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거짓말?"
경일의 물음에 준혁이 대답한다.
"오재희는 민채린양이 죽은 것을 이미 알고 있었어요"
"뭐?"
"마치 대충은 짐작을 했다는 식으로 얘기하지만.. 민채린 양이 죽은 것을 이미 알고 있었어요. 그것도 비교적 자세히"
"야, 나 지금 니가 무슨 말 하는지 전혀 모르겠거든. 자세히 얘기해봐"
오재희의 신체반응이라고 얘기하려던 준혁이 멈칫했다.
교통사고 직후 자신의 신체변화를 다른 사람에게 얘기했다간 미친놈 취급받기 딱 좋았으니까.
잠시 생각하던 준혁이 말한다.
"아까 민채린 양이 죽었다는 사실을 오재희한테 말할 때 기억나요?"
"그래. 순간 혼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게 있는게 얼마나 안쓰러워 보이던지 내가 다..."
"행님"
경일의 말을 중간에서 끊은 준혁이 계속 얘기한다.
"한가지 예를 들게요. 이런 상황에 딸을 예로 든다고 너무 기분 나빠 하지는 마시구요"
경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입장바꿔 놓고 생각해봐요. 행님 딸 시은이, 만약에 행님이 어쩔 수 없이 시은이와 떨어져 사는 상황에서 1년째, 아니 한달째 아무런 연락이 되지 않으면 제일 먼저 어떻게 행동할겁니까?"
한시은은 경일의 4살배기 어린 딸로 평소 심심하면 경일이 주구장창 딸자랑을 해왔었다.
"..."
경일이 무언가 깨달았는지 침묵했다.
"피치못할 사정으로 다른 집에 맡겨 놓은 아이가 한달 째, 아니 일년 째 연락이 되지 않고 있다? 보통의 부모들이라면 직접 아이를 보러 가겠죠. 아파서 병원에 있다면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병원에 직접 가는게 정상이고, 갑자기 사라졌다면 112에 신고를 했다던지 다른 조치를 취했겠죠"
"..."
"그런 노력조차 하지 않고 단순히 아이가 아프거나 죽었을 것으로 짐작했다?"
"...빚쟁이한테 쫓겨서 피치못하게 못 갔던 것은 아닐까? 혹시나 빚쟁이가 따라붙어서 아이한테 피해가 갈 수 있는 상황이 생긴다면.. 그건 그거대로 곤란하잖아? 그 독한놈들이 서류상 이혼했다고 가족들을 가만히 내버려 둘 사람들도 아니고"
"그럴 수도 있죠"
"뭐야 그럼 그냥 니 직감.."
준혁이 경일의 말을 끊었다.
"행님"
"...?"
"아까 제가 얘기했죠?"
"뭘?"
"입장 바꿔 놓고 생각하자고"
"..."
"만약 행님이 1년 째 시은이를 보지도 못하고 연락조차 되지 않는 상황에서 경찰이랍시고 시커먼 남자 둘이 찾아와서 다짜고짜 딸이 죽었다고 얘기한다면..."
"...!"
충격받은 듯한 경일의 표정을 보며 준혁이 말을 계속 한다.
"일반적인 부모라는 가정하에 오재희가 보여야할 반응은 둘 중 하나에요"
말을 마친 준혁이 경일의 멱살을 잡는다.
"이렇게. 개소리 하지마라고 화를 내거나"
준혁이 경일의 멱살을 놓았다.
"오열하거나"
"...너무 단정짓듯 얘기하는거 아냐? 사람의 반응이야 누구냐에 따라 다를 수도 있는거잖아?"
'제 직감이에요' 라고 말하려던 준혁이 말을 삼켰다.
"...행님 말도 맞아요. 하지만"
"...?"
"최소한 딸이 죽었다는 얘기를 들은 엄마가 앞에 있는 형사들이 '남편은 어딨니, SNS가 어쨋니' 하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만 있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
"너무 침착했어요. 오재희"
"..니 말은 오재희가 아이의 죽음에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관계가 있다. 이 말이냐?"
"심증일 뿐이지만요"
"그럼 우리가 지금부터 여기서 해야할 건..."
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민경우를 찾아야죠. 오재희가 아이의 죽음에 관여했다면... 민경우도 공범일 확률이 높으니까"
잠시 생각하던 경일이 말한다.
"출입국사실조회부터 시작해서 민경우 소재파악할 수 있는 건 다 확인해봐야겠네. 여기서 제일 가까운 경찰서가 어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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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북부경찰서 형사팀 사무실.
희연과 병재의 맞은편 자리에 각각 여자가 1명씩 앉아 있었다.
"박미현씨?"
희연이 맞은편에 앉아 있는 박미현을 불렀다.
"아, 네"
불안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미현을 보며 희연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너무 불안해 하지 않으셔도 되구요, 몇 가지 묻는 거에만 대답해주시면 금방 끝날거에요. 커피한잔 드릴까요?"
희연의 물음에 미현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미현의 대답에 희연이 멋쩍게 웃었다.
"하하.. 그렇게 긴장 안하셔도 되는데... 그럼 먼저.. 오경옥씨 알고 있죠?"
"..네 알고 있어요"
"어떻게 알고 있죠?"
"제가 일하던 옷가게 사장님이었어요. 지금은 그만뒀지만요"
미현의 대답에 희연이 병재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박경숙을 바라본다.
"옆에 있는 박경숙씨도 같은 옷가게 직원이었나요?"
"..예"
미현의 대답에 키보드를 두드리던 희연이 다시 물었다.
"미현씨?"
"..네?"
"여기 서류상으로 미현씨가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간 오경옥씨 집에 거주했던 것으로 확인되는데 맞나요?"
희연이 미현의 주민등록초본을 내밀며 물었다.
"..예, 맞아요"
"옆에 있는 박경숙씨도 그 무렵부터 그 집에서 같이 살기 시작한 것, 맞나요?"
희연이 또 다른 서류를 내밀어 보여주며 물었다.
"예...경숙이 언니도 그 집에서 같이 살았어요"
희연의 물음에 대답하던 미현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희연이 계속 물었다.
"왜 아무런 혈연관계도 없는 오경옥씨 집에서 3년이나 같이 살았죠? 옆에 있는 박경숙씨도 마찬가지구요"
"..저랑 경숙이 언니를 포함해서 그 집에 같이 살던 사람이 1명 더 있었어요. 모두 사장님이 운영하는 옷가게 직원들이었죠. 직원 3명 모두 처지가 비슷했어요. 저는 3살배기 딸 하나 딸린 과부, 옆에 있는 경옥이 언니도 5살, 6살짜리 아들이 2명이나 있는데 남편은 도박으로 있는 돈 다 까먹고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죠. 나머지 1명은.. 다방에서 겨우 용돈벌이나 하던 아이였구요"
"..."
"저희 사정을 딱하게 여긴 사장님이.. 자기 집에서 다 같이 살면 어떻겠냐고 하더라구요. 50평이나 되는 아파트에 사장님 혼자 살고 있었으니까요. 방이 4개나 있었기 때문에 8명 모두 살기에는 충분했어요. 그정도로 넓었..."
"잠깐, 잠깐만요"
미현의 말을 희연이 중간에 끊었다.
"방금 8명이라고 했죠?"
희연의 말에 미현의 얼굴이 더 일그러졌다.
"...네"
"오경옥씨랑 박미현씨, 옆에 있는 박경숙씨와 다방하던 직원분 이렇게 4명. 미현씨의 딸이 1명, 박경숙씨의 아들이 2명. 말씀하신건 총 7명인데 8명이라니, 나머지 1명은..."
이제는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박미현을 보며 희연이 물었다.
"박미현씨"
"..."
"민채린양. 지금 어디있죠?"
민채린이라는 이름에 몸을 부르르 떨던 박미현이 고개를 숙인채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