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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미래에서 온 신녀
작가 : 시엔시엔
작품등록일 : 2019.9.21

걸쭉한 입담을 가졌다는 것 외에는 평범한 취준생이던 한미리. 혼자만의 여행 중 갑자기 백제로 이동했다? 현대로 돌아갈 단서를 찾지도 못한 채 백제궁으로 가게 된 미리. 그곳에서 엄청난 일에 휘말리게 되는데... 치열한 궁에서 살아남기 위한 미리의 생존기가 시작된다. 잠깐, 그런데 여기에 로맨스가 빠지면 또 서운하지. 백제의 남자들은 또 왜 이렇게 멋진 거야. 과연 미리는 휘말린 위험도 극복하고 사랑도 쟁취할 수 있을까?

 
9화-나대지마, 심장아
작성일 : 19-09-27 18:17     조회 : 31     추천 : 0     분량 : 6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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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내가 미리궁녀의 한자공부를 가르칠 수 있게 해주시오.”

 

  목마지의 입에서 흘러나온 뜻밖의 말에 난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묵묵히 바라봤다.

 

  “무슨 속셈이에요?”

 

  잔뜩 날선 내 목소리에 그는 해맑게 웃었다.

 

  “속셈이라니? 내 순수한 호의를 그렇게 왜곡하다니 좀 억울하오.”

 

  그의 말에 난 콧방귀를 꼈다.

 

  호의? 호의 같은 소리하고 있네.

 

  백제에서 내가 그동안 뼈저리게 느낀 것이 있다.

 

  첫째는 세상엔 절대로 공짜는 없다는 것, 그리고 둘 째는 귀족은 믿지 말라는 것.

 

  “이봐요. 변태나리. 제가 그렇게 순진해 보였나요? 나 이래봬도 백제궁의 미친년인데?”

 

  “하하하하하. 흐흐흑.”

 

  내 말에 목마지는 배를 부여잡고 눈물까지 흘리며 웃었다.

 

  난 뭐 씹은 얼굴로 책장 귀퉁이를 부여잡고 어깨까지 들썩이며 웃는 그를 바라봤다.

 

  “하아…. 하하, 미안, 미안하오. 후우…. 하지만 정말로 순수한 뜻이니까 의심하지 마시오.”

 

  순수한 뜻에서 호의를 베푼다는 것이 오히려 더욱 의심스러웠다.

 

  “그러니까 더 이상하다는 거죠. 대체 왜 그쪽이 처음 본 절 도와주냐 그 말이에요.”

 

  목마지는 여전히 책장 귀퉁이를 손으로 잡은 채 허리를 숙여 잔뜩 경계를 하는 내 얼굴을 바라봤다.

 

  그의 얼굴엔 마치 자신이 고안한 기막힌 장난을 치기 바로 전 철없는 장난꾸러기의 설렘과 같은 것이 묻어있었다.

 

  “재밌을 것 같아서 그러오.”

 

  “지금 사람 놀리는 거예요? 저 지금 되게 진지한데.”

 

  “나도 진지하다오. 사실 미리궁녀가 마음에 들었소.”

 

  그렇게 말하면서 목마지는 나를 향해 윙크를 날렸다.

 

  그의 느끼한 눈짓을 보던 나는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그런 잔망스런 눈짓이 통할 것 같아요?”

 

  “어, 웃는 거 보니까 싫지는 않은가 보오. 자, 그럼 허락한 걸로 알고 나의 집무실로 안내하겠소.”

 

  목마지는 등을 들고 앞장서서 걸었다.

 

  그가 매우 수상해보이긴 했지만 그의 손에 들린 천자문이 꼭 필요하니 난 어쩔 수 없이 그의 뒤를 따라갔다.

 

  “발 조심하시오. 간혹 잘못 밟으면 바닥이 뚫리기도 하오. 아, 그리고 가끔 구멍 난 지붕위에서 기왓장이 떨어질 때도 있는데, 괜찮소. 맞아도 잠깐 기절할 뿐이지 죽지는 않으니까 말이오.”

 

  해맑은 목소리로 떠드는 목마지의 안내를 들으며 난 불안한 눈으로 천장을 힐끔거리면서 조심스럽게 그를 따라갔다.

 

  “여기가 내가 일하는 집무실이라오. 공부는 매번 이곳에서 하겠소. 꽤 아늑하지 않소?”

 

  “흐음…. 아늑하다는 것이 눈이 뒤집힌 미치광이가 튀어나와 제 목을 조를 것 같은 분위기를 말하는 거라면… 꽤 아늑하네요.”

 

  그가 집무실이라고 소개한 곳은 귀택전의 그 어떤 곳보다도 음산했다.

 

  척 봐도 불길해 보이는 거뭇거뭇한 얼룩이 잔뜩 묻은 책상과 반쯤 부서진 낡은 의자, 그리고 쥐가 갉아먹은 곳 위로 곰팡이가 펴 위태로워 보이는 기둥부터 분노조절장애가 걸린 귀신이 발기발기 찢어놓은 것 같은 창문에 걸린 천 조각까지.

 

  폐가의 모습에도 정석이 있다면 이 공간이 바로 그 정석이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오. 내가 사람 보는 안목이 좀 있다오. 자, 저기 의자에 앉으시오.”

 

  내가 반쯤 주저앉은 의자에 앉을 때쯤 목마지는 방안에 마련된 등불과 초에 불을 붙였다.

 

  한층 밝아졌지만 소름끼치는 분위기를 전환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그런데 대체 귀택전에서 뭘 관리한다는 거예요?”

 

  “여기 있는 모든 것을 관리하오.”

 

  목마지는 어딘가의 구석에서 이가 잔뜩 빠진 벼루와 먼지로 찐득한 먹을 가져와 내 앞에 놓았다.

 

  “관리품목에 거미줄과 먼지구덩이도 포함되나 보죠?”

 

  내 말을 못들은 것인지 목마지는 구석에서 부스럭대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그에게서 눈을 떼고 난 먼지가 달라붙어 찐득해진 먹을 들어 벼루에 갈기 시작했다.

 

  사악- 사악.

 

  이야, 이거 초등학교 때 이후로 처음인 걸?

 

  이렇게 벼루에 물을 붓고 먹을 갈아본지가.

 

  “그래도 벼루와 먹을 사용할 줄 아시는 구려.”

 

  어느새 내 뒤에 성큼 다가온 목마지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아씨! 깜짝이야!”

 

  목 언저리를 스치는 그의 숨결에 순식간에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경기를 일으키듯 들썩거리는 날 보고 그는 재밌어 죽겠다는 듯이 쿡쿡대며 웃었다.

 

  “또 귀신처럼 소리 없이 뒤에 와서 속삭였다간 다음엔 벼루로 뚝배기 깨질 줄 알아요.”

 

  “근데 뚝배기가 뭐요?”

 

  그의 물음에 난 손가락으로 내 머리를 톡톡 두드리고 양손으로 마치 과일을 가르듯 머리통을 쪼개는 시늉을 했다.

 

  “흐흫. 알겠소. 이제 안 그러겠소.”

 

  내가 의심스런 눈길로 그를 쳐다보다가 다시 먹을 잡고 벼루에 갈기 시작했다.

 

  한동안 부스럭 거리더니 목마지는 이리저리 털이 삐쭉삐쭉한 붓과 종이를 가져와 내 앞에 놓았다.

 

  “자, 여기 천자문의 첫 장부터 시작하겠소. 따라서 써보시오.”

 

  흥, 나 이래봬도 초등학교에서 서예배운 사람이다, 이거야.

 

  내가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자신만만하게 붓을 들어 새까만 먹물에 적셨다.

 

  하지만 내 붓이 종이에 닿기 무섭게 목마지가 참견하며 끼어들었다.

 

  “그렇게 비스듬히 들면 안 되오. 좀 더 꼿꼿하게!”

 

  “아, 알았어요. 너무 오랜만에 잡아보는 붓이라 어색해서 그래요.”

 

  내가 손을 내저으며 목마지의 접근을 차단하자 그는 한 걸음 떨어진 곳에서 손으로 턱을 짚고 못마땅한 듯 내가 글자 쓰는 것을 지켜봤다.

 

  “붓은 이렇게 잡아야 하오.”

 

  지켜보던 그가 은근슬쩍 뒤로 다가와 붓을 잡은 내 손을 자신의 손으로 감싸 쥐었다.

 

  순간적으로 가까워진 거리에 내 몸속의 근육들이 긴장으로 수축했다.

 

  “아, 놀래라. 진짜 귀신이에요? 무슨 사람이 소리도 없이 움직여요?”

 

  “귀신이 아니오. 귀신이 이렇게 할 수 있소?”

 

  그렇게 말하면서 그가 내 귀에 후하고 바람을 불어넣었다.

 

  귓속을 파고드는 숨결에 난 부르르 몸을 떨었다.

 

  으, 이 망할 놈의 변태 귀족 자식.

 

  그는 분명 이 상황을 즐기는 게 분명했다.

 

  “한 번만 더 그러면 뚝배기 깬다고 그랬죠!”

 

  “속삭이면 그렇게 한다고 그랬소. 이건 속삭인 것이 아니지 않소?”

 

  “변태처럼 귓속에 바람 부는 것도 포함이에요.”

 

  “쳇, 재밌었는데. 어쨌든, 이렇게 가볍게 손으로 쥐고 붓대와 종이가 수직을 이루게 해야 하오.”

 

  그가 내 손을 잡고 비스듬히 기울었던 붓대를 바로 세웠다.

 

  “어떻소? 쉽지 않소?”

 

  그의 말에 내가 무심코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활짝 웃는 그의 얼굴이 바로 코앞에 성큼 다가와 있었다.

 

  “아…알았거든요?! 그러니까 좀 떨어질래요?”

 

  내가 그의 손을 쳐내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가 내게서 멀어지자 난 몰래 가슴을 쓸어내렸다.

 

  등 뒤에서 느껴지던 그의 온기와 날 바라보며 웃는 잘생긴 얼굴에 심장이 멋대로 날 뛰었다.

 

  나대지마, 심장아.

 

  아무리 공부하느라 연애를 안했다고 하지만, 저 사람은 살아있는 화석이란다.

 

  삼엽충 화석 같은 존재라고.

 

  “전 한자를 배우러 왔지 붓 잡는 법 배우러 온 거 아니거든요?”

 

  “서체는 그 사람의 얼굴이라고 하오. 필체로 그 사람의 성품을 가늠할 수 있을 정도니까 말이오. 뭐, 보나마나 미리궁녀의 필체는 엉망이겠구려.”

 

  “뭐예요? 그러는 변태 나리의 필체는 얼마나 대단하다고 그래요? 한 번 써 봐요.”

 

  내가 목마지의 앞에 붓을 턱하고 내려놓자 그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붓을 들었다.

 

  “원래 남 앞에서 붓 잘 안 잡는데, 운 좋은 줄 아시오. 한 번 보면 잊지 못할 명필이니까.”

 

  그는 다른 손으로 길게 늘어진 소매를 잡고 우아한 손놀림으로 붓에 먹을 묻혔다.

 

  벼루 귀퉁이에 대고 살살 붓 끝을 가다듬은 그는 매우 진지한 얼굴로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푸흡!”

 

  목마지가 한 글자도 채 쓰기 전에 내 입에서 참지 못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허, 명필을 앞에 두고 웃다니.”

 

  “크흐흑. 명필… 좋아하시네. 큭큭. 살다 살다 이런 악필은 처음 보네요. 이건 뭐에요? 불 위에서 몸부림치는 지렁이?”

 

  한 번 보면 잊지 못한다는 뜻이 이런 뜻이었나?

 

  그가 종이에 쓴 글씨는 마치 초등학생, 아니 유치원생이 쓴 것처럼 삐뚤삐뚤했다.

 

  “오늘 검술연습을 많이 했더니 손에 힘이 빠져서 그런 거요. 잡담하지 말고 어서 이거나 쓰시오.”

 

  목마지는 말도 안 돼는 변명을 늘어놓으며 붓을 다소 거칠게 내려놓고 종이를 사정없이 구겨 구석에 던져버렸다.

 

  “쪽팔리니까 괜히 나한테 화풀이야.”

 

  “다 들리오.”

 

  “예, 예.”

 

  난 성의 없이 대답하며 붓을 잡고 천자문을 보고 한자를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귀택전에서 나의 이상한 한자과외가 시작되었다.

 

 

 

 ***

 

 

 

  “미리야, 일어나.”

 

  “으웅. 벌써 아침이야?”

 

  간밤의 한자과외로 4시간도 못잔 것 같은데 벌써 화인이 날 깨웠다.

 

  잘 떠지지 않는 눈을 겨우 뜨고 눈을 감은 채 주섬주섬 이불을 갰다.

 

  “일어나면 모두 처소 앞마당에 모이라고 했어.”

 

  “하아암. 새벽부터 왜 집합하라고 하는데?”

 

  내가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묻자 화인은 어떻게 그런 중대사를 까먹을 수 있냐는 듯이 나를 나무랐다.

 

  “오늘 일월전에서 일할 나인을 뽑는 날이잖아!”

 

  “아, 그랬나?”

 

  옆에서 잔뜩 들떠서 조잘대는 화인의 목소리를 들으며 난 귀찮다는 듯이 귀를 후볐다.

 

  낮에는 온갖 허드렛일에, 밤에는 한자 공부까지 하느라 사실 나는 이런 시시콜콜한 일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일월전인지 뭔지 빨리 후딱 뽑고 끝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마당에 나오니 화인처럼 설레는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하는 궁녀들이 속속들이 눈에 들어왔다.

 

  “누가 뽑힐까?”

 

  “소문에는 얼굴보고 뽑았다고 하던데….”

 

  “이미 내정자가 있다는 소문도 있대.”

 

  삼삼오오 모여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부푼 가슴을 안고 재잘거리는 궁녀들을 보며 난 고개를 저었다.

 

  저렇게 뽑히고 싶나?

 

  그녀들이 그렇게 간절히 바라는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왕의 눈에 들어서 승은을 입는 것.

 

  하지만 난 그녀들의 생각에 동의하지 못하겠다.

 

  사극에서나 왕과 궁녀의 로맨스가 가능한 거지, 현실에서 그런 달콤한 꿈같은 일이 벌어질 일은 없었다.

 

  그리고 왕이 다 잘생기고 젊은가?

 

  삼시세끼 기름진 음식을 먹고 움직이지 않아 내장지방이 득실득실 한 배불뚝이 아저씨가 현실이겠지.

 

  난 그렇게 생각하며 간밤에 외운 한자를 땅에 끄적거렸다.

 

  “꼴에 또 여기는 나왔네? 왜? 아직도 그 허망한 꿈을 버리지 못했나 보지?”

 

  새벽부터 시비 거는 목소리에 고개를 드니 지련이 잔뜩 기고만장해선 팔짱을 끼고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신이 가출하기엔 좀 이른 시간 아닌가?”

 

  “뭐?”

 

  “아침부터 헛소리하지 말라고. 누가 기대해서 여기 온 줄 알아? 집합하라고 하니까 온 거 아니야.”

 

  “흥. 이따가 잘 봐두라고. 이젠 너 볼 일도 없을 테니까.”

 

  “어련하시겠어.”

 

  지련은 뻣뻣하게 세운 고개를 홱 돌리며 자신의 패거리가 있는 곳으로 갔다.

 

  “어휴. 오늘은 또 얼마나 재수가 없으려나.”

 

  “무슨 일 있었어?”

 

  방 안에서 한참이나 옷과 머리를 매만지던 화인이 나와 내 곁으로 다가왔다.

 

  “아냐. 근데 리타 그 계집애는?”

 

  “아, 리타가 자기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그러던데?”

 

  “아, 나도 어차피 안 뽑힐 텐데 들어가서 더 자고 싶다.”

 

  그 때 궁녀들이 모인 마당으로 제 고마인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녀가 등장하자 모든 궁녀들은 입을 다물고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그래,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일월전에서 일할 아이를 한 명 뽑을 것이다.”

 

  꼴깍, 꼴깍.

 

  여기저기서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슬쩍 보니 지련의 패거리는 이미 그녀가 뽑히기라도 한 듯 선망의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지련의 표정은… 이미 왕의 승은이라도 입은 양 아주 가관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진즉에 후궁첩지라도 받은 사람처럼 보일 정도였다.

 

  “일월전에 갈 아이는….”

 

  제 고마인이 말끝을 흐리며 뜸을 들이자 모든 궁녀들의 시선이 제 고마인에게 쏠렸다.

 

  거참, 발표하려면 빨리 발표하지.

 

  이게 무슨 예능 프로그램이야?

 

  이러다 광고까지 보고 60초 후에 발표하겠다.

 

  “한미리.”

 

  내 이름이 불리자 그곳의 모든 시선이 내게 쏠렸다.

 

  하지만 난 딴생각을 하느라 정작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보다 못한 화인이 팔꿈치로 날 툭하고 쳤다.

 

  “어? 왜? 누구래?”

 

  “한미리, 네가 일월전에 가게 됐다.”

 

  제 고마인의 목소리에 난 순간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해 멍한 표정으로 그녀를 멀뚱멀뚱 바라봤다.

 

  “조금 있다 일월전으로 갈 터이니 너는 옷과 머리를 정돈하고 내 처소로 오거라.”

 

  제 고마인이 사라지자 화인이 와락 날 안았다.

 

  “미리야! 네가 뽑혔다고! 일월전 나인으로 말이야!”

 

  엥? 뭐야, 왜 내가 뽑혀?

 

  어떤 머리가 돌은 윗대가리가 잘 못 뽑은 거 아니야?

 

  마치 자기가 뽑히기라도 한 것처럼 화인은 날 안고 덩실덩실 춤을 췄다.

 

  “야, 한미리! 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왜 네가 뽑히는데!”

 

  어느새 지련이 다가와 내 어깨를 신경질적으로 밀쳤다.

 

  “아무 짓도 안 했어! 왜 나한테 화풀이야?”

 

  “그래, 미리한테 왜 그래!”

 

  나와 지련 사이를 막아서는 화인을 지련이 거칠게 밀어내고 내게 한 발짝 다가왔다.

 

  그녀는 얼굴이 발개진 채 목에 핏대까지 세워가며 내게 소리를 질렀다.

 

  “거긴 내 자리라고! 이번 내정자는 나였다고! 네가 뭔데 내 자리를 뺏는데!”

 

  “실망한 건 알겠는데, 내가 간다고 했냐? 나보고 가라잖아. 위에서 까라면 까야지,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그리고 그렇게 억울하면 고마인님한테 가서 따지든가.”

 

  분노로 이글거리는 지련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날 노려보는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살기 가득했다.

 

  “뒤를 봐주는 귀족이 있다 이거지?! 네가 귀족의 추천으로 들어온 것을 모를 줄 알아?!”

 

  “야, 빽도 실력이야. 알겠어? 꼬우면 지도 귀족하나 섭외하든가. 왜 생사람 잡고 난리야.”

 

  나는 어깨로 지련을 거칠게 밀쳐내고 제 고마인의 처소로 향했다.

 

  “너! 내가 가만 안 둘 거야!”

 

  날 향해 지련이 고래고래 소리 지르자 난 지련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어 주고선 유유히 마당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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