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두희가 어디 아프데?”

　남편이 고개를 갸웃하며 미심쩍은 눈으로 애리를 보며 더듬거렸다.

　“어? 몰랐어? 나는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문자만 보지 않았다면 이런 식으로 움츠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거짓말 하는 기분. 죄 짓는 기분. 문자를 벌써 봐버렸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는 꼴이 돼버렸다. 어떤 이유해서인지 모르지만 인생으로까지 확대할 순 없지만 자잘한 이런 일도 인생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이상하게 인생이 꼬여가는 기분도 들게 했다.

　뒤끝이 찜찜한 이 기분. 화장지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기분. 목욕탕에 들어가 깨끗이 씻고 때를 벗겨야만 개운할 거 같은 기분.

　무슨 이유로 내가 거짓말을 해야 하나?

　이런 우중충한 기분에 휩싸여가기까지 했다. 왜?

　가슴이 불에 타는 것처럼 뜨거워지면서 열기도 올라, 짜증도 같이 났다. 이번 기회에 주두희와 나는 확실히 다른 사람이란 걸 남편에게 각인시켜야겠다는 의무감도 불뚝 쏟았다. 또한 두희와의 인연도 이번 기회를 발판으로 종지부를 찍고, 남편에게도 결연한 의지를 보여줘야만 한다는 절박함도 같이 했다. 이때가 아니면 영원히 남편에게 오해만 받는다.

　그래! 강력하게 의지를 표명하자. 벌써 아랫배에 힘이 엄청 들어가 숨이 찰 정도였다. 공표하자. 어느새 남편을 노려보고 있었다.

　“연락 안 한지 오래됐어. 제발 부탁인데 두희하고 내하고 한 통속으로 취급하지 마! 당신도 알잖아. 걔하고 내하고는 사고방식 자체가 다른 사람이란 걸. 같은 년으로 취급 당하는 것 같아 기분이 정말 더러워.”

　존칭 같은 건 싹둑 잘라버리고 단호하게 내뱉고 돌아 앉아 버렸다. 이선근이 깜짝 놀라고 있었다. 곧 괜히 말했다고 후회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선근은 찌질 했다. 입 밖으로 나오려고 하는 말은 붙잡지 못했다. 스스로도 비겁하다고 느끼면서도 애매모호하게 구시렁거렸다.

　“남편에게 맞아서 얼굴이 함몰됐다던데……. 미친 놈이 아니고선 자기 마누라를 떠나서 사람을 그렇게 두들겨 패는 놈이 어디 있어. 이해가 안돼. 그 놈이 미친 짓을 하다가 죄를 받아서 그랬는지 그 놈도 허병식이가 아는 동생에게 죽도록 얻어터져 입원해 있다네.”

　이건 또 무슨 말?

　“그 놈 그 놈 중 어느 놈이 그 놈인데? 도대체 그 놈이 누군데요?”

　“어! 당신은 몰랐어? 한 놈은 두희 신랑이고 다른 놈은 허병식이하고 친한 동생이라고 하던데.”

　순간적으로 소름이 쫙 끼쳤다. 혹시 그 희한한 놈인가? 어디 갔다가 이제 왔어? 이 생각을 하자 피씩 웃음이 나올 뻔 했지만 그를 겨를이 없었다. 남편의 말 전부가 궁금증을 유발시키게 하는 말이었고 또한 섬찟한 기분도 들게 했다. 무조건 모르는 척하기로 마음을 단단히 먹고, 눈을 서서히 돌려 남편을 뚫어지게 쳐다 보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제가 그 놈이 누군지 어떻게 알아요? 두희가 누구한테 맞았다고요? 두희 신랑은 또 무슨 말이죠? 왜요?”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대는 듯한 애리의 반응에 이선근은 아랑곳하지 않고, 방바닥에 줄을 긋듯이 손가락으로 바닥을 그려가면서 들었던 얘기를 흥분된 어조로 설명했다. 얘기를 다 들은 애리 손이 은연중에 남편 얼굴로 가 있었다. 만약에, 만에 하나라도 섬찟했다.

　그 희한한 놈과 몇 번이라도 같이 골프를 치며 어울렸다면 두희 남편처럼 남편도 충분히 흥분했을 것이다. 반대로 남편이 어떤 여자와 바람이 났다면 나 또한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럼 지금 병원에 누워 있을 사람은 누구였을까?

　남편을 쳐다보고만 있지, 머리 속은 온통 어느 병원의 침대에서 헤매고 있었다. 이선근이 눈에도 아내의 눈이 어디에선가 헤매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 사람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가? 애리 손바닥이 남편 볼에 딱 붙어 있었다. 그런 애리 눈을 보던 남편이 애리 손을 입술에 걸쳐진 밥풀 때기 떼내듯이 떼내며 의심으로 가득한 눈으로, 미간까지 잔뜩 찌푸려 시선을 떼지 않았다.

　도둑이 제 발이 저리듯 자기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 즉시 알아차린 애리가 깜짝 놀라며 순발력을 발휘했다.

　“아이고 천만다행이다. 내가 두희 같은 년이었다면 당신이 지금 병원에 있을 뻔 했네. 그 봐! 마누라 한번 잘 뒀지?”

　그러나 이 말은 결코 애리에게 덕이 되는 애교의 말이 아니었다. 의심만 부추긴 말이었다. 그렇다고 겨우 냉각기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을 한 이선근이 빙긋하고도 씁쓸한 웃음으로 그냥 넘겨 버렸다.

　애리도 더 이상 주두희는 물론이고 골프를 치면서 만난 사람들과는 일체 연락을 하지 않기로 단단히 다짐을 했다. 이번이 우리 인연이 마지막이란 다짐을 하고 문안을 갈 마음조차도 가지지 않았다.

　감기 몸살이나 곧 죽을 병도 아니고, 교통사고나 다른 사고로 다친 것도 아니고, 얻어터져 눈탱이 밤탱이 된 년을 찾아갔을 때 병실에서 쳐다 볼 시선들도 마음에 걸렸다. 당연히 같은 년으로 취급 받을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이유에 한몫도 했다.

　아무리 아니라고 손사래를 쳐도 사람도 동물이기에 동물처럼 끼리끼리 어울린다는 섭리는 부정을 할 수가 없다. 간혹 주변 사람들에게서 주두희와 전혀 어울리지 않을 줄 알았는데 어떻게 어울리냐는 질문을 받을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애리는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늘 내렸다.

　공짜로 골프를 친다는 말에 솔깃했듯이 주두희가 가지고 있는 어떤 천성을 자신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은 절제를 했고, 주두희는 절제를 하지 못한 차이일 뿐이란 생각을 해왔다. 그 절제의 끈을 놓친 게 이 사단의 이유이고 고민의 이유이라며 가슴도 치기도 했다.

　이번 일로 애리는 지금까지 간직해온 자신의 주관이 흐트러져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사람들은 간절하던 간절하지 않던, 뭔가가 필요하고 자신의 능력으로 이룰 수 있더라도 쉽게 해결하기 위해 주위의 지인에게 도움을 청한다.

　하찮지만 연습장 이용 쿠폰을 얻듯이. 차원은 다르지만 어떻게 보면 그런 류던 아니던 도움을 위해 필요로 하는 자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사람들은 그까짓 자존심 한번쯤 상하면 어때 란 마음으로 치부한 뒤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손을 내민다.

　그래서 뜻을 이루면 다행이라 여기며 잠시 감사를 표시하고 그렇게 넘어가고 잊혀지지만, 반대의 경우는 무덤까지 섭섭함을 가지고 간다. 마음에만 담았다가 가지고 가겠나?

　도움을 주지 않은 그 사람을 거의 매장(埋葬)에 이를 지경에 까지 험담을 해버리는 그런 속물들이 만연한 세상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가담을 한다.

　만약에 이번에 주두희를 찾아가서 위로를 하지 않으면 주두희는 또 나쁜 년으로 전락시켜 버릴 것이다. 그래도 애리는 가지 않기로 마음을 다졌다. 거기 있는 사람들은 이미 인간으로써의 가치를 상실한 오합지졸들로만 결론을 내버려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