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임마! 말조심해! 저기 있는 손님들 전부 천명구 사람들이야. 내 연습장이 무슨 색시 집으로 알겠다. 제발 부탁이니 입 조심 해. 알았어?”

　그러나 주두희는 이미 주두희의 몸이 아니었다. 축 쳐져 있었다. 밖에서는 식당 내부가 보이지 않지만 안에서는 밖이 훤히 보였다.

　“참! 어떤 놈 마누란지 잘 되가는 집구석이다.”

　식당 안에서 이 말들이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이 메아리는 식당을 빠져 나와 좁은 도시의 산천초목을 유랑하다가 소애리 남편 귀에까지 들어가 버렸다.

　세상 사람들 중에는 여러 부류가 있듯이 소애리 남편 회사에도 주두희 남편처럼 제 꼴도 모르는 주제에, 개 눈에는 똥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옛말이 사라진 지금에도, 시대에 부합하지 않게 나서기 좋아하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는 다름아닌 초상이 날 수 있다며 남편을 골프장에 대타로 보낸 부장이었다. 언제나 거들먹거리며 자기가 세상에서 최고인 줄 아는 사람이었다. 당연히 직장에서 전 직원의 기피 대상 일호였다.

　“어이! 당신 마누라가 골프를 그렇게 잘 친다며? 허긴 사업을 하니 우리 같은 월급쟁이보다 여러모로 여유가 있겠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않고 소애리 남편의 인내와 센스를 테스트하고 있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알아듣기 쉽게 얘기하십시오.”

　남편은 같이 늙어가는 주제란 생각을 하면서 이전처럼 부장에게 고분고분하게 대하지 않았다. 게다가 부장은 60대를 바라보고 있는 나이고 애리 남편이 오십 대가 되려면 지겹도록 많은 시간이 남아 있었다. 세월이 아무리 후다닥 지나가도 부장보다는 늦게 퇴사한다는 자신감도 한몫을 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아나? 입 소문이 나서 그렇네. 내한테 묻지 말고 마누라 간수나 잘 하게.”

　부장의 이런 입버릇에 더 이상 당하지 않겠다고 각오한 애리 남편이 날카롭게 대응을 했다.

　“부장님! 말씀 좀 가려서 하십시오. 대답하기 싫으면 입밖에 꺼내지나 말던가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 우리부부가 부장님처럼 갈라서길 원하는 겁니까? 이유가 뭔지 정확히 말부터 하고, 충고를 하던 하십시오. 어디서 불륜을 저지른 걸 봤으면 언제 어디서, 술집 도우미였으면 어느 술집, 제 눈을 보고 정확히 얘기하란 말입니다. 그런 짓의 비꼬는 투에 이제 질렀습니다.”

　부장의 광대뼈와 관자놀이 사이 살점들이 난리 굿을 치고 있었다. 애리 남편은 너처럼, 네 마누라처럼, 내 아내가 바람을 피웠더라도 네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았으면 말을 하지 말라는 말도 하려다가 참으며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나 부장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네가 알아서 하라는 듯이 시선을 무시해버리고 어슬렁거리며 나가 버렸다. 부르르 떨던 애리 남편이 의자가 튕겨져 날아갈 정도로 자리를 막차고 일어서 부장 뒤를 쫓아 나갔다. 만약에라도, 아내가 불륜을 저질렀다손 치더라도 지금만큼은 부장 멱살을 잡고 때려 죽여버리고 싶다는 마음밖에 없었다.

　저놈의 비틀어진 영혼에 내가 왜?

　무슨 이유로 지금까지 잠식되어 있었던가?

　이제는 바로 고치자. 인간으로써 미성숙아인 저놈의 권위주의와 상명하복에 점령당한 정신은 단지 업무 내에서만 용인돼야 하지 않는가?

　나의 가정사 개입에는 절대 용서할 수 없다. 그것도 전 직원이 귀를 막아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큰소리로 비꼬는 저 짓거리! 원청(原請)에서 당한 갑질에 대한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나를 이용하는가? 그럼! 비겁하다. 역겹다. 용서할 수 없다. 애리 남편의 이성은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느릿느릿 걷던 부장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었다. 그도 지금까지 갑질의 피해자이기도 해 눈치 하나만큼은 빨랐다. 애리 남편이 일어서며 걷어찬 의자가 나자빠지며 내는 소리에 위기감을 느낀 게 분명했다. 그러나 그가 갈 곳은, 피할 곳은 벌써 정해져 있었다. 화장실뿐이었다.

　위기의 순간에 오줌이나 똥이 마려운 건 모든 동물의 공통적인 현상이다. 부장도 비록 인간으로서 가치를 상실한 인간이긴 하지만 그래도 동물의 한 부류다. 실제로 그는 오줌이던 똥이던 둘 중에 하나는 급해있었다. 게다가 그는 그의 망언에 대한 응징을 직감해버렸다.

　겹친 데 엎친 격이 돼버린 이 순간에 그는 서두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등신처럼 급한 용변부터 먼저보고 망언을 했어야 했는데, 애리 남편뿐만 아니라 부하직원들을 아예 인간 취급도 하지 않은 품행에 대한 응징이 이렇게 빨리 올지 그는 전혀 몰랐던 것이었다.

　애리 남편이 기습공격을 하듯이 쫓아 들어갔을 때 부장은 허겁지겁 바지를 내리고 있었다. 아직 거시기가 바지에서 나오지도 않은 상태였다. 애리 남편 손이 무의식적으로 마대로 가고 있었다. 부장 신발 속까지 닦아 줄 수는 없지만 흥건히 젖어가는 바닥은 닦아야 했다. 여러 가지 생각이 애리 남편 머리를 어지럽게 했다. 가련하다.

　불쌍하다. 얼마나 급했으면 그 몇 초를 못 참고 바지에 싸버리냐? 내가 그렇게 무섭더냐?

　그러면 처신을 똑바로 하지. 어정쩡하게 고개를 뒤로 돌린 부장의 눈이 눈물이 날 정도로 처량하게 보인 애리 남편이 되돌아 섰다. 그렇게 짧으니 마누라가 바람이 나 밖으로 겉돌지. 너도 참 대단하다.

　그런 조루로 어떻게 마누라와 똑 같은 짓을 했냐?

　그러고 보니 바람난 여자와 싸돌아 다닌다는 소문은 없고 술집에서 해결한다는 소문이 더 많았지. 그 돈으로 병원에 가라. 허긴 그 나이에 가본들 뭐하겠나? 신체적으로 퇴화될 나이인데. 측은한 눈으로 너무 오랫동안 부장을 보고 있었다. 눈치도 없이. 웬만하면 피해 줄 시점인데 애리 남편도 이 순간만큼은 당황하고 있어 어찌 할 줄 몰랐기 때문에 눈만 마주치고 있었다.

　멀뚱히 눈을 마주치고 있는 부장의 형상이 정말로 똥 마려운 개새끼 몰골이었다. 측은해서 고개를 획 돌렸다가 원상복귀. 오보인지 실제인지 모르지만 아내는 이미 바람난 년으로 동료들에게 인식돼 버렸다. 여기서 응징을 하지 않으면 인정하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귀싸대기를 한대 때려 버렸다.

　“나이가 들어도 맞을 짓을 하면 나이 어린 사람에게 맞아야 돼. 맞았다는 이 사실은 물론이고 앞으로 나와 아내에 대해서 입을 뻥긋하면 이 사실을 만방에 알려버릴 테니 조심해. 알았어?”

　그러나 부장도 만만찮은 사람은 아니었다. 반격할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반격할 틈을 주다가는 주먹 다짐에 이기고 지는 건 둘째치고 상사를 구타한 징벌인 해고를 당할 처지에 놓일 것 같은 위기감에 애리 남편은 더 강하게 몰아붙여 버렸다. 바지를 무릎쯤으로 쫙 내려 동아줄로 묶듯이 묶어 버리고 멱살을 붙잡아 주먹을 부장 눈앞으로 가져다 놨다. 그러나 곧 바로 멱살을 풀고 뒤로 물러나야만 할 처지가 돼 버렸다.

　“아이 씨! 이게 뭐야?”

　이 말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까불면 죽어!’ 라고 말 할 작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