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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무협물
학사무림
작가 : 봉황송
작품등록일 : 2016.3.28

학사의 무림행 이야기

 
학사무림 1장
작성일 : 16-04-06 13:47     조회 : 686     추천 : 0     분량 : 7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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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이번에 새롭게 부임한 점주님 알고 있지?”

 한상운이 의자에서 일어서면서 입을 열었다.

 “저도 귀가 있어서 들었지요.”

 최근 사해서고의 점주가 교체되면서 커다란 폭풍이 일었다. 대륙십대상단 가운데 하나인 사해상단에 소속되어 있는 사해서고이다. 상단주의 손녀들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능력있다는 고은미가 점주로 올라섰다.

 내심 점주의 위치를 바라보고 있던 한상운은 착잡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곁에서 지켜보면서 고은미의 깔끔하고 능수능란한 일처리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분이 친우인 하북팽가의 팽설에 대해서 특별히 부탁한 거야. 그래서 내가 능력이 출중한 너를 추천했지. 그분도 자네라면 좋다고 하셨어.”

 개별적인 인맥이 작용하기도 했지만 임학후의 능력은 발군이었다. 태산서원이라는 간판과 뛰어난 학식 그리고 수많은 고서들을 해독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문자를 알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뛰어난 능력의 임학후가 어찌 계속하여 박봉의 사해서고에 있는지 의문이었다. 사해서고가 괜찮은 일자리인 것은 틀림이 없지만 임학후라면 더욱 높고 좋은 일자를 얻을 자격이 충분했다.

 가만히 있어도 빛을 발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제가 정중히 거절했다고 말해주세요.”

 “너 왜 이래? 그분이 누구인지 잘 알잖아. 상단주님의 친손녀란 말이야. 힘들게 말해서 승낙을 얻었는데 이제 와서 안 된다고 하면 내 얼굴이 어떻게 되겠냐?”

 한상운이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월급쟁이 인생의 그에게 권력을 지니고 있는 윗사람은 무시무시한 존재였다. 윗사람에게 말했던 내용을 다시 되돌리기란 어렵다. 어떻게든 성사시켜야 한다는 다급함이 넘쳤다.

 “그러기에 왜 부탁하지도 않은 일을 벌이세요?”

 “너에게도 좋은 일이야. 지금처럼 번거롭게 출퇴근을 하지 않아도 되고, 또 하루에 한시진만 가르치면 나머지 시간은 자유라고 했어. 보수 좋고 일 편하니까 네가 공부하기에도 좋잖아.”

 한상운이 필사적으로 임학후를 설득했다.

 상단주의 친손녀인 고은미와 친해져서 나쁠 건 없었다.

 그녀는 일처리도 척척 깔끔하게 잘하고, 성격도 사근사근했다.

 한상운은 상사인 고은미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갖은 열성을 보였다. 빨리 친해질 방법을 궁리하다 고은미가 친구인 팽설의 개인학사를 구한다고 하기에 대뜸 임학후를 추천했다.

 고은미도 임학후에 대해서 들은 바가 있었기에 바로 승낙했다.

 “그다지 좋은 일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아요.”

 “내가 총관에서 잘려도 좋아? 내 둘째 부인이 다섯째를 임신했다는 이야기는 저번에 들어서 알고 있지? 서원에 다니고 있는 첫째와 둘째 학비도 매달 펑펑 들어가고, 병환에 든 노모 약값도 만만치 않아. 내가 지금 총관에서 잘리면 우리 집 쫄딱 망한다.”

 “선배…….”

 한없이 거절하던 임학후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일이 끝나고 간혹 술자리를 가질 때마다 세상살이에 대해서 주절거리는 한상운이었다. 그렇기에 한상운의 집안사정에 대해서 빤히 알고 있었다. 한창 돈이 들어가고 있는데 가장이 직장에서 잘리면 무척이나 위태로울 것이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을 정도로 딱 잘라 거절했지만 실상 마음이 여리고 따뜻했다. 가까운 사람들이 아파하고 상처받는다면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섰다.

 “제발 부탁이다. 이번만 내 처지를 생각해다오. 다음부터는 이런 무리한 부탁을 하지 않을 게.”

 “휴우! 알았어요. 이번만이에요.”

 “고맙다. 정말 고마워.”

 한상운이 임학후의 손을 꼭 잡으면서 말했다.

 거의 강요하다시피 한 부탁에 임학후가 손을 슬며시 빼냈다.

 “팽가에 대해서 준비한 자료들 있나요?”

 임학후가 물었다.

 일을 맡지 않으면 모를까 맡으면 항상 철두철미하게 임하는 성격이었다. 개인학사로 떠나기 전 일해야 하는 무림가문 팽가와 팽설에 대해서 미리 알아둘 필요가 있었다.

 “물론 있지. 네가 간다고 점주님께서 특별히 준비한 책이야. 나중에 고맙다고 인사드려. 사해상단의 대외비라고 하니까 머릿속에 집어넣고 태워버려.”

 한상운이 책상 서랍에서 두툼한 봉투를 꺼내어서 임학후에게 내밀었다. 임학후가 잠시 봉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일을 맡길 심산으로 만반의 준비를 갖췄군요.”

 “유비무환이라고 해줘.”

 미안한 마음의 한상운이 입가에 머쓱한 웃음을 지어내며 고개를 숙였다.

 임학후는 기분이 약간 언짢아졌지만 머리속이 훤히 보이는 대머리 같은 한상운이 고개숙인 모습을 보자니 애잔한 마음이 밀려왔다.

 “가볼게요.”

 “출발일은 내일이라고 점주님에게 보고한다.”

 “알아서 하세요.”

 임학후가 집무실을 나섰다.

 제법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어 닥치고 있었고 하늘에서는 하얀 눈이 폴폴 날렸다. 일을 보고 있는 사이에 땅위에 눈이 제법 쌓여 있었다.

 발자국이 찍힐 만치 쌓인 눈길을 걸었다.

 뽀득! 뽀드득!

 눈이 그의 발밑에서 밟히며 아우성쳤다.

 “팽가의 개인학사라?”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눈을 바라보는 임학후가 중얼거렸다. 바람에 눈들이 어지럽게 흔들리면서 떨어지고 있었다. 눈발 사이로 새색시의 미소처럼 햇빛이 수줍게 내비쳤다.

 책을 벗 삼으며 일하다 강호의 세상에 있는 팽가의 대지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는 사실이 이상야릇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눈길에 나는 발자국처럼 새롭구나.”

 그가 살아오면서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길이었다.

 임학후가 눈발을 맞으며 일터인 공간의 실내로 들어섰다. 의자 등받이에 허리를 붙인 그가 품속에서 봉인된 봉투를 꺼내어 뜯기 시작했다.

 “천으로 만들어진 봉투네.”

 질긴 봉투가 손아귀의 힘으로 찢어지지 않았기에 가위를 손에 들었다. 예리한 가위 앞에 봉투가 서걱 소리를 내면서 잘려나갔다.

 툭!

 봉투 속에서 한 권의 책이 모습을 드러냈다.

 겉표지에 붉은 글씨로 대외비 삼급이라고 적혀 있다.

 “대외비 서적을 보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가 고소를 베어 물었다.

 책은 대륙십대상단 가운데 하나인 사해상단에서 내부적으로 만든 비밀서류라는 이야기였다. 사해상단에서도 위치가 높은 고위직 인사들만 접할 수 있는 아주 비밀스러운 내용을 담고 있었다.

 팔락!

 책을 펼치자 정갈하면서 정성스런 글씨체로 적힌 글귀가 눈에 가득 들어왔다.

 <하북팽가(河北彭家).

 하북성에 위치한 무림세가로 그 역사만 오백 년에 육박한다.

 하북팽가의 기본적인 의복은 흑색이다.

 좌측 가슴에 혼원 혹은 벽력이라는 글자가 수놓아져 있고, 오른쪽 가슴에는 팽가의 상징인 흑호가 수놓아져 있다.

 배분이 높을수록 호랑이의 색이 점점 더 짙어진다.

 장로들은 붉은 눈을 가진 묵색호랑이며, 원로들은 붉은 눈과 이마에 음양무늬를 가지고 있다. 가주는 묵색의 호랑이와 적색의 호랑이가 어우러져 있는 쌍호그림을 수놓고 있다.>

 “눈과 문양, 색으로 배분을 나누고 있군. 쉽게 알아볼 수 있겠어.”

 임학후가 중얼거리면서 책장을 한 장 넘겼다.

 <하북팽가는 천하제일도가이다.

 그들은 도를 사용하는 집단 가운데 천하의 으뜸이다.

 대표적 무력단체로는 혼원벽력대, 천광단, 철혈무적단, 맹호대, 패천흑호대 등이 있다.

 신물로는 가주와 원로원주가 지니고 있는 혼원벽력도와 철혈패권도가 있다.

 혼원벽력도를 지닌 가주는 절대적인 힘을 가지지만 유일하게 철혈패권도를 지닌 원로원주는 장로와 원로들의 의견을 모아 가주의 전횡을 막을 수 있다.>

 “황제의 폭주를 신하들이 막는 것과 비슷한 구조군.”

 임학후의 중얼거림과 함께 책장이 또 넘어갔다.

 <하북팽가는 백여 년 전 고금제일마인 혈마와 대적했다가 멸문에 가까운 참화를 당했다. 숭고한 희생이었지만 그 여파로 백도무림칠대세가의 위치에서 물러났다.

 백여 년 동안 절치부심하여 가문의 성세를 다시금 끌어올리는 중이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백도무림칠대세가의 지위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

 팽가는 대대로 근골이 훌륭한 자손들이 많이 태어난다. 하지만 공평한 하늘은 모든 걸 주지 않는 법이다. 체구가 크고 신력을 타고난 인재들이지만 대체로 두뇌가 총명하지 않다.

 전형적인 다혈질 투사들의 집안이다.>

 임학후가 서적의 글귀를 조용히 읽으면서 책장을 한장 넘겼다.

 <제십칠대가주 팽무전에게는 두 명의 부인이 있고, 세 명의 자식이 있다. 제일부인 팽은화가 두 명의 아들을 낳았고, 제이부인 진은영에게 한 명의 딸을 낳았다.

 팽무전은 백도칠대세가에서 밀려난 팽가의 지위를 더욱 높여주고 빛내줄 수 있는 빼어난 후계자를 간절히 원했다.

 그렇기에 후계자가 될 두 명의 아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하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두 아들의 진척에 커다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임학후의 눈길이 심상치 않은 의미를 담고 있는 짧은 글귀에서 멈췄다. 그가 가르쳐야 할 팽가의 여식 팽설과 강렬하게 연관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식을 보는 눈이 아비를 따르지 못한다는 옛말이 옳다면 두 형제는 크게 기대할만한 인물이 못되겠군.”

 임학후가 중얼거리면서 책장을 한 장 넘겼다.

 <팽승극과 팽승백 두 형제는 한 지역의 패자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팽가를 다시금 영화로운 위치에까지 올려놓을 재능이 없다.

 팽가의 대공자와 이공자로 대우받으며 자라난 탓에 능력이 부족한 반면 허영심이 많다. 과거의 영화를 누리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한 기존의 뛰어난 가주들과 달리 욕심만 많은 철부지들이다.

 막중한 책임이 있는 팽가의 후계자로는 부족함이 차고도 넘친다.

 두 아들로 인해 팽무전은 고심이 많다.>

 “자식 농사가 마음대로 되는 일은 아니지.”

 임학후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서적에 적혀있는 글귀들이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폴폴 풍겨냈다. 자식농사 실패로 팽가 내부에서 도사리고 있는 거대한 권력쟁투가 훤히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뒤를 이어 적힌 내용은 권력쟁투에 기름을 왕창 들이붓고 있었다.

 <가문에 대한 안타까움과 염려에 젖어 한숨을 내쉬고 있는 팽무전은 새로운 가능성을 딸인 팽설에게서 찾을 수 있었다.

 미녀인 어머니를 닮아 점점 아름다워지는 팽설이 무에 있어서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기 때문이다. 지금의 그녀는 혼원벽력신공을 팔성 이상으로 익혔으며, 혼원벽력장을 대성했고, 가문 최고의 도법인 오호단문도까지 놀라운 성취를 보이고 있다.

 팽설의 성취는 팽승극과 팽승백의 무공경지를 훌쩍 뛰어넘어 세가에서 열손가락 안에 꼽혔다.

 팽무전은 가문의 후계자로 뛰어난 팽설을 밀고 있다. 하지만 원로와 장로들의 지지를 받는 팽승극과 팽승백이 여자라는 이유로 팽설을 극렬반대하고 있다.

 현재 팽가는 두 쪽으로 갈라진 상태이다.

 팽설을 지지하는 부류와 팽승극과 팽승백 형제를 지지하는 부류다. 외부에서 볼 때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점점 과열되어가는 후계자 다툼으로 인해 팽가는 어수선하다.

 확인되지 않았지만 팽설이 살수에게 암살을 당할 뻔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가르쳐야 할 팽설이 언제 칼 맞아도 이상하지 않다는 소리잖아.”

 임학후는 어수선한 팽가에서 그것도 혼란의 중심지에 있는 팽설의 개인학사로 간다는 사실에 어이없었다. 모난 돌 옆에 있으면 정 맞는다고, 지금이라도 당장 한상운에게로 가서 이번 일 하지 못하겠다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애당초 하지 않겠다고 말했으면 몰랐겠지만 입밖으로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한 번 내뱉은 말에 대해서 책임 질 줄 아는 남자였다.

 “피를 나눈 부모형제간에도 권력은 나누지 않는 법이다.”

 한때 과거를 준비했기에 암중의 후계자 다툼이 얼마나 치열하고 비열한지 잘 알았다.

 역대로 황제에 오르기 위해서 흘린 피가 얼마이던가?

 팽가에도 가족들 사이에 비극의 칼부림을 벌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팽가가 피를 흘리는 건 상관이 없었지만 그 다툼에 생판 남이었던 자신이 끼어든다는 사실이 참으로 곤욕스러웠다.

 <팽무전은 위험에 처한 팽설을 백도의 뛰어난 인재들을 훈련시키는 정총의 천무학관에 보내려고 하고 있다. 백도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문무겸전의 인재를 키워내는 천무학관이다.

 팽설은 무에 있어서는 입관기준을 충족하고도 남지만 문에 있어서는 부족함이 많다. 그렇기에 팽무전이 학식 깊은 개인학사를 초빙하여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려 하고 있다.

 하지만 두뇌가 총명하지 않은 팽가의 전통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팽설이다. 은퇴한 한림원의 학사들과 공부하고 있지만 도무지 실력이 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팔락!

 임학후가 팽가의 복잡한 상황과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적힌 마지막 책장을 넘겼다.

 “하루라도 빨리 천무학관에 보내어야 다시 평화로운 삶이 돌아올 수 있겠군. 그런데 한림원의 학사들도 하지 못한 일을 내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임학후가 쓴웃음을 지으면서 중얼거렸다.

 어떻게 해서 팽설에게 공부를 시킬지 참으로 막막하기만 했다. 한림원의 학사들이라면 세상에서 가장 머리가 뛰어나다고 해도 과히 틀리지 않은 말이었다. 과거에 합격하고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자리가 바로 한림원이었다.

 “정석적으로 다가서지 말고 역발상으로 다가서야 한다.”

 팽설을 공부시킬 특단의 방법을 강구하는 그의 눈빛이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거렸다. 획일화된 공부방법에서 벗어난 창의적인 생각들이 그의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

 

 “정녕 모르겠단 말이냐?”

 노학사가 수염을 부르르 떨면서 물었다.

 검은 머리가 유독 탐스러웠고 백옥처럼 빛나는 피부를 가진 여인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기억이 나지를 않아요.”

 팽설이 고개를 숙이면서 잔뜩 주눅이 든 죄송스런 음성을 토해냈다.

 십일 동안 배우기를 열 번 반복한 천자문의 내용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머릿속이 온통 새하얗다. 허투루 시간을 보내지 않고 책의 내용을 머릿속에 각인시키기 위해 밖으로 나가지도 않고 노력했다.

 하지만 결과가 참담하다.

 “허허허!”

 노학사가 어이없는 웃음을 토해냈다.

 그는 한림원에서 은퇴한 뒤 고향인 하북에서 편안히 지내다가 미천한 여식을 가르쳐달라는 팽가주의 간곡한 청에 의해 발걸음을 했다.

 팽무전이 딸에게 사서삼경을 가르쳐서 세상에 나가서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의 교양과 인격을 쌓게 해달라고 머리를 숙여가며 부탁했다.

 한림원의 수장까지 지냈던 노학사였기에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맡겨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가장 기초적인 천자문에서 막힐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도 하지 못하는 제자를 가르치는 일은 더욱 끔찍했다.

 “죄송해요.”

 “어찌 그것이 너의 탓이란 말이냐? 잘못 가르친 나의 탓이 더욱 크다.”

 말로는 좋게 풀어냈지만 잔뜩 구겨진 얼굴 표정은 아니었다.

 천하의 바보라고 해도 십일 동안 학습을 반복시키면 머릿속에 뭐라도 남는 법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팽설은 아니었다.

 열심히 가르쳐도 그 다음날이면 배운 학업에 대해서 깨끗하게 잊어버렸다. 두뇌가 총명하지 않은 팽가의 피를 지독할 정도로 저주스럽게 이어받은 팽설이었다.

 “간곡하게 부탁한 팽가주께 미안하지만 너를 가르칠 재간이 부족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구나.”

 “사부님.”

 “이제는 사부님이라고 부르지 마라. 팽가주께 말씀드리고 너를 가르치는 자리에서 물러나겠다.”

 “사부님, 다시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어허! 이제 사부님 아니래도.”

 노학사가 재빨리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소매를 펄럭거리면서 황급히 실내를 빠져나갔다.

 잡아서 가르침을 내려달라고 말을 꺼낼 엄두를 내지 못하는 팽설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수려한 미간을 살포시 찌푸리면서 중얼거렸다.

 “또 떠나가시네. 왜 난 기억력이 엉망인 거지?”

 그녀가 주먹으로 머리를 콩콩 쥐어박았다.

 개인학사로 왔다가 떠나가는 명망 높은 사람들이 벌써 아홉 명 째였다.

 이미 그녀가 지독한 돌머리라는 소문이 쫙 퍼졌다.

 그 때문에 많은 보수를 약속하면서 개인학사 자리를 간곡하게 청해도 이제 오지 않겠다며 손을 저었다.

 “사람들 말처럼 진짜로 돌머리인가봐.”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 둔감한 그녀도 사람들이 돌머리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녀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처음에는 학습하면서 발전한다고 말했지만 이제는 가망이 없다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열심히 노력해도 하룻밤 자고 나면 모든 걸 잊어버리는 사람에게 뭐를 가르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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