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열아홉 노미

　하루가 멀다 하고 매파들이 노미의 집을 찾아왔지만 노미의 아버지는 그때마다 번번이 별의별 핑계를 대며 매파들을 돌려보냈다. 집안은 좋은 데 신랑 될 사람 인상이 우울하다는 둥, 신랑이 인상은 좋은데 나이가 너무 많다거나 너무 적다거나, 똑똑한 것 같기는 한데 정나미가 없어 보인다거나 너무 ‘헤벌레’ 하고 잘 웃는다거나 등등 물론 매파들에게 대놓고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이래저래 준비가 안 됐다는 둥, 집안에 우환이 있다는 둥 하며 거의 모든 혼사를 거절했다.

　아버지 하시는 일이라 노미도 어머니도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 가니 어머니는 애가 타기 시작했다. 그러다 노미는 크게 병을 한 차례 앓았고 병치레를 하느라 또 한 해를 넘기는 바람에 나이는 어느덧 열아홉이 되었다. 그러나 그다지 시집가고 싶은 마음이 없던 노미는 이대로 그냥 아버지 어머니랑 같이 살았으면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노미는 마당에 있는 평상에 상을 하나 펴놓고 열 살 어린 남동생 준이에게 언문을 그러니까 한글을 가르치고 있었다. 노미는 어릴 때 경주에 살면서 소학교가 아니라 선교사들이 운영하는 교회에서 한글을 배웠다. 하지만 영산 근처로 이사 오는 바람에 교회에 다니지 못한 남동생은 한글을 배울 기회가 없었다. 당시 공교육기관인 소학교는 일본인들이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글이나 말을 가르치지 않았다. 학교 내에서 우리말을 쓰는 것조차 금지였다.

　누나를 워낙 좋아하고 잘 따르던 동생은 누나가 하라는 대로 큰 소리로 ‘가나다라’를 읽으며 열심히 한글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때 싸리문 밖에서 누군가 헛기침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고 보니 눈매가 날카로운 낯선 아주머니가 서 계셨다.

　 “색시, 김 주사 댁이 어딘교?”

　 “아, 예, 담장 따라 쭉 내려가시믄 큰 감나무 서 있는 집이 김주사 어르신 댁입니더.”

　나는 할머니께

　“할머니는 길 가르쳐 주는 데 매우 재능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라고 했더니 할머니는

　“내가 어릴 때부터 쓸데없이 남들한테 뭐든지 갈쳐주고, 알려주고, 하는 걸 좋아했데이. 어른들이 또 잘한다 잘한다 하시니까, 내도록 신나가 누가 뭐라하믄 막 나서가 알려주고, 갈쳐주고, 내 아주 어릴 적부터 그런 걸 잘했데이.”

　하셨다.

　노미는 그렇게 입으로만 가르쳐 드리는 것이 모자란 듯해서 문밖까지 나와 큰 감나무 앞까지 아주머니를 배웅해 드리고 돌아왔다. 그 아주머니는 사실 먼 동네에서 맏아들 색싯감을 보러 오신 분이었다. 아는 사람이 김 주사 댁에 혼기 찬 딸이 있다고 해서 어떤 처자인가 싶어 슬쩍 보러 온 것이었다.

　김 주사 댁 딸은 노미 보다 두 살 아래인 열일곱쯤이었는데, 어른을 보고도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쪼르르 마루로 올라가 자기가 먹던 밥을 게걸스럽게 먹었다. 적잖이 실망한 아주머니는 헛걸음했구나 싶어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아까 만난 처자가 자꾸 생각이 났다. 아주머니는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싸리문 앞에서 헛기침을 했다. 노미는 얼른 달려나가 아주머니를 맞았다.

　 “내 물어볼 것이 좀 있는데....”

　 “예, 물어보시소.”

　 “그.... 혹 아들인교?”

　하며 평상에 앉아 있는 동생을 가리켰다.

　“아니라예. 열 살 어린 동생입니더.”

　“아하, 어린 동생이군요.”

　“그... 지금 언문을 가르치고 있었는교?”

　“예, 제가 언문을 좀 알아서 동생한테 가르치고 있습니더.”

　“아하, 언문을 아는군요.”

　“예, 어릴 때 선교사님들이 하시는 교회에 다니믄서 배워가 언문을 읽고 쓸 줄 압니더.”

　“그럼 한문도 좀 아는교?”

　“예, 조부님이 의원이시라 어릴 때 조부님께 글을 좀 배우고, 서당에도 다녔습니더.”

　“아하, 조부님이 의원이시군요.”

　 어느새 아주머니는 평상에 걸터앉아 노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럼, 나이가....?”

　“예, 올해 열아홉입니더.”

　“아하, 열아홉인데 아직 시집을 안 갔는교? 정혼은 했는교?”

　“아닙니더, 정혼은 안 했습니더.”

　“아하, 그렇군요.”

　노미는 또 내가 말을 너무 많이 하고 있구나 하고 있는데 그때 외출하셨던 어머니가 돌아오셨다. 어머니가 무슨 일인가 하고 낯선 아주머니와 이야기하고 있는 노미와 아주머니를 번갈아 보는데 낯선 아주머니가 노미의 어머니께 인사를 하며 잠시 긴하게 할 얘기가 있으니 방으로 들어가 얘기를 좀 해도 되겠느냐고 하셨다.

　한참 후, 방에서 두 아낙네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왔고, 얼마 후 어른들끼리 왔다 갔다 하시더니 결국 노미의 혼사가 정해졌다. 노미는 도대체 신랑 될 사람이 누군지 궁금했지만 뿌루퉁해 있는 아버지와 달리 어머니는 신이 나서

　“지금까지 본 신랑감 중 제일 맘에 든다. 연일 정가 종손이란다. 양반 중 양반 아이가. 가세는 쪼매 기울었다지만 대대로 학자 집안이고 술 담배를 안 한단다. 니 내 얘기 들었나? 노미야, 세상에 요즘 세상에 술 담배 안 하는 총각이 어딨노. 내가 술 담배 하는 거에 마카 질렸다 아이가 니는 절대로 내처럼 살게 안 할 끼다. 세상에! 술 담배를 안 한단다! 잠깐이지만 일본 유학도 갔다 오고, 거 동네가 바다도 가깝고, 산도 가깝고, 들도 좋고, 개울도 좋아가 사시사철 먹을 게 떨어질 날이 없는 데 아이가. 니 해물 좋아 하제? 거 가면 고래 고기도 먹고, 회도 실컷 먹고, 미역에 소라에 막 주워다 먹고 그라는 데라 안 하나.”

　먹는 거 좋아하시는 노미 어머니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신랑감이 아니라 신랑 사는 동네 칭찬만 하셨다. 노미는 신랑이 어떤 사람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넌지시 물을 때마다 어머니는 신랑 생김새나 성격은 얘기 않으시고 술 담배 안 하는 사서삼경을 뗀 양반집 종손이라는 얘기만 내내 하셨다.

　노미는 속으로 남자가 술도 마실 줄 모르면 답답한 좀생이이진 않을까, 양반이라고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사람들 업신여기는 사람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신랑을 보고 오신 아버지는 다른 혼사랑 달리 무슨 핑계라도 대서 거절하실 생각은 않고 한숨만 푹푹 쉬셨다. 노미는 그 모습에 아버지가 마음을 정하셨다는 걸 알았다. 아, 이제 나도 시집을 가는구나 싶어서 마음이 착잡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혼자 남을 동생 걱정도 되고, 아버지 어머니 걱정도 되고 해서 제대로 잠을 못 이루는 날이 많았다.

　사주단자가 오고 가고 날짜가 정해졌다. 시끌벅적하게 함도 들어왔다. 신랑 얼굴을 한 번도 못 보고 혼사가 정해지는 것이 그 당시 풍습이라 노미는 답답하기 그지없었지만, 그때의 결혼은, 혼인은 사람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맺어주는 인연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노미는 누가 내 인연일까 싶어 궁금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다. 가까이에 도와줄 만한 집안 아주머니들이 없어서 노미는 어머니와 단둘이 혼례준비를 해야 했다.

　내가 그때까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고 알고 있던 한국의 옛날 결혼이라는 것은 생전 처음 보는 남자랑 첫날밤을 보내고 가마를 타고 낯선 집에 가서 온갖 구박을 받으며 모질고 힘든 시집살이를 하는 무지하고 혹독한 것이었다. 그러나 할머니가 들려준 우리나라 전통 혼례는 그렇게 하루 만에 후다닥 치러지는 것이 아니었다.

　날짜가 정해지면 먼저 신랑이 신부의 집으로 와서 혼례식을 치르고 그날 밤 두 사람은 한 방에서 같이 잔다. 신랑 신부의 공식적인 첫날밤이지만 첫날부터 바로 부부관계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같은 방에서 잠만 자고 신랑이 일정 기간 신부집에 기거하거나 왔다 갔다 하면서 서로 얼굴을 익히고 가족들끼리 친해지는 기간을 갖는다. 그 기간이 한 달일 수도 있고 일 년일 수도 있었다.

　그다음 신랑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 보름 정도 신부 데리고 올 준비를 한 후에 신랑이 신부집으로 와서 가마에 신부를 태우고 신랑 집으로 가게 되는데, 그 날을 ‘시집가는 날’이라고 하는 것이다.

　신랑 집에 도착한 신부는 또 한 번의 혼례식인 폐백 등의 예식을 치른 다음 두 사람은 드디어 정식 부부가 된다고 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서로 마음이 맞지 않거나 하면 얼마든지 파혼할 수 있었고, 신랑은 신부가 원하지 않는 부부관계를 할 수 없는 것이 상식이었다.

　정신없이 혼례준비를 하다 보니 드디어 혼례 날이 밝았다. 아침 일찍 일어난 노미는 서둘러 물을 길어와 물동이를 가득 채우고 매일 하던 대로 장독대 위에 물 한 그릇을 떠 놓고 두 손을 가슴에 모은 채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기도를 올렸다. 입으로는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무섭습니다. 시집 안 가면 안 됩니까. 걱정됩니다.’

　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걱정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 많은 혼례음식을 어머니와 둘이서 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침도 뜨는 둥 마는 둥 하고 노미는 음식준비를 하느라 오전을 홀딱 보내야 했다. 신랑은 해지기 직전쯤에 오기로 되어있었다.

　노미는 명태전에 빨간 고추를 올려 부쳐내고, 빈대떡도 동글동글하게 모양내어 부쳤다. 아침부터 온종일 전을 부치고 있자니 허리도 아프고 어깨도 아팠다.

　노미는 전을 부치다 말고 허리를 쭉 폈다. 그러자 마당 한쪽에 서 있는 앵두나무에 연분홍빛 앵두꽃들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한 아름 피어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눈이 부시게 어여쁜 꽃잎들이 하늘하늘 노미가 부쳐놓은 전 위로 날아내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하도 예뻐서 노미는 한참 동안 그 춤추는 꽃잎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그 꽃잎들을 모아 전 위에 올려 지져냈다.

　“와 그 광경이 아직도 이래 선명한지, 에이고, 참말로 그때 그 꽃나무를 한 번 만 더 봤슴 싶데이.... 발그레한 꽃잎이 나풀나풀 날아내리는데, 내는 오늘 혼인을 하는데 하고 눈물도 나고, 신랑이 나를 마음에 안 든다 하믄 우짜노 싶기도 하고, 그 집은 식구들이 많다는데 내랑 잘 지낼까 싶기도 하고, 그란데도 그 꽃이 어찌나 이쁘게 떨어지던지. 그거 아나?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 꽃을 보고 있다 보이 하늘에 계신 누군가가 내한테 ‘걱정 마라. 잘 살끼다. 다 잘 될끼다.’ 그라시는 거 같았데이....”

　혼례식은 보통 오후에 저녁 해지기 전에 치러지기 때문에 노미와 어머니는 점심 무렵 모든 일을 겨우 끝내고 신부 단장을 시작했다.

　어머니는 말없이 노미의 머리를 매만져 주셨다. 이제 혼례복으로 갈아입고 혼례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었다. 어머니와 함께 몇 날 며칠 동안 직접 지은 혼례복을 입고 족두리를 쓰고 얼굴에 박하분을 바르고 입술에 붉은 물도 들이고 볼과 이마에 연지곤지를 찍었다.

　“아이고, 우리 노미, 참말로 곱데이....”

　새 신부로 단장을 마친 노미의 모습을 바라보며 어머니는 눈물을 삼키셨다. 노미도 눈물이 왈칵 올라왔지만 참아야 했다. 항상 밝고 흥이 많은 노미 어머니였다. 그런 어머니 덕분에 노미는 부끄러움이 많은 성격인데도 많이 웃고, 낯선 사람들과도 금방 잘 어울려 지내는 밝은 아이로 자랐다. 그런 어머니가 딸 혼례 하는 날 노미에게 이런저런 말들을 해주실 만도 한데 어머니는 왠지 말이 없으셨다. 그저 묵묵히 딸의 옷매무새를 만져주고 주변을 정리해줄 뿐이었다.

　“어무이, 와 말이 없으십니꺼?”

　“내가 무슨 말을 하노. 니가 다 알아서 잘 할낀데. 니는, 내 딸은, 쪼매 느리긴 해도 뭐든 여물게 배우고, 어려븐 일도 씩씩하게 잘 해내는 아이 아이가. 내 믿는다. 내보다 훨씬 더 알아서 잘 할끼다. 맞제?”

　울음이 터지려는 노미를 어머니는 서둘러 등을 두드려 달랬다. 웃으라고 농담도 얼른 하나 찾아서 하셨다. 아버지도 성장(곱게 차려입은)한 딸을 보러 건너오셨다. 우리 딸이 고운 줄은 알았지만 이리 곱나 하시며 역시 눈물을 삼키셨다. 어린 동생은 혼례복을 차려입은 누나가 낯설어서 멀뚱멀뚱 바라만 볼 뿐 다가오지 못했다.

　드디어 잔치를 도와줄 동네 어른들이 도착하시고 마당은 혼례준비를 하느라 시끌벅적했다. 노미가 앉아 있는 방의 창밖으로 앵두나무가 보였다. 연분홍 꽃잎들이 흩날리며 방 안까지 꽃잎들이 날아내렸다. 노란 나비도 나풀나풀 떨어지는 꽃잎들 사이를 날아다녔다.

　노미는 순간 한숨이 났다. 겁이 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다. 첫날 밤 신부에게 거칠고 무례하게 구는 신랑도 있다는데 그러면 어쩌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술 담배 안 하는 양반집 종손이라 했다. 아무래도 그런 막돼먹은 행동은 하지 않으리라 애써 마음을 진정시켰다.

　노미는 동네 처녀들과 장래 신랑감이 어떤 이였으면 좋겠나 하는 얘기가 나올 때마다 남자는 인물보다는 마음 씀씀이가 반듯하고 훌륭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었다.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동네에도 노미를 흠모하는 총각들이 꽤 있었고, 그중에는 제법 인물이 훤칠한 이도 있었다. 하지만 노미 마음에 찰 만큼 속이 깊거나 생각이 반듯한 이는 없었다. 아무리 인물이 좋다 하더라도 속이 영글지 않은 것이 보이면 노미는 두 번도 그런 이는 돌아보고 싶어지지 않았다.

　노미는 부모님을 믿었다. 그런 노미의 마음을 잘 알고 계시기에 인물보다는 가풍이나 인품을 더 많이 생각하여 신랑을 정해주셨으리라 생각했다. 노미는 신랑이 마음이 고운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아무리 겉모습이 못난 사람이라도 평생 아끼고 사랑하며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내내 앉아 있자니 다리도 저리고 몸도 쑤셨다. 이제 곧 신랑이 도착할 때가 되었는데 하고 있을 때쯤 밖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아이구, 신랑 오네! 신랑 와!”

　하고 누군가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