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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흔들림
작가 : 강이안
작품등록일 : 2019.9.5

사랑 앞에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흔들리는 남녀주인공의 이야기를 엮어보려 노력했습니다. 재미나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흔들림 7
작성일 : 19-09-09 09:42     조회 : 69     추천 : 0     분량 : 10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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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상현이 부러울 때가 가끔 있다. 특히 그 능청스러운 성격은 나한테도 조금 나눠졌으면 하는 부분이다. 어떻게 재주를 부렸는지 어느새 하나 씨의 전화번호를 받아냈다. 금요일 오후에 일찍 조퇴를 하고 하나 씨와 함께 삼각지에 사진 찍으러 갈 거라면서 나보고 같이 가자고 한다. 하필 왜 삼각지지? 그 많은 풍경 좋은 곳을 놔두고 굳이 사진 찍으러 삼각지로 가는 이유를 모르겠다. 용산 전자상가와 붙어 있어 각종 전자제품 파는 곳만 오롯이 모여 있는 곳에서 사진을 찍겠다고?

 조퇴까지 하면서 따라나설 마음이 들지 않았다. 둘이서 오붓하게 보낼 사이에 끼고 싶지도 않고. 괜히 심통이 나서 퉁명스레 한 마디 해주며 거절하려는데 은정 씨도 온다고 한다.

 “서로 균형을 맞추면 좋잖아. 남자 둘, 여자 둘. 한쪽이 더 많으면 그게 더 불편하다고.”

 조퇴 허락은 받았는데 팀장님한테 한 소리 들었다. 둘이서 같이 조퇴를 하는 건 무슨 꿍꿍이냐고. 나도 그게 신경이 쓰였다. 한 팀에서 두 사람이 동시에 같은 날 조퇴 신청을 하면 욕먹을 건 뻔한데 상현은 그게 별로 신경 쓰이지 않나 보다. 그저 어떻게 이동을 할지 계획을 짜느라 부산하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삼각지야? 거기서 뭘 찍을 게 있다고? 차라리 외곽으로 나가는 게 사진 찍기는 좋을 텐데.”

 “하나 씨랑 얘기 해봤는데 외지로 나가는 거야 사진 동호회 모임에서도 자주 가잖아. 차라리 눈을 돌려 서울 시내 안으로 들어가 보자고 합의를 봤지. 어차피 반나절만 시간을 내는 건데 어디 멀리 가기도 그렇고.”

 “그럼 삼각지로 고른 이유는?”

 “명동이나 동대문 같은 상가 밀집지역은 어떨까 고르다 퍼뜩 생각이 든 게 왜 이제는 신기술 시대잖아. 이왕이면 그런 전자제품 많이 파는 용산쪽으로 가서 사진 찍자고 하나 씨와 의견을 모았어.”

 “신기술은 무슨. 언제부터 네가 그런 트렌드를 찾았냐?”

 “이거 왜 이래. 내가 쓰는 휴대폰도 최신형이라고.”

 뭘 입고 가지? 평소에 옷을 챙겨 입는 편도 아닌데 그 걱정이 앞선다. 옷장을 둘러보니 마음에 동하는 것이 없다. 그동안 내가 사놓은 옷들은 하나같이 어둡고 칙칙하다. 나도 모르게 밝은 색깔은 피했나 보다. 아무래도 너무 눈에 띄는 건 싫으니까. 약속한 장소로 가는 중에도 계속해서 입은 옷이 신경 쓰였다. 계절에 맞지 않는 것 같고 너무 몸에 딱 붙는 것도 같다. 살이 쪘나? 일주일에 두 번은 체육관에 들르고 나름 관리한다고 하는데도 나잇살을 먹는 건 어쩔 수 없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삼각지라는 곳이 이랬나 싶게 낯설게 다가왔다. 어딘가로 향할 때 가끔씩 지나치긴 하지만 약속을 정하고 만나는 곳은 아니었다. 전자제품을 사더라도 주로 동네 근처 가전제품 센터로 가지 굳이 용산까지 나올 만큼 기계에 대해 관심이 많지도 않다. 그래서 나름 궁금해졌다. 잘 알지 못하는 곳에 왔을 때 동하는 탐험심이 생겼다. 내가 가장 먼저 도착했는지 아직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시간을 때울 겸 주변을 서성였다. 주거지역과 상가가 들쑥날쑥 겹쳐서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인구에 비해 땅덩이가 부족한 도시 특유의 다닥다닥 붙여서 지은 건물들이 가득 들어찬다. 어떻게 저런 위치에 건물을 올릴 생각을 했나 싶을 정도로 비좁게 서 있는 것도 있다. 그걸 보고 있으니 한국 건축계에 대해 절로 감탄하게 된다. 사람의 능력이란 참 대단하다. 안 될 것 같은 것도 되게 만드니까.

 틈이 너무 좁아 자칫하면 서로 건드릴 듯한 두 건물 사이를 신기해서 들여다봤다. 이건 뭐 거의 예술 수준이다. 펼친 손 하나 겨우 들어갈 공간을 두고 건물을 지을 생각을 했다니. 그 사이로 고개를 집어넣어 보려다 은정 씨가 오는 걸 발견했다. 어색하지 않게 인사를 건네려 머릿속에서 미리 예행연습을 했다. 옆에 상현이나 하나 씨가 있었다면 덜 부담스러울 텐데 이렇게 둘만 마주하게 되니 어째 자연스럽지 못한 기분이 든다. 그냥 동네 근처에 사진 찍으러 온 거라 여기면 될 텐데 이게 뭐라고 긴장을 하는 건지. 그녀를 향해 웃었다. 어째 어색한 미소. 나름 제대로 웃어 보이려고 힘을 줘봤는데 얼굴 근육이 너무 당겨 올라갔다. 우스꽝스러워 보이지 않기를. 어? 그녀가 고개를 돌려버린다. 나를 못 봤나? 아님 이상하게 웃는 남자에게 경계심이 생겼을 수도 있고. 인사를 건네기 위해 그녀 곁으로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그녀가 동그랗게 눈을 뜨고 나를 봤다 황급히 고개를 숙인다.

 “네, 안녕하세요. 일찍 나오셨네요.”

 나를 봤던 걸까, 보지 못한 걸까. 어쨌든 상관없지만.

 “생각보다 교통이 덜 막히더군요. 원래 이 시간은 한산한가 봐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사람들이 몰려들 거예요. 하나가 일부러 일찍 나오자고 했어요. 오후가 되면 가족단위 방문객이 많아지니까 최대한 사람 적을 때 많이 찍자고 했어요. 그랬는데 본인은 아직 보이지도 않았네요.”

 살짝 웃는다. 그래, 저 미소였지. 보기 좋다 생각했던. 가까이서 보니 콧잔등에 주근깨가 자리했다. 그게 그녀를 더욱 어리게 보이도록 한다. 원래 화장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지 메이크업도 거의 하지 않았다. 직업 상 사람 관찰하는 일이 몸에 배어 있어 저절로 습관이 나온다. 사람 겉모양을 보고 쉽게 판단하지 말라고 하지만 옷차림새나 외모를 치장하는 태도만 봐도 그 사람 성격의 상당 부분을 알 수 있다.

 “상현이도 늦네요. 설마 둘이서 어디 딴 데로 샌 건 아니겠죠?”

 그렇게 말하고 웃었는데 은정 씨가 따라 웃지 않는다. 약간 놀란 표정. 그냥 해본 소리인데.

 “아니, 실없이 한 말이에요. 우릴 여기로 불러놓고 그렇게까지 할 몰상식한 놈은 아닌데.”

 “아, 예.”

 엷은 미소. 상현과 하나 씨가 내가 말한 대로 할 수 있다고 심각하게 생각했던 걸까? 그럴 바에야 굳이 우리 둘을 불러낼 이유가 없다. 아님, ∙∙∙∙∙∙, 그러길 바라나?

 “삼각지는 지나친 적은 많았는데 직접 와보긴 처음이네요. 건물들이 많이 밀집해있어요.”

 “저도 삼각지 안으로 들어오긴 처음이에요. 용산 간다고 둘러서 돌아간 적은 몇 번 있었는데.”

 “상현이 사진 찍으러 삼각지로 가자고 했을 때 솔직히 의아했습니다. 어디 경치 좋은 외곽으로 나가는 것도 아니고 시내 한 가운데라니.”

 “아무래도 그렇죠. 보통 사진 찍는다면 탁 트인 풍경이 보기 좋은 곳으로 가야 하는데. 예전에 하나랑 모란역 근처로 간 적이 있어요. 모란시장을 둘러보러 간 거지 사진 찍을 목적은 아니었는데, 이리저리 둘러보다 찍은 사진들을 나중에 뽑아보니 그게 은근 매력적이더군요. 미처 카메라를 가져가지 않아 휴대폰으로 조잡하게 찍었는데도, 뭐랄까, 이건 멋진 풍경을 찍기 위해 일부러 동떨어진 곳으로 가서 조작해내는 것이 아니라 바로 가까이 있는 우리네 사는 모습을 피부에 와닿게 집어낸다고 할까요.”

 조곤조곤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듣기 좋다. 입술이 자음과 모음을 내뱉기 위해 위, 아래, 좌, 우로 왔다갔다 한다. 이렇게 둘만 마주서서 얘기를 나누다 보니 한층 가까워지는 기분이었다. 박상현, 차라리 더 늦게 와라.

 “다들 일찍 나오셨네요.”

 꼭 그렇다. 저 인간은 워낙 청개구리 성격이라 이렇게 말하면 저렇게 하고 늦게 오라니까 그새 나타난다.

 “왔어. 하나 씨는 아직 안 오셨네.”

 “어, 약간 늦는다고 하더라고.”

 “하나가 상현 씨한테 그랬어요?”

 은정 씨가 무안한 얼굴을 한다.

 “나한테는 문자 한 통 없었는데.”

 “급하게 서두르느라 미처 틈이 없었을 겁니다. 제가 연락했더니 그러더군요.”

 어차피 와서 볼 건데 연락은 왜?

 “오늘 일정은?”

 “하나 씨랑 대략 얘기해봤는데, 아무래도 용산 전자상가가 이 근처에서 가장 번화가니까 거기를 주 무대로 할까 해. 일단 삼각지에서 시작해서 몇 컷 찍어 번화가랑 번화하지 않은 뒷골목의 모습을 대비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고.”

 “하나가 저한테는 그런 얘기 꺼내지 않았어요.”

 은정 씨가 서운한 내색을 비춘다. 이 인간이 언제부터 하나 씨랑 그렇게 가까워진 거지?

 “그게 오늘 계획을 짜다 즉흥적으로 나온 아이디어라서 미처 은정 씨한테는 알리지 못했을 거예요. 둘이서 브레인 스토밍을 하다 보니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쏟아졌어요.”

 브레인 스토밍 좋아하네. 언제부터 그런 것도 하셨나.

 “죄송해요. 제가 늦었네요.”

 하나 씨가 특유의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며 뛰어온다. 상현의 얼굴이 확 밝아진다. 아무리 좋아도 둘만 있는 것도 아닌데 웬만하면 표정 관리 좀 하시지. 은정 씨 서운해하는 모습도 보라고.

 “안녕하세요, 진우 씨. 잘 찾아오셨어요?”

 하나 씨가 나를 향해 목례를 한 후 은정 씨를 본다.

 “언제 도착했어? 다들 일찍 나왔나 봐?”

 “응, 약속시간에 늦진 않았어.”

 은정 씨의 뚱한 얼굴에 하나 씨의 표정이 덩달아 샐쭉해진다.

 “어머, 얘가 왜 이래? 내가 늦었다고 화났냐?”

 상현은 뭐가 그리 좋은지 얼굴에 한 가득 미소를 담고 실실, 거린다.

 “하나 씨가 은정 씨는 빼놓고 나한테만 일정 얘기하고 늦는다고 연락하고 그런다고 삐치셨어요.”

 너도 나한테 삼각지라는 장소만 알려주고 끝이었잖아, 라고 상현에게 한 소리 해주고 싶은데 나까지 덩달아 그러면 안 될 것 같아 안으로 삼켰다.

 “얘는, 무슨 한두 살 먹은 애냐? 너야 친하니까 편하게 나와서 알려주려고 한 거고 상현 씨는 예의를 차려야 하니까 미리 상의를 한 거지. 아유, 우리 은정이 그래서 삐쳤어?”

 하나 씨가 익살스럽게 애교를 부리니까 은정 씨가 부루퉁하니 잔소리 몇 마디를 하곤 표정을 부드럽게 푼다. 여자인 은정 씨도 저렇게 넘어가는데 하나 씨 애교에 넘어가지 않을 세상 남자 없을 거다.

 “알았어, 알았다고. 대신 늦은 벌로 나중에 맛있는 간식이나 사. 나, 회오리 감자 먹고 싶어.”

 “회오리 감자가 문제야. 꼬치도 사줄게.”

 “어, 그럼, 우리도 같이?”

 상현이 은근슬쩍 곁가지를 치려 하자 하나 씨가 호탕하게 웃는다.

 “그럼요. 저 때문에 다들 기다리셨는데 제가 사야죠. 당연하죠.”

  큰 차도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자고 다 같이 의견을 모으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나 씨는 양쪽에 상현과 은정 씨를 두고 번갈아가며 대화를 이어간다. 상현의 옆에서 걷는 나만 어째 떨어져 있는 느낌. 그런 하나 씨의 에너지에 새삼 감탄했다. 하긴 모임에서 저런 사람이 있어야 분위기가 산다. 나 같은 멤버만 모인 그룹은 상상하기 싫다. 얼마나 지루하고 불편할지.

 “저기 어때요? 유독 저 건물만 육칠십 년대 분위기가 나요.”

 “그러네요. 이 집 주인만 보수하기를 거부했나? 어디 그럼 여기서부터 시작해볼까요?”

 건물 위주로 사진 찍기를 시작해서 가끔씩 인물사진을 곁들였다. 하나 씨와 은정 씨는 주변을 돌아가며 포즈를 취하는데 꼭 고등학생처럼 보인다. 그런 그들을 보며 고등학생 같다고 생각하는 내 자신이 나이가 많이 든 것 같다. 인생 얼마나 살았다고 이런 느낌이 드는지. 나이 든 어르신들이 보면 아직 한창인데. 어느 순간에는 아직 많이 어린 것 같다가도 어쩔 땐 너무 나이를 먹어 이제 관을 준비해야 하나 싶을 만큼 노쇠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더욱 하나 씨, 은정 씨와 어울리는 게 반갑다. 그들이 발산하는 에너지를 받아들이고 그들이 짓는 미소를 바라보면 내 나이가 몇인가 하는 생각은 잊게 된다. 그저 이 순간에 나는 살아있구나 하는 생동감만이 가슴 속에 든다. 그런 모습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원래 인물사진은 잘 찍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사진을 여러 장 찍어댔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기념품이 될 터였다.

 “두 분도 같이 포즈를 잡아 봐요.”

 하나 씨가 상현과 나에게 포즈를 잡아보란다. 다 큰 어른 남자 둘이서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는다는 게 어색했다. 그러고 보니 상현과 같이 사진 찍으러 다닌 적은 많았지만 둘이 함께 사진을 찍을 생각은 한 적은 별로 없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그럴 생각을 못했을 뿐. 하나 씨가 우리를 향해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자 상현이 불쑥 옆으로 다가온다. 괜스레 민망한 기분이 들어 슬쩍 물러나자 더 가까이 밀착해온다.

 “어쭈, 피하냐? 내가 창피해? 창피하냐고?”

 “창피한 게 아니라. 머리 굵은 아저씨 둘이서 사진 찍으려니 그렇잖아.”

 “그렇기는 뭐가? 이리 와 봐요, 진우 씨. 우리 다정하게 찍어요.”

 상현이 장난스레 콧소리가 섞인 말투를 내며 내게 엉겨붙는다. 징그러운 녀석의 얼굴을 밀어내려고 하자 버팅기며 두 팔로 목을 감는다. 그런 우리를 보고 하나 씨와 은정 씨가 재밌다며 웃는다. 한 번 웃음이 터지자 참기 힘든지 더욱 그 소리가 커져간다. 그 웃음에 힘을 얻었는지 상현이 나를 더욱 끌어당긴다. 유들유들한 놈.

 상현을 억지로 떼어내고 나니 이번엔 남녀로 짝이 맞추어졌다. 자연스레 상현과 하나 씨가 커플이 되고 나와 은정 씨가 사진을 찍어줬다. 두 사람 참 편안해 보인다. 자연스레 포즈를 잡으며 자세를 바꿔본다. 다음은 나와 은정 씨 차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찍으려고 했다. 너무 가까우면 서로가 불편할 거고 너무 멀면 같이 사진을 찍는 의미가 없다. 은정 씨가 쭈뼛거리는 게 느껴진다. 본인도 쉽지 않겠지. 상현이 실실, 거리며 웃기 시작하자 하나 씨도 덩달아 웃는다.

 “두 사람 내외 하세요?”

 “예?”

 “아니, 조금 전에 일찍 나와서 둘이 서로 싸운 건 아니지?”

 “싸우다니 우리가 왜 싸워?”

 은정 씨가 부정하자 하나 씨가 다가와 우리를 가깝게 모은다.

 “아니, 이렇게 서 봐요. 누가 보면 두 사람 원수진 사인 줄 알겠네.”

 하나 씨가 이끄는 대로 따르려니 마네킹처럼 팔다리가 뻣뻣하게 움직였다. 은정 씨와 거의 맞닿을 정도 가까이에서 엉거주춤 균형을 잡았는데 하나 씨가 내 팔을 들어 은정 씨 어깨 위로 내려놓았다. 은정 씨가 움찔, 경직되는 것이 그대로 전해진다. 하나 씨는 물러나서 카메라를 들려다 그런 우리를 보고 그만 한숨을 내쉰다.

 “아휴, 어째 내가 올려놓은 그대로 있어요. 진우 씨, 친근하게 붙어요. 사진 포즈 처음 취해보는 것 아니죠?”

 사진을 찍긴 찍었는데 어떻게 찍었는지 모르겠다. 팔에 너무 힘이 들어간 건 아니었나 신경이 쓰인다. 은정 씨를 불편하게 할 의도는 전혀 없었는데 갑작스레 연출된 상황에 내가 생각해도 너무 어리숙하게 군 것 같다. 게다가 은정 씨도 긴장한 게 역력해 보여 그게 더 상황을 악화시켰다. 은정 씨는 같이 사진을 찍고 나서부터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화라도 났나? 내가 뭘 잘못했지? 상현과 하나 씨는 그런 우리는 안중에도 없는지 어느새 세상에서 둘도 없는 베스트 프렌드라도 된 것처럼 찰싹 붙어 어디로 이동할 것인가 의견을 나누고 있다. 이봐, 여기도 의견을 가진 두 사람이나 있다고.

 “그럼 용산역 쪽 방향으로 움직이죠. 굳이 건너편으로 향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삼각지가 지역마다 두드러지게 다른 특색을 가진 곳은 아니니까요.”

 “그럴까요? 그럼 용산으로 가려면 이쪽이 아닌가?”

 역시 이번에도 우리는 당연히 자기들을 따라가는 들러리로 생각하며 앞서 나아간다. 한 마디 할까 했는데 은정 씨가 어디에 있는지 그게 먼저 궁금해졌다. 뒤를 보니 저만치 떨어져서 걸어온다. 시선은 반쯤 아래로 향했는데 골똘히 생각에 잠겼는지 눈의 초점이 흐릿하게 풀렸다. 앞선 두 사람이 점점 더 멀어져 가는데 어서 오라고 재촉하기도 그랬다. 에라, 모르겠다. 신난 사람끼리 알아서 가라는 심정이었다. 은정 씨와 걷는 속도를 맞추기 위해 보폭을 줄였다. 잠깐 천천히 걸었는데 금세 상현과 하나 씨가 보이지 않는다. 골목에서 방향을 틀어 사라졌다. 어째 뒤에 있는 사람은 안중에도 없다. 그렇겠지, 둘이서 좋아 어쩔 줄 모르니까.

 힐끔, 은정 씨를 보니 아직 생각에 빠진 모습이다. 나와 둘이서만 걷고 있는 걸 아직 모르는 눈치다. 한적한 골목으로 들어왔더니 지나가는 사람이 없다. 은정 씨와 둘이서만 걷고 있는 이 공간.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한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다. 그녀와 나, 오직 두 사람. 이것이 영화라면 이 골목길은 오롯이 우리 둘만을 위해 마련된 세트장이다. 드문하게 보이는 오래된 집들은 육, 칠십 년대를 떠올리게 할 만큼 낡아서 지금 내 머릿속을 채우는 비현실적인 감각이 더욱 짙어지게 만든다. 오래된 영화의 남녀 주인공처럼 걸어가는 그녀와 나. 금방이라도 젖은 눈을 한 채 나를 보며 어색하게 더빙된 목소리로 뻔한 대사를 내뱉을 것 같다. ‘왜 우린 이제야 만난 거죠?’ 그런 상상에 빠져있을 때 은정 씨가 갑자기 시선을 들어 주변을 살핀다.

 “어머, 하나랑 상현 씨 어디로 갔죠?”

 “저기 골목길 돌았어요. 안 보인지 꽤 됐는데 이제야 아셨어요?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내가 물끄러미 바라보자 어색한지 살짝 고개를 숙인다.

 “뭐, 별 다른 생각을 한 건 아니구요, ∙∙∙∙∙∙, 그저, 오랜만에 이렇게 걸으니 좋아서 그 기분에 푹 빠졌었어요.”

 “게다가 좋은 동행도 함께 하니 금상첨화죠.”

 장난 삼아 건넨 말인데 그녀가 얼굴을 붉힌다. 생각 없이 던진 돌에 물고기를 잡는다고 했던가. 지나가듯 던진 말이었는데 제대로 감이 왔다. 이 사람 날 좋아하는구나.

 “어, 하나 씨는, ∙∙∙∙∙∙, 사귀는 분 없으세요?”

 사실 꺼내려던 이름은 은정이었는데 공연히 하나 씨라고 말해버렸다.

 “아, 그게요, 훗.”

 작은 미소. 이 여자는 크게 웃는 것도 작은 미소도 다 잘 어울린다.

 “얼마 전까지 꽤 아픈 연애를 했어요. 이제 완전히 정리했다고 하는데도 그게 당최 믿어지지가 않네요. 많이 울고 힘들어하던 모습을 바로 며칠 전에도 봤기 때문에 아직도 조마해요. 다시 만난다고 할까 봐.”

 “모임에서는 하나 씨, 전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던데요.”

 “원래 애가 그래요. 힘든 일이 있어도 툭, 툭, 다 털어버리고 잘 이겨내고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서도 좋은 것만 보려고 하거든요. 어제 안 좋은 일을 겪었어도 오늘은 그걸 떨쳐버리고 웃을 수 있는 정말 기특한 애에요.”

 “하나 씨 같이 좋은 분을 그렇게 힘들게 하고 울리는 남자라니 아주 몹쓸 사람이군요.”

 “사내 연애를 했거든요.”

 “하나 씨 하는 일이 스튜어디스라고 했던가요?”

 “네. 상대방이 비행기 기장이었어요.”

 “그럼 보기 싫어도 일터에서 마주칠 수밖에 없겠네요.”

 “그래서 더 힘들어했어요. 그렇다고 연애 때문에 일을 그만둘 수도 없고. 결정타는, ∙∙∙∙∙∙, 이런, 제가 별소릴 다 하네요.”

 꺼내지 말아야 할 말을 꺼내 실수를 한 듯이 황급히 말을 거둔다.

 “아, 괜찮습니다. 하시기 불편한 말이면 안 하셔도 됩니다.”

 “그게 그러네요. 오지랖 넓게 퍼뜨리고 다닐 말은 아니라서요. 진우 씨한테 제가 하나 연애 얘길 한 걸 하나가 알면 많이 서운해 할 거예요. 제 입이 가볍다 할지 모르겠네요.”

 “예, 예. 못 들은 걸로 할게요.”

 은정 씨에게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나자 어째 다음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대화를 나누던 흐름이 끊긴다. 살짝 조심스레 은정 씨가 나에게 묻는다.

 “상현 씨는, 만나는 분 없으세요?”

 상현에 대해서 그렇게 묻는데 공연히 머리가 텅 빈 것처럼 느껴진다. 잠시 대답을 하지 않고 있자 은정 씨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재차 묻는다.

 “설마, 결혼한 분 아니시죠?”

 “아, 아뇨. 총각 중에서도 묵고 묵은 상 노총각입니다. 그놈의 노총각 딱지를 떼라고 주변에서 그렇게 야단을 떨어도 본인은 어째 심각하게 고려하지를 않네요.”

 내 대답을 듣고 갑자기 한시름 놓았는지 얼굴이 환해진다.

 “그러시구나.”

 “왜 결혼한 유부남처럼 보이던가요?”

 그렇게 묻는 내 목소리가 혹시 떨리지 않을까 걱정됐다.

 “아니요. 그렇게 봤다는 게 아니라 실은, ∙∙∙∙∙∙, 하나가 제대로 겪은 결정타가, ∙∙∙∙∙∙, 그 기장이라는 사람 부인이 한바탕 소동을 벌여 호되게 당했거든요.”

 “부인이요?”

 “그 기장이라는 사람, 유부남이었어요. 하나 입장에서도 뭐라고 할 말이 없긴 한 게, 알면서도 시작했거든요. 상투적인 스토리지만 그 남자가 더 이상 결혼생활을 이어갈 수 없고 곧 부인을 떠날 거라며 하나한테 확답을 줬었거든요. 그 말이 미더웠든 어쨌든 하나 자신도 그 말이 믿고 싶었는지 몰라요. 그렇게 넘어간 거죠.”

 “어떻게 당하셨는데요?”

 “자세한 얘기는 하긴 그렇지만, 사람들 많은 공공장소에서 머리채를 잡혔나 봐요. 왜 드라마 같은 데서 자주 보잖아요.”

 “하, 것, 참.”

 “하나는 그나마 직장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아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직장동료들 보는 데서 그런 일을 당했다면 진즉 사직서를 썼을 거라나요. 그러면서 웃어요. 그게 하나라니까요. 저 같으면 당했던 일 생각할 때마다 머리로 피가 거꾸로 솟을 것 같은데 말이죠.”

 그렇게 말하며 또 작게 웃는다. 이번에는 그 웃음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은정 씨가 하는 말을 들으면서도 정신은 반쯤 밖으로 나가 있다. 귓가 주변에서 웅웅, 거리는 소리가 빙글빙글 돈다. 오늘 약속장소에 와서 처음 얼굴을 마주 대했을 때부터 들던 간절한 마음. 당신 머릿속에 들어가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 좋은 동행이 함께 하니 더욱 좋지 않느냐는 말에 얼굴을 붉히던 모습. 이제 그 머릿속에 들어가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한 발짝만 더 가깝게 내딛으면 편하게 손을 잡을 수도 있겠다.

 설마, 결혼한 분 아니시죠? 상현을 두고 한 말이었지만 비수같이 내 가슴 구석으로 날아와 푹 박혔다. 은정 씨, 초대할 테니까 내 머릿속에 들어와서 한 번 봐줄래요. 지금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이렇게 당신을 보는지. 나도 내 자신을 모를 때가 있어요. 은정 씨가 보고 답해주지 않을래요. 이제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당신을 바르게 대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나도 모르겠어요. 제발, 내 부탁, 들어주지 않을래요.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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