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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태양이 걷는 순례길
작가 : 에스뗄
작품등록일 : 2017.6.18

인생이라는 고달픈 순례길에서 맞닥뜨린 뜨거운 태양 하나. 어둠 속으로 달아나는 그믐달 진해연과 그녀를 쫓는 태양 문도준. 과연 태양과 달의 사랑은 이뤄질 수 있을까?

 
027. 연애할까요(5)
작성일 : 17-07-11 01:16     조회 : 19     추천 : 1     분량 : 4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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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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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글지글 구워지는 갈비의 매콤한 향이 후각을 자극한다. 적당한 소음과 적당한 습기, 그리고 고기의 고운 빛깔에 마음이 넉넉해진다.

 

 "야아, 집게 달라니까."

 "됐어. 오늘은 그냥 받아 먹기만 해."

 "오늘만이 아니니까 그렇지."

 

  자리에 앉은 순간부터 진이는 내게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게 했다. 불판에서 올라오는 연기에 눈이 매울 법도 하건만 집게를 든 손은 제자리로 돌아올 줄을 모른다. 언제나처럼.

  한 달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막 귀국한 진이의 이야기보따리는 역시나 거대했다. 나는 젓가락을 입에 물고서 순례길 위의 마법 같은 이야기에 스르르 빠져들었다.

 

 "그런데 순식간에 돌변해서는 가방을 내놓으라고 하더라고."

 "헐, 한국인이 유독 강도를 많이 만난다더라. 다치진 않았어?"

 "응. 가방을 뒤져보더니 워낙 가진 게 없으니까 그냥 버리고 가던데."

 "음, 이걸 다행이라 해야 하나?"

 

  오죽 가진 게 없었으면 강도가 그냥 버리고 갔을까?

  내 앞에 앉은 이 사내가 그만큼 고단하고 쉽지 않은 여정을 선택했다는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가 있다.

  고개를 까딱해 보인 진이는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를 머금었다.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진이만의 긍정의 표시였다.

  실눈을 뜨고 고기를 살펴보던 진이는 곧 맛깔나게 구워진 갈비 한 쪽을 내 앞접시에 덜어주었다. 역시 진이가 구운 고기는 때깔이 다르다. 윤기가 흐르잖아.

 

 "그때 다시 한번 깨달았지. 순례길에서는 가방에 든 게 많을수록 더 힘들다는 걸."

 "음."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걸어도 결국 목적지에는 똑같이 도착하더라고."

 

  순례자는 매일 숙소를 옮겨야 하기에 등에 멘 가방 하나가 한 달의 삶을 결정한다.

  때로는 편의를 위해 하나씩 더 챙긴 물건이 어느 순간 짐 혹은 위협이 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하루 평균 20km가 넘는 산과 평지를 걷다 쉬다 또 걷는 것이 순례자의 일상이다. 그 일상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등에 얹어진 짐의 무게가 버겁게 느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건강히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서 꼭 필요하지 않은 짐은 버리는 게 맞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편의인 것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필수가 되니 어느 하나가 꼭 바르다고 할 수도 없다.

  그것이 순례길 위의 삶의 무게이고, 우리의 삶의 무게이다. 가방의 무게를 줄이고, 빈 공간의 여유를 누릴 줄 아는 것. 어찌 보면 그게 삶의 지혜일지도 모른다.

 

 "아, 누나한테 배워간 스페인어 잘 썼어."

 "잘 사용해주었다니 고맙다."

 "누나가 먼저 갈 줄 알았더니 내가 먼저 갔네."

 "그래서 지금 부러워 죽을 지경이다."

 

  내가 스페인에서 돌아왔을 때까지만 해도 사운드 엔지니어로서 한창 작업을 하고 있던 진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머리를 식혀야겠다며 무작정 스페인어를 알려달라고 찾아왔다.

  나는 이 녀석이 정말 산티아고로 떠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하지만 다음날 보여준 것은 분명 스페인으로 떠나는 편도 비행기 티켓이었다.

  아무리 직장에 매여있는 몸이 아니라지만 하던 음반 작업을 두고 훌쩍 떠나기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텐데.

  아, 갑자기 아까 상현 선생님과 한 통화내용이 떠올랐다. 분명 진이에게 소개해주고픈 엔지니어를 섭외했다고 했다.

 

 "진아. 너 내년쯤에 캐나다로 공부하러 갈 거라고 했지?"

 "응. 맞아."

 "내가 어쩌다 보니 작곡가 한 분을 알게 됐는데 너랑 비슷한 엔지니어를 알고 있다면서 한번 만나보면 좋겠다고 하셨어."

 "나를?"

 "응. 인디밴드 작업을 하는 사람인가 봐."

 

  진이가 입으로 가져가려던 갈비를 도로 내려놓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천장에서 내려온 조명이 머리 위에 닿으니 붉은빛이 도는 초콜릿 색이 더 선명해졌다.

  스페인의 태양이 만들어낸 구릿빛 피부 때문에 자칫 위협적으로 보일 수 있는 표정을 하고서 한참 생각한 진이는 답이 나오지 않는지 태평양 같은 어깨를 으쓱했다.

 

 "이쪽에서 웬만한 엔지니어는 알고 있는데. 누구지?"

 "나도 궁금해. 진이 너랑 비슷한 엔지니어라니 대단할 것 같아. 나중에 만나게 되면 알려줄게."

 

  우리는 다시 식사로 돌아갔다. 약 한 달 만에 한식을 먹게 된 진이는 입술을 얼얼하게 하는 붉은 갈비뿐 아니라 기본 반찬까지도 깨끗하게 비워냈다.

  녀석, 맛나게 먹는 모습을 보니 내 배가 다 부르네. 이렇게 잘 먹는 만큼 건강미가 넘치는 우리 진이.

  대학 동아리에서 만난 이후 나는 항상 진이에게서 도움을 받아왔다. 이번에는 내가 도움을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벌써 가슴이 설렌다.

 

 

 *

  열흘 뒤, 강남에 위치한 상현 선생님의 녹음 스튜디오.

  나는 7월의 시작을 알리는 따가운 햇볕을 피해 지하 스튜디오로 달려 들어갔다. 유리를 감싼 철제 손잡이를 잡아당기자 차가운 공기가 얼굴에 부딪혔다.

  피부에 와닿는 서늘한 에어컨 공기에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에어컨 바람 소리만 가득한 컨트롤룸 안에는 아직 아무도 도착하지 않은 듯했다.

  나는 고민 없이 소파로 향했다. 그때, 등 뒤에서 커다란 두 개의 팔이 나타나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누나!"

 "어, 진아? 네가 왜 여기 있어?"

 

  내게는 너무나 익숙한 중저음의 목소리가 오늘은 아주 약간 공중에 떠 있다.

  나는 목소리의 주인공의 두 팔에 가둬진 채로 고개만 돌렸다. 진이는 나를 안은 채 어깨를 으쓱했다. 길게 늘어진 입가에 맺힌 미소가 진이의 기분을 대변해주었다.

  진이의 뒤에서 상현 선생님의 얼굴이 빼꼼 튀어나왔다. 안경 뒤 두 개의 작은 초승달은 저번에 만났을 때와 다름없었다.

 

 "어라, 둘이 아는 사이야? 그럼 저번에 말한 그 엔지니어가 진이였어?"

 "그런가봐요, 형."

 "우와, 우리 진이 대단하네. 상현 선생님이랑 작업도 하고."

 

  너른 품에서 나온 나는 기특한 마음에 손을 뻗어 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진이가 내게로 고개를 기울여주자 짧게 쳐올린 머리카락의 까슬한 감촉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때, 내 뒤에서 진이와는 다른 미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도 왔습니다."

 "아, 왔어요?"

 

  음성의 주인공은 밀가루였다. 드라마 촬영이 막바지라 한창 바쁘다고 했던 그였다. 분명 어젯밤에는 오늘 오지 못할 것처럼 말했는데.

  촬영을 마치고 왔음을 증명하듯 그는 한동안 인터넷을 달군 건우패션으로 등장했다. 흰 면바지에 7부 길이의 연청색 남방의 소매를 걷어 올린 그는 한결 시원해 보였다.

  특히 단추를 두세 개쯤 풀어놓은 남방 안쪽의 흰 셔츠, 오렌지색의 벨트와 같은 색상의 로퍼로 포인트를 주어 보는 사람까지 산뜻한 기분이 들게 했다.

  지금 당장 건우를 따라 강릉의 바다로 떠나고 싶게 만드는 모습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문도준입니다."

 "최진입니다."

 

  내게 가볍게 눈인사를 한 밀가루가 진이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 때문에 진이의 머리에 닿아있던 내 손은 자연스레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평균 185cm에 달하는 장신의 두 남자가 악수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고개가 아파져 소파 앞으로 돌아왔다.

  상현 선생님과 진이가 콘솔 앞에서 작업에 대해 의논하는 모습을 보고 있는 사이, 달콤한 향기가 성큼 다가왔다. 기척도 없이 나타난 밀가루가 내 옆에 서 있었다.

  팔짱을 낀 그가 턱짓으로 저 앞에 있는 진이를 가리키며 물었다. 표정은 잘 다듬었지만, 목소리에 돋힌 뾰족뾰족한 가시까지 감추지는 못했다.

 

 "사람들 다 있는데 성인남녀가 막 끌어안아도 돼요?"

 "우린 원래 이렇게 인사해요."

 "애도 아니고."

 "그래도 진이가 문도준 씨보다는 두 살 형이랍니다."

 

  '흥, 두 살 차이 가지고.'라는 중얼거림을 나는 똑똑히 들었다.

  이노무 시키가! 사회에서 두 살이면 차이가 얼마인데. 군대도 안 다녀온 녀석이 말이 많네.

  나는 녀석의 중얼거림을 무시하고 소파에 풀썩 앉았다. 나를 따라 옆자리에 앉은 밀가루가 내 팔을 잡고 끌어당겼다. 가만히 앉아있던 나는 속절 없이 끌려갔다.

 

 "아, 왜요?"

 

  한참 동안 나를 노려본 그가 붉고 도톰한 입술을 내 귀에 가져다 댔다. 부드러운 그의 머리카락이 간지럽히는 자리가 괜히 신경 쓰인다.

  잠시 뒤, 한숨을 닮은 작은 숨결과 함께 그가 입을 열었다. 누가 듣기라도 할까 한껏 낮춘 목소리로 속삭였다.

 

 "명의뿐이지만 우리 지금 사귀는 사이라는 거 잊지 마요."

 "그렇죠. 명의뿐이죠."

 "무슨 뜻이에요, 그 말?"

 "말 그대로 내 행위까지 간섭할 수는 없다는 거예요."

 

  밀가루가 마치 뭐에 맞은 듯 벙찐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아, 가슴이 뻥 뚫리는 노래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이 얼굴을 사진으로 찍어서 인터넷에 올려버릴까? 제목은 '반도의 흔한 정신 나간 아이돌.jpg'가 좋겠어.

 

 "진짜 너무하네."

 

  너야말로 너무하지. 명의만 빌려줬더니 뭘 더 바라는 거야? 어디서 세 살이나 많은 누나한테 약을 팔려고 해.

  하얀 얼굴에 자리 잡은 붉은 입술이 잔망스럽게 튀어나온다.

 

 "또, 또! 어휴, 정말 다섯 살짜리 애도 아니고."

 

  나는 주머니에 있던 사탕 하나를 꺼내 밀가루의 손바닥에 올렸다.

 

 "입 집어넣고 이거나 먹어요."

 "이게 뭔데요?"

 "박하사탕."

 

  나는 박하사탕이라고 친절히 이름까지 알려줬다. 그럼에도 밀가루는 손바닥 위에 올려진 하얀 사탕을 멀뚱히 쳐다보고만 있다.

  뭐지, 박하사탕 안 좋아하나?

 

 "혹시 새우에 이어 박하 알레르기까지 있는 거예요?"

 "아니에요. 별로 좋아하지 않을 뿐이에요."

 "그럼 줘요. 진이 줘야지."

 

  사실은 어제 마트에서 우연히 박하사탕을 보다가 하얗고 동그란 이 남자가 생각나 구입한 것이었다. 하얀 셔츠가 참 잘 어울리는 흰둥이 문도준.

  게다가 입안에 넣자마자 퍼지는 시원한 향과 달콤한 맛은 탄산수를 가득 넣은 레모네이드를 닮은 그의 미소를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싫어한다면 어쩔 수 없지. 나는 그의 손에서 박하사탕을 도로 회수했다. 그러자 그가 벌처럼 빠른 손놀림으로 사탕을 낚아채 갔다.

 

 "줬다 뺏는 게 어딨어요? 내가 먹을 거야!"

 

  그리고는 번개같이 포장지를 벗기고 하얀 알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좋아하지 않는다더니 아드득 아드득, 소리를 내며 잘도 씹어 먹는다.

  뭐야, 박하사탕 안 좋아한다며? 정말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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