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화 매 호랑이 바람 늑대

　한바탕 흥겨운 노래판이 끝나고 모두 민화의 자장가를 듣고 싶다고 졸랐다. 태화가 아플 때나 듣는 자장가지만 너무 궁금해하는 형수님을 위해 민화는 큰맘 먹고 목을 가다듬었다. 다들 잠자리에 누워 민화의 자장가를 들었다.

　“자장자장 우리 태화, 잘도 잔다. 우리 애기,

　멍멍개야 짓지 마라, 우리 애기 잠을 깰라.

　자장자장 우리 애기, 잘도 잘다 우리 애기,

　꼬꼬닭이 알 낳거든 태화 하나 언능 주고,

　감나무에 감 나거든 곶감 해가 언능 주께,

　자장자장 우리 태화 잘도 잔다 우리 애기.”

　하고 정말로 태화를 토닥이며 노래를 불렀다.

　“자 자장가는 왜 다 먹는 얘기고?”

　하고 윤화가 묻자,

　“그래야 좋아라 한다 아입니꺼. 자는 먹는 얘기만 하믄 까무라쳤다가도 정신이 납니더.”

　하니 태화가 큭큭 웃는다.

　“빨리 가을 되믄 좋겠다. 곶감 묵게.”

　모두 키득 키득 웃었다.

　“계속해봐라. 듣기 좋다.”

　하고 진화가 재촉했다. 그러자 민화가 이번에는 진화를 위해 자장가를 지어 불렀다.

　“자장자장 우리 형님, 장가 가가 좋아 죽네.

　이쁜 형수 얻었으니 세상만사 내 것일세.

　자장자장 우리 형님, 아들딸 마이 낳고,

　오래오래 살고지고. 천년만년 살고지고.”

　한다. 모두 잠결에 ‘얼쑤’하고 추임새도 넣는다.

　“나도! 나도 해봐라잉.”

　하고 이번에는 석이가 졸랐다. 인심 좋게 민화는 이번에는 석이 자장가를 지어 불러준다.

　“자장자장 우리 형님, 미순이 뺏기가 속상허네,

　천년만년 델꼬 있음 손도 발도 편할낀데,

　넘 주기는 아까부고 델꼬 있자니 거시기허고.

　자장자장 우리 형님, 그래도 시집은 보내야제”

　다들 와하하 하고 웃는데 석이는 좀처럼 웃어지지 않았다. 딱 석이 마음이 그랬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들 어슴푸레 잠들 때까지 민화는 이런저런 자장가를 지어 불러주다 스르르 민화도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자, 다들 운동하러 가자!”

　하고 일찍 일어난 석이가 몸을 풀며 다른 도련님들을 재촉했다. 미순이 눈을 비비며 일어나

　“나도 갈랑게.”

　한다.

　“그랴, 오늘은 니도 허자.”

　하고 석이가 흔쾌히 허락을 하는데 몸을 털며 일어나는 도련님들 기운이 평소와 좀 다르다. 미순이는 치마저고리 대신 남자들 입는 바지저고리로 갈아입었다.

　“석아, 오늘은 결련을 하려느냐?”

　하고 진화가 물었다.

　“야! 결련을 하려면 땅이 부드러워야 허니 감자밭으로 갑시다.”

　하고 석이가 감자를 모두 캐고 이제는 비어 있는 감자밭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평소와 달리 목소리에 비장함이 묻어났다. 노미가 어리둥절해 하자 진화가 설명해 주었다.

　“석이 아버지가 택견 고수셨소. 어릴 때부터 모두 다 택견을 배웠는데 나는 그저 기본 몸짓이나 할 줄 아는 정도이고, 동생들은 제법 할 줄 아오. 일본놈들이 눈에 불을 켜고 우리 것은 죄다 못하게 하니 택견도 이렇게 숨어서만 하고 있오.”

　한다. 노미는 아주 어릴 적에 명절이면 어른들이 택견으로 대결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예전에는 명절마다 동네끼리 어울려 씨름도 하고 택견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행사였다. 그러나 일본의 ‘민족말살정책’이 시작된 이후로 당시 조선 사람들은 씨름도 택견도 금지당했고 우리글은 물론이고 우리 말을 쓰는 것조차 경찰서에 끌려가 매질을 당하는 이유가 되었다.

　감자밭에 모인 소년들과 미순은 모두 동트는 하늘을 향해 정좌로 섰다. 사뭇 경건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석이의 구령에 맞추어 ‘이크, 에크’ 하며 택견의 기본 동작들을 시작했다.

　기본인 삼박자 구령에 맞추어 마치 덩실덩실 춤을 추듯 동작을 이어가는 택견은 온몸에 힘을 빼고 물 흐르듯이 흐느적거리는 모습이 바람에 나부끼는 갈대 같기도 하고 휘돌아 흐르는 물줄기 같기도 하다. 그런 몸짓은 능청거리듯 유연하다가도 빠르게 발을 머리 위까지 솟구쳐 차기도 하고 나비처럼 사뿐사뿐 휘날리던 손이 갑자기 정면을 향해 강하게 치솟아 오르기도 했다. 그 아름다운 동작들을 글로 쓰는 것은 한계가 있다. 관심 있는 이들은 반드시 동영상 자료들을 찾아보기를 바라는 바이다.

　택견의 기본 동작들을 모아 보여주는 ‘본때뵈기’를 마친 후 석이는 이제 ‘결련’을 해보자고 했다. ‘결련’은 두 사람이 서로 기술을 쓰며 맞대결하는 것으로 택견의 기본 동작들을 응용한 다양한 공격과 방어 기술들을 써서 상대를 제압하는 일종의 실전연습을 겸한 경기이다.

　“정화, 오너라.”

　하자 그늘에 앉아 있던 정화가 씩 웃으며 벌떡 일어나 석이 앞에 섰다. 맞절을 한 후,

　“공격해라.”

　하고 석이가 말하자 조금 전까지 아기 같은 얼굴로 방글방글 웃고 있던 정화의 눈빛이 돌변하더니 입으로 ‘에크’하고 숨을 토하며 순식간에 석이의 무릎을 발로 찍고 발등으로 석이의 얼굴을 가격했다. 연습으로 하는 대련이라 강하게 차지는 않았지만 맘먹고 강하게 찼다면 목이 돌아갔을 상황이다.

　제대로 들어간 기술에 정화가 우쭐하는 사이 석이가 몸을 낮게 숙이더니 정화의 발목을 휘돌려 차 순식간에 정화는 공중에 붕 떴다 바닥에 떨어졌다. 서로 한 수씩 주고받은 셈이다. 모두 박수를 쳤다.

　정화는 발기술이 뛰어나 올려 차고, 내려 차고, 휘돌려 차고, 날아 차고 하는데 석이는 그 많은 공격을 용케도 바람처럼 피하면서도 빈틈이 보일 때마다 꽃잎 같은 손으로 날카롭게 공격했다. 정화는 강하고 공격적이고 석이는 유연하고 빨랐다. 정화는 바람을 가르는 맹수 같았고, 석이는 바람에 나부끼는 매화 같았다.

　승패를 떠나 두 사람의 아름다운 움직임에 모두 넋을 놓고 결련을 구경했다. 잠시 후 심판을 보고 있던 윤화가 ‘그쳐!’를 외치자 둘은 숨을 헐떡이며 서로를 얼싸안았다. 서로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던 매서운 눈은 금새 다시 우애 좋은 형 아우가 되었다. 노미는 그런 도련님들 모습이 낯설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태화랑 민화 해라!”

　하고 윤화가 호명하자, 태화가 입술을 쓱 문지르며 일어난다.

　“자는 내한테 안 될 텐데.”

　하고 태화가 민화를 도발한다. 민화는 기다렸다는 듯 가볍게 일어서며

　“누가 할 소리!”

　한다. 세상 둘도 없는 쌍둥이 형제가 서로를 노려보며 섰다.

　‘세상에! 태화 도련님이 저런 표정을 지을 줄도 아나.’

　싶게 태화는 금방이라도 불을 뿜을 듯한 눈으로 서 있었다. 그러나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가볍게 서 있는 민화는 그런 태화를 그저 지그시 내려다본다. 하지만 평소와는 분명 다른 범상치 않은 기운이 흘렀다. 얼핏 뒷짐을 지고 서 있는데 빈틈이 없다. 태화는 그런 민화를 향해 양손을 와락 앞으로 뻗어 목을 노렸다. 하지만 민화는 가볍게 그 손을 슬쩍 피했다. 약이 오른 태화는 민화의 복부를 향해 주먹을 날린다. 이번에는 민화가 미처 피하지 못하고 한 대 맞았다. 세게 때리지 않았지만 민화는 매우 세게 맞은 듯 배를 움켜쥐었다. 안 아픈 걸 알기 때문에 태화는

　‘안 속지롱.’

　하는 표정으로 빙글빙글 웃고 섰다. 민화가 고개를 드는데 눈빛이 다르다.

　‘한 대 맞아줬으니 이젠 네 차례다.’

　하는 것 같았다. 날카로운 눈으로 한 번 픽 웃더니 민화는 순식간에 태화의 무릎과 가슴을 타고 올라 어깨를 짚고 붕 날아올랐다. 마치 한 마리 솔개처럼, 매처럼 그렇게 하늘로 붕 날아오른 민화는 공중에서 태화의 목을 잡고는 뒤로 넘어뜨렸다. 민화의 특기인 날아오르기였다.

　바닥에 넘어진 태화는 바로 벌떡 일어나 무서운 속도로 민화를 손으로 발로 공격했다. 태화의 손날치기 공격들은 제법 무시무시해서 제대로 맞으면 그대로 기절할 듯싶었다. 태화는 손을 호랑이가 발톱을 새운 것처럼 쥐고서 민화의 얼굴을 노렸다. 택견 기술 중에서도 무섭기로 소문난 ‘안면공격’이었다. 제대로 기술이 들어가면 바로 실명이 되기도 하는 살수 중 하나였다. 태화가 잘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공격이라 이미 공격이 들어올 것을 알고 있던 민화는 요령 있게 피했다. 하지만 ‘요놈 봐라.’하더니 이번에는 몸을 붕 날려 태화의 허리를 가격했다. 제대로 맞았다. 태화가 데구르 한 바퀴 굴렀다. 하지만 태화도 민화도 아직 그만둘 생각이 없었다.

　민화는 날아오르고, 태화는 화려한 손기술로 쉼 없이 공격했다. 두 사람의 ‘이크, 에크’ 소리가 마치 함께 부르는 노래 같았다. 택견에서 ‘이크’는 방어할 때 ‘에크’는 공격할 때 내는 소리다. 윤화가 ‘그쳐!’를 외쳤고 둘은 숨을 헐떡이며 공격을 멈추었다. 땀과 흙으로 범벅이 된 두 사람은 서로를 얼싸안았다. 그리고 다시 서로 죽고 못 사는 쌍둥이 형제로 돌아왔다.

　“아팠나?”

　하고 민화가 세상 다정하게 물었다.

　“아프긴, 니 주먹이 솜방망이라 한나도 안 아팠다.”

　“이누무 자슥이! 형한테 꼬박꼬박 니라 카고.”

　“형은 무슨! 어무이가 헤깔리가 니가 형인지 내가 형인지 모르겠다 안 했나?”

　투닥거리는 두 형제 만담에 모두 까르르 웃었다.

　“형들은 안 합니꺼?”

　하고 정화가 진화랑 남화를 돌아본다.

　“우리는 문반이다. 무과들이나 결련을 하는 것이다.”

　하며 진화는 남화와 눈을 맞추고 웃는다. 남화도 형을 따라 벙긋 웃는다.

　“그럼 윤화 형은요?”

　하고 정화가 윤화를 돌아보자,

　“내도 문반이다.”

　하며 윤화도 남화 옆에 가서 쪼그리고 앉았다. 그렇게 문반 세 명이 쪼르르 앉아 서로를 바라보며 벙글벙글 웃고 있었다. 그때 석이가

　“미순이도 해보자. 니는 누구랑 할라냐?”

　했다. 미순은 주위를 쓱 둘러본다. 다들 눈을 피한다. 미순이 앞으로 나서더니 다시 한번 오라버니들을 쓱 훑어본다.

　“오라버니, 나오시오.”

　하고 미순이 손가락을 까닥까닥하며 부른 사람은 윤화다.

　“내는 필살기 말고는 안 쓴다. 팍팍!”

　하며 윤화가 제법 매서운 눈으로 미순을 노려보는데 다들 이미 휘파람까지 불며 박수를 치고 있다. 윤화는 싫어 죽겠는 표정으로 안 나가려고 버티는데 결국 동생들에게 질질 끌려서 미순이 앞에 나갔다.

　“와! 미순이 키 큰 거 봐라! 거의 형만 하다!”

　하고 민화가 소리쳤다. 정말로 미순이 생각보다 키가 제법 크다.

　“다 컸네, 다 컸어. 아니, 저만치 큰 애를 왜 쪼만하다고 우긴 것이냐?”

　하고 진화가 석이를 향해 호통을 쳤다. 석이는 자기가 생각해도 미순이 키가 제법 커 있어서 뭐라 말도 못하고 머쓱하다.

　“자가 은제 저렇게 컸다냐. 허허”

　하고 멋쩍게 웃었다. 미순이는 좌중의 소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윤화를 향해 바로 섰다. 둘 사이에 심판은 남화가 보기로 하고 나섰다.

　“절하시오.”

　하고 남화가 말하자, 윤화는 할 수 없이 맞절을 했다.

　“와하하하! 신랑 각시다! 신랑 각시!”

　하고 태화가 신이 나서 소리쳤다. 윤화는 이제 일일이 반응하기도 지쳤다. 미순이 윤화를 향해

　“공격하시오!”

　라고 말하자 윤화는

　“네가 먼저 해라.”

　하고 자세도 엉성하게 서서 힘없이 말했다.

　“오메~ 여자가 남자를 공격하는 법이 어딨다요. 남자가 여자를 공격하믄 여자는 맞받아치는것이지라.”

　윤화는 하는 수 없다는 듯 미순이 팔을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미순이 빠르게 윤화 손목을 비틀어 꺾어 순식간에 바닥에 윤화를 눕히고는 목을 공격하는 선에서 멈췄다. 윤화는 일부러

　‘아이고, 아이고.’

　하고 곡소리를 내었다. 다시 일어난 윤화와 미순이 서로를 향해 바로 섰다.

　“이번에는 ‘고막치기’를 할 것이어라.”

　하고 미순이가 선포를 하자,

　“무슨 공격을 할 건지 말을 하고 하면 우짜노?”

　하고 윤화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혀를 끌끌 찼다. 하지만 미순은 매섭게 윤화의 양쪽 귀를 손바닥으로 탁 친다. 손바닥으로 상대의 귀를 세게 때려 순간 소리가 안 들리고 정신이 나가게 하는 공격기술이었다. 그러나 미순이는 아무래도 윤화를 세게 때릴 수가 없어 고막치기 공격이 그냥 양 쪽 귀를 감싸고 있는 것처럼 되어버렸다. 순간 미순은 얼굴이 빨개지고 말았다. 다들 이 요상한 광경에 와 하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미순이 당황해하자 갑자기 윤화가 양쪽 귀를 감싸 쥐고는 바닥에 데굴데굴 굴렀다.

　“아이고, 아이고, 귀가 하나도 안 들리네. 미순아, 내가 졌다. 아이고, 아이고!”

　그 모습에 남화는 미순이를 한 번 보고는 ‘그쳐!’를 외쳤다. 미순이는 얼굴을 감싸 쥐고 노미 옆으로 쪼르르 달려 들어왔다.

　“자는 쪼까 더 갈쳐야 쓰것구마잉.”

　하며 석이도 멋쩍게 웃었다.

　택견은 동작이 유연하고 부드러워 얼른 보아서는 그다지 파괴력 있는 무술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택견의 너울거리는 몸짓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움은 빠르고 정확한 공격과 방어가 이루어지도록 한다. 택견의 힘과 매력을 아는 이들은 그래서 택견이야말로 사람의 몸과 움직임을 가장 잘 이용하여 공격과 방어를 할 수 있는 최고의 무술이라 말한다.

　일본의 무술은 진지하고 절도가 있고, 중국의 무술은 신비롭고 아름답다면 한국의 무술인 택견은 편안하고 즐겁게 하는 신명을 바탕으로 한다 했다. 택견은 예부터 사람을 다치게 하려고 고안된 무술이 아니었기에 혼자서 삼사십 명을 제압해도 아무도 뼈가 다치게 하지 않는 무술로 유명하다. 그래서 찌르고 때리는 기술보다 발기술과 손기술 등을 이용해 상대를 넘어뜨리거나 상대방의 공격 의지를 꺽는 기술들이 발전했다. 그래서 택견의 공격을 받으면 피를 뿜고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호를 그리며 땅바닥에 나뒹굴게 되는 것이다.

　한국인들에게 무술은 어디까지나 내 몸을 지키고 적의 공격 의지를 꺾어 적이라 할지라도 사람을 다치게 하는 죄를 짓지 않도록 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이것이 택견의 정신이고 한국인들이 말하는 ‘신명’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