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그런 마음을 가져도 될까?
“저기... ”
“네?”
수훈은 뒤돌아보니 아까 명품매장에서 본 그 아가씨였다.
“아까부터 그쪽 따라 다녔는데...”
“네~에? 왜 절 따라다녔는데요?‘
“아.... 그게 그쪽한테 관심이 생겨서요...”
“뭐, 뭐가 생겨요?”
수훈은 딱 봐도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가씨가 당돌하게 말하는 바람에 당황했다.
“관심요... 근데, 애인 선물 사는 거예요?” 그가 자꾸만 여자들이 하는 제품을 고르고 있었기에 조바심이 나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리고 속으로 연호는 아니길 바라면서 수훈을 쳐다봤다.
“애인은 아니고, 친구 생일 선물인데... 왜 그러시죠?”
직구로 훅 들어오는 그녀 때문에, 저도 모르게 수훈은 대답해버렸다.
그의 말을 들은 연호는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그럼 제가 도와 드릴까요? 아무래도 이런 건 남자보다 여자인 내가 나을 것 같은데요”
“아... 그럼 좀 도와주시겠어요?”
수훈은 아까 어머니 일도 있고, 선물을 뭘로 해야 할지 고민하던 차이기도 해서, 매정하게 대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여러 매장을 한 참 돌고 돈 후, 선물을 골랐다.
“덕분에 괜찮은 선물이 될 것 같네요”
선물상자를 바라보며 수훈은 연호에게 말했다.
“아마 그분 좋아할 거예요... 그 머리핀 손으로 직접 만든 거라서 정성도 들어 있을거구요...”
“아~네”
수훈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 차 한 잔 사주시겠어요? 돌아다녔더니 다리가 좀 아파서 앉고 싶네요”
“네, 당연히 그래야죠”
수훈은 선물을 골라준 답례로 당연히 차를 대접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먼저 선수를 치는 그녀가 적응이 안 되는 그였다.
-요즘 아가씨들은 다 이런가?-
자신도 20대인데 세대차이가 느껴지다니... 수훈은 피식 웃었다.
시원한 음료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두 사람은, 아니나 다를까 연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송 연호에요. 스물셋 이구요, 대학교 4학년, 졸업반입니다”
역시 당돌하고, 거침없었다.
“아... 저는 스물여덟이고, 작은 가게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름은 강 수훈입니다”
“그렇군요... 보기보다 나이가 좀 있네요. 제 또래인 줄 알았어요”
“네~에? 무슨 그런 농담을...”
“아뇨... 오빠가 워낙 동안이라 그렇게 생각했죠”
“오...빠?”
“넵. 저보다 나이가 많잖아요. 그럼 오빠잖아요. 우리 오빠는 나이가 더 많은데도 오빠라고 부르는데, 그럼 아저씨라고 부를까요?”
연호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흠흠... 오빠가 낫겠네요... 그쪽 오빠보다 내가 나이가 어린데 아저씨라고 하는 건 뭔가 안 맞잖아요”
아저씨라는 말에 수훈은 미간을 살짝 구겼다.
“큭큭... 아저씨란 말, 정말 듣기 싫은가 보다”
연호의 말에 수훈의 귀가 빨개졌다.
“오빠 핸드폰 좀 줘 봐요”
아무 생각 없이 핸드폰을 건네주는 수훈이었다.
“오빠, 이 번호가 제 번호에요.. 알았죠?”
수훈의 핸드폰에 자신의 번호를 저장한 연호는, 자신의 핸드폰으로 수훈에게 전화를 했다.
수훈은 핸드폰 액정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받아! 예쁜 연호잖아>
그의 웃는 모습에 연호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 남자 웃는 모습도 멋있다.
“애인 있어요?”
대뜸 들이대는 연호의 질문에,
“초면에 많은 걸 물어보네”
하고 여유 있게 받아쳤다. 근데,
“아까 명품매장에서 보고, 지금은 두 번째 보는 건데... 그럼 물어봐도 되는 거 아닌가?”
“큭큭큭”
이 웃기고 대책 없는 아가씨 좀 보게... 수훈은 오랜만에 크게 웃었다.
“그래서 애인이 있다는 거예요... 없다는 거예요?”
“없어도 너같이 철부지는 관심 없는데?”
“오케이... 애인 없다는 거 확인했고, 관심은 내가 있으니까 됐고...”
자신과는 너무나 다른 연호의 맹랑한 행동에 수훈은 내심 부러웠다.
그리고 그런 연호가 귀여웠다.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 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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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은 오랜만에 숙면을 취하고 일어나니, 한결 몸이 개운했다.
“설마... 간 건 아니겠지?”
조심스레 방문을 여니, 소파에 그녀가 누워서 잠들어 있었다.
-아... 안 갔구나...-
강현은 조심스럽게 담요를 덮어주며, 흐뭇한 미소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자는 모습도 예쁜 그녀였다. 눈을 감고 있으니 속눈썹은 더 길었고, 오똑한 코에 도톰하고
작은 입술... 입술을 보는 순간, 강현은 저도 모르게 강렬한 자석에 이끌리듯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한입에 다 들어오는 저 입술이 또 탐이 났다. 이상하게 그녀의 입술은 중독성이 있다.
어느새 그녀의 코앞까지 다가온 강현은 순간 멈칫했다.
“음... 헉~”
지담은 인기척에 눈을 떴다. 근데 바로 눈앞에 그가 있어서 깜짝 놀랐다.
“무, 무슨 짓이야! 깜짝 놀랐잖아!”
라고 말하고는 소파에서 얼른 일어나 앉았다.
“흠흠..당신 자는 모습이 예뻐서...”
귀까지 빨개진 강현도 벌떡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벌컥벌컥 마셨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두근두근..... 진정하려고 물을 마셨건만, 그녀가 다가오자 더 세차게 뛰고 있었다.
지담은 강현에게 다가가 자신의 손으로 그의 이마를 짚었다.
다행히 열은 내려간 거 같았다.
“열은 내린 거 같네”
그러고는 뒤 돌아가려는데 강현이 그녀의 손을 잡고는 자신에게로 끌어당겼다.
그리고는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감싸고는 입술을 깊게 빨아들였다.
“앗....읍”
그가 차가운 물을 마신 탓인지, 차가운 숨이 한 번에 들어오자 지담은 움찔했다.
강현은 부드럽게 그녀의 입안 곳곳을 잠식했고, 차가운 숨은 이내 둘의 뜨거운 열기로 가득 채웠다.
조용한 공간 속에 오로지 둘만의 거친 숨소리와 입맞춤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긴 입맞춤이 끝이 났다. 그러나 강현은 아쉬운 듯 그녀의 입술을 다시 짧게 머금었다가 떨어졌다.
“쪽~”
민망할 정도로 소리가 컸다. 덕분에 지담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이상하게 그의 품과 키스가 싫지 않았다. 이게 혹시 마음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그런.... 서지담, 너 그런 애였니?
이게 다 저 남자 때문이다. 자기 마음대로 안아버리고, 키스하고... 이러니 몸이 먼저 반응을 하지...
이러다 자신이 먼저 저 남자를 덮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지담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려버렸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강현은 부끄러워하는 줄 알고 지담을 꼬옥 안았다.
“이상해...”
“뭐가?”
강현은 여전히 지담을 안고는 그녀에게 되물었다.
“당신을 거부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가 않아... 이상해, 왜지?”
“푸풉..푸하하하...큭큭큭”
그제야 지담과 떨어진 강현은 기쁨의 웃음을 터트렸다.
“왜, 왜 웃어? 난 심각한데...”
“큼큭...아~진짜...흠흠...이 안의 감정도 서지담다워서. 그건 당신이 날 좋아하니까 그런 거야”
애써 웃음을 참던 강현이, 지담의 심장을 가리키며 미소를 지었다.
그의 말을 듣고 지담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고, 그 큰 눈은 점점 더 커졌다.
그런데 그때 강현이 한 번 더 그녀의 입술을 훔쳤다.
자신에게 와 준 그녀의 마음이 고마웠고, 다시는 놓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그녀의 입술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고마워....”
길고 긴 또 한 번의 입맞춤 끝에, 강현은 다시 지담을 끌어안고는 애틋하게 말했다.
“나 좀 앉고 싶어”
지담은 두 번의 아찔하고 기나긴 키스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소파에 앉은 두 사람은 손을 꼭 잡았다.
지담은 강현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떨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당신을.... 이게... 그러니까... 좋아하는 마음이라고?”
“그래”
강현이 두 손을 지담의 얼굴에 감싸며, 자신을 보게 했다.
눈을 보면서 말하라고....
지담은 몰랐다. 그런 마음을 가져본 적이 없었기에... 아니 가져서는 안 되는 마음이기에....
“내가 그런.... 마음을... 감히... 가져도 될까?”
그 순간....
지담의 눈에서 눈물이 툭 하고 떨어지더니 이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다. 다른 사람 앞에서는 눈물을 보이지 않았던 자신인데....어째서 지금....그리고 그 누구도 아닌 강현 앞에서 이러는지....
“당신은 그런 마음 가져도 돼...그러니까 다 토해 내... 참지 말고”
강현은 그녀의 눈물에 마음이 뻐근했지만, 그동안 혼자서 다 짊어지고 아프다는 말 한마디 못했을 그녀에게 조용히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의 말에, 저 깊은 곳에 묻어 두었던 뜨거운 무언가가 소리가 되어 터져 나왔다.
“어~어..윽..흑흑흑...어..윽윽..엉엉엉....윽..흑흑~”
지담은 한참을 그렇게 쏟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