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걸은 이선근을 무시하는 눈으로 힐끗 본 후로는 존재 자체를 무시해버리고 천명구를 노려보며 닦달을 했다.
“그 새끼 어디 갔어요? 오늘은 그 놈을 꼭 만나야겠어. 개새끼가 겁 대가리 없이 어디다가 독박을 뒤집어 씌워. 연락처라도 주세요. 빨리!”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고래, 고래 소리를 지른 소리에 연습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 연습을 중단하고 시선을 뒤로 돌리고 있었다. 스크린 방에 게임을 하던 사람들도 하나 둘 나와서 구경하기 시작했다. 천명구는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를 못하고 다시 물었다.
“누구를 말하는가? 도통 알아 들을 수가 없어. 누구 연락처를 달라는 거야?”
벌겋게 상기된 얼굴에 개 거품까지 질질 흘리며 고함을 지르는 모습이 어린 아이 젖 달라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새끼 있잖아요. 맨날 여기 오는 놈. 별 희한한 새끼가 사기를 치고 있어! 개 새끼! 요즘 여기 안 와요?”
천명구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신음뿐이었다.
“으으으음…… .”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하고 허여멀건 한 동공을 드러낸 채 눈만 끔뻑거리고 있었다. 이 모습이 박영걸의 이성을 더 잃게 한 것 같았다. 갑자기 간질병에 걸린 환자처럼, 분노조절 장애를 가진 환자처럼, 안절부절 하더니 눈에 띄는 골프채를 하나 집어 들고 연습하고 있는 회원들에게 쫓아갔다.
“이 동네 흘린 보지들하고 좆 대가리들 여기 다 모여있다 드니 맞는 말이네. 땡땡 한 것들 여가 다 모였네. 야야! 시간 아깝다. 뜸들이지 말고 바로 팬티 벗겨 쑤셔라. 어차피 여기 지하잖아. 불 꺼줘?”
사람은 찾지 않고 연습하고 있는 사람들과 남녀불문하고 눈을 붙잡고는 성도착 증 환자로 취급하는 말만 쏟아내며, 사람들이 창피해서 다시는 이 연습장을 찾지 못하게 할 의도도 밖에 보이지 않았다. 적막뿐이었다. 저게 미쳤나? 미친 게 맞았다. 인상을 찡그린 사람들이 하나 둘 박영걸을 에워쌌다. 한 명이라도 먼저 박영걸에게 어떤 몸짓이던 하면 뒤로는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몰려 들어 제압할 것 같았다. 수치심을 느낀 여자들이 채를 들고 슬금슬금 합류하고 있었다.
그러나 반대의 여자들도 있었다. 그녀들은 얼굴을 가리고 가방을 질질 끌어 밖으로 도망치듯이 튀어나가 버렸다.
그러나 대부분은 빠르게 뒷걸음을 쳐 멀리 떨어져 서 있게도 하고, 일부는 벌써 쓰러져 허리를 만지며 고통스러워하기도 했다. 놀라서 피하다 넘어지면서 엉치뼈나 갈비뼈나 등뼈가 골프 공을 짓누른 것 같았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말리거나 제압하지는 않았다. 자칫 잘못하면 쇠파이프인 골프 채에 비명횡사하기 때문에 다가가지 않고 제압할 기회만 엿보며 피하고 있었다. .
이 황당한 광경을 보던 이선근의 뇌리에서 저 놈에게 당했던 무시와 냉대가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연습하다가 튕겨져 나온 공과 깨진 공이 눈에 들어 왔다. 공들과 시선이 딱 마주쳤다. 공들이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보였다.
‘빨리 나를 집어 들어 저놈 대가리로 던져주세요! 라며.’
손을 싹싹 빌며 애원을 하는 것처럼, 재촉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제발! 부디! 빨리! 저 놈의 뒤통수로 날려주세요. 제가 알아서 뒤통수를 깨버리겠습니다’ 라며.
성난 뿔 소의 눈이 이선근을 노려보고 있었다. 곧바로 돌진해 올 것 같았다. 공을 쥔 이선근의 손이 자동으로 올라갔다. 박영걸이 이선근 쪽으로 출발할 찰나 공을 바로 날려 버렸다. 박영걸이 잽싸게 공을 피하고 거만한 팔자 걸음으로, 주머니에 손까지 넣으면서,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 어리둥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박영걸의 막말에 화가 난 여자들이 치를 떨다가 이선근이 공을 날리는 걸 보고, 일발 장전, 사격 개시로 알았던 것 같았다. 똑같이 뒤통수에 던지고 있었다. 그가 점점 다가오고, 바닥에는 하얀 골프 공이 하얀 눈처럼 흩날려 구르고 있었다.
그때였다. 주머니에 손만 넣지 않았다면 참사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거드름 피우듯이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천명구에게 오다가 구르는 공 한 개를 밟고 중심을 잡지 못하고 나자빠져 버렸다.
레슨 프로가 쓰러져 있는 박영걸에게 쫓아갔다. 사람들도 몰려 들었다.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119! 119! 119!”
그러나 아무도 119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이선근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아내 친구의 남편이고 같은 밥상에서 밥도 같이 먹은 사이였다. 저런 놈과 인연이라니! 정말로 후회스런 순간이었지만 버튼을 눌렀다. 레슨프로가 채 닦는 헝겊으로 지혈을 하고 있을 때 이선근은 SNS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었다.
그들이 휴대폰으로 119에 전화를 하지 않은 이유는 날렵한 검객의 칼 질이 아닌 골프 채 질과 검객의 최후를 누가 먼저 전국으로 날리나! 시합을 하느라 바빠서였다.
옆에서 보던 천명구의 얼굴은 화장터로 가는 시체와 같았다.
“이를 어쩌나!”
이 말은 박영걸도 이선근을 위한 걱정의 말이 아니었다. 천명구가 걱정했던 대로 이 사건이 벌어지고 일주일 정도는 연습장을 찾는 사람이 서너 배는 더 늘었다. 어떻게 됐는지 확인하러 온 사람들이 주를 이루었다. 구경하려 온 사람과 연습하는 사람들 모두 이구동성으로 동네 망신이고 창피하다며 그렇게 떼를 이루어 떠나버렸다. 하물며 아흔의 할머니도 바람난 년으로 취급 당할 까 두렵다며 다른 연습장으로 가버렸다.
천명구가 ‘이를 어쩌나!’하며 걱정한 미래가 현실이 돼 버렸다.
여기서만 끝난 건 아니었다. 이건 시작이었다. 가장 먼저 시작은 그날 가장 먼저 가방을 질질 끌고 도망치듯이 나간 그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여보! 동내 창피해서 여기 못 살겠어요. 아니! 그런 동영상을 왜 올려서 전국으로 소문이 나게 해. 이 아파트 사는 여자들 전부 바람난 년이 된 꼴이잖아요.”
남편을 못 살게 달달 볶은 덕택으로 그녀들은 멀리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서, 주두희와 같은 행실을 한 과거를 숨길 수 있었다. 주상복합아파트가 유령도시 같은 아파트로 변하는 데는 그렇게 긴 시간은 필요로 하지 않았다. 천명구의 평판과 가세가 기하급수적으로 곤두박질을 치며 천명구가 끙끙 앓을 때 이선근도 끙끙 앓는 중이었다.
박영걸이 뇌진탕으로 지금은 기억을 잃은 상태라 경찰 조사도 불가능한 상태였다. 병원이 그에게는 곧 감옥이었다. 그러나 이선근은 그의 기억이 언제 다시 살아날지 궁금해하며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박영걸은 불특정 다수에게 이성을 잃어 골프채를 휘둘렸지만 자기는 아니었다. 박영걸을 향해 공을 던질 때는 죽여버리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혹시나 그 모습이 어디던 있지 않나 걱정이 돼 CCTV가 향한 위치를 확인했지만 그때 서 있었던 자리에는 CCTV가 있어도 비쳐지지 않는 장소였다. 허긴 몰래 던져야 했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숨었지 않았나 생각도 하고 있었다. SNS에도 자신의 얼굴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불안한 마음은 사진이나 동영상처럼 사라지지 않고 늘 같이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