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생각 할 시간을 좀 줘
‘난 누군가....또 여긴 어딘가...’
자신의 집인 걸 확인한 지담은, 부스스하게 무거운 몸을 일으켜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랐다.
“아~씨 출근~”
“오늘 토요일이잖아...더 자도 돼”
“아 맞다, 오늘 토요일이지.....가 아니고...... 아,아~~~~~악....너...너...너 뭐야?”
지담은 한 손은 이불을 그러쥐고 한 손은 옆에 누워 있는 강현에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를 쳤다.
“어제 기억 안나?”
강현은 상의를 탈의한 채로 누워, 손바닥을 얼굴에 괴고 그녀에게 물었다.
“어제 뭐, 뭐? 당신이 왜 여기에 벗은 채로 누워있고, 난 왜 옷이 어제랑 다른 거야? 당신, 나한테 무, 무슨 짓 했어?”
지담은 더욱 의심의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았고, 그런 그녀의 모습에 강현은 할 말을 잃었다.
“화장실에 가봐... 그럼 설명이 될 테니까”
그제야 지담은 화장실로 곧장 향했다. 문을 여니, 대야에 옷이 물에 담겨 있었다.
“이제 기억이 좀 나시나?”
어느새 지담의 뒤로 다가온 강현은 허리를 숙여 그녀의 귓가에다 말을 했다.
사실 빨리 씻으면 얼룩이 없어질 수 있는데, 그러면 그녀를 벗겨야 했다.
선뜻 그녀의 몸에 손을 댈 수 없어서 한참을 망설이다 겨우 마음을 다잡고, 벗기려고 하는데, 그녀가 ‘어딜 감히’ 그러면서 강현을 발로 차고 주먹으로 때렸다.
어제 그녀의 주사를 생각하면서 강현은 몸서리를 쳤다.
“근데 당신은 왜 벗고 있어?”
그래도 못 믿겠다는 듯이 지담은 그를 밀치며 흘겨보았다.
“당신이 나한테도 우~웩 했잖아...그 차림으로 나갈 수도 없고, 옷을 갈아입으려니 여긴 내 집이 아니고...그래서 보시다시피...”
강현은 지담의 흉내를 내면서 그녀를 놀렸다.
“그럼 다, 당신이 나, 오,옷 갈아입힌 거야?”
“그럼 옷 다 버렸는데, 그대로 자게 둘 순 없잖아”
머리를 쥐어 잡으며 지담은 털썩 주저앉았다.
-그럼 이 남자....내 몸을...오....마이.....갓 -
대충 설명이 끝난 강현은 어디론가 전화를 하더니.
“나 입을 옷 없는데, 당신이 좀 사다 줘” 그런다.
아직도 어떨떨한 지담은 동생의 옷을 강현에게 건넸다.
남자 옷을 건네받은 강현은 잔뜩 찌푸린 얼굴로,
“이거 남자 옷 같은데... 누구 거야?”
하고 지담에게 물었다.
“이상한 생각 하지마... 동생 거야”
“아하~”
그제야 안심하는 얼굴이었다. 도대체 왜 내가 이런 변명 아닌 변명까지 해야 하는지... 지담은 이 상황이 다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러더니 “해장하러 가자”고 한다.
이 상황이 기가 차고 당황스럽고 황당한 지담은 그런 그의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그래도 확인할 건 확인해야 했다.
“우리 아무 일도 없었지?”
“무슨 일? 어떤 무슨 일? 당신이 다 토해서 내가 당신 옷이랑 내 옷이랑 빨래한 거? 아님 바닥에도 토해서 내가 다 닦은 거? 아님 당신이 토해서 내가 당신 옷 벗기려는데 당신이 나를 때린 거? 아님 당신이 다 토해서 내가 당신 몸 닦이고 옷 갈아입힌 거? 어떤 거?”
강현이 줄줄 나열하면서 그녀에게 다가왔고, 지담은 물러나면서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
-아~쪽팔려...이거 나 놀리는 거 맞지?-
그리고 뭐?
“모, 몸도 닦았어?”
지담은 고개를 들어 강현을 바라보았다.
“그대로 자면 냄새 날거고 그래서 닦.....으악...”
지담이 주먹을 말아 쥐고 강현의 배를 과격했다.
“야~너 죽을래?”
“윽...무슨 여자가 손이 이렇게 매워? 그리고 무슨 상상을 하는 건데? 날... 술 먹고 정신없는 사람을 건드리는 그런 파렴치한으로 보는 건, 설마 아니지?”
“...........”
지담은 뜨끔해서 아무말도 못했다.
“하~ 말 없는 거 보니 그런가 보네... 닦아주고 치워주고 맞아주기까지 한 나한테 고작 보답이 파렴치한이야?”
물론 그녀의 몸을 닦을 땐, 굉장한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 했지만, 그는 그 고통을 모조리 참으며 그녀 곁을 지켰다.
“아니...모, 몸을 닦았다고 하니까...”
-아~씨 그럼 내 몸을 보고 만..졌..다는 건데...
으~악 내가 다시는 이 남자랑 술 마시나 봐라-
입술을 질끈 깨물은 지담은 차마 강현을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체, 말을 흐렸다.
“괜찮아...내가 책임질게”
당황해하는 그녀를 위해 강현은 그녀를 꼬옥 안았다.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그는 그녀를 더욱 꽉 안았다.
“그러니까 그만 만나자는 말은 하지마.... 나 미치는 꼴 보기 싫으면...”
강현은 평생 이렇게 그녀와 아옹다옹하면서 살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나와... 계속... 함께하는 거지?”
그녀가 거절할까 꼭 껴안은 체,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생각할 시간을 좀 줘”
헤어지자는 말을 들을 줄 알았는데 의외의 답이 나와 강현은 내심 기뻤다.
지담은 서글픈 강현의 목소리에 가슴이 저릿했고, 또 그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이대로 헤어진다면 그녀 또한 개운치 않은 이 감정 때문에 후회할 것 같았다.
“언제까지? 삼일? 오일?”
“내가 연락할게”
“안돼, 당신 연락 기다리느라 가슴이 터질 거야...기간을 정해”
“나 원~ 그 놈의 기간.... 기간 너무 좋아하는 거 아냐?”
“기간을 정하면 최소한 그 시간만큼은 당신 방해 안하고 기다릴 수 있으니까...”
“휴~ 그럼, 일주일”
“일주일씩이나?”
“너무 짧지? 그럼 이주일?”
“아냐, 아냐...일주일...일주일이 딱이야, 그렇지~”
강현의 급 당황한 모습에 지담은 피식하고 웃었다.
근데 갑자기 그가 고개를 꺽어 지담의 입술을 머금었다. 갑작스런 입맞춤에 지담은 당황했고, 그를 밀어내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강현은 그녀의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어 그녀가 허락하기를 기다렸다.
자신도 모르게 입이 벌어진 그녀는 첫 키스 이후 또 한 번 아찔함을 맛보았다.
그런데 첫 키스때 보다 더 아찔하고 짜릿했지만, 왠지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그를 더는 거부할 수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강현은 일주일 동안 그녀를 못 볼 생각을 하니 아쉬운 마음에 더욱 격렬하고 짜릿하게 그녀의 입술과 입안을 점령했다.
길고 긴 입맞춤에 더 강렬한 소유욕이 용솟음하는 걸 느낀 강현은 엄청난 인내를 하며 그녀에게서 떨어졌다.
그러나 강현은 이날 지담에게서 떨어지지 않았어야 했다.