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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불멸의 검, 악마의 칼날 위에 서다.
작가 : 박현철
작품등록일 : 2023.11.28

악마와 싸우는 안티히어로

 
우정이라는 심연(深淵)Ⅰ
작성일 : 24-02-14 23:17     조회 : 47     추천 : 0     분량 : 4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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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화(48화)

 우정이라는 심연(深淵)Ⅰ

 

  가쿠슈인 사학재단에 우치다 치카 선생 가문이 차지하는 지분이 아니더라도 한때 10대와 20대 초반에 배우로서 일본 전역을 들끓게 했던 유명세만 가지고도 가쿠슈인 학교당국은 우치다 치카 선생에 대해 조심스러워했으며 눈치를 봤다.

 

 그날은 수요일이라 다른 날보다 수업이 많아 7시간이었는데 하루를 오롯이 득템 했다. 미모의 여선생이 나머지 5시간을 맡은 남선생한테 필살기의 미소를 던지며 부탁을 하는데 안 들어 줄 남선생이 없을 것이고 남은 1시간을 담당한 여선생은 우치다 치카 여선생과의 절친이라 쾌히 승낙함은 물론 자기가 그렇게 하지 못한 것에 몹시 아쉬워할 톡톡 튀는 인물이었다. 즉 기행(奇行)은 우치카 치타 선생의 파격을 가소로워할 정도로 역대급인 선생이었다. 물론 우리랑 스스럼없이 친했다. 오히려 나서서 교칙을 위반하라고 부추기기도 하는 독특한 캐릭터 소유자였다. 너무 바르게 사는 건 재미없다며 숙제로 교칙 위반을 저지른 사례 하나를 적거나 영상으로 제출하라고 할 정도였다.

 몰려서 우루루 교문으로 나가는데,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 여선생이 뛰어와 우리 앞을 막았다. 헉헉대며 말했다.

 

 - 하여튼 불안한 존재, 남정네들... 니들만 자유를 만끽하면 어떡해?

 - 네, 무슨?...

 

 쥰페이가 궁금해했다.

 

 - 의리 없게, 니들의 수업(授業) 전폐(全廢)가 누구 덕이니?

 - 아, 그렇네요, 선생님, 우리 생각이 짧았습니다...

 - 정말 몽은 매력남이야, 그럼 부탁해...

 

 독특한 캐릭터의 여선생이 잰걸음으로 사라졌다.

 

 - 야, 가쿠슈인 여고로 가자...

 - 아, 맞아...

 

 쥰페이가 그때서야 내 말뜻을 알아차렸다.

 우리가 우치다 치카 선생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하루 땡땡이를 칠 수 있었던 것도

 스에마쓰 아야코라는 존재가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 때문인데 그냥

 모른 척하고 가는 건 마초의 의리가 아니라는 것이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 여선생의

 발상이었다. 한마디로 다 같이 공범이 되자 그거였다. 다 같은 가쿠슈인이니까...

 우리는 가쿠슈인 여고로 몰려가 스크럼을 짜고 가쿠슈인 응원가를 목청껏 불렀다.

 성대 결절이 걱정될 정도로 응원가를 불렀다.

 아니나 다를까 뒤따라 나머지 반 아이들도 수업을 중단하고 몰려왔다. 그들도 합세했다. 우치다 치카 선생과 독특한 캐릭터 소유자 선생의 논리는 같았다. 형평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거였다. 찬동 안 할 선생이 없었다. 솔직히 선생도 하루 땡땡이치고 싶으니까... 이런 맛으로 선생 하는 거지, 하면서...

 가쿠슈인 응원가로 여고가 떠나갈 듯했다. 여학생들이 수업하다 말고 창가에 몰려들었다.여학생들이 소리를 질렀다. 손을 흔들며 책상 위에 올라가 띠라서 응원가를 불렀다. 몇몇 여학생들은 엉덩이까지 흔들었다. 점잖고 품위 있는 귀족 학교에서는 있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원칙주의자 교감은 충격 끝에 혼절해 양호실에 실려 갔다.

 선생들이 제지해도 소용이 없었다. 아니 형식적으로 제지했다.

 원칙주의자 교감과 깐깐한 교무주임, 교칙주의자 학생주임 문책을 면피하기

 위한 제지라 전혀 말빨이 먹히지 않았다. 아니 바라지도 않았다.

 오히려 부추기는 측면이 컸다. 수업 안 하면 선생도 좋으니까...

 여학생들의 동요가 극에 달하자 여고 교장은 아무 말 없이, 사전 예고 없이 미리 가

 방을 싸서 들고 운동장에 조용히 나와서는, 오늘 수업 땡땡이! 를 외치고 홀연히 사

 라졌다. 시중(市中)의 선입견(先入見)은 그걸 깨는 반전이 있어야 선입견의 묘미가 아니겠냐가 여고 교장의 마인드였다. 여고 교장 또한 기인(奇人)이라 이 정도의 파격은 충분히 예상한 일이었다.

 여학생들이 가방을 들고 밖으로 몰려나갔다.

 어느 초여름, 점심 식사 후 노곤할 때 교내 방송으로 듀엣 로스 델 리오의 ‘마카레나(Macarena)’를 틀어 본인이 직접 골마루에 먼저 나와 춤을 췄고, 깜짝 놀란 학생과 선생들이 교장이 범인이라는 것을 알고 골마루에 몰려나가 함께 광란의 춤판을 벌였다. 그 헤프닝으로 그날 석간신문과 뉴스에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교장은 당연히 문부과학성(文部科学省) 몬부카가쿠쇼에 불려 갔다. 고등학교 담당 차관보가 학생들과 선생들을 감시 감독해야 할 교장이 이 무슨 망발이냐고, 노발대발했다. 그러나 여교장은 말없이 손톱깎이로 손톱만 깎았다고 했다.

 

 - 발톱은 집에 가서 깎으세요.

 

 문부과학성 차관보는 도저히 말이 먹히지 않자 화를 참으며 거칠게 문을 열고 나가라고 손으로 밖을 가리켰다. 교장은 나가면서 문부과학성 차관보 주머니에 슬쩍 손톱깎이를 넣고 나왔다.

 

 그다음 날 그 차관보는 산간오지(山間奧地)로 발령이 나 쫓겨갔다고 했다.

 여교장은 문부과학성 장관 물망에 매번 오르지만, 매번 고사(固辭)한 인물이

 라는 것을 그 차관보는 몰랐던 거였다. 남편뿐만 아니라 시가집, 친정집이 정재계(政

 財界)에 나름의 지분(持分)이 있다는 것을 그 차관보는 몰랐던 거였다. 그렇다고 그

 여고교장이 힘 있는 사람에게 그 차관보를 어떻게 하라고 하지 않았는데 문부과학성당국이 지레 알아서 한 거였다. 고지식하다, 융통성이 없다, 포용력이 약하다가 차관보의 산간오지 발령의 이유였다. 고지식한 차관보의 생각은 달랐다. 마카레나에 뭔가 알 수 없는 묘한 마성이 숨어 있어 산간오지에 발령 난 거라 판단했다. 그래서 퇴근 후에 마카레나를 배운다고 했다. 지금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배운다고 했다. 지금은 가르치는 강사보다 더 잘 춘다고 했다. 그 말 듣고 일본 영화 셀 위 댄스가 생각났다.

 그 문제의 교장이 바로 가쿠슈인 남고의 독특한 캐릭터 여선생의 어머니였다. 완전 모전여전(母傳女傳)이었다.

 이렇게 가쿠슈인의 존재감은 잊으려 하면 한 번씩 세상에 드러났다.

 일반 학교에서 일어난 파격(破格)이라면 그 지역에서 웅성거리다가 끝날 일을 가쿠슈인에서 일어나면 전국적으로 뉴스가 되었다. 가쿠슈인이라서도 있었지만 웬칸 가쿠슈인은 정적(靜寂)인 곳인데다가 베일에 싸인 곳이기 때문이었다. 특히 가쿠슈인은 황족에, 화족(일본 귀족)에, 상류층 자제들이 다니는 곳이라 더했다. 거기에다 스에마쓰 아야코가 다니지 않는가... 화단(花壇)에 꽃뱀만 나타나도 전국 뉴스가 되었다.

 자전거를 꺼냈다. 스에마쓰 아야코의 가방을 받아 자전거 왼쪽 손잡이에 끼웠다.

 오른쪽 손잡이엔 내 가방이 끼워져 있어 균형이 맞았다.

 아야코가 뒷바퀴에 약간 돌출된 받침대에 발을 올리고 일어섰다.

 팔은 자연스럽게 내 어깨에 올렸다. 나는 괜히 부끄러움에 어깨가 경직되었다.

 유리나도 쥰페이 자전거에 아야코처럼 자전거에 올라탔다. 사카모토 미나미는 혼자였다. 미나미를 짝사랑하는, 황위(皇位) 계승 7번째인 다이히토(大仁)는 미나미에게 아야코처럼 하라고 말할 엄두를 감히 내지 못했다. 그랬다간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르기에... 따라오지 마, 라고 하지 않은 것만도 고맙게 생각해야 했다. 그래서 미나미처럼 혼자 자전거를 탔다. 우리는 그렇게 여섯 명이 자전거를 타고 몰려갔다.

 아야코가 오른손으론 내 어깨를 잡고 왼손으로 내 목덜미 부근으로 잡더니 검지로 부드럽게 내 턱을 간지럽혔다. 턱과 목덜미 사이에 난 솜털을 손끝으로 느끼는 것 같았다. 나는 간지러웠지만, 아야코의 부드러운 손길을 느끼며 애정의 깊이를 더했다.

 분명 지긋이 아야코는 눈을 감고 미세한 솜털의 촉감(觸感)을 손끝의 신경(神經)으로 아련히 느낄 것이다. 아야코의 긴 머리칼은 바람에 날리는지 유칼립투스 샴푸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내 몸에서 손을 뗐다. 두 팔을 벌리고 따사로운 햇빛과 싱그러운 바람을 만끽하는 것 같았다. 흠~ 코로 바람의 향기를 마음껏 들이쉬는 소리가 들렸다.

 아야코가 몸을 사뿐히 숙이더니 감미로운 귓속말을 했다.

 

  - 키스할래?

 

 나는 그 말에 화들짝 놀라 자전거를 비틀대며 속도를 줄이다가 가까스로 축대로 올린

 담벼락과 나란히 하고 자전거를 겨우 멈췄다. 그러지 않아도 넘어지지 않으려고 두 손에 힘을 바짝 넣고 달렸는데... 자전거 뒷자리에 일어선 여자를 태우고 달려본 남자가 이 지구상에 과연 몇 명이나 있겠냐, 그것도 여친을, 쫄 수밖에 더 있겠어, 넘어질까 좌불안석인데... 그런데 이 무슨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쇼킹 워딩(wording)이냐?

 브레이크를 잡자마자 혹, 넘어지지나 않을까 걱정이 들어 자동으로 뒤로 돌아봤다.

 

 - 괜찮아?

 - 뭘?

 

 아야코가 무슨 일 있어? 하는 듯 되물었다. 너무 태연해 물은 내가 오히려 뻘쭘했다.

 자전거가 돌담 쪽으로 중심이 기울자 아야코가 오른발을 재빨리 돌담에 갖다 댄 거였다. 그땐 몰랐지만, 세계 피겨 스케이팅 대회에서 남자들도 거의 불가능하다는 네 바퀴 반을 실수 없이 돈 아야코의 운동신경은 역시 뛰어났다. 쭉 뻗은 각선미(脚線美)를 보고 민망해서 얼른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무릎에서 한 뼘 정도 올라간 치마를 덮은 설빙(雪氷)같은 허벅지가 눈에 선명하게 박혔기에 그렇다. 아니 그것보다도 아야코가 두 손가락으로 치맛자락을 살짝 올렸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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