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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능력1: 루트
작가 : 작휴
작품등록일 : 2018.11.8

언제나 과거에 사로잡혀있는 당신을 위해 조그만 선물 하나를 준비했습니다. 언제나 당신의 행동과 노력에 따라 변하는 갈대 같은 미래보다 과거가 튼튼하면 미래도 튼튼하다고 생각하여 이 능력을 드립니다.
부디 악용은 하지 말아 주세요.

 
『3』내일이 보고 싶다
작성일 : 19-01-01 02:12     조회 : 261     추천 : 0     분량 : 9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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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지몽, 미래예지, 혹은 시뮬레이션이라고 해야 하나.

  내일이 오지 않았다는 건 이 세 가지라고 추측된다.

  이제 논리적으로 생각하며 보기 중 선택지를 하나로 좁힐 수밖에.

 

  먼저 예지몽은 아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난 잠을 자지 않은 상태에서 방이 환해진 걸 느꼈으며 직접 눈으로 목격했다.

  그것은 변함없는 사실이자 설명할 수 없는 현상.

  꿈을 꾸지 않았으니 예지몽이라고 할 수도 없고, 이 앞으로 일어날 일이 예전의 오늘과 똑같은지 알 수도 없으니 미래예지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다.

  그렇다면 남은 건 시뮬레이션인가.

  시뮬레이션- 실제 사건이나 과정을 시험적으로 재현하는 기법.

  미래예지, 시뮬레이션, 솔직히 이 둘을 어떻게 정의하든지 상관없다는 것을 지금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미래를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순간 다른 언행을 한다면 미래는 바뀔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절대적으로 변하지 않는 물건이라던가 사람은 없으니, 미래는 바뀐다는 게 내 의견이자 믿음이다.

 

  확실히 날짜는 변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방금 어머니의 핸드폰을 확인했더니 내 핸드폰에 표기된 날짜와 동일.

  굳이 이런 짓궂은 장난을 할 어머니가 아니다.

  게다가 갑자기 방이 환해지며 피곤한 몸 상태가 한 번에 호전되는 건 아버지라면 모를까 어머니는 할 수 없는 일.

  무언가 확인이 필요하다.

  어머니로 확인이 어렵다면, 다른 한 명에게 시험해 볼 수밖에. 솔직히 하고 싶지는 않다만, 목숨을 잃고 싶지 않다만, 어디까지나 이 현상이 꿈이나 무언가의 착각일 수 있다만.

  만약 내가 생각했던 현상이 맞았다면, 난 귀찮은 내색을 하면서 속으로는 희망으로 가득 찬 인생을 살아갈 것 같다는 생각에-

  효민의 방문을 열었다.

 

  "일어나 노효민, 곧 있으면 학교 가야 된다고."

 

  어제 조금 가까워진 효민이지만 다짜고짜 효민을 안으며 아침을 맞이하는 건 역시 아니다 싶고, 의아하게 날짜가 바뀌지 않았다는 지금 시점에서는, 내 기준으로 어제의 언행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다.

 

  "오... 분만..."

 

  기어 나오는 효민의 목소리, 게다가 이불 속에 파묻혀 나올 생각을 일절 하지 않는 효민.

  이 상황과 방금 효민의 대사는 확실히 어제와 똑같다고 느끼겠지만, 똑같다고 기억하겠지만, 나에게는 항상 이랬다.

  아직 내가 생각한 가설이 타당한지 모른다는 것이다.

  증명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저기 효민아, 어제 일 기억해?"

 

  질문은 던져봤지만 돌아오지 않는 대답.

  당연한 것이다. 만약 내 가설이 맞았다고 하더라도 효민은 막상 나와 가까워질 수 없고, 게다가 가설이 틀렸고 그저 착각이라면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다.

  난 효민이 덮고 있는 이불을 슬그머니 걷어내고, 새근새근 달달하게 자고 있는 효민의 침대에 걸터앉고 바뀌지 않은 내 핸드폰 속 날짜를 보며 이야기를 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어제는 정말 이상했어. 어떤 이상한 여자랑 만났는데 갑자기 나한테 키스를 했고 소민이가 나와 친해지자고 했어, 그리고... 너랑 사이가 조금이나마 좋아졌다고 해야 할까... 마지막은 나와 의견이 다를 수도 있는데, 너는 어떤 어제를 기억하고 있어?"

  "몰라. 내가 기억하는 어제는 평범한 3월 12일 일요일이었어. 빨리 나가."

 

  이불 속에서 차갑고 매정하게 말하는 효민에게 난 허탈과 동시에 약간의 짜증을 느꼈다.

 

  "그, 그래. 만약 진짜 돌아왔다면, 3월 13일은 어제가 아니라 오늘이구나. 그럼 넌 예전의 3월 13일의 기억하고 있어?"

  "모른다고! 나가라고 했잖아! 돌아왔다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3월 13일은 나에게서 방금 시작됐어 모른다고 모른다고 나가라고 제발!"

 

  이불을 확 걷어 올리고 나에게 소리치는 그녀.

  설마 꿈이었다거나 내 망상이었다거나, 그런 전개와 터무니없는 결말을 원하지 않아 효민에게 되물었다.

 

  "그, 그럼 내 기억은 뭐야. 왜 너는 기억이 없는 거야!"

 

  내가 효민의 어깨를 잡고 흔들며 감정에 휩쓸려 울분을 터뜨리자 그녀의 오른손이 큰 호를 그리면서 내 뺨에 가까워지더니-

 

  『짝』

 

  순식간에 벌어진 일, 한순간에 조용해진 효민의 방, 분위기는 얼음장 그 자체, 눈가가 조금 촉촉한 효민, 이제야 증명된 내 가설.

  내 뺨은 서서히 붉어져갔고, 효민의 눈은 점점 차가워져만 갔다.

  방금 맞아 뜨겁고 쓰라린 과거를 어루만지며, 효민과 과거에 안 좋았던 추억과 기억을 어루만지며 난 그녀의 방을 나갔다.

 

  "뭐야, 벌써 나가셨나."

 

  밖으로 나와보니 어머니는 이미 나간 뒤였다.

  내 어깨를 툭 치고 훌쩍거리며 화장실로 들어가는 효민, 난 그녀의 조그만 체구를 보며 내가 무슨 짓을 했었는지 이제야 깨달았다.

  또- 후회뿐이었다.

 

  "이거 곤란하네... 오늘 중에 풀리지 않겠지 분명..."

 

  화장실이 두 개인 집은 편리하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안방 화장실에서 준비를 마치고 난 효민보다 일찍 학교로 향했다.

 

  오늘은 3월 13일 월요일. 나에게는- 두 번째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가설, 그 정체는 바로 『타임리프』이지만. 내가 의식적으로 되돌린 게 아니기 때문에 리프인지 루프인지 아직 정확히 알 도리가 없다.

  현재 정확히 알지는 못하더라도 타임리프나 타임루프, 이 둘 중 하나는 확실하다.

  어떻게 이런 주장이 나오는가 묻는다면 먼저 날짜가 바뀌지 않았던 점이나 효민의 언행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

 . 효민이 과거의 일로 상처를 받은 건 알고 있으며 나로서는 더 이상 건드리고 싶지 않은 부분이기도 하다.

  확실히 효민은 나를 원망하고 있다. 있어야 한다.

  어제 나에게 조금 의지했다고 완전히 상처가 치유되는 게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이 3월 14일이 아닌가?라고 묻는다면 난 이런 질문에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아무리 효민이라고 해도 이 정도까지 날 원망하지 않을 거니까. 예전에는- 오히려 날 잘 따랐으니까.

  날 원망하고 있는 효민이라지만 이렇게까지 까칠하고 매정한 성격은 아니라는 뜻이다.

 

  "늦어! 그리고 잘 들어! 우연히 만나는 건 시간이야. 시간이 중요해! 그리고 너만 기억이 남아 있다고 해서 악용하면 안 돼. 나비효과도 조심할 것."

 

  내 등굣길을 막으며 갑작스럽게 나에게 말을 건 여자, 어제 만났던 여자다.

  눈동자는 선혈을 연상케하고 가늘고 긴 팔다리는 마치 미용실 잡지에 있는 모델을 떠올리게 하며 눈동자와 같은 색인 붉은 정장과 긴 흑발, 조합하면 인텔리 스타일의 여자.

  그녀가 또다시 나에게 말을 걸었다.

 

  "누구세요? 처음 만나는 사람한테 갑자기 그런 말씀을 하셔도... 됐다, 뭐죠? 날짜가 바뀌지 않았어요. 분명 하루가 지났는데 날짜와 제 여동생과 관계가 원상태로 돌아왔어요. 당신 때문이죠?"

 

  마치 기억을 잃은 사람처럼 얘기하려 했지만 매우 진지해 보이는 내 앞에 그녀 때문에 잡담은 집어넣었다.

 

  "불리한 상황이 될 때 누군가를 탓하는 건 좋지 않은 선택이지만, 딱히 네가 불리하지도 않고 굳이 따지자면 내 탓이 맞으니까. 넘어가도록 하지."

  "당신, 도대체 정체가 뭐야."

 

  답해주지 않는 그녀.

  굳이 뜸을 들여 시간을 지연시키고 나에게 답을 들려준다.

 

  "내 정체를 알고 싶어? 위험할 텐데? 힘들 텐데? 아플 텐데? 슬플 텐데? 싫다면 그냥 영원히 오지 않을 내일을 꿈꾸면서 오늘을 살아가."

  "위험해도, 힘들어도, 아파도, 슬퍼도, 약속했잖아요. 『내일 만나자고. 』 게다가 이렇게 계속 하루가 반복되는 건 싫증 나니까요."

  "내 정체를 알면, 넌 놀라려나? 어떻게 할 건지 궁금한데?"

  "뉴스에 제보할 거예요. 전 세계 사람들이 당신의 정체를 알면 당신은 어떤 표정을 지을 건지, 정말 궁금하네요."

 

  내 말이 끝나자 그녀는 미소를 남기고 사라졌다.

  분명 그 미소의 의미는 내 발언의 거짓을 꿰뚫었다는 의미겠지.

  이런 불가사의 현상, 이상한 여자의 정체,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며 사람들에게 알리는 순간 몇몇 미친놈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증거가 없으면 아무리 범인인 사람이 있어도 재판이 열리지 않는 사회에, 증명되지 않으면 조작이라고 단정 짓는 세상에, 원리가 없으면 무시당하는 세계에.

  쓸데없는 발언으로 묻혀 고통받는 것보다 말하지 않고 인내심을 쌓는 게 더욱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나도 그중 하나기 때문이니까.

  그러니까 세상을 상대로, 대중을 상대로 떠보는 것은 괜한 시간 낭비일 뿐이다.

 

  "어..."

 

  정신을 차려보니 내 앞에 어리둥절한 효민이 서 있었다.

 

  "방금 뭐야? 그보다 저 여자 누구야? 말 좀 해봐 오빠!"

  "나도 잘 몰라. 그것보다 기억 안 나? 어제도 저 여자랑 만났다고?"

  "기억 안 나. 진짜야."

 

  그렇다면 오늘이 반복되는 걸 아는 사람은 나와 방금 사라진 여자인가. 분명 저 여자는 자기가 사람이 아니라고 했던가, 그것보다 뭔가 이상한데?

  누군가가 되돌리는 건가, 혹은 그냥 무슨 상황에 오류가 있어서 되돌려지는 건가, 정확하게 되돌리는 이유가 도대체 뭐야?

  그리고 왜 나랑 방금 사라진 그 여자의 기억만 멀쩡한 거야? 기억이 남아있는 사람이 있다면 미래가 바뀌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것도 오류일 수도 있으며 그렇게 오류가 생기면 다시 오늘을 되돌려야 하니 정말 불필요한 행동 같은데.

 

  "지각하겠다. 먼저 갈게 효민아."

  "뭐 하러 먼저 가?"

 

  의아해하며 말하는 효민.

  난 의미를 알 수 없어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아니, 지각하잖아? 설마 같이 가는 걸 바라는 거야?"

  "이렇게 만났는데 어떻게 버리고 갈 수가 있어? 너 진짜 연애하기 힘들겠다. 안쓰러울 정도야."

 

  기분이 조금 상했지만 그것도 잠시, 순간 연애로 화제가 틀어질 뻔했다.

  내가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건 이 상황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효민의 심리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사람의 심리가 한순간에 바뀔 수 있는 걸까?

  분명 아침에 나와 효민은 싸웠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일방적으로 효민이만 싸웠다.

  그런데 지금은 어째서 나와 같이 등교하자는 말이 나올 수 있을까, 기억상실증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효민아, 우리 아침에 싸우지 않았니?"

 

  내가 조심스럽게 물어봤지만 효민은 조심스러움이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을 정도로 태연하게 대답했다.

 

  "응. 솔직히 같이 다니는 건 싫지만 아까 장면이 충격적이어서 감시하는 차원으로 같이 가자는 거야."

 

  그런 건가. 하긴, 만약 효민이가 어떤 잘생기고 키 큰 남자와 같이 있는 장면을 본다면 나도 그럴 것이다.

 

  "같이 가도 돼?"

  "혼자 가는 것보다는 좋지, 혼자 가는 건 이제 싫단 말이야. 너로 괜찮을지는 내일도 같이 가보면 알겠지 뭐."

 

  내일- 난 그 단어가 머릿속에 맴돌아 어정쩡하게 대답했다.

  확실히 오늘은 뭔가 이상하다. 날짜가 안 바뀌지 않나, 그 사실을 나와 그 여자만 기억하지 않나, 효민과 관계가 또 갑자기 좋아지지 않나.

  그리고 난생처음으로- 내일을 기대하지 않나.

 

  같이 걷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왠지 모르게 지루함이 느껴졌다.게다가 평소보다 학교에 도착하는 걸리는 시간이 점점 지체되고 있는 듯한 불길한 기운이 가시지가 않았다.

  추측건대 지루함의 이유는 학교에 도착하는 시간이 점점 지체되고 있다는 걸 인지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간이 지체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내 왼쪽에 있는 효민의 다리를 보면 답이 나온다. 변태 같아도 답을 찾기 위해서였으니 죄는 없으리라.

  좁은 보폭, 산들바람 하나도 기분 좋게 받아들일 수 없는 치마의 길이.

 

  "너, 치마가 조금 짧다. 아니 많이 짧아. 노력만 한다면 보일 정도야."

  "이렇게 안 하면 안 예쁘단 말이야. 그리고 왕따 당할 수도 있어."

 

  난 효민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확실히 겉모습은 안 예쁘겠지만 너라면 얼굴과 귀여움으로 커버가 가능하고, 따돌림당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역시 안 되겠다. 내 앞으로 걸어라. 이 오빠가 오랜만에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내가 효민의 뒤로 살며시 이동하니 놀라며 말하는 효민.

 

  "저리 가 변태! 치마 바꿀 테니까! 말 잘 들을 테니까 그만 하란 말이야!"

  "효민아, 너 은근 야하다?"

  "동생한테 그게 무슨 소리야!? 신고한다!?"

 

  내게 버럭 화내는 효민, 하지만 난 그런 효민을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아니 아니 봐봐. 초롱초롱하고 순수하며 호수같이 맑아 모든 것을 반사시키는 눈동자, 그 호수는 때때로 얼어붙지만 그것마저도 아름답지. 게다가 앞머리가 있는 단발은 특유의 귀여움을 상징하고 네 연분홍색 입술과 하얀 피부가 어우러져 야함을 만들어냈어."

 

  저번에 하지 못했던 효민의 묘사를 육성으로 시원하게 했더니 속이 후련했지만, 효민의 얼굴은 붉어져만 갔다.

 

  "그건 야한 게 아니라 예쁜 거야 변태야."

  "아, 미안하다 단어가 잘못 나왔어. 여러분 죄송합니다. 만약 무슨 일이 터지기라도 한다면 모두 저 노귀재가 책임지겠습니다. 작가님은 잘못 없어요."

  "뭐라는 거야... 늦겠어, 빨리 가자."

 

  다시 학교로 향하는 우리. 나는 땅을 보며, 효민은 주위와 앞을 보며 걸어간다.

  학교에 거의 도착할 즈음, 누군가가 내 팔을 툭툭 건드렸다. 내 팔을 툭툭 친 사람은 당연하지만 효민이었고-

  이윽고 효민은 날 보며 과감하게 입을 열었다.

 

  "손잡아 줘."

  "확실히 영광스러운 기회지만 거절하겠습니다. 우리는 남매고 여기 학교 앞이라고? 유명인이자 내 쌍둥이 여동생인 너의 손을 잡는 건 정말 영광이지만, 역시 생각해 보면 아니라는 결론밖에 안 나온다. 그리고 내가 널 끔찍하게 아껴서 그런 거지 내가 아닌 남자애가 너랑 쌍둥이였다면 분명 미쳤냐고 말할걸?"

 

  내 대답을 듣고 눈 한 번 깜빡하지 않는 효민.그녀의 태도를 보아하니 농담이라는 걸 확실히 인지할 수 있었다.

 

  "시끄러 아까 변태 짓 한 벌이야."

  "자, 잠깐만!!!"

 

  갑자기 내 손을 붙잡은 효민은 그대로 사람이 득실거리는 정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잃을 게 없다는 듯이 짓는 그녀의 변함없는 무표정은 내게 두려움과 경각심을 새겨 주었고, 그녀의 시원한 행동들은 앞으로 일어날 미래를 뒤바꿨으며, 그 시원함은 다가올 여름을 이겨낼 듯한 시원함이었다.

  난 그녀의 행동에 부응하듯 대담하게 지은 무표정을 그녀에게 보여줬으며, 그녀도 내 태도를 보고 각오를 다졌는지.

  -갑자기 정문 한가운데서 멈춰버리고 말았다.

  이런 관경을 뭐라고 하는가.

  이런 감정을 뭐라고 하는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미 하얗게 변해버린 내 뇌는 사고를 멈췄다.

 

  평소 교내 캠페인이나 행사 때문에 학생회가 앞에 줄지어 있는 학교의 정문, 그곳을 학교의 유명한 학생 효민과 『손을 잡고』 멈춰있다면.

 

  『효민이다! 근데 손잡고 있는 애는 누구야?』

  『노효민 아니야? 근데 저 남자애는 누구지?』

  『효민이 설마 남자친구 있는 거 아니야?』

  『남자친구? 에이 설마, 딱 봐도 친구 없어 보이는데... 그럴 리가.』

 

  이런 상황이 일어날 것이며, 아니 이미 일어난 뒤였다.

  이런 상황에서 도대체 누군가가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유지해야만 한다,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책임은 내게 있기 때문에 유지하지 않는다면 내 학교생활은 끝나게 된다.

  그러므로 내 학교생활은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효민아? 어째서 나한테 이런 짓궂은 장난을 하는 거지?"

  "아직도 모르는구나. 아니 잊은 거구나."

 

  학생들에게 둘러싸인 우리는 무표정을 지으며 최대한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의아해하며 효민에게 되묻자 되돌아온 답변은 싸늘한 문장 하나였다.

 

  "설마, 예전에 얽매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효민아."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그렇게 효민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학교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난 무덤덤하게 걸어가는 효민을 군중들과 함께 뒤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효민이 남긴 말의 의미는 더더욱 알 도리가 없었다.

  내가 만약 효민이라면, 들끓는 군중들 사이에서 일어난 지극한 관심과 질문을 받을 터지만, 나이기 때문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군중들은 나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의심쩍은 눈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난 지금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다수가 소수를 상대로 관심과 수치심을 주는 다수가 싫다.

  언론과 사회에서는 소수를 존중하자며 캠페인, 봉사, 광고 등을 내놓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다수결의 원칙이라는 말도 안 되는 수단으로 소수는 다수에게 짓밟힌다.

  다수에게 소수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소수에게는 그저 경멸과 바라지도 않는 기분 나쁜 동정심일 뿐이다.

 

  난 이런 장소에 오랫동안 머물고 싶지 않아 신속히 발걸음을 교내로 옮겼다.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교내로 들어가는 건 손에 땀이 맺히는 상황이지만, 중간에 쓰러지기라도 한다면 더더욱 관심을 받기 때문에 최대한 무덤덤하게 교내로 들어갔다.

 

  중앙계단 2층, 그곳에서 효민이 기다리고 있었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눈을 하고서 말이다.

 

  "타인의 시선이나 신경 쓰는 멍청한 자식아."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우리 교실이 있는 3층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정신을 차려보니 아침 조회는 이미 끝나있었고.

 

  "귀재야 귀재야! 소민이가 너랑 친해지고 싶대!"

 

  정말 중요한 아침 이벤트가 시작되었다.

  이 아침 이벤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이 알림에 대한 내 대답이다.

  그렇지만, 알고는 있지만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가 힘든 건 숨길 수 없는 사실.

  날짜가 바뀌지 않은 오늘, 어떻게든 내일이 오게끔 같은 언행을 하려 했지만 이미 아침부터 망쳐버렸고, 그 덕분에 효민은 자유롭게 움직이며 예전과 다른 미래를 자기 멋대로 만들고 있다.

  난 여기서 어떻게 해야 내일을 만드는 것이 가능할까.

  아니 애초에 내일을 만드는 것이 가능할까? 가능하다고 할 때, 과연 나 따위가 만들 수 있을까?

 

  미래는 자신이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고- 모두가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나에게 그것은 불가능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미래를 만드는 것은 가능했지만, 내가 원하는 미래를 만들 수는 없었다.

  미래는 스스로 만든다고 주장한 사람에게 내 이야기를 한다면- 미래는 스스로 만들기는 했잖아? 그 미래가 무조건 행복하다고 말한 적은 없어.

  이렇게 말하겠지.

  혹은 노력이 부족해서, 혹은 과정이 잘못돼서, 혹은 순서가 틀려서, 혹은 오해가 있어서, 혹은 성격이 못돼서, 혹은 운이 없어서.

  이러한 경우로 원하는 미래를 만들 수 없다고- 이렇게 둘러대는 게 일반적이겠다.

 

  "타인의 시선이나 신경 쓰는 멍청한 자식아."

  내 머릿속을 지배하는 한 문장.

  틀렸어.

  난 사실 타인에게 요만큼도 관심이 없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건 아무리 가까운 너를 위해서도, 부모님을 위해서도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야.

  그런데 내 모습을 잘 떠올려 봐.

  그렇다- 난 타인의 시선보다 내 초라한 모습에 신경 쓰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답은 이미 나왔다.

  이런 나에게, 이렇게 초라한 나에게, 이기적이면서 내세울 것 하나도 없는 나에게, 너무나도 걸맞은 답이 말이다.

 

  "난... 그다지..."

 

  이게 내 답이다.

  틀린 걸 알지만 이게 내 실력이자 한계, 넘을 수 없는 벽을 인지한 것이다.

  만약 계속 내일이 오지 않고 오늘이 반복되더라도, 만약 소민이라는 아이와 친해져야 내일이 온다고 하더라도, 난 무조건 거절할 것이다.

  이것으로 확신했다.

  난 반복되는 오늘을 통해서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알고 있다.

  난 반복되는 오늘을 통해서 과거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다.

  난 반복되는 오늘을 통해서 내 한계, 어느 의미로는 내 숙명을 알았다.

  난 어떻게 보면 반복되는 오늘 속에서 만난 이름 모르는 여자와 같다고- 그렇게 생각한다.

 

  "멍청한 자식."

 

  효민은 눈의 온도를 낮추고 날 노려봤다.

  이윽고 효민은 교실 앞문으로 걸어갔고, 난 달려가 교실을 나가는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하지만 그녀는 내 손을 뿌리쳤고, 내가 멍해진 틈을 타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비켜."

  "어?"

  "비키라고."

 

  소민도 차가운 눈과 얼어붙은 말로 날 경직시켰다.

  난 압력으로 인해 침묵을 지키며 소민에게 길을 내주었고, 소민은 두리번거리며 효민이 남긴 자취를 찾아다녔다.

  반 아이들의 시선을 받으며, 난 내 손에 쥐어진 효민의 팔찌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 팔찌..."

 
작가의 말
 

 재미있게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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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7』그가 시작한 이야기의 초반이 궁금하다 2019 / 1 / 1 277 0 4248   
16 『16』 최대한의 노력 2019 / 1 / 1 254 0 4520   
15 『15』그가 본 관경 2019 / 1 / 1 285 0 4190   
14 『14』막을 수 없었던 사건 2019 / 1 / 1 273 0 4649   
13 『13』그녀의 부탁 2019 / 1 / 1 243 0 4270   
12 『12』이름의 의미와 선물 2019 / 1 / 1 259 0 4370   
11 『11』드디어 찾아온 2019 / 1 / 1 258 0 4271   
10 『10』둘만이 알고 있는 사실들 2019 / 1 / 1 264 0 4784   
9 『9』오지랖의 의미는 알 수 없었다 2019 / 1 / 1 260 0 4993   
8 『8』긴장감의 끝은 어디로 2019 / 1 / 1 267 0 4350   
7 『7』드디어 찾은 내일의 열쇠 2019 / 1 / 1 277 0 5882   
6 『6』어제의 충격은 가시지 않고 2019 / 1 / 1 276 0 5012   
5 『5』가깝고 먼 것은 하루 차이 2019 / 1 / 1 293 0 5664   
4 『4』언제까지 2019 / 1 / 1 279 0 7581   
3 『3』내일이 보고 싶다 2019 / 1 / 1 262 0 9719   
2 『2』다시 한 번 더 2018 / 11 / 20 253 0 7643   
1 『1』내 인생은 왜 이럴까 2018 / 11 / 9 425 0 6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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