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
용진이 손벽을 쳤다.
"자, 여기까지 내용 중에 질문 있나?"
준혁이 슬며시 손을 들었다.
"막내. 뭔데?"
"저.. 그럼 아이는 이미 죽었다고 봐야 될까요?"
준혁의 물음에 용진이 쓰게 웃었다.
"확실한건 아무것도 없어. 아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혹은 학대를 당한건지 단순히 집을 나간건지. 전부 우리가 지금부터 수사를 해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이고, 가장 중요한건 내가 아까 말했지?"
용진의 물음에 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 눈으로 보기 전까지 절대 선입견을 갖지 않는다"
"역시 요즘 들어온 애들이라 그런지 똑똑하네, 또 질문있나?"
준혁의 대답에 만족한 용진이 다시 물었다.
"아이 이모 집에 다른 사람이 살고 있습니까?"
병재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건 아직 몰라. 우리가 가봐야 알겠지만 교육부 직원이 아이 이모 집에 방문했을 때는 이모 말고 아무도 없었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신발이 제법 많았다고 하는 거라고 봐서는 다른 사람들도 살고 있을꺼라 추측은 하고 있어"
"..."
"질문 더 없지?"
"예"
용진의 물음에 형사2팀 전원이 대답했다.
"그럼 회의는 이걸로 끝. 한동안 갖고 있는 다른 사건은 제쳐 두고 이 사건에만 집중해, 우선 병재랑 희연이"
"넵"
"너희는 여청수사팀이랑 같이 움직여. 일단 그 쪽이 담당이고 우리는 어디까지나 보조니까 너무 나서지는 말고"
"알겠습니다."
"아마 그 쪽에서 아이 이모한테서 특별히 알아 낼 수 있는 것들이 없으니까 아이 이모 주변인물들 상대로 1)탐문수사부터 할거야"
"맡겨주세요. 그 이모의 사돈에 팔촌까지 모조리 조사할테니까"
희연이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좋아, 그 다음 경일이랑 준혁이"
"예 팀장님"
"너희 조는 지금 바로 용인으로 올라가서 아이 부모들 만나봐. 여청에서 아무리 그 쪽에 전화해도 받지를 않는다고 하니까 주민등록상 등록된 주거지에 직접 가보면 될거야"
"알겠습니다"
"곧 여청팀장이 교육부 직원 상대로 참고인 조사 받는다니까 난 거기 같이 동석해서 얘기하는거 직접 들어봐야 겠다, 특이사항 있으면 팀 카톡방에 바로바로 올리도록. 질문?"
"..."
"없지? 바로 시작하자. 해산!"
"행님"
운전석에 오르며 준혁이 조수석에 오르는 경일을 불렀다.
"와?"
"아이.. 죽었겠죠?"
"..."
경일이 침묵하자 준혁이 계속 얘기했다.
".. 대체 그 어린아이가 무슨 잘못이 있죠? 무슨 큰 잘못이 있어서 아이를 때리고, 학대하고, 죽이는지 전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아요. 평택 사건도 그래요."
"준혁아"
"그 사건.. 아마 남자가 이혼을 하고 혼자 아이를 데리고 살던 중에 새로운 여자와 재혼하게 되면서 생긴 일이었죠? 아이의 새엄마가 된 여자는 자기 피붙이가 아닌 아이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매일 굶기고 때리고 집어 던지고...그 미친.."
"준혁아"
경일이 준혁의 말을 끊고 다시 준혁을 불렀다.
준혁이 침을 한 번 삼키고 다시 얘기한다.
"그 미친 여자가 사람의 탈을 쓰고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죠? 아이는 무슨 죄죠? 미친여자를 만난 죄? 빌어먹을 운명? 그것도 아니면 새엄마가 때려도 제대로 표현도 못하고 실실 웃기만 하던 그 아이의..."
"조준혁!"
경일의 외침에 잠시 멈칫한 준혁이 다시 말한다.
"그냥...그냥... 아이가 너무.. 불쌍하잖아요.."
"하아.."
준혁의 말에 한숨 쉰 경일이 얘기했다.
"준혁아. 수사관은, 형사는 절대 감정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해서는 안돼. 니 판단 하나에 죄 없는 사람이 수갑찰 수도, 죄 있는 사람이 무혐의로 풀려날 수도 있어. 그래서 팀장님도 항상 강조하는거야. 절대 선입견을 가지지 마라, 수사를 해서 직접 눈으로 보고 들은 것만 보고 판단해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는 얘기잖아?"
"..."
"아직 밝혀진건 아무것도 없어. 아이가 죽었다? 아니. 우리는 아이 시체를 보지도 못했어, 심지어 아이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라. 아이가 학대를 당했다? 보지도 못한 아이가 학대를 당했는지, 안당했는지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지? 아직 밝혀진 건 아무것도 없어, 전부 니 추측일 뿐이지"
"..."
"그걸 지금부터 우리가 직접 알아보기 위해서 위에 올라가는거잖아? 시작도 하기 전부터 너무 감정에 휘둘리지마라"
"...예. 너무 흥분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잠시 준혁을 바라보던 경일이 한숨 쉬었다.
"하아.."
"..."
"준혁아"
"...예"
"이런 말 혹시 들어봤냐?"
"...?"
"여기"
경일이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가리킨다.
"머리는 차갑게"
다시 경일이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가리킨다.
"가슴은 뜨겁게"
"..."
"니 생각이, 니 마음이 절대 나쁘다는 건 아니야. 단지 한 사람의 수사관으로서 수사를 할 때만은 머리를 차갑게, 냉정함을 잃지 말고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봐야 진실을 밝힐 수 있다는 말이지. 하지만 냉정함만으로는 절대 1등 수사관이 될 수 없지"
경일이 한 쪽 눈을 찡긋 감았다.
"만약 니 말대로 아이가 학대를 당했거나 그 학대 때문에 아이가 이미... 죽었다는 정황을 우리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된다면..."
"..."
"그 때는 가슴에 있는 열정을 뜨겁게 불태워야지. 하늘에 있는 아이가 죽어서라도 편히 눈감을 수 있게, 그 개새끼들.. 우리 손으로 직접 집어 쳐넣어서 죗값을 치르게 해야지"
잠시 창 밖을 바라보던 경일이 다시 준혁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그게 형사잖아?"
3시간 30분을 달려 용인시 기흥구에 도착한 준혁이 수면안대까지 착용하고 자고 있는 경일을 불렀다.
"행님"
"..."
"행님!"
준혁이 버럭 소리치자 경일이 깜짝 놀라 일어났다.
"어후, 씹....뭐야? 무슨 일이야?"
경일이 수면안대를 이마로 밀어 올리며 말했다.
"도착했어요"
"아 벌써?"
기지개를 켜는 경일을 보며 준혁이 얘기한다.
"근데 행님.."
"끄응...왜?"
"폼이란 폼은 있는대로 다 잡아놓고 너무 귀여운 수면안대 쓰는 거 아닙니까?"
"와이프거야. 와이프거"
경일이 자신의 딸기땡땡이 수면안대를 주머니에 슬쩍 집어 넣으며 말했다.
"그거 형수님 취향 아닌 것 같..."
"쓸대없는 소리 하지말고 어디야?"
급하게 말을 끊는 경일을 잠시 바라보던 준혁이 대답한다.
".. 여깁니다"
준혁이 자동차 앞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아파트를 보며 대답했다.
"몇동 몇호?"
"101동 1203호요"
"엄마? 아빠?"
"아이 엄마, 오재희 집입니다"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하고 시동을 끄는 준혁을 보며 경일이 차에서 내렸다.
"속전속결"
"..."
"따라와. 바로 올라가자"
101동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려던 경일이 멈칫한다.
"이거 비밀번호 있는데?"
"경비실 호출할게요"
준혁이 경비실 호출버튼을 누르고 경찰관이라는 말에 헐레벌떡 뛰어온 경비원이 준혁의 신분증을 확인하더니 곧바로 문을 열어줬다.
우우웅
엘리베이터를 타고 12층으로 올라가던 준혁이 주머니에서 울리는 진동소리에 휴대폰을 꺼내 확인한다.
"..행님"
"왜?"
"애 죽었답니다"
"뭐!?"
엘리베이터 거울을 보며 머리를 메만지던 경일이 놀라 준혁을 뒤돌아본다.
"여기 팀 카톡방.."
경일이 곧바로 준혁의 손에서 휴대폰을 뺏어 액정을 바라본다.
김희연 : 아이 이모와 같이 살던 참고인 진술 확보, 4살 무렵 이모집에 맡겨진 이후 3년간 지속적인 학대가 있었던 것으로 보임, 7살 무렵 아이 사망 추정
".....씨팔"
경일이 욕설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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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탐문수사 : 범죄현장에서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의류·신발·모자 등의 제조업체, 판매자 등을 찾아 소유자를 찾아 수소문하는 수사활동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