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그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을 때
“나 강 수훈 엄마 되는 사람입니다”
“...네...근데 저한테 무슨 일로...”
하얗게 질린 지담은 떨리는 음성으로 말끝을 흐렸다.
“그건 만나서 얘기 하지...언제 시간이 되지?”
언젠가 들었던 낮고 음산한 음성은, 어느새 반말로 바뀌었다. 떨리는 가슴을 겨우 부여잡은 지담은,
“다음주 토요일이 쉬는 날입니다. 시간과 장소는 메시지로 남겨 주십시오.”
“그러지”
“그럼 그날 뵙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지담은, 도대체 수훈의 어머니가 자신의 전화번호를 어떻게 안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안 나왔다.
어머니랑 사이가 좋지 않은 수훈이 알려 줬을리가 만무했고.... 아니, 충분히 알고도 남을 사람이라고, 지담은 어렴풋이 옛일을 기억하며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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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그날도 지담은 세윤과 봉사활동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학교 근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지담은, 1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서 동아리방에 가려고 했다.
근데 세윤이 시원한 거라도 마시고 싶다며 근처 카페에 들러서 가자고 하는 바람에 그리로 걸음을 옮겼다.
카페에 들어선 두 사람은, 동아리 친구인 지현이가 웬 중년여성과 마주 앉아 있는 걸 우연히 보게 되었다.
“저는 수훈이를”
촥~~짝
지현이가 거기까지 말하는데 맞은 편 중년여성이, 물 잔의 물을 지현의 얼굴에 확~뿌리고 따귀를 때렸다.
카페 안에는 다행히 사람들이 많진 않았지만, 세윤과 지담은 충격을 받아서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다.
“네가 감히 그 천한 입으로 내 아들 이름을 입에 올려? 더 험한 꼴 당하기 전에 당장 수훈이 옆에서 떨어지거라...”
“........”
“이쯤 했으면 알아들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신 내 눈에 띄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중년여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자마자 지현의 손등으로 소리 없는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이 상황을 처음부터 지켜 보지 못한 지담과 세윤은 무슨 일인지 지현에게 다가가 물었다.
지현은 수훈에게는 절대 말하지 말라며 신신당부를 하였고, 울먹이면서 그동안의 일을 얘기 해 주었다.
지현과 수훈은 그 당시 캠퍼스 커플이었다.
그러다 지현의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면서 집이 갑자기 기울었고, 지현이 휴학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수훈이 이를 알고 등록금을 대신 내주었다고 한다.
거기다 지현의 집이 경매로 넘어가는 걸 수훈이 막아 주었고, 생활비까지 도와준 사실을 수훈 어머니가 알게 된것이다.
아무래도 수훈의 어머니가 자신이 수훈의 배경을 보고 접근한 여자라고 생각하신 것 같다고 지현이 말했다.
지현이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세윤과 지담은 너무나 잘 알기에, 여린 마음에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지 걱정했던 두 사람이었다.
사실, 수훈의 집안은 대단한 재력가 집안이라고 했다.
기업을 경영하는 건 아니지만 뛰어난 투자전략으로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도 자산이 어마어마하다고 언젠가 상우와 도윤에게서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니 수훈도 대학생임에도 불구하고 개인 자산이 상당할 거라고 예상했다.
태어날 때부터 자신들과는 다른, 그야말로 그들이 사는 세상이었다.
그런 집안이라 그런 걸까... 수훈의 어머니는 아들의 여자는 자신이 생각하는 수준에 맞지 않으면 가차 없이 내 쳤다.
그 일이 있은 후, 지현은 휴학을 했으며, 수훈과 헤어졌다.
지담은 친구 지현이 겪은 일을 직접 목격했기에, 수훈의 어머니 전화는 달갑지 않았을 뿐 아니라 마음이 무거웠다.
사실, 수훈과 사귀지도 않고, 지현처럼 수훈의 도움을 받은 적도 없는데 왜 이렇게 서늘한 마음이 드는지... 소름이 돋았다
크게 숨을 푸~하고 내쉬고 천천히 식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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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같은 날은 이 선생님 환영회 겸 몸보신도 같이해야 한다는 상우의 의견에 따라, 복지관 근처 삼계탕 집으로 가게 되었다.
그 사이 강현은 사람들과 정식으로 통성명을 하고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아~치과 의사셨구나...이가 아프면 이 선생님 찾아가면 되겠네요? 하하하... 음~ 그럼 세금에 관한 건, 이 친구나 아님 저한테 물어보세요.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성심성의껏 대답해 드리겠습니다....하하하”
강현의 명함을 받은 상우가 자신의 명함을 내밀며 도윤과 같은 일을 한다고 말을 했다.
“네... 고맙습니다. 그리고 이가 아프면 언제든지 오세요... 저도 성심성의껏 봐 드리겠습니다”
강현은 상우가 유쾌하고 편한 사람이라고 생각이 들어, 마음에 들었다.
웃고 떠드는 사이 지담이 식당으로 들어왔다.
뒤늦게 합류한 지담의 낯빛이 어두운 걸 알아챈, 세윤은 왜 그러냐고 지담에게 물었다.
나중에 말해 준다며 지담은 어색하게 웃어 보였고, 그 웃음이 어쩐지 더 신경이 쓰이는 강현과 수훈이었다.
음식이 나온 후, 세윤 옆에 앉은 도윤은 세윤을 챙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물이면 물, 소금이면 소금, 밑반찬이면 밑반찬 등등... 척척 대령하는 도윤을 보며 상우는
“뭐야뭐야~너네 둘...나, 촉 되게 좋아~”
라며, 개그맨 흉내를 냈다. 그 모습에 세윤이 아무 말 없이 피식하고 웃었다.
“뭐야 진짜 둘이 사귀기라도 하는 거야? 부정하는 분위기가 아닌데? 처형~이 자식은 안돼~”
“처형은 무슨~너 우리 처제 넘보지 마라~응? 알았냐~”
세윤의 동생, 정윤을 한번 보더니 그 뒤 자꾸 세윤을 처형이라고 부르는 상우였다.
그런 상우를 숟가락으로 상우의 이마를 툭 치며, 넘보지 말라고 경고 아닌 경고를 하는 도윤이었다.
-처제라...-
세윤은 아직 사귀지도 않는데 도윤이 자신의 동생을 그렇게 부르는 것에 웬지 뿌듯하고 든든함을 느꼈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미소만 지었다.
아무런 부정도 하지 않는 세윤의 모습에 지담과 수훈은 피식 웃었다.
둘의 관계가 진전이 좀 있었나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광경을 바라본 강현은 아까부터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지담이 식당에 들어왔을 때부터 방석이며 수저 등 이것저것 챙겨주는 수훈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 보면 도윤과 세윤, 지담과 수훈이 커플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아~진짜... 너네들 나만 빼고 뭔가 있나 본데~이거야 원 서러워서...이 선생님 솔로들 끼리 한잔합시다”
상우가 앞에 놓인 음료수 잔을 들고 강현에게 내밀었다.
“저는 현재 관심 있다고 고백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도 아직 사귀는 건 아니니까 한잔해야죠?”
하고 강현이 선전포고하듯이 말하고는 상우와 음료수 잔을 부딪쳤다.
“와우~이 선생님 박력 있으신데요?”
“그런가요? 근데, 관심 있다고 고백했는데 뒤도 안 돌아보고 가버리더라고요”
“음~이 선생님 같은 분을 차버리다니 그분 대단 한데요?”
“그렇죠... 대단한 분이죠... 안 그래요? 서 지담씨...”
강현이 지담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모두 깜짝 놀랐고, 수훈은 급격하게 얼굴이 굳어졌다.
지담은 강현을 노려보고 있었으며, 강현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미소만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