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로 지웅은 하루는 세현의 파티, 또 하루는 지은의 파티, 그렇게 이틀을 사냥하고 난 후엔 한나절간 휴식, 이와 같이 자신만의 페이스로 서서히 길드의 사냥 방식에 녹아들어 갔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가 지난 어느 날..
“하아.. 하아.. 고생하셨어요. 마스터..”
“자네도 고생했네.. 슬슬 해가 떠오르려 하니 오늘은 이쯤에서 정리하는게 어떤가?”
“에에~? 조금 더 있다가 가요!”
오늘은 조금 일찍 끝나고 쉴 수 있겠다는 소박한 꿈에 부풀에 있던 지웅의 귓가에 청천벽력과도 같은 현아의 말이 들려왔다.
‘젊음이란 좋구나.. 항상 저렇게 힘이 넘치고.. 아차차! 현아를 잘 설득하지 않으면 조기 퇴근은 물 건너 가겠는데!? 뭐 좋은 방법이 없나..’
짧은 시간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려보던 그는 이내 표정을 싹 바꾸고 짐짓 심각하게 들리는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현아야 미안, 오늘은 돌아가서 마스터한테 중요하게 할 말이 있어서.. 조금 일찍 들어가자”
“네? 뭐.. 그렇다면 어쩔수 없구요..”
다행스럽게도 그의 말을 납득해준 현아가 마음을 바꾸기 전에 앞장서서 웨이포인트로 걸어가고 있는데 어느샌가 그의 옆에 따라 붙은 세현이 조용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그나저나 중요한 말이라니?”
“네!? 아아.. 그.. 아! 일단은 가시죠!”
“으응..? 그러지..”
그러나 세상 진지하게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고 하던 아까와는 세현이 가지는 당연한 의문에 지웅은 매우 당황한 듯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중요한 이야기 따위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고, 단순히 오늘 빨리 퇴근하기 위한 변명이였으며, 그 짧은 시간 사이에 그럴듯한 사유가 떠오를리도 없었기 때문이였다.
웨이포인트에 도착할 때 까지 지웅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고 있었고, 그런 지웅의 모습에 세현과 현아는 진짜 무언가 중요하게 할 말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였는지 오는 내내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뭐 없나? 뭐 적당하게 물어볼 만한 건수라도 없나? 으으..’
필사적으로 고민하고 있던 덕분인지 밖에서 보이는 그의 표정은 더욱 심각해보였고, 덩달아 세현과 현아도 정말 중요한 일인가 싶어 덩달아 긴장하고 있었다.
그렇게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세사람은 같은 웨이포인트에 몸을 싣고 다시 마을로 돌아왔고, 그들의 아지트인 서점으로 서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으으.. 이제 와서 빨리 들어가서 쉬고 싶어서 거짓말 했다고 할 수도 없고.. 떠올라라! 떠올라라!’
여전히 필사적으로 고민하고 있던 그때, 지웅의 눈에 퀘스트 의뢰소가 들어왔다.
‘퀘스트 의뢰소? 그러고 보니 저런게 있었지.. 저기서 뭐 했었더라.. 아! 그러고보니..!’
잠시 퀘스트 의뢰소에 대해 기억을 더듬어 보던 지웅은 순간 눈을 반짝하고 빛냈다.
“마스터, 잠시 퀘스트 의뢰소에 들렸다 가시죠. 현아도 괜찮지?”
“응? 뭐 상관없네만..”
“네~”
‘됐다!’라는 표정으로 퀘스트 의뢰소에 들어온 지웅은 곧장 NPC에게서 퀘스트 발주 메뉴를 활성화 시키고는 일행을 돌아보았다.
“혹시 저희가 직접 퀘스트를 발주할 수 있다는 거 아셨어요?”
“퀘스트를 발주한단 말인가?”
“네, 저도 저번에 한번 보고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방금 퀘스트 의뢰소를 보고.. 아.. 아니! 오늘 사냥하다가 문득 떠올라서요. 잘만 활용하면 우리 길드에 큰 이익을 가져다 줄 것 같아서 더 사냥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꾹 참고 이렇게 길드의 이익에 공헌하기 위해서 확인하러 왔습니다.”
“호오.. 이런게 있었다니.. 현아야 너는 알았니?”
“아니요! 저도 생각도 못하고 있었어요.”
다행히도 그들 역시 퀘스트를 발주해 본 적은 없는지 지웅의 말에 흥미를 보이고 있었다.
“흐음.. 확실히 흥미롭긴 하군.. 그런데 퀘스트 발주는 어떤 식으로 해야 하나?”
“저도 직접 발주 해 보는건 이번이 처음이라서요.. 잠시만요 이것저것 한번 해 볼게요.”
지웅은 흥미를 가져주는 일행의 모습에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눈 앞에 생성된 발주 창에 시선을 옮겼다.
‘보자보자.. 첫번째 항목은 토벌, 수집, 호위, 침략, 방위라.. 뒤에 세가지는 별 필요 없어보이고.. 일단은 수집 선택하고..’
수집 항목을 선택하자 바로 아래 메뉴가 활성되었고, 그 메뉴를 선택하자 여러 몬스터의 종류가 표시되었다.
‘오옷! 그럼 일단 리자드맨을 선택해 볼까?’
리자드맨을 선택하자 다시 새로운 메뉴가 활성화 되었다.
‘음.. 수집 대상 아이템은 도마뱀의 고기로 자동 설정되는군.. 개수는 최대치인 30개.. 제한 레벨은 필요 없고, 제한 인원.. 필요 없고, 기한.. 이것도 뭐 상관 없고, 마지막은 보상인가..’
거침없이 설정을 선택해 나가던 그는 ‘보상’ 이라는 항목 앞에서 순간 손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침착하자.. 침착하자.. 별거 아닐거야..’
마음속으로 크게 심호흡을 한번 하고 보상 메뉴를 확인해보니 생각보다 간단하게 경험치, 골드, 아이템의 세가지 항목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골드하고 아이템은 애당초 논외지 암.. 그렇고 말고!’
이번에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바로 경험치 메뉴를 선택했다. 그러자 배분 경험치의 양을 기입하는 창과 그 옆에 자신이 사용가능한 경험치의 양이 표시 되었다.
‘보자보자.. 일십백천만십만백만..’
“오백만!? 오백만이라고!?”
그는 생각보다 많은 경험치의 양에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내고 말았다.
“오빠? 왜 그래요?”
“흠흠.. 아무것도 아니야”
크게 헛기침을 한번 한 후 다시 퀘스트 발주 메뉴로 시선을 돌렸다.
‘왜 이렇게 많지? 오백만이라니.. 어라? 오백만? 잠깐만.. 분명히 10레벨 단위 필요 경험치가..’
예전에 심심해서 계산했었던 10레벨이 오를 때 마다 필요한 경험치의 양이 떠올랐다.
‘그래 분명 10레벨이 10만.. 20레벨이 100만.. 30레벨이 500만정도였지.. ‘
전혀 규칙성이 없을 줄 알았는데 신기하게 어느정도 맞아 떨어지는 숫자가 신기해서 기억해두고 있었던게 이럴 때 도움이 될 줄은 전혀 몰랐었다.
‘설마 이거.. 내가 이 케릭터로 모은 전체 경험치양인가? 아니지.. 이 케릭터가 스테이터스 상으로는 30레벨 중후반대이니까 그렇다기엔 좀 적은데? 에이 뭐 어때! 어느정도 비율로만 계산되서 들어왔나보지! 어쨌든 내가 500만까지 쓸 수 있다는 거잖아?’
어느정도 의문을 해소한 후 이제는 경험치를 어느정도 입력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통 크게 많이 써? 아니지.. 그렇기엔 너무 아까운데.. 혹시 경험치를 너무 많이 써버리면 레벨이 내려가는거 아니야? 아! 어차피 이 케릭터 레벨은 3이였지 참.. 그렇다고 너무 조금 쓰면 굳이 안하려고 할텐데.. 어떻게 한다..’
다시 고민에 빠진 그는 조심스럽게 경험치 칸에 ’30,000’이라는 숫자를 입력하였다. 산정 기준은 10개당 1만, 얼핏 보기에는 많아보였지만 리자드맨을 사냥하는 유저들의 레벨이 평균적으로 30대 초중반이고, 그 구간에서 레벨 1을 올리는데 필요한 경험치는 평균적으로 100만정도 되니 지극히 인색하기 그지 없는 수치가 아닐 수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모든 메뉴창에 입력을 마친 후 퀘스트 발주를 마치자
“퀘스트 발주가 완료되었습니다. 완료시 메일을 통해 연락드리오니 확인해주세요. 수집 퀘스트의 아이템은 3일이 경과한 시점까지 찾아가지 않으신 경우 자동 소멸되오니 주의 하세요.”
NPC의 완료 안내와 함께 [수집 퀘스트를 발주하였습니다.] 라는 시스템 메시지가 표시되었다.
“오호! 마스터! 현아야!”
그리고 지웅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일행에게 퀘스트 발주에 대해 설명을 한 후 발주할 수 있는 최대치인 3개의 수집 의뢰 퀘스트를 발주하였고, 세현과 현아도 각자 3개씩 퀘스트를 발주한 후 의뢰소를 나와 휴식을 취하기 위해 아지트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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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아암~! 잘 잤다! 아.. 맞다! 어제 발주한 퀘스트가 몇 개나 처리되었을까~”
오후 3시가 약간 넘은 시간 잠에서 깬 지웅은 오늘 아침에 퀘스트 의뢰소에서 발주한 퀘스트들이 얼마나 처리 되었을까 기대를 품고 메일함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뭐야!? 메일이 하나도 없는데!?”
그를 반겨준 것은 텅 빈 메일함이였다.
“왜지!? 뭔가 잘못 발주했나!?”
“으으.. 오빠! 시끄럽게 왜 그래요!?”
이럴리가 없다며 소란을 피운 탓에 시끄러워서 잠에서 깼는지 현아가 부스스한 얼굴에 잔뜩 분노를 담은 채 그를 노려보았다.
“어.. 어.. 깼니? 미안..”
“그건 됐고! 대체 뭐예요?”
“아.. 아니 그게..”
현아의 기백에 눌린 지웅은 어제 발주한 퀘스트가 하나도 수행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난 또 뭐라고..!”
“혀.. 현아야 혹시 너는 어떻니..? 우리가 뭘 잘못 했던 거겠지? 그런거지?”
그는 애써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 현아에게 물어 보았지만
“잠깐만요.. 어? 퀘스트가 수행되었다는 메일이 3개 와 있는데요!?”
“응!? 뭐라고!?”
“아우! 소리 안질러도 다 들려요! 제가 발주한 퀘스트는 다 수행되었다구요!”
“정..! 마알..?
다시 흥분해서 소리가 커지려던 그는 조용히 주먹을 쥐어 들어보이는 현아의 모습에 급격하게 목소리를 줄여서 되물었다.
“네, 뭐하러 거짓말 하겠어요”
“이.. 이럴수가..”
지웅은 그 자리에서 현아에게 퀘스트 발주 내용에 대해 물어보고 자신과 비교해보며 무엇이 문제인가에 대해 파악하기 시작했다.
“수집대상은 둘다 도마뱀의 고기고.. 수량도 30개 동일.. 제한 사항도 다 동일.. 경험치는 뭐!? 10만!?”
그랬다. 지웅과 현아의 퀘스트 발주내용은 모든 다른 조건은 동일 하였지만 결정적으로 보상의 양이 차이가 너무나도 컸다. 같은 물건에 대해 지웅은 3만, 현아는 10만.. 당연한 결과였다.
그리고 그들의 소란에 세현마저 잠에서 깨어났고, 지웅이 기다렸다는 듯이 세현에게 발주한 퀘스트의 결과를 물어보았다.
“음? 잠시.. 내가 발주한 퀘스트도 다 수행되었군..”
“혹시.. 보상 경험치 설정은..?”
“나도 10만으로 했네만..?”
세현 역시 현아와 동일한 대답을 들려주었고, 대답을 들은 지웅은 크게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이제껏 본 것 중에 가장 결연한 표정을 짓더니
“하아.. 이거 안되겠네요..! 다들 기본이 너무 안되어있어요! 모두 다 집합이예요! 누님하고 우현이도 지금 당장 소집해주세요!”
엄격하고도 근엄한 목소리로 길드원의 소집을 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