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3호 현관문 앞에 도착한 경일이 심호흡했다.

　"후우...들어가자"

　"..예"

　경일이 굳어있는 준혁의 표정을 보고 말한다.

　"준혁아, 단순히 아이 엄마 한번 만나보는거야. 절대 흥분하지마라. 무슨 말인지 알지?"

　"압니다"

　망설임없이 대답하는 준혁을 보며 경일이 피식 웃었다.

　"좋아. 들어가자"

　띵동

　경일이 1203호 초인종을 눌렸다.

　"...뭐야? 아무도 없어?"

　띵똥

　"하, 여기까지 왔는데 헛빵이야? 어?"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경일이 초인종을 연속해서 눌렸다.

　쾅쾅쾅

　"계십니까? 아무도 안계세요?"

　문을 두드려도 아무런 인기척이 없는 모습을 보며 경일이 한숨 쉬었다.

　"하아..아무래도 헛빵..."

　딸칵

　"...누구세요?"

　40대 초반의 여자가 살며시 문을 열며 물었다.

　"...오재희씨?"

　"예, 제가 오재희가 맞는데요. 누구세요?"

　오재희의 대답에 경일이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공무원증을 보여준다.

　"마산북부경찰서 형사팀에 근무하고 있는 한경일 경사라고 합니다. 잠시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오재희가 놀라 눈을 치켜뜬다.

　"네? 형사요? 형사님이 왜..."

　"아 크게 걱정하실만한 일은 아니구요. 여기서 얘기하기는 좀 그럴 것 같은데..."

　잠시 생각하던 오재희가 대답한다.

　"...들어오세요"

　오재희가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자 경일이 곧바로 뒤따라 들어갔다.

　경일과 함께 현관문으로 들어가려던 준혁이 멈칫한다.

　우우웅

　주머니에서 울리는 진동소리에 준혁이 휴대폰을 꺼내 확인한다.

　김희연 : 이미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고 민채린 양의 이모 오경옥이 민채린 양을 맡아 키울 당시 그 집에 8명의 대인원이 살았던 것으로 보임. 아이 4명과 어른 4명으로 추정. 정확한 인적사항은 확인되는대로 1)즉보하겠음.

　카톡을 확인한 준혁이 휴대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들어갔다.

　준혁이 집 안으로 들어갔을 때는 재희와 경일이 주방 테이블에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 뭔가 마실거라도..?"

　"아 괜찮습니다"

　재희의 물음에 경일이 사람좋게 웃어보이며 손사래쳤다.

　"아 네.. 그런데 아까 마산 어디 경찰서라고 하셨죠?"

　"예, 마산북부경찰서입니다"

　"마산에 있는 형사님들이 왜 여기까지..."

　"아 그건..."

　어디서부터 설명해야할까 고민하며 대답하는 경일의 말을 준혁이 중간에서 끊는다.

　"오재희씨, 당황스러우시겠지만 무례를 무릅쓰고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

　"민채린양, 지금 어딨습니까?"

　"...!"

　준혁의 말에 재희가 소스라치게 놀라 되묻는다.

　"저희 채린이를 어떻게... 아니.. 채린이한테 무슨 일이 생겼나요?"

　재희의 신체반응에 집중하던 준혁이 대답한다.

　"죽었습니다"

　"...!"

　"야 조준혁!"

　순간적으로 할말을 잃고 멍하게 있는 재희를 보며 경일이 소리친다.

　"오재희씨, 2010년에 민경우씨와 결혼해서 그 해 민채린양을 낳았죠. 그리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어느 시점부터 부부관계가 급속도로 나빠지기 시작했고 결국 2013년 이혼, 그 해에 민채린양을 마산에 있는 언니 오경옥에게 맡겼고 현재까지 그 상태를 유지..."

　"..."

　재희의 반응을 유심히 살피던 준혁이 말한다.

　"여기까지가 서류상으로 확인되는 오재희씨 얘기고"

　툭

　준혁이 자신의 휴대폰을 몇 번 조작하더니 테이블에 내려 놓았다.

　준혁의 휴대폰 액정화면으로 시선을 돌린 재희의 눈이 거칠게 흔들렸다.

　"민경우씨.. 지금 어디있습니까?"

　준혁의 휴대폰에는 민경우와 오재희가 팔짱을 낀 채 다정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야.. 이걸 어떻게?"

　"아까 출발하기 전에 오재희씨 주소지 알아보는 과정에서 제 나름대로 이것 저것 확인해보다가 발견했습니다. 혹시나 주소지만 이 쪽으로 해놓고 실제로는 다른 곳에 사는 게 아닌가 걱정되서 오재희씨 연락처로 SNS 같은 거 하는게 있는지 알아봤죠. 그랬더니"

　준혁이 턱짓으로 휴대폰을 가리켰다.

　"보시는대로 아직까지 저렇게 만나고 있는거죠. 혹시나 발뺌할 생각은 하지 마십쇼 오재희씨. 사진에 있는 사람이 민경우씨가 맞다는 것도 우리 조회시스템으로 확인했고, 사진을 찍은 날짜가 재작년인 것도 이미 다 확인했으니까요"

　"..."

　"뭐야? 그럼 이혼하고도 계속 만나고 있다는거야?"

　경일의 물음에 준혁이 대답한다.

　"행님도 이런 상황 많이 봤잖아요? 형식적으로 서류상 이혼만 해놓고 실제로는 계속 동거하는 경우, 열에 아홉은..."

　"채무회피를 위한 가짜이혼?"

　경일의 대답에 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민경우씨가 운영하던 회사가 갑작스럽게 부도가 났고 그 빚을 민경우씨가 고스란히 떠안게 되었죠. 도망자 신세가 되어 궁지에 몰린 민경우씨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가족을 살리고 자기 혼자 도망자 신세가 되는 것, 그것을 위한 가짜이혼..."

　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오재희씨도 아이한테까지 무거운 짐을 지게 하고 싶지는 않았겠죠. 그래서 흔쾌히 이혼에 동의했을 것이고.. 제 말이 틀린가요?"

　준혁의 말을 듣고만 있던 재희가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흑...으흑....끅... 죄송... 죄송합니다"

　그런 재희를 준혁이 빤히 바라보았다.

　"저도... 저희도 어쩔 수 없었어요. 남편이 회사가 망하기 직전까지 빚을 메꾸기 위해 돈을 여기저기 끌어다 썼다보니, 부도가 났을 때 빚이 어마어마하게 불어 있었어요. 흑.. 직원들은 다 도망가고 그 빚을 남편이 고스란히 떠안게 되었죠"

　오재희가 눈물을 흘리며 계속 얘기했다.

　"형사님 말씀대로, 단순히 이혼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면.. 채린이를 언니에게 맡기지는 않았겠죠. 그 사람들은 저와 남편이 이혼한 사실을 알고도 지속적으로 저희 집에 찾아와 저와 채린이를 괴롭혔어요"

　"..."

　"그 사람들한테는 어린 채린이를 보면서도 어떻게 하면 저 아이에게서 돈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뿐이었죠. 그래서 저도 어쩔 수 없이.. 어쩔 수 없이 채린이를 언니에게 맡기게 된거에요. 제가 믿을만한 사람이 언니 밖에 없었으니까"

　"...그래서요?"

　준혁의 물음에 잠시 얼굴을 감싸쥐던 재희가 대답했다.

　"사실 언니에게 채린이를 맡긴 이후, 저는 한 번도 채린이를 보지 못했어요. 가끔 언니한테 전화하면서 목소리는 들었죠. 하지만 아이아빠는 1달에 1번씩은 언니 집에 찾아갔던 것 같아요. 양육비라도 보태 줄겸 채린이 얼굴도 볼겸 겸사겸사..그런데.."

　"..."

　"언제부턴가.. 언니에게 전화를 해도 채린이가 아파서 통화를 못한다는 얘기만 하면서 전화를 바꿔주지 않더라고요. 아이 아빠도 그 시점부터 채린이에 대한 얘기를 전혀 하지 않고..."

　"..."

　"그래서 대충 짐작한거에요. 채린이가 정말 아프거나...흑... 이미 죽었거나"

　재희가 다시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재희를 바라보던 준혁이 물었다.

　"...그 때가 대충 언제입니까? 그리고...민경우씨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잠시 눈물을 멈춘 재희가 말한다.

　"흑.. 아마 작년 초 즈음부터 채린이 목소리를 듣지 못했던 것 같아요. 애기 아빠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 때 어디 멀리 여행을 간다고 했는데, 그 이후로 저도 한 번도 보지 못했으니까요...흑...흑..."

　"...잘 알겠습니다. 행님, 혹시 더 궁금한거 있습니까?"

　"...아니... 지금은 없어"

　준혁이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재희에게 건냈다.

　"제 명함입니다. 혹시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시고, 저한테 오는 전화는 꼭 받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흐느껴 우는 재희를 뒤로하고 준혁과 경일이 집 밖으로 빠져 나왔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경일이 준혁에게 물었다.

　"오재희씨는... 애가 학대 당해서 죽은 건 모르는 것 같지?"

　"..."

　"...하아... 이제 뭘 어디서부터 수사를 해봐야 하지?"

　"..오재희가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뭐?"

　"오재희... 거짓말을 하고 있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