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 수아가 PC방에서 나왔다.
도로를 건너 놀이터로 걸어갔다. 또래들이 한데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게 보였다. 아까 PC방에서 보았던 무리였다. 여자 둘, 남자 둘.
무리 중 한 명이 수아를 힐끗 보고 다가왔다.
"야, 너!"
제법 덩치가 크고 요즘 유행한다는 투 블럭 컷을 한 사내아이였다.
"집 나왔냐?"
투 블럭 컷이 수아를 빤히 쳐다보며 그 자리를 한바퀴 돌았다.
"야, 얼른 와. 거기서 뭐해?"
멀리서 삼선 슬리퍼를 신은 사내아이가 소리쳤다.
투 블럭 컷이 물었다.
"혼자 왔지?"
수아가 들릴듯 말듯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응."
"응? 썅, 이게 버르장머리없이 반말을 까네."
투 블럭 컷이 수아의 머리를 때렸다.
수아가 대번 쏘아보자 이번엔 검지손가락으로 수아의 이마를 툭툭 건드렸다.
"이보세요. 그러다 눈알 튀어나오겠어요. 어딜 노려봐. 이 씨발새끼가!"
그리고 무리들을 향해 소리쳤다.
"얘들아, 이 새끼 집 나왔단다. 우리 같이 좀 놀아줄까?"
제일 먼저 삼선 슬리퍼가 겅충겅충 뛰어왔다. 뼈대만 앙상한 놈이었다. 담배를 피우며 수다를 떨고 있던 여자아이 두 명도 슬슬 다가왔다.
수아가 여자아이들을 힐끔거렸다.
"왜 너도 한 대 빨고 싶어?"
투 블럭 컷이 히죽거리며 물었다.
"어이, 꼬마 너 뒈지고 싶지 않으면 가진 거 다 내놔."
삼선 슬리퍼가 엄포를 놓았다.
수아가 고개를 돌렸다.
"어라, 씨발새끼가 어른이 말하는데. 씹냐? 씹냐고!"
삼선 슬리퍼가 발길질을 하려고 발을 뻗었다가 신발이 공중에서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보고 무리들이 킥킥거렸다.
"븅신, 지금 개그짜냐? 이 엉아가 하는 거나 잘 보세요."
투 블럭이 수아의 멱살을 잡고 한 팔을 크게 들어올렸다. 그 바람에 수아의 슬리퍼가 발끝에서 간당거리다 툭 떨어졌다.
"야. 관둬!"
앙칼진 목소리를 듣고 투 블럭 컷이 멈칫했다. 짙은 화장에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자아이였다.
"뭐냐? 이 시츄에이션은… 설마 너…"
투 블럭 컷이 어이없다는 얼굴로 미니스커트를 쳐다보며 말했다.
"썅년. 저 놈이랑 빠구리까는 사이지?"
그리고 흥분해 소리쳤다.
"아, 씨발. 존나 멍청한 새끼. 쟤 여자야!"
미니스커트가 한심하다는 듯 꼬나보았다.
"뭐, 여자? 뻥까시지 마세요. 이 년이 누굴 호구로 아나."
머리끝까지 열이 뻗친 투 블럭 컷이 번쩍 한 팔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삼선 슬리퍼가 호들갑스럽게 투 블럭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새꺄. 오늘 쟤네 집에서 자기로 한 거 잊었어?"
"아, 븅신들. 존나 짜증나게 구내. 쟤, 여자라고. 나랑 같은 소공 중학교, 2학년 3반."
"오케이. 그럼 확인해 보면 되지."
투 블럭 컷이 능글맞은 미소를 흘리며 수아에게 다가갔다. 가슴 쪽으로 팔을 뻗었을 때 미니스커트가 투 블럭의 팔을 덥썩 잡았다. 수아의 시선을 외면한 채 조용히 속삭였다.
"쟤 건들지마."
"어쭈 이것봐라. 이것들이…. 썅년. 나 속이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미니스커트가 버럭 소리쳤다.
"쟤, 재수 옴 붙은 년이란 말이야!"
"누구, 쟤?”
"아...씹...몰라."
"어라. 이 년 봐라. 너 장난하냐?"
"쟤네 언니…."
"언니가 뭐? 빠구리 존나 잘한대?"
투 블럭 컷이 가운데 다리를 잡고 흔드는 모습을 보고 삼선 슬리퍼가 킥킥댔다.
"아, 씨발. 그런 게 아니야. 쟤네 언니, 자다가 어떤 미친놈한테 잡혀가서 실컷 당하고 존나 맞아 죽었대."
“그게 뭐 어쨌다고?”
"시체에 얼굴만 없었대. 몸은 그대론데... 쟤한테 언니귀신 붙었다는 소문이 있어. 우리 학교 애들은 다 알아. 쟤 잘못 건드리면… 얼굴없는 귀신이 복수한다고"
투 블럭 컷과 삼선 스릴퍼가 눈빛을 마주치고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핫, 귀신? 이게 날 뭘로 보고."
투 블럭 컷과 삼선 스릴퍼가 눈을 마주치고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수아는 아이들끼리 쑥덕이는 소리가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삼선 슬리퍼가 건들건들 수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수아가 입은 점퍼 안으로 쓰윽 손을 집어 넣었다. 수아가 주춤 몸을 뺐다.
"졸업한 제니 선배 알지? 그 선배 남친이 칼치기하다 트럭에 치었잖아.”
“에이씨, 그건 술 빨고 달리다 그런 거잖아.”
“다른 데는 다 멀쩡했는데 얼굴만 박살났어. 헬멧도 쓰고 있었는데.... 그게 공터에서 쟤 데리고 노예게임하고 난 직후였어."
얼굴이 박살났다는 소리에 삼선 슬리퍼가 화들짝 놀라 손을 빼고 물러났다. 투 블럭 컷도 무심결에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자고로 거리에 떠도는 소문을 함부로 무시하면 된통 당하는 수가 있다. 그것이 거리의 법칙이다.
"캭, 씨발. 존나 재수 없는 년. 꺼져!"
투 블럭 컷이 땅바닥에 침을 뱉고 돌아서려는데 갑자기 수아가 녀석의 팔을 붙잡았다.
“뭐, 뭐야?…”
투 블럭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팔을 내쳤다.
"담배....."
“아...씨, 존나 짜증나게.”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꺼내 통째로 바닥에 던졌다. 그리고 무리들과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
수아는 바닥에 흐트러진 담배를 주워 모았다. 저만치 달아난 아이들이 수아를 향해 침을 뱉었다.
수아는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