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에서 내릴 때까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찜찜한 기분에 휩싸여있었다. 바늘방석에 앉은 기분은 물론이었다. 귀싸대기를 때렸다는 여자가 자기란 착각도 잠시 했다. 기사가 말하는 불륜의 주인공도 자기란 생각은 당연히 했다.

　오늘 한 짓으로는 틀리는 말은 하나도 않았으니까 약간은 부끄럽기도 하면서 얼굴도 화끈 달아오르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너도 같은 놈일 건데 사내 자식이 주둥이가 참 가볍단 생각을 하면서 뒤통수를 노려보기도 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도중에 어디선가 코고는 소리가 들려 눈을 떴다.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죠. 도착했습니다.”

　양손을 모아 입을 막고 하품을 늘어지게 하면서 바깥을 쳐다봤다. 잠시 뒤에 어둑해질 것 같은데 몇몇 집에는 벌써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주두희 집에도 불빛이 보였다. 남편이 벌써 퇴근 할 리는 없고 애들이 벌써 왔나? 고개를 갸웃하며 손거울을 보고 얼굴 여기저기를 확인하고 차에서 내려 아파트 출입문으로 갔다.

　그 시각에 이훈희에게 귀싸대기를 맞으면서 하필이면 코를 맞아 쌍 코피가 난 박영걸이 허둥대다가 얼떨결에 들어간 집이 참새가 방앗간 보고 못 지나치듯이 눈에 띄는 아무 술집에 들어가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찌질 하다는 말에 자존심도 엄청 상한 상태였기 때문에 벌써 소주 서너 병을 해치우는 중이었다.

　그 모습을 그렇게 포식을 하고도 허기가 진 닭 쫓던 개가 된 김인태가 비틀댄 눈으로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분명히 안면은 있는 데 누구였더라? 술이 많이 취한 상태라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박영걸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자존심이 상한 상태에서 들어간 술이라 만족을 했으면서도 미련이 남아 술로 해갈하고 있는 김인태보다 훨씬 더 취해 있었다.

　“어이! 형씨! 왜 자꾸 힐끔거리며 쳐다봐요. 같이 한잔 하고 싶으면 그 병들고 이리 와요.”

　김인태가 그래도 정신이 조금 더 살아있었다. 마시던 술병과 술잔을 들고 박영걸 앞에 앉았다.

　“이 동네 삽니까? 어디서 많이 뵌 분 같은데 제가 술이 취했나 봅니다. 도통 기억이 안 나네요.”

　박영걸의 기분은 김인태의 백팔십도 다른 상태였기 때문에 입에서 좋은 말이 나올 수 없었다. 그래도 최대한의 예의는 지키고 있었다.

　“씹할! 비좁은 이 나라에 조금만 파헤치면 전부 일가친척인데 뭐! 어디서 봤는지 한번은 봤겠죠. 자! 좆 같은 소리 그만하고 한잔 쭉 들이키세요.”

　박영걸이 평소 말 버릇이 그대로 나왔다. 김인태도 이런 말 버릇이라고 하면 절대 질 위인은 아니었다. 그렇게 똑 같은 성질머리를 가진 두 사람이 간단한 통성명만 하고 술을 들이켰다. 그렇게 시작된 술이 들어가면 갈수록 심오한 말만 쏟아져 나왔다.

　“그때는 시대가 좋아서 앞으로 나란히 해도 들어갔는데 또 그런 날이 오겠어요. 세상 돌아가는 꼬락서니가 개판인데.”

　김인태가 내뱉은 이 말은 절대로 세상을 걱정하는 말이 아니었다. 박영걸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말이었다. 소주를 한잔 더 들이키며 숨을 고를 때 김인태의 입을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신랑은 밤새도록 뼈빠지게 일을 해서 벌어온 돈인지도 모르고 별볼일 없는 놈들과 어울려 다니며 골프나 치고 싸돌아 다니는 가정이 제대로 돌아가겠어요. 내가 그런 년들 꼴이 보기 싫어서 바로 집 앞인데도 천명구도 허병식이 연습장에 안 가고 다른 데 가잖아요. 여편네들을 아예 술집 도우미 정도로 본다니까. 그런데 영걸씨는 어디서 연습합니까?”

　박영걸의 살점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골프 얘기를 더 했다가는 가정사가 낱낱이 드러날 것 같아서 직장 얘기로 돌렸다.

　“부장님 환경에서만 보지 말고 좀 넓게 보십시오. 부장님처럼 작은 회사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만 보지 말고 두루두루 넓게 보면서 좀 크게 생각하십시오. 말씀 하시는 전부가 자격지심으로 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제대로 한방 먹인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오히려 자존심만 더 상하게 나오는 말이 나왔다. 이 말 뒤로도 무슨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말만 골라서는 하는 대회나 치르는 것처럼 서로의 비위를 건드리는 말만 오갔다. 어느새 상대에 대한 존칭도 흐릿하게 사라져버렸다.

　“어이! 박형! 하루 여덟 시간 동안 만나는 사람이 몇 명인가? 길어야 스무 발자국 밖에 안 되는 그 속에 있는 부서 직원들이 몇 명이나 되는 가? 그 사람들과 평생을 같이 사는 사람과 나처럼 전국을 돌아다니며 영업을 하고 비위를 맞춰가며, 일감을 따오는 사람을 비교해 보게. 누가 더 넓게 보고 사는 지 생각 한번 해보게. 당신은 말 그대로, 지금은 물론 아니지. 당신이 그 회사에 취업할 당시에는 대부분이 아니! 전부 다, 앞으로 나란히 하듯, 들어가서 온실 속에서 잘 키워진 화초였잖아. 물론 몇 명은 아니겠지. 그렇게 들어가서 지금 하는 일! 그게 당신 역할이니 그 역할에만 충실하면 회사에는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지. 그건 당신 회사 직원 중 전 세계로 쫓아 다니며 영역을 하러 다니는 직원들과 똑같지. 그런데 그들이 사람들과 부딪혀가며 계약을 해오면 뭐하나? 당신들이 실수해버리면 끝이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은 맞아. 그런데 그일 자체는 굉장히 단순한 업무라는 걸 삼척동자도 알고 있어. 글만 읽을 중 알면 되는 일이라는 말이야. 누구나 다 하는 일! 나는 당신한테 그 일을 한다고 비하하지 않았네. 그런데 당신은 왜 나를 비하하나?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설득하려고 하나.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는 말은 당신 회사에서 교육을 하지 않던가? 허긴 그건 전산화 할 필요는 없지. 그런 이 점에 대해 당신이 머리를 굴려 설명 한번 해보게.”

　박영걸은 김인태가 목에 피가 터지도록 열변한 말에 절레절레 흔드는 고개 짓으로 무시해버렸다. 그렇잖아도 귀싸대기를 맞아 자존심도 상하고 분통도 터져 있는 상태에서 들리는 김인태의 말은 배부른 놈의 허세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언변이 김인태를 쫓아가지 못해 자기들도 직장에서 해야 할 역할에 최선을 다해 충실히 하고 있다며 응수를 했다. 그러나 이 말은 김인태의 열변에 일부를 인정하고 두둔하는 덧붙인 말로 전락한 셈이었고 직장인이면 누구나 하는 옹알이에 불과했다.

　“하루 종일 몇 명 되지도 않는 사람들 속에서 같은 일로 지시를 받고 무시 당해 본 적이 있어? 하루 종일 똑 같이 돌아가는 보드 판을 보며 혹시라도 문제가 발생하는지 눈도 띄지 않고 본 적이 있기나 했어? 컴퓨터나 두드리며 하루를 보내다가 나오는 사람이 뭘 안다고 남의 일이라고 함부로 말해. 출장이 뭐 대수롭나? 요즘 세상에 얼굴 마주보고 영업하는 회사가 어디에 있어. 이 메일로 다 되는 데. 회사 돈으로 천지를 싸돌아 다니며 구경밖에 더 해. 웃기는 소리하고 쳐 자빠졌네. 당신 같은 놈이나 세금이나 펑펑 쓰면서 현장 답사라 치고 싸돌아 다니는 정치 나부랭이와 다를 게 뭐 있어? 회사 돈으로 골프도 펑펑 치러 다니겠지. 당연히 마누라도 대동했겠지. 아니면 딴 년 하나를 데리고 가던가!”

　너라는 듯이 박영걸이 음흉한 미소로 김인태를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