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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변이하는
작가 : 교관
작품등록일 : 2019.9.26

주인공은 6일 동안 자신의 변이에 대해서 인지를 한다. 받아들이는 순간 모든 것이 조화와 균형이 된다

 
변이하는5
작성일 : 19-09-30 13:33     조회 : 25     추천 : 0     분량 : 23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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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순히 듣고 싶지 않은 소리라서 목소리가 공명으로 울리는 것은 아니었다. 하나의 현상이었다. 이상하고 또 이상했다. 윙윙거리며 여러 마디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들리는가 싶더니 목소리로 나온 말이 서로 부딪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영화 속 다른 행성의 존재가 하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러더니 최원해가 말하는 소리가 뭉쳐졌다가 작아지는 것이다. 마동은 최원해의 말이 더 이상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오늘 안에 허락을 받아낼 기세여서 최원해의 말투에 그만 백기를 들고 말았다. 머리는 망망대해에 떠 있는 작은 표류자처럼 목적지도 없이 헤매고 있었다. 마동은 어쩔 수 없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고 최원해는 ‘그래, 역시 여자가 있어야 해’ 하는 눈빛을 띠며 자신의 자리로 슬리퍼를 끌며 돌아갔다. 최원해는 돌아가면서 고개를 돌려 마동에게 미소를 날렸다. 엔드 오브 데이즈에 나오는 악마의 미소 같았다.

  회사에서 팀장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지만 마동역시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꿈의 리모델링 레이어 작업을 해야만 한다. 그것이 마동에게 주어진 일 중에서 전반적으로 차지한다. 마동은 수석디자이너이고 뇌파를 채취하는 작업도 도맡아 했다. 꿈이 재탄생하는 리모델링은 그렇게 난해한 일도 아니지만 쉬운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회사의 업무가 많아지면서 일이 하나, 둘 씩 세상에 알려지자 많은 이들이 입사원서를 냈지만 어떠한 자격증도 필요 없고 자격도 뚜렷하지 않아서 입사가 쉬울 것 같았지만 만만치 않았다. 입사하여도 업무에 적응을 하지 못한다거나 능률이 떨어지면 따로 교육을 받고 석 달 동안 모의작업을 통해서 투입여부를 결정지었고, 그것마저도 가망이 없으면 퇴사를 했다. 그것이 입사서류에 명시되어 있는 항목이다. 각 부서에서 할당된 교육을 받지만 특히 뇌파를 채취하는 훈련을 받는 부서는 다른 부서에 비해 많은 교육과 경험을 통해서 실전에 투입이 되었다. 입사가 확정된 이들은 계약서에 그러한 규칙을 문서로 받아서 동의를 했고 현재 일을 하고 있는 직원들은 복잡하지만 단순하게 움직이는 조직에 잘 따르고 있었다. 여기에 남아있는 이들은 그 나름대로의 실력을 인정받은 셈이다. 인정받은 이후로는 아주 자유롭게 일을 하면 된다. 입사 지원을 원하는 이들은 매년 들어났지만 신입사원을 다른 회사들보다 채용하는 빈도가 낮았다. 회사는 일하는 직원들의 월급과 편의성을 최대한 보장을 해 주었고 나이순이나 입사한 순으로 진급이 이루어지지도 않았다. 회사에 남아서 일을 하는 직원들은 모두 꽤 일을 하고 있어서 누구나 평등하게 진급의 기회가 주어졌고, 진급의 견인차역할을 하는 것은 아이디어 공모였다. 아이디어 공모는 매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으며 일 년에 한 번씩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누군가 아이디어가 있으면 메일을 통해서 오너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문서로 작성하거나 그래픽으로 스케치를 해서 보내면 된다. 오너는 메일을 하루에도 몇 번씩 확인을 하고 있어서 괜찮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마동을 비롯한 팀장들을 불러 검토를 거쳤다. 점심식사 시간에는 회사에서 마련한 식당에서 호텔조리장 출신의 요리사가 매일 다른 식단으로 메뉴를 정하여 직원들에게 대접한다. 회사 내에는 수면캡슐이 있어서 피곤하면 30분정도 잠을 자고 나올 수 있었고 수면실에서 한 시간 이상 잠이 들면 자동으로 캡슐은 깨워주는 시스템으로 프로그램 되어있었다. 일 년에 큰 휴가는 두 번이 있었다. 여름에 한 번, 겨울에 한 번. 휴가는 최고 20일까지 낼 수 있었다. 여직원들은 임신을 하더라도 일할 수 있었고 만삭으로 걷는 것이 힘겹게 되면 회사에 나오지 않고 집에서 일을 하면 되었다. 남자직원들도 부인이 출산을 하면 출산휴가를 3달 정도 낼 수 있었고 월급은 제대로 나왔다. 직원들이 회사에 대한 불만을 가지지는 않았지만 더 좋은 조건에 스카우트제의가 들어와서 그쪽과 첫 계약으로 거액을 거머쥔 직원이 정보를 빼내어 회사를 나간 일이 몇 해 전에 있었다. 그때 오너는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 자본은 인간을 변이시키고 인간성을 변질시켰다. 그런 식으로 인재를 빼내간 타사는 대부분 음성적인 꿈 리모델링에 착수했고 그들은 정부의 추적에 발각되어 회사가 매각되거나 영업이 정지되거나, 아예 영업이 취소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고객의 뇌파에서 꺼내지 말아야 할 멀쩡한 꿈을 뽑아내어 고객을 일그러진 모습으로 만들어서 사람들의 지탄을 받기도 했고 정부의 심기를 건드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정상적으로 영업을 하는 꿈 리모델링 회사는 소수에 불과했지만 음성적으로 활동하는 개개인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그들은 자신이 개발한 불법 프로그램이 삽입된 노트북을 들고 다니며 비교적 저지대의 사람들을 상대로 영업을 했지만 그 고객들 대부분이 타인의 말살을 위해서 꿈의 리모델링을 원했다.

  마동이 다니는 회사는 프로그램화되어 이뤄지는 모든 일들이 허브를 통한 데이터베이스 구축으로 시작해서 직원들 개개인에게 허브에서 정해진 작업분량이 구분되어 맡겨졌다. 직원들은 개개인의 데스크 앞에 있는 컴퓨터만으로 할당된 작업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회사는 점심시간을 엄숙하게 지켰다. 점심시간이 되면 자동적으로 허브에서 각자 도맡아서 하던 작업을 정지시키고 점심시간에는 작업에 관한 프로그램은 차단이 된다. 점심시간이 오면 개인 소셜네트워크를 제외하고 중단되기에 직원들은 책상에서 곧바로 일어나 식당으로 내려갔다. 식당은 건물의 맞은 편 작은 카페를 개조한 식당으로 전적으로 회사의 직원들만을 위해서 마련되었다. 오직 식사와 티타임을 위한 공간이었다. 점심밥을 해결하는데 개인적인 시간과 비용을 소비할 필요가 없었다. 어느 날은 질 좋은 스테이크가 나왔다. 근내지방이 덜하며 육즙이 좋은 숙성의 맛이 가득한 소고기로 점심을 채우는 것이다. 어느 날은 보리밥과 조기구이, 애호박이 들어간 된장찌개와 손으로 갓 만들어낸 신선한 두부와 초간장이 곁들여 나오기도 한다. 집에서 좀처럼 해먹을 수 없는 음식이 나온다. 또 다른 날에는 고르곤 졸라가 스며든 피자가 나오기도 했다. 디저트도 좋았다. 회사의 식당은 카페 같은 분위기가 있어 분위기도 괜찮았다. 직원들은 좋아했다. 특히 여자들에게는 인기가 있었다. 실내의 조도가 낮았고 오너는 식당의 인테리어를 전문가들에게 맡겨져 카페 같은 분위기가 나올 수 있도록 공사를 했다. 덕분에 직원들은 쓸데없이 돈을 낭비하며 회사 밖에서 점심과 커피를 줄서가며 소비하지 않아도 되었다. 식사가 끝나면 바리스타가 서 있는 커피부스로 가서 마시고 싶은 커피를 주문해서 마시면 된다. 어떤 날은 더치로 추출한 예가쳬프나 만델링, 수프리모를 마실 수 있었다. 식단은 철저하게 칼로리와 열량과 나트륨을 체크하고 계산하여 요리했다. 일반적인 식당에서의 음식처럼 적당히 양념을 넣어서 요리를 하는 경우는 없었다. 단체로 먹는 요리는 양과 시간이 중요했다. 하지만 입맛에 맞지 않는 직원들은 사비를 들여서 먹고 싶은 찌개를 사 먹는 경우도 있었다. 일과시간의 시간은 자유롭게 사용하면 된다. 그 시간에 작업을 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었고 회사에서 간섭하지 않았다. 하지만 신체의 움직임이 다른 일에 비해서 비교적 엑티브하지 못하기 때문에 꾸준하게 음식을 배에 채우고 운동을 하지 못하는 남자 직원들은 배가 나오고 비만이 오기 십상이다. 어떤 식으로든 사람들은 변이를 했다. 회사는 그 부분에 대해서도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남자들은 많이 참여하지 않았다. 그런 모습도 타인의 문제이기 때문에 마동은 일일이 간섭하거나 관심을 두지 않았고 다른 이들의 비만한 모습에 뚱뚱하군, 불만이야,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모든 것은 자신이 선택한 일이다. 지금 마동은 남들의 암세포보다 감기기운이 더욱 골치 아프고 신경이 쓰였다. 마동 또한 그저 한 인간일 뿐이다.

  마동은 무거운 머리를 하고 컴퓨터 프로그램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오늘 돌입해야 할 프로젝트 이전의 고객에게 받아놓은 꿈을 마동은 컴퓨터로 불러서 남은 부분을 마저 작업했다. 여러 개의 레이어로 분리하여 상황에 맞는 오브젝트 별 꿈으로 세분화 작업을 했다. 그렇게 작업한 세밀화 작업 분은 마동의 바로 한 단계 밑의 디자이너들에게 나뉘어져 라인과 오버래핑, 스크린 등의 디테일한 작업을 거쳐 나중에 마동의 체크 단계를 거친다. 오너가 브리핑한 새로운 프로젝트에 들어가려면 이전에 맡은 리모델링 작업의 할당량을 끝내야 한다. 그렇게 디자이너들 각각의 작업이 끝난 파일을 받아서 꿈의 단면을 자른 사이드를 3D로 천천히 돌려가며 시뮬레이션해 보았다. 마침내 이전 클라이언트에게 받은 리모델링 작업의 마지막 시뮬레이션이 윤곽을 드러냈다. 마동은 새로운 프로젝트에 돌입하기 전, 이전의 작업을 마치기 위해 자신의 컴퓨터에 허브와 연결한 최적화 이노센트 프로그램에 접속해서 바탕화면에 펼쳤다. 마동의 데스크에는 세 개의 스크린이 있고 그 스크린에는 각각의 꿈의 단면도와 레이어가 네 개씩 컴퓨터 화면에 펼쳐져 있었다. 사무실에는 독자적인 파티션이 있어서 작업하는 동안에 다른 직원들이 함부로 들여다보지 못했다. 고객들의 꿈의 작업은 보안이 중요했고 무엇보다 회사 직원들은 고객이 원하는 꿈의 리모델링은 소중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마동은 의자에 앉아서 디자인들에 의해 작업 된 꿈의 레이어를 펼쳐놓고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바라보았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아침에 조금 밖에 먹지 않은 머핀이 속에서 체한 듯했다. 속이 아주 거북했고 욱욱하며 메스꺼움이 올라왔다. 빈혈이 있는 것처럼 기분 나쁘게 어지러웠다. 작업 때문에 정신과상담을 받는 일도 무기한 미뤘는데 점심시간에 가까운 내과에 가봐야 할 것 같았다. 리모델링의 작업은 순수하게 꿈의 덧칠로는 어림없는 작업이다. 아프다거나 신경 쓸 일이 많으면 그 작업은 당연하지만 순조롭게 이루어 질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프로라 할지라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어서 모두들 자신의 신변주위에 신경을 많이 쓰이는 일을 꾸미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회사에서도 회식이 왕왕 있었지만 다음날 중요한 작업이 많은 날이면 회식을 간소화하거나 술을 마시는 장소는 되도록 피했다. 식사를 하거나 카페에서 커피로 대신하는 경우도 많았다. 직원들은 기억의 왜곡에 대해서도 방전되지 않게 훈련을 하고 트레이닝을 꾸준하게 거쳐야 한다. 가족 중에 누군가 병이 걸리거나 큰 사고를 당해 입원하는 경우가 생기면 머리의 촉은 아무래도 그쪽으로 쏠리게 마련이다. 한 개인이 속한 가족의 경조사를 당하게 되면 매 시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당연히 리모델링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작업의 일선에 투입된 직원들은 특히 더 그랬다. 그래서 훈련을 꾸준히 받지만 신변의 변화가 가져오는 부분이 작업하는데 영향을 미치거나, 작업자 자신의 기억을 왜곡시켜서 잘못된 기억의 한 부분을 토대로 고객의 꿈을 작업하게 된다면 그것은 상당히 위험을 떠안는 꼴이 되는 것이다. 윗선에서 내려오는 업무를 기계적으로 처리하는 일이 아니기에 신체와 마음의 안정이 늘 우선시되어야 한다. 그것이 마동이 일하는 회사의 조화와 균형인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어떤 고객은 자신의 꿈을 아주 디스토피아적으로 작업하기를 바라지만 디자이너들 중에 이제 연애를 시작했거나, 아이가 태어났거나 집을 장만하거나, 행복에 겨워지면 작업자의 작업방식이 고객의 요구와는 달리 행복 인자가 많은 작업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그것대로 낭패인 것이다. 고요한 호수의 수면처럼 편차가 크지 않게 마음과 육체의 평화적 유보가 무엇보다 마동이 속한 집단의 작업자들이 지녀야 할 자세이다. 직원 개인의 귀결은 회사의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에 관리자의 입장에서는 직원 하나하나의 안녕이 보장되는 게 중요했다.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훈련과 교육은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었다. 그런 면에서 마동은 일선에서 작업하기에 딱 들어맞는 인간이었다.

  마동은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매스꺼웠지만 이전의 작업을 다 마쳤다. 마지막으로 체크사항을 점검했다. 그러는 동안 점심시간이 그럭저럭 되었다. 시간이란 어떠한 경우에도 앞으로 꾸준히 간다. 시간은 파괴적이다. 꾸준하기 때문에 무섭다. 시간에 이길 수 있는 인간은 그 어디에도 없다. 영화나 소설 속의 인간만이 꾸준히 나아가는 시간에 역행할 수 있는 힘을 지니지만 실체의 인간은 흘러가는 시간에 휩쓸려 떠내려갈 수밖에 없다. 의미적으로 꿈의 리모델링은 그 시간이라는 개념에 반하는 것으로 뇌파의 망가진 꿈을 건드려 과거를 디스토리션(Distorition)하는 것이다. 마동이 수석디자이너가 되기까지, 입사해서 지금까지 지치지 않고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마동 자신이 이 일을 무척이나 좋아하는데 있었다. 지루해하지 않고 출발점부터 끝나는 지점까지 마동은 하나하나 꼼꼼하게 체크해가며 리스크를 점검해서 리모델링하는 작업을 해왔다. 꿈의 크기와 자본의 함수관계에 상관없이 들어온 꿈의 작업을 마동은 심도 있게 작업을 했다. 지난 작업에서 오류가 발생하면 곧바로 수용하고 바로잡았고 오류가 바로잡히자 마자 새로운 작업에 매달렸다. 때로는 복잡한 리모델링 작업을 맡게 되는 경우가 잇는데 어려운 물리학을 파헤치듯 그 작업에 몰두하는 정신력과 집중력이 생겨났다. 고객의 요구와 회사의 강령과 자신의 욕구사이에서 마동 자신의 모습을 희미하게 하며 작업하는 방식을 택했다. 마동은 그 방식이 좋았다. 자신을 한없이 낮춰서 상대를 존중해준다. 작업 할 때만은 그런 자세를 취했다.

  마동은 오늘 출근하여 일하는 시간을 다른 날에 비해 집중하지 못하고 흘려보낸 것을 아까워했다. 흘러간 시간은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 세상만사에 ‘절대’가 개입하는 부분은 그다지 많지 않다. 하지만 지난 시간은 절대로 마동 앞에 다시 오지 않는다.

  젠장, 이렇게 시간을 허비한 게 감기 때문이다.

  몸속에서 검은 연기를 뿜어내는 공장이 가동되어서 계속 메탄가스를 위로 올려 보내는 듯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최원해가 참치인간의 마른미소를 보이며 회사 밖으로 같이 밥을 먹으러 가자고 했지만 마동은 사양했다. 내과에 가봐야 할 것 같다며 최원해의 말을 잘랐다. 최원해 역시 그다지 실망하는 얼굴표정은 아니었다. 그 표정은 오랜 시간, 오랜 세월동안 여러 사람들과의 대면과 만남에서 나오는 속물적인 표정이었다. 호의가 거절당했을 때 아무렇지 않는 표정을 뚜렷하지 않게 지을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연륜이 쌓이고 시간이 흘러야 가능한 것이다. 최원해는 ‘그럼 그렇게 하지, 나 혼자서 밥을 먹도록 하겠네, 괜히 따라오면 내 주머니의 돈만 빠져나가거든’라는 의미를 표정의 정교한 일그러짐으로 전달했다. 그런 그의 표정에서 인간미라고는 좀체 찾아볼 수 없었다. 직원 중 누군가가 최원해를 향해 혼잣말을 하는 것을 마동은 예전에 들은 적이 있었다. 언제였더라, 한 직원이 목을 비틀어버리고 싶다고 말했었다. 그 직원이 어떠한 이유로 최원해에게 그런 마음을 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조직에 최원해 같은 인간은 반드시 하나쯤 있기 마련이다.

  마동은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가까운 내과로 갔다. 밖으로 나오니 태양은 내일부터는 더 이상 떠오르지 않을 것처럼 열기를 뿜어냈고 광채는 온 세상을 녹여버릴 것 같았다. 자연스레 얼굴의 표정이 무너졌고 눈이 작아졌다. 그늘이 없는 곳에서는 손으로 차광막을 만들어 그늘이 있는 곳을 찾아서 걸었다. 그늘을 따라서 시적시적 내과를 찾아 걸었다. 걸을수록 걸음걸이에는 힘이 들어갔고 다리에는 힘이 풀렸다. 감기가 뜨거운 열기에 더 기승을 부리는 것만 같았다. 이런 감기는 겨울에만 존재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한 여름의 감기바이러스는 마동을 무척 귀찮게 했다. 십분 이상 걸었더니 숨이 차고 한기 때문에 몸도 떨리는 야릇한 느낌이 들었다. 땀이라고는 한 방울도 나지 않았다. 마동은 길거리에 보이는 내과에 들어갔는데 이 여름에 세상의 환자들이 다 모인 듯했다. 내과의 로비에는 이미 길 잃은 강아지들처럼 사람들이 그곳에 가득 들어차서 기침을 하거나 멍한 눈빛으로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이가 많은 사람부터 교복을 입은 학생, 그리고 회사원도 보였다. 대부분 냉방병으로 내과를 찾았다. 대로변에 있는 병원은 전부 사람이 많아서 점심시간 안에 진료를 받지 못할 것 같았다. 병원을 나와서 이희노 정형외과와 그 건물에 붙어 있는 1층의 약국을 돌아 골목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마동이 학창시절에 가끔 지나다니던 곳으로 작은 내과병원이 하나 있는 것을 봤는데 아직도 하고 있는지 가 보기로 했다. 골목은 아직 옛 시대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시대의 발전이 이곳 골목까지 마수를 펼치지 못하고 있었다.

  [어이 이것 봐, 이곳에 땅을 파고 길을 닦고 건물을 올리면 말이지, 당신과 당신 후세는 편안하게 생활을 할 수 있다고]

  정부가 내민 문민정책이라는 손길에 여기 골목의 상가 주민들은 콧방귀를 끼며 그 손을 뿌리쳤을 것이다. 마동은 오래전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골목을 보면서 그렇게 느꼈다. 골목은 허름한 만두집을 필두로 해서 옆으로 해물탕 식당이 보였고 국밥집, 분식집, 식사를 할 수 있는 밥집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는데 소규모에다 식당의 벽은 낡아서 덧칠해 놓은 페인트 자국이 4세 아이가 그려놓은 그림처럼 보였다. 청 테이프를 발라놓은 모습도 보였다. 에어컨은 설치해뒀지만 가동하지 않는지 대부분 문을 열어 놓고 있었고 안에는 손님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었다. 대로변의 모든 상가나 카페는 자리가 없어서 대기하거나 들어갔다가 그냥 나와야 할 정도로 사람이 많았지만 여기 이곳은 그에 비해 초라했다. 마치 같은 몸이지만 기능을 잃어버린 신체의 한 부분처럼 보였다. 우물 저 밑바닥의 세계 같았다. 만두집에는 손님이 한 테이블 있었다. 엄마와 딸의 모습인데 딸이 이제 9살 정도 돼 보였다. 그 또래에 비해 왜소했다. 반팔티셔츠 밖으로 애처롭고 부러질 듯 가느다란 팔뚝을 겨우 움직여 만두를 집어 먹고 있었다. 아이는 더운지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고 엄마는 아이의 땀을 연신 닦아 주었다. 닦아주는 엄마도 땀이 얼굴에 배어있었고 아이는 엄마에게 만두를 먹으라고 했지만 엄마는 고개를 흔들었다. 어디선가 많이 본 장면이다. 영화나 드라마 그런 곳에서. 접시 위 만두는 모녀사이에서 어색하게 말라가고 있었다. 만두는 빨리 없어지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모녀는 그 바람을 무시하는 듯 아이만 천천히 만두를 씹어 먹고 있었다. 아이는 너무 하다 싶을 정도로 천천히 만두를 먹었다. 마동의 눈에 그들은 그렇게 유복하게 보이지 않았다. 가난한 골목의 가난한 만두집에서 가난한 모녀가 초라한 만두를 먹고 있었다.

  어린 시절을 사방이 숲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마동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그땐 마동의 친구들이나 다른 집 역시 썩 잘사는 가구는 없었다. 어머니가 말이 없어지기 전이지만 고등학교 사고 이후 마동의 기억 속에는 어머니가 말을 많이 하는 모습이 가끔씩 떠올랐다. 하지만 그것 마저 마동의 착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와 함께 집에서 밥을 먹었던 기억도 애써 짜내 보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머니는 마동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밥 위에 반찬을 올려주었을지도 모른다. 저 만두집에 앉아서 만두를 먹는 모녀처럼. 동네의 쓰러져가는 풍경과 무서울 정도로 차갑던 숲의 모습은 생생했지만 엄마의 손을 잡고 걸었던 기억은 어찌된 일인지 없었다. 가끔씩 떠오르는, 손을 잡고 걸었던 기억이 뿌옇게 먼지 낀 도로처럼 희미하지만 그 손은 어머니의 손은 아닌 것 같았다. 너구리들의 모습도 드문드문 떠올랐다. 사방이 숲이라서 너구리가 많았다. 그렇지만 영화 속 줄거리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장면처럼 너구리는 기억 속에서 떠올랐다가 심각하지 않게 사라지곤 했다. 아버지는 마동이 초등학교 2학년 때 죽었다. 마동은 아버지가 죽어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어느 가을날 학교를 마치고 아버지가 일하는 경운기 수리 점에 가는 길이었다. 경운기는 요즘도 시골에서 없어서는 안 될 작업농기계다. 털털거리는 큰소리와 함께 기동력이 좋고 힘이 좋아서 어느 언덕이나 올라 갈 수 있고 얕은 개울물도 건너는데 문제가 없는 불도저 같았다. 아버지는 수리를 끝낸 경운기에 가끔 마동을 태우고 시운전을 하곤 했다. 그날도 마동은 아버지와 함께 경운기의 시운전을 할 요량으로 그곳으로 가고 있었다. 몇 마리 없는 돼지축사를 지나서 가는데 어디선가 이탈된 털털거리는 경운기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평소에 듣던 경운기의 엔진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경쾌하지 않았고 어둡고 비밀스럽지 않게 위압적이고 굉장한 소음에 가까운 소리였다. 언어로 표현 할 수 없는 맹수가 누린내 나는 이를 드러내고 내지르는 공포가 섞인 소리였다. 무서웠다. 마동은 어렸지만 대번에 그것은 두려운 소리라는 것을 알았다. 가방을 동여매고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달려갔다. 축사를 돌아서 가니 힘없는 시멘트벽을 타고 올라가려는 경운기의 끔찍한 모습이 보였고, 경운기와 벽 사이에는 마동의 아버지가 끼어 있었다. 경운기의 바퀴는 아버지의 얼굴을 사정없이 갈아서 얼굴 가죽이 다 벗겨질 지경이었고 아버지의 팔은 뒤로 꺾인 채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마동은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때 아버지의 눈동자를 보았다. 그 눈동자는 그동안 마동이 보지 못했던 연약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주의 깊은 눈빛으로 마동에게 다가오지 마라, 아빠는 괜찮을 거란다, 끝나지 않아, 끝나지 않는 세계 속에서 넌 힘겹지만 견디는 법을 알아야 해, 걱정하마, 언제나 함께 있으마, 너를 응원하마,라고 말하고 있었다. 어린 마동의 눈에 그렇게 보였다. 아버지는 그런 눈빛으로 마동을 쳐다보았다. 아버지는 마을 사람들에 의해 병원으로 실려 갔지만 장 파열로 10시간 만에 죽어 버렸다. 허무한 죽음이었다. 마동은 그날의 모습만은 선명하게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어떠한 기억에서 잘못된 부분이나 부풀리는 날조 없이 그 날 이후 마동은 줄곧 그 잔인한 기억은 머릿속에 박혀 버렸다.

  아버지의 고통에 찬 얼굴과 편안한 눈빛.

  대립된 모순이 마동의 머릿속에서 칼날처럼 반짝였다. 눈빛은 마지막에 마동을 향하고 있었고 어린 마동은 얼굴 가죽이 벗겨져 나가 죽음으로 향해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누군가를 불러 올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서서 아버지의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엄마는 아버지를 잃었지만 울지 않았다. 평정을 유지한 채 생활한 것으로 기억 할 뿐이다. 그 외의 엄마에 대한 기억은 늘 짙은 안개 속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았다. 엄마와 마주앉아 밥을 먹은 기억에 대해서 만두모녀를 보며 떠올리려 해도 잘 떠오르지 않았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을 억지로 기억을 할 필요가 없다. 기억을 한다고 해서 지금 아버지가 살아 돌아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더운 날이다. 몹시 무더운 여름의 날이었다. 만두모녀가 이제 만두를 반 정도 먹었고 그 모습을 서서 보다가 마동은 만두집을 지나쳤다. 그 골목을 돌아서니 모퉁이에 장난감 도매점이 보이고 2층에 ‘라사마내과’라는 간판이 보였다. 병원은 이전하지도 않고 증축도 개축도 하지 않은 채 오랜 세월 한 곳에서 견디고 있었다. 1층의 장난감 도매점도 무척 오래되었는데 문을 열어 놓고 아직 장사를 하고 있었다. 도매점 안에 오래된 장난감이 가득 들어차 있었지만 이제 그런 장난감을 찾는 아이들은 제비처럼 줄어들었다. 장난감은 예전에 대량으로 생산되어 초등학교 근처의 문방구에 소매 급으로 팔려나가서 많은 아이들에게 재미를 가져다주었지만 요즘은 떨어지는 디테일과 환경공해를 유발하는 폴리에틸렌 합성수지로 만든 플라스틱제품을 사람들은 선호하지 않았다. 가끔씩 고아원이나 단체가 있는 시설에 싼 가격에 도매로 팔려나가서 그 명맥만 유지 할 것이다. 주인은 입구의 그늘에 앉아서 어딘가에 쫓기는 표정으로 신문을 들추고 있었다. 마동은 완구도매점 앞으로 갔다. 앞을 지나쳐야 라사마내과로 올라갈 수 있었다. 도매점 주인은 77살은 넘어 보였다. 87살이라고 해도 믿을 법했다.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되면 나이를 가늠하기 애매해진다. 60살은 넘었지만 100살은 안 돼 보였다. 돋보기안경을 쓰고 얼굴에 굵고 진한 검버섯이 지도처럼 꽃을 피우고 있었다. 머리카락은 누군가 우악스럽게 다 쥐어뜯었는지 윗부분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정정하게 보였다. 신문을 확인하는 눈빛이 날카로웠다. 하얀 색 러닝셔츠 차림으로 도매점 주인이 앉아있는 의자 옆에는 얼음이 들어있는 물병이 보였다.

  “실례합니다”라는 마동의 소리에 돋보기를 콧등 밑으로 내리고 눈을 가늘게 뜬 완구도매점 주인은 마동을 바라보았다. 어딘가에 쫓기는 표정이거나 무엇을 찾는 얼굴을 했다. 손님이거나 새로운 물건을 주문하려는 업체 사람인가 싶어서 주인의 눈빛은 호의적으로 바뀌었다.

  “이층에 아직도 병원이 하나요?” 마동은 자신의 입으로 흘러나오는 소리가 찢어진 종이 사이로 새어나가는 바람 같은 소리처럼 들려서 조금 날랐다. 완구도매점 주인은 돋보기 너머로 마동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탄탄하게 잡힌 몸매가 옷 안에 감춰있다는 것을 아는 듯 완구조매점주인은 감탄의 눈빛으로 바뀌더니 나도 한때는 하며 회상의 눈빛으로 다시 탈바꿈되었다. 그렇지만 주인이 정말 그런 생각을 가졌는지 모르는 일이다. 그저 마동의 눈에 그렇게 비쳤을 뿐이다. 주인의 눈빛은 꽤 많은 의미를 지닌 눈빛이었다. 마치 호기심 많은 10세 소년의 눈빛처럼 보였다.

  "왜? 어쩐 일인가? 사무적인 일인가? 구청의 조사원인가? 조사원이라면 이미 여러 차례 다녀가서 더 이상 볼일은 없을 텐데……." 여전한 눈빛으로 마동의 몸을 훑어보았다.

  “아닙니다. 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왔는데 혹시 진료를 하지 않거나 사람이 많으면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합니다. 몸이 갑자기 안 좋아져서 계단을 올라가는 것이 힘겨울 정도입니다.” 마동은 사실대로 완구점주인에게 이야기를 했다. 완구도매점주인은 턱을 약간 앞으로 내밀며 “쯧쯧, 어쩌다가 그리됐나, 아주 튼튼하고 건강하게 보이네만. 올라가보게. 진료는 하고 있다네. 예전의 원장은 죽고 그 아들이 대를 물려받아 운영하는 작은 내과지만 병원은 하고 있다네. 아마 간호사도 한 명일걸세(공허한 곳을 보며 생각하는 듯 하더니), 그 부분은 나도 잘 모르겠네. 간호사가 몇 명인지는 말이네. 진료는 하고 있네만 많은 환자들은 오지 않아. 예전부터 오던 단골들이 찾아오거나 단골의 가족들이 알음알음 올 뿐이지. 사람들은 외진 곳에 있는 작은 내과의원이나 허름한 식당은 찾지 않는다네. 아는 사람만 겨우 찾아오지. 하지만 아들도 솜씨가 좋다네. 어지간한 건 다 고쳐주지. 그래서 이 병원을 찾는 환자들은 더 좋아한다네.” 완구도매점 주인은 자신이 이 병원의 원장과 친했다는 듯 원장을 떠올리며 흐뭇하게 이야기를 했다. 마동은 완구도매점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 모습을 쳐다보던 완구도매점 주인도 자신의 도매점 안을 뒤로 돌아서 바라보았다. 완구도매점 주인의 머리카락이 없는 뒤통수는 자아가 빠져나가버린 동물바이러스에 중독된 사람처럼 어떤 의미가 사라져 보였다. 주인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얼음물 한 모금을 마셨다. 날은 무더웠고 완구도매점 주인의 목덜미는 땀이 흐르고 마르고를 반복해서 끈적끈적함이 역력했다. 그럴 때마다 수건으로 목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고 소용없는 부채질을 했다. 마동은 그런 무더위 속에서도 땀이 나지 않았다.

  “여기 이곳? 이곳은 나만의 세계지. 마치 서쪽숲 같은 곳이라네.”

  “서쪽숲이요?”

  “그래, 서쪽숲. 오래전엔 서쪽숲을 찾아서 무진장 앞으로 나아갔지. 하지만 서쪽숲은 어디에도 없더군. 실망이 컸지. 시간이 많이 흘러 깨닫게 되었다네. 내가 있는 이곳이 바로 작은 세계, 서쪽숲이라고 말이야. 이제 이런 구닥다리를 찾는 아이들은 없지만 뭐 괜찮네. 장사를 오랫동안 하다보면 조금은 앞일에 대해서 알 수 있으니 말이네. 자식들도 다 컸고 말이야. 호 시절엔 일만했지. 덕분에 지금은 그럭저럭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먹고 살만하다네. 삶이란 절대 끝이 나지 않아. 그 끝이 없는 세계 속에 소세계가 소멸되고 재탄생되며 끊임없이 흘러가는 것이네. 태양과 달이 사라지지 않는 한 말이네. 우리가 보는 세계가 진짜 세계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네.” 주인은 손바닥을 하늘 위로 보이며 어서 올라가 보라고 손짓을 했다. 마동은 완구도매점 주인에게 인사를 하고 계단을 올라갔다. 어딘가로 오르는 일이 이렇게도 힘겹게 느껴지다니 마동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계단은 친절했다. 계단 옆에 손으로 잡을 수 있게 계단손잡이를 만들어 놨다. 마동은 그 계단의 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계단손잡이는 철제구조물로 되어 있어서 꽤 뜨거웠다.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어떠한 높은 건물이라도 도달할 수 있었다. 마동은 계단을 좋아한다. 아파트 계단에 앉아서 창을 통해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면 평온했다. 계단으로 불어오는 바람은 어디에서 불어오는 바람일까. 마동은 늘 생각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으로 만질 수 없는 바람이라는 것을 계단에 앉아서 맞고 있으면 이것이 자연에게 동화되는 기분이구나,라고 생각했다. 마동이 모든 계단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가을에는 춥기 때문에 계단에 앉아서 바람을 맞으며 사색 따위를 할 수 없었다. 앉아 있을 수도 없을 만큼 추웠다. 봄에서 여름으로 바뀌는 묘한 계절 속의 계단이 마동이 정말 좋아하는 계단이었다. 6층과 7층 사이, 또는 11층과 10층 사이의 계단에는 아파트의 꼬마들이 앉아서 크레파스로 하얀 도화지를 더럽히고 있다.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지만 계단에 앉아서 놀고 있는 아이들은 귀엽기만 하다. 여자아이가 붉은 크레파스로 악마의 뿔을 그리고 남자아이는 여자의 치마를 그렸다. 마동은 옆으로 가서 아이들이 그리는 그림을 계단이 같이 앉아서 바라보았다. 주말의 오전이라 아파트 계단에는 각 집집마다 풍겨나는 음식냄새로 가득 했다.

  나는 언제부터 계단을 좋아했던 걸까. 계단에 앉아 있는 것이 이렇게 마음이 편안해 지는 것일까. 내가 어린 시절에는 계단이라는 것이 없는 곳에서 자라서일까.

  계단에 앉아서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계속 보고 있으니 그림 속에서 뿔 달린 것이 스멀스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악마였다. 마동은 좀 더 집중해서 그림을 보았다. 그랬더니 뿔 달린 악마가 도화지 밖으로 빠져 나오려 했다. 세계의 어두운 곳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아주 불길한 모습이었다. 뿔 달린 악마는 진실을 외면한 채 도화지 안에서 세상 밖으로 나오려 했다. 뿔 달린 악마는 철탑모양을 하고 있었다. 뿔은 철탑의 꼭대기부분의 철탑 피뢰침 같은 모습이었다. 아이들은 그것도 모른 채 서로 소꿉놀이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마동은 아이들에게 어서 도망가라고 하고 싶었지만 입 밖으로 말이 나오지 않았고 뿔 달린 악마 같은 철탑은 도화지에서 급격하게 빠져 나와서 아이들을 덮치려 했다. 악마는 영락없는 철탑의 모습이었다. 마동은 자신의 심장을 칼로 찌르며 철탑에게 달려들었다.

 

  여기까지 하던 생각을 떨쳐버리려 머리를 흔들며 병원입구까지 올라왔다. 계단은 생각 외로 높았다. 그러고 보니 병원이라는 곳에는 고등학교 때 이후 지금까지 와 본 적이 없었다. 물론 병문안이나 다른 볼 일 때문에 들린 적은 있었지만 마동 자신의 문제로 내과를 찾아보긴 그야말로 사고 이후 처음이었다. 요즘은 병원 내에서도 포르말린 냄새는 나지 않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대기실에 몇 명의 환자가 앉아 있었다. 건물 밑에서 봤을 땐 전혀 환자가 없어 보였지만 그건 마동의 편견이었다. 모시옷을 입은 할머니 한 사람과 반팔의 하늘색 남방을 입고 여름용 치노 바지를 입은 할아버지 한 사람 그리고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두 명, 직장인으로 보이는 촌스러운 유니폼을 입은 30대 초반의 여성이 앉아 있었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것은 20대로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도 대부분 기침을 많이 했으며 역시 그 모습은 한눈에도 냉방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 사람들은 여름에 겨울감기가 걸리고 겨울에는 감기보다 지독한 독감이라는 강한 바이러스에 노출이 되었다. 감기 바이러스는 일단 한 번 인체에 침투를 하면 한 번에 빠져나간다거나 소멸하지 않았다. 뉴스전문채널에서 몇 년에 걸쳐 제작한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우리 모두가 알만한 유명한 배우가 가상 프로그래밍 안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다큐를 소개하기 시작한다.

  정권이 여러 번 바뀌고 경기가 어려워지고 경제부흥을 일으켰던 세대들은 회사에서 대부분 퇴직을 하여 자영업이라는 새로운 업종에 뛰어 들었지만 경영부진과 사기 등에 휘말려 살길이 막막한 시대에 들어왔다. 그들은 단가를 맞추고 생활을 위해서 사람들이 많이 섭취하면 위험한 화학물질로 음식의 첨가물을 만들었고 정부는 적정량이라는 애매한 기준치를 두어 허가를 해주었다. 첨가물은 식당의 모든 음식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적당한 양이라는 것을 지키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으며 결국 그들도 다른 곳에서 그들처럼 화학첨가물이 듬뿍 들어간 음식을 먹어야 했다. 돌고 돌았다. 단가를 낮추고 그에 맞게 가격을 책정하기 위해 그들은 대륙의 외곽 지역이나 동남아 나라의 해안근교의 오래되고 질 나쁜 식재료를 사들여서 식품을 만들어 판매했다. 정보가 부족한 일반인들은 그렇게 돌고 도는 음식을 팔고 사 먹었다. 그 사람들의 2세가 자라서 똑같이 그렇게 만들어 놓은 음식을 먹어가며 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를 낳았다. 아이들은 선천적으로 아토피를 안고 태어나거나 환경에 의해서 아토피가 극심하게 몸에 퍼지는 증상이 나타나는 화면도 보여주었다. 아이들은 가렵지만 긁지 못한다. 아이에겐 고통스러운 일이다. 긁지 못해 울어버린다. 그 통계는 매년 늘어가는 추세다. 아토피 바이러스는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한, 면역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의 인체의 빈틈을 파고들어 유전자로 하여금 고스란히 다음 세대의 인체에 내려 보낸다. 유전자를 물려받은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바이러스는 점점 불어나기 시작한다. 아토피라는 새로운 변이체는 시간과 더불어 세력을 확장시키고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 주더니 생활이라고 하는 부분을 파괴해버리기도 한다. 손가락으로 번진 아토피는 피부의 껍질을 하얗게 변색시키고 허물을 만들어내서 시종일관 가려웠고 피부가 화상을 입은 것처럼 타올랐다. 여름에 일광욕을 잘못한 사람들의 피부처럼 허물이 제멋대로 벗겨졌다. 아토피가 심한 학생들은 사람들을 회피했고 시선이 무서워 피해의식에 사로잡혔다. 아토피는 각각의 인체에서 서로 다르게 변형질로 자라서 아토피의 확실한 치료법이나 약의 개발이 어려웠다. 유전형질로 물려받은 열성인자들이 떠안고 가야하는 운명이었다. 유전자는 인간을 이동매체로 하여 끝없이 이어져 가면서 그 크기와 강도를 확장해가고 있는 것이다. 소피가 늘 하던 말이 떠올랐다. 다큐멘터리는 정부가 국민들의 균형을 맞추는 일에 소홀하고 잇다는 것을 지적했다. 정부의 무관심과 무능으로 인해 국민들이 피해를 입는 것이라며 마무리를 지었다. 뉴스전문채널에서 야심차게 준비해서 정부에게 타격을 가하는 방송을 제작했지만 시청률은 저조했다. 사람들은 아토피를 몸에 지니고 있지만 피자집으로 향했다. 다큐멘터리의 진행을 맡았던 유명배우는 이후로 비중 있는 역에서 점점 멀어지더니 끝내는 방송가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아토피처럼 감기바이러스도 마찬가지였다. 면역체계가 약한 아이들이 중고등학생이 되면 냉방병의 노출도 심했다. 이 병원에는 대로변의 병원들처럼 환자가 너무 많지 않아서 마동은 안심했다. 캐시카운터로 가니 간호사가 정말 한 명만 있었다. 그런데 간호사의 복장이 평소 병원에서 보던 그런 간호사 복장과는 많이 달랐다. 오버스럽다고 해야 할까. 간호사는 분홍색의 원피스 복장을 하고 있었고 단추가 많이 달려 있었다. 간호사복은 그녀의 육체에 타이트하게 들러붙어서 섬세하고 야릇한 기분을 자아내게 했다. 요즘은 간호사들이 하지 않는 간호모도 하고 있었다. 마치 제 5원소에서 비행선의 승무원을 떠올리게 했다.

  “저희 병원은 처음이시죠?” 간호사의 목소리가 만들어낸 경쾌한 파장이 병원과는 어울리지 않게 들렸다. 간호사는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미소는 만들어지지 않은 자연스러운 미소였다. 훈련받지 않은, 세심함은 좀 덜하지만 상대방을 안심시키는 미소였다. 마주대하면 안심이 안 되는 미소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어디선가 교육기간 중에 대부분 훈련을 받는다. 본인의 얼굴을 가리고 상대방에서 세심함을 전달하려고 하는 미소를 트레이닝을 받고나서 짓는 미소를 지닌 사람들에게는 신뢰가 가지 않는다. 하지만 분홍간호사복장의 간호사가 지닌 미소는 업무에 극심하게 시달리면 절대 나올 수 없는 미소라고 마동은 생각했다.

  정말 환자가 몇 명되지 않아서 얼굴을 보자마자 내가 처음 왔는지 알 수 있는 것일까.

  목소리 또한 병원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간호사는 분홍색의 매니큐어가 정갈하게 칠해진 긴 손가락으로 마동 앞에 있는 키보드를 손짓하며 마동에게 의료보험을 적용시켜야 하니 주민등록 번호의 앞부분을 기입하라고 했다. 분홍색이 칠해진 손톱이 몇 번 마동의 눈앞에서 휘이익 움직이는가 싶더니 홀리그램으로 스크린이 나타났다. 홀리그램 안에 커서가 깜박이며 마동의 기입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건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 종종 보던 모습이다. 아직 상용화가 되기에는 먼 기술인데, 여기, 이 내과에서는 홀리그램으로 고객과 소통을 하고 있다니. 이 작은 병원은 무엇일까.

  마동은 고개를 들어서 간호사를 쳐다보았다. 잃지 않고 간호사는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미소는, 다 알아요, 처음 오셨죠? 처음이면 이곳에 기입을 하셔야 합니다, 하는 미소였다.

  오늘은 다 안다는 표정을 짓는 사람들이 많군.

  마동은 키보드로 자신의 생년월일과 이름과 주소를 기입했다. 홀리그램은 익숙하지만 낯설었다.

 

  “저희 병원은 처음이시라고요?”

  의사는 젊었다. 사십 대 초반도 안 돼 보였다. 머리카락이 유난히 짙고 검었다. 코가 올곧았고 입술의 색이나 피부가 하얗고 깨끗하고 좋았다. 메이크업 전문가 몇 명이서 들러붙어서 쿵딱쿵딱하며 자연스러운 풀 메이크업을 해 놓은 것처럼 깔끔했다. 얇은 은색 안경 속의 눈이 아주 또렷하게 흰자위가 대단히 하얗다. 어린아이들의 눈동자만큼 맑았다. 이런 사람은 여자들의 호감을 불러일으킨다. 결혼을 하지 않았던 결혼을 했던 간에 말이다.

  “네, 처음입니다.” 신뢰감이 묻어나는 의사의 목소리에 비해 마동의 목소리는 종이 사이를 관통하는 바람소리 같아서 듣기 싫었다.

  “감기 증상 때문에 오셨다고요. 자세하게 한 번 들어볼까요.” 차트 같은 종이에서 맑은 눈동자의 시선은 마동에게로 옮겨왔다. 조금 오랫동안 의사는 마동의 눈을 바라보았다. 마동은 어쩐지 살짝 부끄러웠다. 의사의 시선은 부드러운 가시처럼 마동을 찔렀다. 작은 플래시를 들고 마동의 동공을 확인하고 목 안을 들여다보았고 청진기를 가슴에 대고 심박 수를 확인했다. 모든 것이 정교한 손놀림으로 정확하게 이뤄졌다. 청진기를 마동의 가슴에 대고 나서 광고 한 편이 지나갈 만큼 있었다.

  이런 건 빨리 끝나지 않나?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간 병원을 너무 등지고 있어서 병원의 내부진료가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의사는 천천히 청진기를 마동의 가슴에서 떼고 차트에 흘림체의 영어로 무엇이라 갈겨 적었다. 옆에서 분홍간호사(그렇게 부르기로 마동은 생각했다)가 미소를 머금고 서 있었다. 한 명 뿐인 간호사인데 대기실로 가봐야 하지 않을까. 마동은 간호사가 신경 쓰였다.

  “증상이 어떤지 한 번 들어볼까요.” 의사는 역시 천천히 청진기를 접으며 마동에게 증상을 요구했다.

  “뭐랄까 몸이 아주 무거운 느낌입니다. 무기력한 듯 하구요. 머리가 아픈 건 아닌데 머릿속에 묵직한 돌멩이 하나가 들어와 있는 것 같습니다.” 마동은 찬물 한 모금 마실 만큼의 뜸을 들인 후 다시 증세를 말했다.

  “마치 소화가 아주 안 되는 느낌인데 제대로 먹은 것이 없음에도 이런 증상이라는 게 더욱 신기합니다. 오랜 세월동안 꾸준히 조깅을 하고 흘린 땀을 깨끗하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해주기 때문에 감기기운이 올 것이라고 생각지도 못했습니다”라고 마동은 껄끄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의사는 마동의 증상을 경청해 주었다.

  진심으로.

  그건 의사의 눈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이다.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고, 음, 하며 옅은 신음을 내기도 했다. 마동은 종이를 뚫고 지나가는 바람소리 같은 목소리로 증상을 심도 있게 이야기했고 의사는 진지하게 들었다.

  “일단 감기증상처럼 보입니다. 사람마다 감기증상은 다릅니다. 그 사람 그 사람에 따라서 감기바이러스가 다르게 반응하는데요. 일단 하루분의 약을 지어드릴 테니 바로 하나 드시고 저녁에 또 드시고 내일 아침에 아무런 효과가 없으면 다시 와주세요.”

  “그런데 감기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의사는 차트에 영어로 또 다른 무엇인갈 길게 휘갈겨 적었다. 아마도 감기증상이라고 쓰고 약을 처방했을 것이다.

  “네?” 마동은 그게 무슨 소리인지 와 닿지 않았다.

  감기증상인데 감기가 아닐 수 도 있다? 이건 무슨 의미가 담긴 말일까.

  “혹시 ‘1984’를 읽어 보셨습니까?” 의사는 차트를 간호사에게 넘기며 마동에게 물었다.

  “네, 대학교에서 교양과목으로 학점 때문에 읽었던 적이 있습니다.” 마동은 조지오웰의 1984를 떠올려보았다. 오전에도 회사에서 브리핑을 할 때 사상범죄를 저지르는 것 같다고 딴 생각을 했었다. 교양수업의 교수는 사뮈엘 베케트와 스티븐 킹을 서로 섞어 놓은 얼굴을 하고 표정은 항상 심각했다. 대학생들이 현실적인 스펙을 쌓는 것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강한, 강단 있는 성향의 교수였다. 그나마 1학년 학생들의 수업에나 전공과목사이에 교양과목이 있을 뿐이었다. 2학년부터는 전공과목으로 하루를 다 보내야 하는 게 사회에 돌입하기 위해서는 대학에서 선택할 수 있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병원의 의사 입에서 1984를 듣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늘 생각 외의 일들이 일어난다.

  “조지오웰은 삼십년 전에 미래에 대해서 죽어가면서 소설을 적었습니다. 하지만 그 미래를 마치 예언자처럼 맞췄습니다. 소설 속에는 구어(이전부터 있던 언어체계)에 대한 실질적인 지식은 사라져버릴 것이다. 과거의 모든 문학은 사라져 버린다. 셰익스피어나 밀턴, 바이런 같은 대작가들의 작품은 신어(빅브라더에 의해 만들어진 언어체계)로만 남게 된다. 그 작품들은 단지 언어상의 변화를 넘어서 원래의 모습과는 다른, 그러니까 완전히 반하는 모습으로 작품이 탄생하게 된다. 자유라는 개념이 사라진다. 그 소설 속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고 양상이라는 게 완전히 바뀌게 된다. 사고의 부재를 몰고 온다. 즉, 생각의 필요성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 속의 세상은 당이 과거로 돌아가서 과거를 현재에 맞게 바꾸는 겁니다.”

  마동은 의사의 말을 들으며 1984의 내용을 떠올리는 것과 동시에 도대체 의사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어를 파괴하는 겁니다. 많은 단어를 쓰지 못하게 하는 거죠. 단어를 많이 사용해서 말을 하면 그만큼 당에 반하는 프롤 들이 많이 나타나는 겁니다. 서로 감시를 하며 당에 복종하려하고 그 생활이 온전한 생활인 것처럼 느끼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맛없는 음식과 단체 식당에서만 식사가 가능하고 옆 사람의 팔꿈치가 닿을 듯 좁은 테이블과 때가 껴 있는 머그잔, 끈적이는 양말, 한 번도 작동한 적이 없는 승강기, 꺼칠한 비누와 얼음처럼 차가운 수돗물에 사람들은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세뇌되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들에 대해서 불만을 가진다면 분명 기억은 그런 생활 이전에 그렇지 않았다는 생활을 기억해 내는 겁니다. 혹시 이 부분이 기억나십니까?” 의사는 신뢰감이 드는 목소리로 볼펜을 왼손에 쥔 채 마동에게 말했다.

  마동은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건축 학부였지만 교양과목에 구멍이 나면 장학금을 놓치게 된다. 대학교 때 마동의 생활은 혼자서 학비와 생활비를 해결해야 하는 숙제를 짊어지고 있었다. 미래의 생활과 취업을 생각해서 건축전공을 택했지만 현실은 마동과 거리가 먼 분야였다. 마동은 건축역사나 건축 디자인에는 관심이 많았다. 르꼬르비지에의 건축양식을 좋아했고 안도 다다오의 실내양식을 사랑했다. 아르누보에 빠져서 관련된 서적을 보느라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세계의 건축물과 그 역사를 공부하는 건 좋았지만 현실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머리를 두드려 맞은 것처럼 멍한 상태가 되었다. 아스콘 양의 체크나 단면도에서 벽면을 채우는 마감재나 시멘트의 배분을 계산하거나 구조역학 따위는 마동에게는 멀리 있는 오로라와 같은 것이었다. 가까이 가려해도 도저히 갈 수 없는 세계였다. 지극히 현실적인 설계에 대해서는 고개를 숙여버리게 되었다. 현실에 부적합한 인간이었다. 마치 고흐처럼. 덕분에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하게 되었지만.

  대학교에서 전공과목으로 못 채운 점수는 교양과목에서 채워야만 했다. 교양수업을 열심히 들었던 건 들을만했기 때문이다. 고전문학분야도 마동에게는 흥미로운 수업이었다. 작가들은 요즘시대에 비해서 열약한 환경이었지만 꽤 고통스럽게 글을 썼고 러시아의 작가들 중 부호들이 많았음에도 황패한 곳으로 일부러 찾아가서 몸을 망가뜨려 가면서 글을 썼다. 조지오웰 역시 그러했다. 마동은 그렇게 써낸 고전문학의 활자가 만들어내는 이야기와 상상에 흠뻑 빠져들었다. 조지오웰의 글은 마음에 들었다. 동물농장도 그렇고 1984도 우울하고 암울하기 짝이 없는 글들이지만 읽고 나면 마동은 마치 그 세계 저편에 있다가 온 것 같았다. 장학금을 타내기 위한 방편도 있었지만 고전작가들에게 경외심을 가졌고 그들의 글을 차곡차곡 읽었다.

  “윈스턴은 그런 생활에 불만을 가졌죠”라고 마동은 말했다. 왼손으로 볼펜을 만지작거리던 의사는 오른손으로 볼펜을 옮겼다.

  “지금 세계가 그렇게 변해가고 있어요. 그건 사상뿐만이 아니라 사람들 개개인의 육체적, 정신적인 영역에도 변이나 변형이 일어나고 있다는 겁니다. 지도자는 언론과 금융을 장악하여 발악하고 있고 항체가 없는 새로운 바이러스는 나날이 늘어가거나 탄생되고 부활합니다. 다시 결핵이 사람들의 곁으로 왔어요. 의사들도 이제 감기를 낫게 하는 의술은 가지고 있지 않아요. 감기라는 게 본디 낫는 바이러스가 아닙니다. 세력을 넓혀가면서 더욱 강력해지죠. 꼭 무기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개개인의 방법으로 변해가는 세계와 변이되는 자신의 몸에 항체를 키워야 하는 겁니다. 그렇지 못하면 변해버린 세계에 그대로 흡수되어 버리고 몰아요. 조화가 깨지는 겁니다.”

  마동은 끄덕였지만 의사의 정확한 이야기의 요점을 찾지 못했다.

  “감기가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마동은 의사의 눈빛에 대응하는 눈빛을 보냈다.

  “감기의 증상은 아주 많아졌어요. 단순한 감기로 인해서 사망을 하는 경우도 있고, 병원에 오지 않아도 될 만큼 스쳐가는 바이러스이기도 하고 말이죠. 어떤 식으로든 다양해진 접합체로 인플루엔자는 인간의 세계에 침투하게 됩니다.”

  마동은 의사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고마동 씨, 증상은 감기일수도 있고 독감 같은 다른 바이러스일수도 있으니 약을 먹고 지켜봅시다. 외국에서는 감기에 약을 처방하지 않아요. 주로 비타민을 처방하거나 비타민을 많이 먹으라고 합니다. 하지만 마동 씨는 약을 먹어야 합니다. 독감을 사람들은 흔히 감기라고 하지만 독감은 감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어요. 게다가 겨울이 아니라 여름에 찾아오는 독감은 아주 무섭죠. 독감은 사람을 변이시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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