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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인코그니토
작가 : BD번
작품등록일 : 2019.9.1

추기경 살해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귀족 청년 에드먼드. 무죄를 증명하고 원래의 생활로 돌아가기 위한 그의 이야기.

 
8. 잠입(6)
작성일 : 19-10-31 14:08     조회 : 59     추천 : 0     분량 : 5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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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천히 몸을 일으킨 그것은, 3미터쯤 되어 보이는 높이의 천장에 머리가 닿으려 할 만큼 거대했다. 온통 철갑을 둘러싼 기계 거인. 그것을 보는 라나의 첫 감상은, 현재 상황과 조금 엇나가 있었다.

 

 "리타가 저거 보면 되게 좋아하겠네."

 "보스, 지금 그런 말이 나와? 애들 장난감 골라주는 눈으로 저 녀석을 쳐다보지 말라고!"

 "바비, 너 힘쓰는 건 자신 있지?"

 "아니, 난 보기와 달리 연약해."

 "웃기고 있네."

 

  저 거대한 몸집에 위축되는 기분이 드는 건 당연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저 철갑을 두른 거인이 호전적인 것 같지는 않았다. 녀석은 몸을 일으킨 뒤로 라나들 쪽으로 공격해오지는 않고,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물론 저 강철의 수문장이 저 뒤의 문으로 얌전히 지나가게 놔둘 리는 없었다. 하지만 라나는 반드시 저 거대한 녀석을 뚫고, 저 문 너머로 가야만 했다.

  갑자기 복도의 불이 모두 켜졌다. 그리고 라나 일행의 뒤로 인기척이 올려오는 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침입 사실을 눈치챈 수사들이 몰려오는 게 아닌가 싶었다. 수사라곤 해도 아마 수도원을 지키기 위한 훈련을 받은, 군인과 다름없는 이들일 것이다. 그리고 저들의 장비는 라나들과 같은 화약 무기만 있단 보장도 없었다.

 

 "일단 뒤쪽에서 오는 인원을 가능한 한 막아봐! 바비! 가자!"

 "보스, 진심이야?"

 "너 요즘 왜 이리 내 진심을 확인하려 해? 일단 어떤 녀석인지 부딪쳐는 봐야지!"

 

 밥은 심호흡을 내쉬며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라나와 밥은 우선 거리를 둔 채로 녀석의 약점을 찾기 위한 사격을 시작했다. 관절이나 눈에 띄는 틈새 등, 취약지점을 찾아 연신 사격을 이어갔다. 녀석은 공격을 받으면서도,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저 자신의 자리만 지키고 있었다.

 

 "고놈 참 더럽게 튼튼하네."

 "애초에 대전차 수류탄을 맞고도 움직인 녀석이잖아?"

 "총이 안 먹히면 다른 수라도 찾아봐야지."

 

  라나는 일단 강철 거인을 향해 무작정 달려갔다. 그녀의 무모한 행동에 밥은 한숨을 내쉬며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이 돌진해오자, 녀석은 본격적인 행동을 취하기 시작했다. 달려오는 라나를 향해 녀석은 사람 몸통만 한주먹을 휘둘러왔다. 라나는 가볍게 그것을 피하긴 했지만, 바닥을 내려지는 그 위력은 전혀 가벼워 보이지 않았다.

  정통으로 맞으면 온몸의 뼈가 무사할 것 같지 않은 무시무시한 위력이었다. 바닥을 부수며 튀어 오르는 파편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몇 개를 정통으로 얻어맞아 버렸다. 치명적인 위력은 아니었지만, 맞은 자리에 분명히 멍이 들 것 같았다.

  녀석의 공격은 멈추지 않고, 다시 거대한 팔을 휘둘렀다. 녀석의 움직임은 준비 동작은 큰 편이었지만, 막상 내지르는 순간의 속도는 어마어마했다. 황급히 몸을 숙여 공격을 피했지만, 머리 위로 지나는 엄청난 풍압에 오금이 저리는 것 같았다.

 

 "보스! 녀석이 바닥을 부수게 해서 아래로 떨어지게 유도해보는 건 어때?"

 "녀석의 몸집을 생각하면 금방 다시 올라올 것 같... 우왓!"

 "조심해, 보스!"

 

  녀석의 공격 수단은 주먹만이 아니었다. 녀석의 머리 부분에서 에너지가 응축되더니, 라나와 밥을 향해 거침없이 쏘아댔다. 가까스로 광선 공격을 피해냈지만, 광선이 지나간 자리가 용암처럼 붉게 녹아있었다.

 

 "거참 환장하겠네! 저거 만든 놈은 세계정복이라도 하려는 거 아냐?"

 

  가고일이 가지고 있는 광선까지 달고 있다니! 라나는 혹시 국제법 같은데 저촉되는 게 아닌가 따지고 싶어졌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공격에 라나와 밥의 체력이 먼저 닳고 있었다. 정작 녀석에게 쓸만한 공격 한 번 먹이지도 못하고, 그저 이리저리 공격을 피하는 것이 전부였다. 이것은 명백히 시간과 체력 낭비였다.

  뒤에선 무장한 수사들과 라나의 일행들이 교전을 벌이고 있었다. 역시나 수사들은 화약 무기가 아닌, 에테르의 힘을 이용한 무기들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가고일이나 저 강철 거인이 쏘는 광선처럼 강력한 에너지를 가진 무기는 아니었다. 그것들은 개인이 들고 다니기엔 너무 크고 복잡한 구조가 필요한 장치였다.

  하지만 대신에 라나들은 어디까지나 소지한 탄환이 제한되어 있었다. 그리고 저들의 무기는 과부하가 걸리지 않는 한 한정이 없었다. 결국 이대로 시간만 흘러가면, 아무런 가망이 없었다.

 

 "바비! 녀석의 주의를 좀 끌어봐!"

 "뭐? 보스! 대체 뭘 하려고?"

 

  라나는 녀석의 뒤로 돌기 위해 무리를 해서라도, 공격의 틈새를 뚫고 전진했다. 역시나 더욱 가까이 붙는 라나를 향해, 녀석을 더욱 무자비하게 공격을 퍼부었다.

  밥은 라나를 돕기 위해, 녀석을 향해 과감히 발길질을 날렸다. 하지만 그 공격에 꿈적도 하지 않는 건 밥도 예상한 바였다. 오히려 둔탁한 쇳덩이를 걷어찬 밥 쪽에 타격이 왔다. 발꿈치부터 머리끝까지 전해지는 충격에, 눈물이 찔끔 나올 것만 같았다.

 

 "빌어먹을... 더럽게 아프네."

 

  녀석에게 데미지는커녕, 오히려 본인이 데미지를 받은 상황이지만, 적어도 주의를 끄는 데는 성공했다. 녀석은 목표를 라나에서 밥으로 바꿔, 그를 짓밟으려는 듯이 거대한 발로 찍어 내렸다.

  톤 단위는 돼 보이는 체중이 실린 공격이, 복도 전체를 뒤흔들었다. 수도원의 설계에는 내심 감탄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녀석의 공격에 바닥의 벽돌이 박살 나며 사방으로 튀었지만, 바닥 자체가 무너지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밥이 처음에 생각한 바닥 무너뜨리기 작전은, 전혀 통하지 않았을 거라고 뒤늦게나마 알려주는 것 같았다. 어쨌거나 밥에게 주의가 돌아간 덕분에, 라나는 재빨리 뒤로 돌아갈 수 있었다.

 

 "잘했어, 바비!"

 

  하지만 뒤로 돌아간 라나를 그냥 두고 볼 리는 없었다. 녀석은 라나가 문으로 가지 못하게 만들려는 듯, 더욱 거센 기세로 라나를 덮쳐왔다. 하지만 어차피 라나는 녀석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문 쪽으로 더욱 바짝 다가갈 수밖에 없었다.

  녀석은 돌진하며 미친 듯이 라나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자신의 뒤에서 소총의 개머리판으로 두들겨 대는 밥의 공격을 더는 신경 쓰지도 않았다.

  복도 끝까지 몰린 라나는 더 피할 장소도 없었다. 그녀가 황급히 문고리에 손을 가져갔지만, 역시나 문은 굳게 잠겨 열리지 않았다.

 

 "보스! 피해!"

 

  다시 한번 녀석의 거대한 주먹이 라나를 향해 날아왔다. 그 상황에서 라나는 어째선지 웃고 있었다.

  라나는 몸을 굴려 아슬아슬하게 녀석의 공격을 피했다. 마치 공성추와 같이 문을 때린 공격은, 굳게 잠겨져 있던 문을 비틀어 열어버렸다. 라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문을 박차고 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바비! 가능한 시간 좀 끌어봐!"

 "아니, 내가 무슨..."

 

  라나의 말이 아니더라도, 녀석은 덩치 탓에 문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그리고 녀석이 놓친 라나는 금방 포기하고, 밥을 향해 다시 맹공을 펼쳐왔다.

  밥은 라나만큼 재빠르진 못했다. 덩치도 그녀의 배는 컸다. 녀석의 공격이 오롯이 밥에게만 쏠리자, 공격을 피하기가 더욱더 버거워졌다. 몇 개의 공격은 제대로 피하지 못하고 그를 스치고 지나갔다. 스치기만 했는데도 엄청난 충격이 온몸으로 전해져왔다.

 

 "보스...! 좀 빨리!"

 

  밥의 코와 입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이미 뼈 몇 군데는 금이 간 정도로 끝나지 않은 것 같았다. 솔직히 라나를 저주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분명히 처음에는 그도 이 작전엔 반대였다. 다만 그런 반대의견을 도무지 들어먹지도 않는 상관을 둔 게 문제였다.

 

 "이봐, 덩치. 여기 좀 보라고?"

 

  문 너머로 라나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어딘가 의기양양한 태도의 라나는, 몸쪽에 뭔가의 기계장치를 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라나가 장치의 스위치를 누르자, 갑자기 라나의 몸에서 황금빛 오라 같은 광채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을 타고 흐르는 오라는, 그녀의 왼손에 들린 권총으로 점점 모이고 있었다.

  라나를 발견은 강철 거인은 그녀를 향해 머리를 돌렸다. 그리고 또다시 녀석의 머리에선 광선이 응축되기 시작했다.

 

 -탕!

 

  라나가 방아쇠를 당겼다. 그녀의 총으로 모였던 오라는 폭발하듯, 총알과 함께 분출됐다. 그리고 그녀가 쏜 총알은 거인의 머리를 완전히 관통해버렸다.

  가고일처럼 분출되지 못한 에너지가, 장치의 내부를 태워버리는 결과는 일어나지 않은 것 같았다. 거인의 움직임이 잠깐 멈추긴 했지만, 녀석은 곧바로 다시 움직이며, 라나를 향해 공격하려 들었다.

 

 "바비! 이거 받아!"

 

  라나는 뭔가의 꾸러미를 밥을 향해 던지고는, 다시 금빛 오라를 품은 총격을 날려댔다. 분명 평범한 9밀리 자동권총에 불과했지만, 그녀의 탄환은 기계 거인의 철갑을 제대로 뚫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공격에도 녀석은 전혀 끄떡없어 보였다.

 

 "이거 참, 옛날 생각 나는걸?"

 

  라나가 던진 꾸러미는 받아든 밥은, 미묘한 웃음을 내지였다. 거기엔 라나가 몸에 두르고 있는 것과 비슷한 장치와 강철로 된 장갑이 한 쌍 있었다.

  밥은 주저하지 않고 장치를 몸에 두르고, 장갑을 손에 꼈다. 강철로 된 장갑은 그의 전용이라도 되는 것 마냥, 손에 딱 맞는 사이즈였다.

 

 "그럼 마무리는 부탁할게."

 "그래, 힘쓰는 건 내게 맡기라고 보스!"

 

  라나의 몸에서 오라가 사라지고 있었다.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나는 라나 대신에 바톤을 물려받듯, 밥은 장치의 스위치를 눌렀다. 그의 몸에서도 라나와 같은 금색 오라가 피어올라왔다.

  밥은 전혀 주저하지 않고, 강철 거인을 향해 그의 주먹을 내질렀다. 타격과 동시에 충격파처럼 금빛 오라가 터져 나왔다. 크기는 강철 거인에 미치지 못하지만, 그 기세는 절대 뒤지지 않는 주먹질이었다. 그리고 그의 공격에 처음으로 강철 거인의 몸이 비틀거렸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두어 차례 공격을 퍼부었다. 금빛 섬광이 터져 나오며 거인의 몸이 심하게 비틀거렸다. 하지만 녀석도 공격을 받고만 있지 않았다. 곧바로 그 거대한 팔을 휘둘러 반격을 개시했다.

 

 "읏챠!"

 

  밥이 처음으로 거인의 공격을 정면으로 받아냈다. 양손으로 거인의 주먹을 받아낸 밥은, 그대로 거인의 팔을 붙든 채로, 벽 쪽으로 그 거대한 강철 덩어리를 내동댕이쳤다.

  강철 거인의 거대한 몸이 벽을 부수며 널브러졌다. 그런데도 녀석은 여전히 움직이려 했지만, 밥은 거인의 팔을 붙들고서 그것을 부술 기세로 비틀기 시작했다.

 

 "그아아앗!"

 

  밥이 괴성을 내지르며 온몸에서 금빛 오라는 분출했다. 그의 터질듯한 근육이 셔츠의 소매를 찢어버리며, 순식간에 민소매 차림으로 만들어 버렸다.

 

 -끼기기긱

 

  거친 쇳소리와 함께, 거인의 팔이 뜯겨나갔다. 밥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뜯어낸 팔을 무기로 삼아 사정없이 여러 차례 내려쳤다.

  강철로 된 거인의 몸통이 점차 깡통처럼 찌그러져 가기 시작했다. 날뛰는 짐승처럼 밥의 공격에, 그 무시무시하던 녀석이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고 무참히 고철 더미로 변해갔다.

  그리고 얼마큼 시간이 지나자, 밥도 라나처럼 오라가 점점 사라졌다. 본체와 마찬가지로 너덜너덜해진 기계 팔을 내동댕이치고, 밥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뒤로 물러났다.

 

 "후아... 블레서는 오랜만이라 죽겠네..."

 "잘했어, 덩치."

 

  피와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밥은 쌕쌕거리는 숨을 골랐다. 그의 뒤로 다가온 라나가 등을 토닥여 주며 수고했다고 격려를 보냈다.

  밥의 거센 공격에 거인의 몸통은 완전히 찌그러져 있었다. 철갑이 뒤틀리고 안쪽의 기계장치가 돌아가는 모습도 모였다. 녀석은 그런 몰골이 되고서도 다시 일어나기 위해, 덜덜거리며 애를 쓰고 있었다.

 

 "너도 이젠 좀 쉬어라. 정말이지 징글징글하네."

 

  라나는 기가 찬다는 얼굴로 강철 거인을 바라보더니, 그것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수류탄 하나를 꺼내 들어, 벌어진 철갑 사이로 집어넣고는 뒤로 물러났다. 잠시 뒤 거인의 몸통 안에서 굉음과 함께 새까만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비로소 강철 거인은 미동도 전혀 하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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