이 주로 사용한 도구는 활, 창, 그물 등이었고 그 외 덫, 함정을 파놓거나 개나 매 등의 동물을 이용하기도 했다. 조선의 사냥꾼, 특히 총을 이용해 사냥하는 포수들의 명성은 대단했다고 한다.

출전 : 백두산기(白頭山記)                                                       
저자 : 이의철(李宜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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